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농업
1. 개요
북한의 농업은 좁은 경작지와 불리한 기후 조건으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 북한은 전체 육지의 약 17%만을 경작하며, 이 중 곡식 재배에 적합한 면적은 14,000km²에 불과하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는 북한은 농업 정책을 통해 식량 생산을 증대하려 노력하며, 쌀, 감자, 온실 재배 작물, 가금류 등을 생산한다. 1990년대의 기근 이후 식량 유통 시스템이 불안정해졌으나, 2000년대 이후 시장의 역할이 커지고 농업 생산이 점차 회복되면서 식량 자급에 근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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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북한 |
|---|---|
| 총 경작 가능 면적 | 22% |
| 주요 생산물 | 쌀 옥수수 감자 콩 보리 |
|---|---|
| 기타 생산물 | 가축 돼지 가금류 |
| 집단 농장 시스템 | 협동농장 국영농장 |
|---|---|
| 주요 목표 | 식량 자급자족 |
| 주요 문제 | 비효율적인 농업 기술 부족한 비료 공급 기상 조건의 영향 (가뭄, 홍수) 국제적인 고립으로 인한 기술 및 자원 부족 |
|---|
| 식량 부족 |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 |
|---|---|
| 경제 성장 제약 | 농업 생산성 저하로 인한 경제 성장 제약 |
| 국제 사회의 지원 | 국제 기구 및 국가들의 식량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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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농업 조건
북한의 희박한 농업 자원은 농업 생산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이다. 기후, 지형, 토양 조건은 농사에 특별히 유리하지 않으며, 작물 재배 기간도 비교적 짧다. 전반적으로 북한의 자연환경은 농업 생산량 증대에 어려움을 주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2.1. 지형 및 기후
북한의 부족한 농업 자원은 농업 생산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이다. 기후, 지형, 토양 조건은 농사에 특별히 유리하지 않으며, 작물 재배 기간도 비교적 짧다. 북한 전체 국토 면적의 약 17%에 해당하는 20000km2만이 경작 가능하며, 이 중에서도 곡물 재배에 적합한 땅은 14000km2에 불과하다. 국토의 상당 부분은 험준한 산악 지형이다.
날씨는 고도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지며, 강수량 부족과 척박한 토양 때문에 해발 400m 이상의 고지대는 방목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다. 강수량은 지역별, 계절별 편차가 크며, 대부분 지역에서 연간 강수량의 절반 가량이 여름 3개월에 집중된다. 이러한 기후 패턴 때문에 관개 시설과 홍수 방지 체계가 갖추어진 따뜻한 지역에서는 벼 재배가 선호된다. 북한의 쌀 생산량은 헥타르당 5.3톤 수준으로, 국제 기준에 비교적 근접한 편이다.
2.2. 토양
북한의 토양 조건은 기후, 지형과 더불어 농업 생산에 불리한 주요 요인이다. 전반적으로 농사에 특별히 유리하지 않으며, 특히 고도가 400m 이상인 고지대 토지는 강수량이 부족하고 비옥하지 않아 방목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다. 국토의 주요 부분이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작에 적합한 토지가 제한적이다.
전체 육지 면적의 약 17%인 20000km2만이 경작 가능하며, 이 중에서도 곡식 재배에 적합한 토지는 14000km2에 불과하다. 이는 경작 가능 토지 비율이 22%에 달하는 대한민국과 비교된다.
강수량이 여름철에 집중되고 지역별 편차가 커서, 관개 시설과 홍수 방지망이 갖춰진 지역에서는 주로 논에서 쌀을 재배한다. 쌀 생산량은 헥타르당 5.3톤 수준으로 국제 기준에 비교적 가깝다.
3. 농업 정책
자급자족 원칙은 북한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식량 생산에서의 자급자족 달성은 핵심적인 정책 목표이다. 또한 도시와 농촌 간의 생활 수준 격차를 해소하고 식량 공급 및 가격 안정을 통해 국가 안정을 유지하는 데 농업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배경 하에 북한 정부는 김일성의 우리나라 사회주의 농업 문제에 관한 테제(1964) 등을 통해 농업 발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1990년대 초반 겪었던 심각한 식량 부족 이후 식량 문제 해결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3.1. 주요 정책 기조
북한 농업 정책의 기본 방향은 김일성의 1964년 우리나라 사회주의 농업 문제에 관한 테제에 제시되어 있다. 이 테제는 농업 발전에 대한 북한 정부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며, 농촌에서의 기술 및 교육 발전과 함께 집단적 소유와 관리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주체사상에 기반한 자급자족 원칙은 북한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기둥으로, 식량 생산에서의 자급자족 달성은 핵심적인 정책 목표로 여겨진다. 또한 도시와 농촌 간 생활 수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업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한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과 가격 유지는 주민 생활과 국가 안정에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로 인식되며, 합리적인 가격에 식량을 꾸준히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는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주민들의 단백질 섭취를 늘리기 위해 돼지, 닭, 토끼 등 축산업과 양어장 및 어업 생산 증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 농산물
쌀은 북한의 주요 농산물 중 하나이다. 감자 역시 중요한 식량원으로, 특히 1990년대 기근 이후 그 중요성이 더욱 커져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주요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온실을 이용한 딸기나 멜론과 같은 과일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닭을 사육하는 대규모 농장도 운영되고 있다.
