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화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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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배화신전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을 숭배하는 장소로, 기원전 9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파르티아와 사산 제국 시대에는 불의 사원이 발전했으며, 이슬람 시대 이후에는 파괴되거나 개조되기도 했다. 불의 사원은 불의 등급에 따라 아타쉬 다드, 아타쉬 아다란, 아타쉬 바흐람으로 나뉘며, 아타쉬 바흐람은 가장 높은 등급의 불로 16가지 다른 출처에서 얻은 불을 모아 봉헌한다. 배화신전은 수수하고 장식이 없는 외관을 가지며, 숭배 시에는 백단향 등을 불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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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화신전 | |
|---|---|
| 위치 정보 | |
| 기본 정보 | |
| 유형 | 조로아스터교 사원 |
| 다른 이름 | 아타슈가 다르베 메흐르 다르에 메흐르 |
| 역사 | |
| 건축 시기 | 기원전 3천년 ~ 기원전 4천년 |
| 중요 사건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으로 인한 파괴 (전통적 견해) 이슬람 정복 이후 탄압 |
| 특징 | |
| 주요 특징 | 꺼지지 않는 불, 기도 공간 |
| 불의 종류 | 아트레쉬 |
| 중요 의식 | 나오조트 |
| 종교적 의미 | |
| 상징 | 아샤 (진리, 질서) |
| 중요성 |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아후라 마즈다에게 기도하는 신성한 장소 |
| 추가 정보 | |
| 위치 | 주로 이란, 인도, 아제르바이잔 등 |
| 관련 용어 | 아타슈가 다르베 메흐르 다르에 메흐르 |
| 참고 문헌 | 보이스, 메리 코트왈, 피로즈 M. |
2. 역사와 발전
기원전 9세기에 처음 등장한 불의 의례는 조로아스터교 자체의 의례와 동시대에 일어났으며, 아타르가 신으로 등장한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아베스타에는 불의 사원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이를 지칭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단어도 없다. 초기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의 의례는 교리적 수정이었고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후대의 ''아타시 냐시''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중반 조로아스터교인들은 탁 트인 하늘을 숭배하며 언덕에 올라 불을 켰다.[6] 스트라보는 이를 확인하며, 6세기에 카파도키아의 제라 사원은 인공적인 언덕이었으며,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하늘이 트여 있었다고 기록했다.[7]
파르티아 제국 시대(기원전 250년–서기 226년)에는 조로아스터교에 '바긴' 또는 '아야잔'이라고 불리는 특정 신에게 바쳐진 사원과 '아트론'이라고 불리는 "불을 태우는 장소"의 두 가지 형태의 숭배 장소가 있었다.[8] 사산 왕조가 부상한 후, 야자타 신전은 계속 존재했지만 법에 따라 조각상은 버려지거나 불의 제단으로 대체되었다.
사산 제국 시대(226–650 CE)에는 '아타시-이 바흐람'(문자 그대로: "승리의 불", 나중에 바흐람의 불로 오해됨)과 더 작은 '아타시-이 아다란'(마을이나 도시 지역에 봉사하는 교구 불)의 두 종류의 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8] 불이 계속 타오르는 것은 '아타시-이 바흐람'뿐이었으며, '아다란' 불은 매년 다시 켜졌다.
가장 오래된 불의 사원 유적은 시스탄의 하문 호수 근처 호자산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3~4세기로 추정된다.[9] 이 사원은 파르티아 제국 시대에 재건되었고, 사산 제국 시대에 확장되었다. 사산 시대 불의 사원의 특징은 불 제단이 있던 돔형 성소였다.[10] 이 성소는 항상 각 모서리에 기둥이 있는 정사각형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은 돔(''곰바드'')을 지지했다. 아베스타에 대한 ''젠드'' 주석의 고고학적 유물과 문헌 증거에 따르면 성소는 사방에 통로가 둘러싸여 있었다.[10]
조로아스터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세 곳의 불의 사원은 아두르 부르젠-미르, 아두르 파르남바그, 아두르 구슈나스프이다. 이들은 "위대한 불꽃" 또는 "왕실의 불꽃"으로 불렸으며, 각각 농부, 사제, 전사 계급과 관련이 있었다.[11] 11세기 또는 12세기에 완성된 조로아스터교 백과사전인 ''분다히신''에 따르면, 위대한 불꽃은 창조 이래로 존재해 왔으며, 믿음을 전파하고, 의심을 해소하며, 모든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소 ''스리쇼크''의 등에 실려 왔다고 한다.[11] 파르남바그 불꽃은 셋 중 가장 숭배받는 불꽃이었는데, 이는 '가장 거룩한 불꽃'의 지상 대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파르시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1000여 년 전 (대)호라산에서 온 난민들이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에 상륙했을 때 이 불씨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Udvada에 있는 불의 기원이 바로 이 재였다고 한다.[12] 인도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 난민들의 초기 시절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 '산잔 이야기'에 따르면, 이민자들은 Sanjan에 '아타쉬-와라흐란', 즉 '승리의 불'을 세웠다. 전쟁의 위협으로 인해 불은 Bahrot 동굴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12년 동안 보관되었다. 그 후 다시 Bansdah로 옮겨져 14년 동안 더 머물다가 Navsari로 옮겨졌으며, 18세기까지 그곳에 있었다. 이후 불은 오늘날 불이 타오르는 Udvada로 옮겨졌다.
