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친 텐둘카르
1. 개요
사친 텐둘카르는 1973년 뭄바이에서 태어난 전직 인도 국제 크리켓 선수로, "크리켓의 신"으로 칭송받는다. 그는 오른손으로 타격, 볼링, 던지기를 했으며, 1989년부터 2013년까지 인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테스트 경기와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경기에서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텐둘카르는 2012년 라자야 사바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자선 활동과 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2014년 인도 최고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를 수훈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사친 텐둘카르 |
|---|---|
| 원어 이름 | सचिन रमेश तेंडुलकर |
| 전체 이름 | 사친 라메시 텐둘카르 |
| 별칭 | 리틀 마스터 마스터 블래스터 |
| 출생일 | 1973년 4월 24일 |
| 출생지 | 뭄바이, 마하라슈트라, 인도 |
| 키 | 165cm |
| 가족 | 라메시 텐둘카르 (아버지) 아르준 텐둘카르 (아들)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국가 | 인도 |
|---|---|
| 타격 스타일 | 오른손 타자 |
| 투구 스타일 | 오른팔 레그 브레이크 오른팔 오프 브레이크 오른팔 미디엄 패스트 |
| 국제 경기 출전 여부 | 예 |
| 국제 경기 활동 기간 | 1989–2013 |
| 테스트 데뷔일 | 1989년 11월 15일 |
|---|---|
| 테스트 데뷔 상대 | 파키스탄 |
| 테스트 출전 번호 | 187 |
| 마지막 테스트 경기일 | 2013년 11월 14일 |
| 마지막 테스트 상대 | 서인도 제도 |
| 경기 수 | 200 |
| 득점 | 15,921 |
| 타율 | 53.78 |
| 100회/50회 득점 | 51/68 |
| 최고 득점 | 248* |
| 투구 수 | 4,240 |
| 위켓 수 | 46 |
| 볼링 평균 | 54.17 |
| 5위켓 달성 | 0 |
| 10위켓 달성 | 0 |
| 최고 볼링 기록 | 3/10 |
| 캐치/스텀핑 | 115/– |
| ODI 데뷔일 | 1989년 12월 18일 |
|---|---|
| ODI 데뷔 상대 | 파키스탄 |
| ODI 출전 번호 | 74 |
| ODI 셔츠 번호 | 10 (이전 99, 33) |
| 마지막 ODI 경기일 | 2012년 3월 18일 |
| 마지막 ODI 상대 | 파키스탄 |
| 경기 수 | 463 |
| 득점 | 18,426 |
| 타율 | 44.83 |
| 100회/50회 득점 | 49/96 |
| 최고 득점 | 200* |
| 투구 수 | 8,054 |
| 위켓 수 | 154 |
| 볼링 평균 | 44.48 |
| 5위켓 달성 | 2 |
| 10위켓 달성 | 0 |
| 최고 볼링 기록 | 5/32 |
| 캐치/스텀핑 | 140/– |
| T20I 데뷔일 | 2006년 12월 1일 |
|---|---|
| T20I 데뷔 상대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T20I 출전 번호 | 11 |
| T20I 셔츠 번호 | 10 |
| T20I 출전 여부 | 예 |
| 경기 수 | 310 |
|---|---|
| 득점 | 25,396 |
| 타율 | 57.84 |
| 100회/50회 득점 | 81/116 |
| 최고 득점 | 248* |
| 투구 수 | 7,605 |
| 위켓 수 | 71 |
| 볼링 평균 | 61.74 |
| 5위켓 달성 | 0 |
| 10위켓 달성 | 0 |
| 최고 볼링 기록 | 3/10 |
| 캐치/스텀핑 | 186/– |
| 경기 수 | 551 |
|---|---|
| 득점 | 21,999 |
| 타율 | 45.54 |
| 100회/50회 득점 | 60/114 |
| 최고 득점 | 200* |
| 투구 수 | 10,230 |
| 위켓 수 | 201 |
| 볼링 평균 | 42.17 |
| 5위켓 달성 | 2 |
| 10위켓 달성 | 0 |
| 최고 볼링 기록 | 5/32 |
| 캐치/스텀핑 | 175/– |
| 클럽 1 | 뭄바이 |
|---|---|
| 활동 기간 1 | 1988–2013 |
| 클럽 2 | 요크셔 |
| 활동 기간 2 | 1992 |
| 클럽 3 | 이스트 벵골 |
| 활동 기간 3 | 1994 |
| 클럽 4 | 뭄바이 인디언스 |
| 활동 기간 4 | 2008–2013 |
| 클럽 4 셔츠 번호 | 10 |
| 직책 | 라지야 사바 의원 |
|---|---|
| 선출 방식 | 지명 |
| 임기 시작 | 2012년 4월 27일 |
| 임기 종료 | 2018년 4월 26일 |
| 소속 정당 | 인도 |
| 소속군 | 인도 공군 |
|---|---|
| 복무 기간 | 2010–현재 |
| 계급 |
| 훈장 | 바라트 라트나 파드마 비부샨 파드마 쉬리 마하라슈트라 부샨 켈 라트나 어워드 아르주나 어워드 오스트레일리아 명예 훈장 |
|---|
| 웹사이트 | sachintendulkar.com |
|---|
| 남자 크리켓 | 인도 |
|---|
| ODI 월드컵 | 1위: 2011 인도/방글라데시/스리랑카 |
|---|---|
| 챔피언스 트로피 | 1위: 2002 스리랑카 |
| 아시아 컵 | 1위: 1990-91 인도 1위: 1995 아랍에미리트 |