4.2. 감자
감자는 북한에서 중요한 식량원이 됐다. 1990년대 기근 이후 '감자 혁명'이 일어났다. 1998년에서 2008년 사이에 북한의 감자 재배 면적은 200로 4배 증가했으며, 연간 1인당 소비량은 16kg에서 60kg으로 증가했다.
이전에는 2급 식품으로 여겨졌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쌀 대신 주요 주식이 되었다.
4.3. 온실 재배 작물
2014년 이후 많은 온실이 건설되었는데, 이는 새롭게 등장한 준 사설 상인들이 농부들과 협력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온실에서는 주로 딸기나 멜론과 같은 부드러운 과일을 재배하며, 생산된 작물은 상인들이 도시의 장마당 시장을 통해 유통 및 판매를 주선한다.
4.4. 가금류
2021년 기준으로 북한 전역에 30개에 달하는 대규모 닭 농장이 있다.
5. 식량 유통 시스템
195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 유통은 주로 국가 주도의 배급제(공공 배급 시스템)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은 농업 지역에서 생산된 식량의 일부를 정부가 거두어들여, 식량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어려운 도시 지역 주민 등에게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북한 인구의 약 70%가 이 시스템을 통해 식량을 공급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는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 생산량 감소로 인해 공공 배급 시스템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배급량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특정 기간에는 배급이 완전히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1998년, 북한 정부는 배급 시스템을 통한 식량 공급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비공식적인 시장인 장마당에 점차 의존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불법으로 간주되었던 장마당에서의 거래는 점차 북한 주민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고, 이에 북한 당국도 2002년과 2010년에 걸쳐 시장 활동을 단계적으로 합법화했다. 이후 장마당은 북한 주민들의 식량 확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국가 주도의 배급 시스템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주요 식량 유통 경로로 자리 잡았다.
5.1. 공공 배급 시스템 (PDS)
1950년대 이후,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공공 배급 시스템(PDS, Public Distribution System)을 통해 식량을 공급받았다. 이 시스템은 농업 지역의 농민들이 생산량 일부를 정부에 납부하면, 정부가 이를 식량을 자급할 수 없는 도시 지역 주민들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전체 북한 인구의 약 70%가 이 정부 운영 시스템을 통해 식량을 공급받았다.
초기 배급량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시점은 불분명하다. 일반적으로 하루 600~700g 수준이었고, 고위 공무원, 군인, 중노동자 등 특정 계층은 700~800g으로 더 많은 양을 받았다. 2013년 기준으로 목표 평균 배급량은 1인당 하루 573g의 곡물이었지만, 실제 배급량은 연령, 직업, 학교 급식 수혜 여부 등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농업 생산량 감소는 배급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정부가 농민들의 식량 보유를 제한하면서 식량 부족은 더욱 심화되었다. 본래 배급 대상이 아니었던 농민들에게 정부가 연간 1인당 식량 할당량을 167kg에서 107kg으로 줄이라고 지시하자, 농민들은 필요한 곡물을 숨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1990년대 대기근 시기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탈북자들은 정부가 1994년 배급량을 하루 150g으로, 1997년에는 30g까지 줄였다고 증언했다.
공공 배급 시스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식량난 시기인 1998년 4월부터 8월, 그리고 1999년 3월부터 6월까지는 식량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기도 했다. 1998년 1월, 북한 정부는 더 이상 배급 시스템을 통해 식량을 공급할 수 없으니 각 가구가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05년까지 공공 배급 시스템은 가구당 최소 필요 열량의 약 절반 정도만 공급하는 데 그쳤다. 2008년 이후 시스템이 다소 회복되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대부분 기간 1인당 하루 평균 400g 정도를 배급했지만, 2011년 5월부터 9월 사이에는 다시 200g으로 감소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공공 배급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하면서, 주민들은 비공식적인 시장 활동에 의존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북한 가구 평균 소득의 약 80%가 기술적으로는 불법이었던 소규모 장사(장마당 등)에서 나왔다는 추정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북한 정부는 2002년과 2010년에 사설 시장을 점진적으로 합법화했다. 2013년 기준으로 도시와 농촌의 시장은 10일마다 열렸으며, 대부분의 도시 주민들은 시장 2km 이내에 거주하게 되어 식량 확보에서 시장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5.2. 장마당 (시장)
1990년대 대기근을 겪으며 기존의 배급제를 통한 식량 공급 시스템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생산량 감소와 분배 시스템의 문제로 배급량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1994년에는 하루 150g, 1997년에는 30g까지 감소했다는 난민들의 증언도 있다. 심지어 1998년과 1999년에는 특정 기간 동안 배급이 완전히 중단되기도 했다. 결국 1998년 1월, 북한 정부는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변화 속에서 주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경제 활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사설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북한 가구 평균 수입의 약 80%가 기술적으로는 불법이지만 당국이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소규모 사업, 즉 장마당을 통한 활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2002년과 2010년에 걸쳐 장마당에서의 상행위를 점진적으로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3년 기준으로 장마당은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10일 간격으로 열렸으며, 대부분의 도시 주민들은 시장에서 2km 이내에 거주할 정도로 접근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장마당은 식량난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식량 확보에 있어 배급제를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6. 농업의 역사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업, 임업, 어업이 국가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농업 생산 기반이 약화되었다. 관개 시설 가동을 포함한 기계화 능력이 떨어지고 비료와 같은 화학 물질 투입이 부족해지면서 수확량이 줄고 손실이 늘어났다. 이러한 농업 내부의 문제와 더불어,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원조 변화 등 외부 환경 변화, 연이은 자연재해, 그리고 경직된 정책 운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 부족 사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되었다. 이 시기 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많은 주민이 기아로 고통받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농업 생산이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2013년경에는 주식인 쌀의 경우 자급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학 비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퇴비 등 유기질 비료 사용이 권장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식량 사정은 여전히 불안정하며, 특히 주민들의 단백질 섭취는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농업은 여전히 기상 조건, 국제 사회의 지원, 내부 정책 변화 등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 상황이다.