오늘날 영원히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은 많지만, 'Warharan의 불'을 제외하고는 250년 이상 된 불은 없다.
2. 1. 개념
기원전 9세기에 처음 등장한 불의 의례는 조로아스터교 자체의 의례와 동시대에 일어났으며, 아타르가 신으로 등장한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아베스타에는 불의 사원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이를 지칭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단어도 없다.불의 의례가 초기 조로아스터교에서는 교리적 수정이었고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후기의 ''아타시 냐시''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 전례의 가장 오래된 구절에서 저녁과 아침 식사를 요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화로 불인데, 보이세는 이것이 성화된 불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관찰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중반 조로아스터교인들은 탁 트인 하늘을 숭배하며 언덕에 올라 불을 켰다.[6] 스트라보는 이를 확인하며, 6세기에 카파도키아의 제라 사원은 인공적인 언덕이었으며,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하늘이 트여 있었다고 기록했다.[7]
2. 2. 파르티아와 사산 제국 시대
파르티아 제국 시대(기원전 250년–서기 226년)에는 조로아스터교에 두 가지 형태의 숭배 장소가 있었다. 하나는 '바긴' 또는 '아야잔'이라고 불리는, 특정 신에게 바쳐진 사원이었다. 이 사원은 개인이나 가족의 수호성인(또는 천사)을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존경받는 대상의 아이콘이나 조각상을 포함했다. 다른 하나는 '아트론'으로, 우상 파괴 운동이 지지를 얻으면서 점점 더 널리 퍼진 "불을 태우는 장소"였다.[8] 사산 왕조가 부상한 후, 야자타 신전은 계속 존재했지만 법에 따라 조각상은 버려지거나 불의 제단으로 대체되었다.쉬프만(Schippman)이 관찰했듯이, 사산 제국 시대(226–650 CE)에도 불이 그 신성함에 따라 분류되었다는 증거는 없다.[8] 사실상 두 종류의 불, 즉 '아타시-이 바흐람'(문자 그대로: "승리의 불", 나중에 바흐람의 불로 오해됨)과 더 작은 '아타시-이 아다란'(마을이나 도시 지역에 봉사하는 교구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8] 불이 계속 타오르는 것은 '아타시-이 바흐람'뿐이었으며, '아다란' 불은 매년 다시 켜졌다. 불 자체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조물은 그렇지 않았다. "중세 페르시아어 이름의 평범한 본질(''카닥'', ''만'', ''카나그''는 모두 평범한 집을 의미하는 단어이다)은 사원 숭배를 육성한 사람들이 오래된 화로 불 숭배의 특성과 최대한 가깝게 유지하고, 정교함을 억제하려는 욕망을 반영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2. 3. 고고학적 흔적
가장 오래된 불의 사원 유적은 시스탄의 하문 호수 근처 호자산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초와 평면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유적은 기원전 3~4세기로 추정된다.[9] 이 사원은 파르티아 제국 시대(기원전 250년~서기 226년)에 재건되었고, 사산 제국 시대(226–650 CE)에 확장되었다.사산 시대 불의 사원의 특징은 불 제단이 있던 돔형 성소였다.[10] 이 성소는 항상 각 모서리에 기둥이 있는 정사각형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은 돔(''곰바드'')을 지지했다. 아베스타에 대한 ''젠드'' 주석의 고고학적 유물과 문헌 증거에 따르면 성소는 사방에 통로가 둘러싸여 있었다. "많은 유적에서 돌층이 있는 잡석으로 만들어진 ''곰바드''만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유적은 페르시아에서 '차하르-타크' 또는 '네 개의 아치'라고 불린다."[10]
2. 4. 전설적인 대화재
조로아스터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세 곳의 불의 사원은 아두르 부르젠-미르, 아두르 파르남바그, 아두르 구슈나스프이다. 이들은 "위대한 불꽃" 또는 "왕실의 불꽃"으로 불렸으며, 각각 농부, 사제, 전사 계급과 관련이 있었다.[11] 3세기 경에는 이 사원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졌으며, 페레이둔, 잠쉬드, 루스탐과 같은 민담 속 영웅들의 전설과 연관되었다.11세기 또는 12세기에 완성된 조로아스터교 백과사전인 ''분다히신''에 따르면, 위대한 불꽃은 창조 이래로 존재해 왔으며, 믿음을 전파하고, 의심을 해소하며, 모든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소 ''스리쇼크''의 등에 실려 왔다고 한다.[11]
이러한 "왕실의 불꽃" 사제들은 순례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서로 경쟁했으며, 각각의 불꽃은 사회적 계급을 반영했다. 파르남바그 불꽃은 사제, 구슈나스프 불꽃은 전사, 부르젠-미르 불꽃은 농부 계급과 관련이 있었다. 이는 기원전 1세기부터 사회가 넷으로 봉건적 신분으로 나뉘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사회학적 증거와 일치한다.
