반석평
1. 개요
반석평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150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07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경흥 부사, 만포진첨절제사, 함경남도·북도 병마절도사, 충청도·전라도·평안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으며, 공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40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장절이다. 조선 팔도 관찰사를 모두 역임한 두 명의 인물 중 한 명이며, 그의 15대손은 반기문이다.
| 이름 | 반석평 |
|---|---|
| 원어 이름 | 潘碩枰 |
| 출생일 | 1472년 |
| 출생지 | 조선 전라도 옥구현(現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
| 사망일 | 1540년 6월 24일 (음력 5월 20일) |
| 본관 | 광주(光州) |
| 별명 | 자 공문(公文), 호 송애(松厓), 시호 장절(壯節) |
| 학력 | 1507년(중종 2) 식년 문과 급제 |
| 직업 | 문관, 정치인 |
| 배우자 | 정경부인 남양 박씨, 정경부인 예안 이씨 이장(李穡)의 딸, 정경부인 진보 조씨 |
| 부모 | 부 반서린(潘瑞麟), 모 회미 장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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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반씨 -
반기문
반기문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외교관 생활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며 국제 현안 해결에 기여하고 파리 기후 협정 체결을 이끌었으며 퇴임 후에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
1472년 출생 -
루카스 크라나흐
루카스 크라나흐는 15세기 말~16세기 중반 독일에서 활동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이자 판화가로, 작센 선제후의 궁정 화가로서 마르틴 루터와 교류하며 종교 개혁 관련 작품을 남겼고, 여성 누드와 신화 속 장면을 독창적으로 표현했으며, 그의 작품은 나치 시대 약탈로 인해 반환 소송이 진행 중이다. -
1472년 출생 -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는 밀라노 공의 딸로, 1494년 막시밀리안 1세와 정략결혼하여 독일 왕비이자 신성 로마 황후가 되었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사망했으며, 현대 연구에서는 그녀가 궁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예술과 미디어에서도 묘사되었음을 보여준다. -
1540년 사망 -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방랑자이자 점성가, 연금술사로 알려진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는 실존 여부가 불분명하지만, 후대에 악마와 계약한 마법사 "파우스트"의 원형으로 다양한 문헌과 예술 작품에 등장하며 불멸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
1540년 사망 -
김극성
김극성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별시문과 급제 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공신에 책록되었고, 여러 요직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김안로 사후 복귀하여 활약한 인물로, 시호는 충정이다.
2. 생애
1504년(연산군 1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07년(중종 2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안당의 추천으로 경흥 부사가 되었으며, 만포진첨절제사와 함경도 병마절도사 등 주로 외직과 무관 관련직을 역임했다. 1524년에는 군기 문제로 탄핵받아 파직되기도 했으나 다시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임명되었다. 이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충청도, 전라도, 평안도 관찰사를 차례로 지냈다. 또한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예조 참판, 공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 중앙의 주요 관직도 두루 거쳤다. 1540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재직 중 사망하자, 중종은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특별히 부의를 내리도록 명했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2.2. 지방관 역임
1516년 안당(安塘)의 추천으로 종5품 경흥 부사(慶興府使)가 되었다.
1522년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24년 군기를 살피지 않고 도로 사정을 잘못 보고했다는 이유로 탄핵받아 파직되었으나, 이후 다시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임명되었다.
1527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고, 1530년에는 경연특진관(經筵特進官)과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531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 참판을 거쳐 1532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1533년 평안도 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2.3. 중앙 관직 역임
1507년(중종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다. 1524년에는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임명되었다. 1530년 경연 특진관(經筵特進官)을 역임하였고, 1531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 참판을 지냈다. 1536년(중종 31년) 공조 판서가 되었으며, 1539년에는 동지중추부사, 형조 참판, 한성부판윤을 거쳐 형조 판서가 되었다. 1540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