6.1. 해방 이후 ~ 1980년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업과 임업, 그리고 어업이 국가 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하였다. 1945년과 1946년에 각각 63.5%와 31.4%에 달했던 이 비중은 1990년에는 26.8%까지 낮아졌다. 전체 노동력에서 농림어업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960년 57.6%에서 1989년 34.4%로 줄어들었다.
6.2. 고난의 행군 (1994-1998)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은 기근을 겪었으며, 이 시기는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다.
1990년대 북한 경제는 침체에서 위기로 전환되었다. 이전까지 경제 성장의 중요 요인이었던 소련과 중국의 경제 지원이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지원을 중단하고 수입 대금으로 경화를 요구했다. 중국은 일부 지원과 함께 식량, 석유를 공급했지만, 1994년부터는 대북 수출을 줄였다. 북한의 경직된 정치 및 경제 체제는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고, 결국 1990년부터 경제는 위축되고 공업 생산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농업 부문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비료, 살충제, 관개 시설 가동에 필요한 전기 등 농업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들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5년 발생한 기록적인 홍수를 포함한 연이은 자연재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높은 국방비 지출(GDP의 약 25%)과 정부의 정책 실패 또한 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1992년부터 1998년 사이에 북한 경제 규모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수십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 부족은 대규모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정치적 실패와 부족한 경작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1993년 12월, 농업, 경공업, 대외 무역을 우선 순위에 두는 3개년 경제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료 부족, 계속되는 자연재해, 열악한 식량 저장 및 운송 시스템 문제로 인해 연간 100만 톤 이상의 곡물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발전 시설 가동에 필요한 부품과 석유를 구매할 외화 부족으로 많은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이 극심한 기근은 기존의 사회주의 계획 경제 시스템의 많은 부분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대를 생산 활동과 사회 기반 시설 건설에 직접 투입하는 선군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는 북한 경제를 국제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켰고, 산업 발전과 구조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게 되었다.
6.3. 2000년대 이후 ~ 현재
1990년대 후반부터 농업 생산에 점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2013년까지 북한은 주식에서 거의 자급자족하게 되었다. 특히 쌀 수확량은 꾸준히 개선되었지만, 다른 작물의 수확량은 일반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의 생산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화학 비료에 대한 접근은 줄어들었지만 퇴비 및 기타 유기질 비료의 사용이 권장되고 있다.
식량 부족은 엄청난 홍수와 정치적 실패, 그리고 국가의 빈약한 경작지가 혼합된 직접적인 결과로 발생했다. 2004년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57%)이 건강을 유지할 만한 충분한 음식이 없었다. 어린이들의 37%는 성장이 지연되었고 어머니들의 1/3은 심각한 영양실조였다.
2006년 세계 식량 계획(WFP)과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는 북한의 국내 생산량이 3.8에 불과하여 5.3~6.5의 곡물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나라는 또한 농업을 위해 벌채된 산림이 토양 침식을 초래한 후 토지 황폐화에 직면해있다. 가혹한 기상 조건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고(2011년 밀과 보리 생산량은 각각 50%와 80% 감소) 세계 식량 가격의 상승은 식량 부족을 더욱 심화시켜 6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민간 물품 판매에 대한 의존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국제 원조가 증가하면서 상황이 다소 개선되어 2014년 현재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에게 영양 결핍이 더 이상 주요 관심사가 되지 않았다. 또한, 공공 배급제(PDS)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6년 식량 생산량은 2015년 4.5에서 7% 증가한 4.8을 기록했으며, 북한은 남한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했다. 2017년 생산량은 2% 감소한 4.7으로 추정된다. 2018년 식량 생산량은 더욱 감소하여 641의 식량 수입이 필요하며, 작년과 비교하였을 때 456이 필요해졌고 북한은 390을 수입하고, 66을 기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