파르남바그 불꽃은 셋 중 가장 숭배받는 불꽃이었는데, 이는 '가장 거룩한 불꽃'의 지상 대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 5. 이란샤 아타쉬 베람
파르시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1000여 년 전 (대)호라산에서 온 난민들이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에 상륙했을 때 이 불씨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Udvada에 있는 불의 기원이 바로 이 재였다고 한다.[12]
이 불의 사원은 처음부터 Udvada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도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 난민들의 초기 시절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 '산잔 이야기'에 따르면, 이민자들은 Sanjan에 '아타쉬-와라흐란', 즉 '승리의 불'(Warharan, 어원 참조)을 세웠다. 전쟁의 위협(아마도 1465년)으로 인해 불은 Sanjan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Bahrot 동굴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12년 동안 보관되었다. 그 후 다시 Bansdah로 옮겨져 14년 동안 더 머물다가 Navsari로 옮겨졌으며, 18세기까지 그곳에 있었다. 이후 불은 오늘날 불이 타오르는 Udvada로 옮겨졌다.
오늘날 영원히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은 많지만, 'Warharan의 불'을 제외하고는 250년 이상 된 불은 없다. 인도 조로아스터교인들이 Sanjan에서 Bahrot 동굴로 불을 옮길 때 ''afrinagan''(오늘날 성스러운 불이 있는 금속 단지)을 발명했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파르티아 시대의 그리스 역사가들은 불을 운반하는 금속 꽃병 모양의 단지 사용을 기록했다. 3-4세기 사산 제국의 동전 역시 오늘날의 ''afrinagan''과 디자인이 동일한 꽃병 모양 용기에 담긴 불을 보여준다. 인도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이러한 도구들과 다른 도구들을 전 세계의 동료 종교인들에게 수출한다.
3. 현대
현대에 이르러 불의 사원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는 '미트라의 문' 또는 '미트라의 궁정'을 의미하는 '다르 베 메흐르(dar be-mehr)'이다. 이란에서는 '불의 집'을 의미하는 '아타쉬카다(atashkada)'라는 용어도 사용된다.[13] 인도에서는 '불의 집'을 의미하는 '아기아리(agiary)'라는 구자라트어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2]
불의 사원은 모셔진 불의 등급에 따라 아타쉬 다드가, 아타쉬 아다란, 아타쉬 바흐람으로 분류된다.[1] 가장 높은 등급의 불은 "승리의 불"인 아타쉬 바흐람(Atash Behram)이며, 16가지 다른 출처에서 얻은 16가지 다른 "종류의 불"을 모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봉헌된다. 봉헌식에는 32명의 사제가 필요하며, 완료하는 데 최대 1년이 걸릴 수 있다.
아타쉬 바흐람은 전 세계에 9개가 있는데, 인도 우다바다의 이란샤 아타쉬 바흐람, 인도 나브사리의 데사이 아타쉬 바흐람, 인도 뭄바이의 다디세스 아타쉬 바흐람, 인도 수라트의 바킬 아타쉬 바흐람과 모디 아타쉬 바흐람, 인도 뭄바이의 와디아 아타쉬 바흐람, 바나지 아타쉬 바흐람, 안주만 아타쉬 바흐람, 그리고 이란 야즈드의 야즈드 아타쉬 바흐람이 있다.
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아타쉬가) 외관은 수수하고 장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1] 사원 내부에는 불 제단이 있는 '아타쉬가'('불의 장소')가 있으며, 야스나 예배를 드리는 사원에는 우물이나 개울 등 '자연' 물이 부속되어 있다. 성소는 이중 돔 지붕으로 덮여 있고, 통풍구를 통해 비나 파편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신자가 성소에 들어가면 백단향(또는 다른 향기로운 나무)을 불에 바치는데, 이는 ''야스나''와 ''벤디다드''에 명시된 교리적 법규에 따른 것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제는 불을 돌보며, 불의 사원 참배는 계절 축제(가함바르) 때, 특히 새해(노루즈)에 활발하다.
3. 1. 명칭
불의 사원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는 'dar be-mehr'(다르 베 메흐르)이며, '미트라의 문' 또는 '미트라의 궁정'을 의미한다. 이 용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13] 이란에서는 'atashkada'(아타쉬카다)라는 용어도 사용하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불의 집'을 의미하며 비(非)조로아스터교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13] 20세기 초, 봄베이의 '파실리'는 그들의 첫 번째 화염 사원의 이름으로 이 용어를 다시 사용했고, 이후 테헤란의 조로아스터교인들도 주요 화염 사원의 이름으로 이 용어를 다시 사용했다.
인도에서는 'agiary'(아기아리)라는 구자라트어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단어 역시 '불의 집'을 의미한다.[2] 최근에는 'dar-be mehr'라는 용어가 더 권위 있는 화염 사원에서 매일 의식에 사용되는 이차적인 성화(聖火, ''dadgah'')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북미와 같은 해외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인들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 있는 사원과 불이 가끔 켜지는 장소 모두에 'dar-be mehr'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 2. 분류
불의 사원은 모셔진 불의 등급에 따라 아타쉬 다드가, 아타쉬 아다란, 아타쉬 바흐람으로 분류된다.[1]3. 3. 주요 아타쉬 바흐람
가장 높은 등급의 불은 "승리의 불"인 ''아타쉬 바흐람''(Atash Behram)이며, 그 건립과 봉헌은 세 가지 중 가장 정교하다. 여기에는 번개, 화장터의 불, 용광로가 작동하는 직업에서 얻은 불, 그리고 ''아타쉬 아다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화로에서 얻은 불을 포함하여 16가지 다른 출처에서 얻은 16가지 다른 "종류의 불"을 모으는 것이 포함된다. 각 불은 다른 불과 합쳐지기 전에 정화 의식을 거친다. 봉헌식에는 32명의 사제가 필요하며, 완료하는 데 최대 1년이 걸릴 수 있다.
아다란 또는 바흐람 불을 유지하는 사원은 최소 하나의 다드가 불도 유지한다. 아다란 및 바흐람 불과 대조적으로, 다드가 불은 사제가 신앙의 의식을 거행하고, 대중이 특정 개인, 가족, 또는 행사를 위해 축복을 기원하는 곳이다. 더 큰 불에 대한 숭배는 불 자체에만 적용된다. 즉, 그러한 불의 봉헌 후에는 젊은 아베스타어로 불에 대한 기도인 ''아타쉬 니야쉬''(Atash Nyash)만 낭송된다.
아타쉬 바흐람 9개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위치 | 이름 | 설립 연도 |
|---|---|---|
| 인도 우다바다 | 이란샤 아타쉬 바흐람 | 1742년 |
| 인도 나브사리 | 데사이 아타쉬 바흐람 | 1765년 |
| 인도 뭄바이 | 다디세스 아타쉬 바흐람 | 1783년 |
| 인도 수라트 | 바킬 아타쉬 바흐람 | 1823년 |
| 인도 수라트 | 모디 아타쉬 바흐람 | 1823년 |
| 인도 뭄바이 | 와디아 아타쉬 바흐람 | 1830년 |
| 인도 뭄바이 | 바나지 아타쉬 바흐람 | 1845년 |
| 인도 뭄바이 | 안주만 아타쉬 바흐람 | 1897년 |
| 이란 야즈드 | 야즈드 아타쉬 바흐람 | 1934년 |
3. 4. 물리적 특징
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아타쉬가) 외관은 의도적으로 수수하고 장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원이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성스러운 불을 모시는 장소라는 고대 전통을 반영한다.[1]사원 내부 구조는 항상 동일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홀이 나오고, 홀 옆이나 위, 아래층에 앞방이 있다. 앞방 안쪽에는 가장 안쪽 성소인 '아타쉬가'가 있는데, 이곳에 불 제단이 있다. '아타쉬가'는 '불의 장소'라는 뜻이다.
야스나 예배를 드리는 사원에는 항상 우물이나 개울 등 '자연' 물이 부속되어 있다. 이는 야스나 예배의 절정 의식인 아브-조르에 필수적이다.
성소는 이중 돔 지붕으로 덮여 있고, 돔에는 통풍구가 있다. 외부 돔과 내부 돔의 통풍구는 어긋나 있어 비나 파편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성소는 칸막이로 앞방과 분리되어 있고, 바닥은 주변보다 약간 높다. 벽은 타일이나 대리석으로 되어 있지만 장식은 없다. 인도 조로아스터교 전통에 따르면, 사원은 직사광선이 성소에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성소 한쪽 구석에는 종이 걸려 있는데, 매일 다섯 번 보이 의식을 할 때 울린다. '보이'는 '좋은 향'이라는 뜻이며, 각 '가' 또는 '시계'의 시작을 알린다. 불을 피우는 도구는 벽에 걸려 있거나, 성소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방에 보관된다.
인도와 해외 인도 조로아스터교 공동체에서는 비조로아스터교 신자가 불을 볼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이는 전통으로 발전된 것이며, 16세기 리바야트 서신에도 언급되어 있다.
3. 5. 숭배
신자가 성소에 들어가면 백단향(또는 다른 향기로운 나무)을 불에 바친다. 이는 어떤 연료가 적절한지 열거하는 것 외에도 어떤 연료가 적절하지 않은지(특히 나무가 아닌 모든 것) 설명하는 ''야스나'' 3.1 및 ''야슈트'' 14.55의 훈령을 반복하는 ''벤디다드'' 18.26-27에 표현된 교리적 법규에 따른다.오늘날 조로아스터교 전통에서 공물은 직접 바치지 않고, 호흡으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코와 입에 천 마스크를 착용한 사제에게 맡긴다. 그런 다음 사제는 은색 집게로 공물을 불에 넣는다. 사제는 특별한 국자를 사용하여 신성한 재를 평신도에게 제공하고, 평신도는 이마와 눈꺼풀에 바르고, 쿠쉬티 의식 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조로아스터교 사제는 설교나 설법을 하지 않고, 단순히 불을 돌본다. 불의 사원 참배는 계절 축제(''가함바르'') 때, 특히 새해(노루즈)에 활발하다.
사제는 3단계로 구성된다. 각 사원의 수석 사제는 다스투르라는 칭호를 갖는다. 이 직급에 대한 서임은 그를 하위 사제가 속죄해야 하는 삶의 다양한 사건 이후의 정화의 필요성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일반 사제는 모바드라는 칭호를 가지며, 회중 예배와 결혼과 같은 가끔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모바드는 모바드의 아들, 손자 또는 증손자여야 한다. 가장 낮은 계급은 헤르바드 또는 에르바드이다. 이들은 주요 의식에 참여한다.[15]
4. 갤러리


5.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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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간행물
Encyclopaedia Iranica
Mazda Pub
[2]
논문
Some Observations on the History of the Parsi Dar-i Mihrs
[3]
문서
"[[Yasna]]'' 62.1; ''Nyashes'' 5.7"
[4]
웹사이트
List of Fire Temples
https://theparsidire[...]
2019-02-17
[5]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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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imesof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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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4
[6]
서적
"[[Histories (Herodotus)]], Vol. I"
[7]
서적
"[[Geographica]], Vol. XI"
[8]
문서
Boyce 1966, p.63
[9]
뉴스
A Mysterious Stranger in China
https://www.wsj.com/[...]
2011-09-03
[10]
간행물
Encyclopaedia Iranica
Mazda Pub
[11]
서적
M. Hale, Pahlavi, in "The Ancient Languages of Asia and the America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2]
간행물
Encyclopaedia Iranica
https://web.archive.[...]
Mazda Pub
2006-09-06
[13]
논문
On the Orthodoxy of Sasanian Zoroastrianism
1996
[14]
뉴스
Parsi Woman Excommunication Case
https://web.archive.[...]
2018-01-05
[15]
뉴스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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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뉴스
Parsis go all out to celebrate milestone in Chennai
http://timesofindia.[...]
The Times Group
201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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