| 관련 인물 | 라메시 텐둘카르 (아버지) 아르준 텐둘카르 (아들) 라마칸트 아크레카르 (코치) 수디르 쿠마르 차우드하리 (팬) |
|---|---|
| 관련 장소 | 왕케데 스타디움 스탠드 |
| 관련 생물 | 마렌고 사친텐둘카르 |
| 관련 미디어 | 페라리 키 사와리 사친! 텐둘카르 알라 사친: 어 빌리언 드림스 사친 사친: 더 얼티밋 위너 |
| 관련 책 | 플레잉 잇 마이 웨이 (자서전) |
| 가필드 소버스 트로피 | 2010 |
|---|---|
| ICC 올해의 남자 테스트 팀 | 2010 2011 |
| ICC 올해의 남자 ODI 팀 | 2004 2007 2008 2010 |
| 위스덴 올해의 리딩 크리켓 선수 | 1998 2010 |
| 위스덴 올해의 크리켓 선수 | 1997 |
-
인도의 크리켓 선수 -
비라트 콜리
비라트 콜리는 인도의 크리켓 선수로, 타자로서 인도 크리켓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으며, 유소년 시절 U-19 월드컵 우승, ODI 최다 센추리 기록, 인도 프리미어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히 한다. -
인도의 크리켓 선수 -
안킷 마이니
-
뭄바이 출신 -
다이아나 펜티
다이아나 펜티는 인도의 배우이자 모델로, 2005년 모델로 데뷔하여 인도 및 국제 브랜드 광고 모델로 활동하다 2012년 영화 《칵테일》로 배우 데뷔 후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하고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뭄바이 출신 -
압둘라 유수프 알리
압둘라 유수프 알리는 영국령 인도 출신의 학자이자 번역가로, 널리 사용되는 쿠란 영어 번역본인 《성 꾸란: 본문, 번역 및 주해》를 통해 교육 분야와 종교 간 이해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1973년 출생 -
박노자
박노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대한민국에 귀화한 한국학 연구자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며,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
1973년 출생 -
박주민
2. 유년 시절 및 배경
어린 시절 텐둘카르는 테니스와 크리켓에 모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미국의 존 매켄로(John McEnroe)를 우상으로 삼아 그를 따라 머리를 길게 기르기도 했다. 텐둘카르는 테니스 손목 보호대와 머리띠를 착용하고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다니며 테니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형 아짓은 텐둘카르의 폭력적인 성향을 다잡기 위해 1984년에 크리켓을 시작하도록 이끌었다. 아짓은 텐둘카르를 다다르의 시바지 공원(Shivaji Park)에 있는 크리켓 코치 라마칸트 아크레카르(Ramakant Achrekar)에게 소개했다. 이후 텐둘카르는 시바지 공원에서 아크레카르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을 받았고, 샤라다슈람 비디야만디르 학교로 전학하여 본격적으로 크리켓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7년, 텐둘카르는 첸나이(Chennai)의 MRF 페이스 재단(MRF Pace Foundation)에서 속구 투수(fast bowler) 훈련을 받았지만, 데니스 릴리(Dennis Lillee)는 그에게 타격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해 수닐 가바스카르(Sunil Gavaskar)는 텐둘카르에게 자신의 패드를 선물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텐둘카르는 1987 크리켓 월드컵(1987 Cricket World Cup)에서 볼보이(ball boy)로 활동했다.
2.1. 출생 및 가족
텐둘카르는 1973년 4월 24일 뭄바이의 다다르(Dadar)에 있는 니르말 간호원(Nirmal Nursing Home)에서 마하라슈트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라메시 텐둘카르(Ramesh Tendulkar)는 마라티어 소설가이자 시인이었고, 어머니 라즈니(Rajni)는 보험업계에서 일했다. 텐둘카르의 아버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감독 사친 데브 버먼(Sachin Dev Burman)의 이름을 따서 그의 이름을 지었다. 텐둘카르에게는 니틴(Nitin)과 아짓(Ajit) 두 명의 이복형제와 사비타(Savita)라는 이복여동생이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의 자녀들이었고, 첫 번째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은 후 사망했다. 그의 형 아짓은 뭄바이의 칸가 크리켓 리그(Kanga Cricket League)에서 활동했다.
텐둘카르는 반드라 동부(Bandra (East))의 사히티야 사하와스 협동 주택 단지(Sahitya Sahawas Cooperative Housing Society)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 텐둘카르는 폭력배로 여겨졌으며, 학교의 새로운 아이들과 종종 싸움을 벌였다.
2.2. 유년 시절
텐둘카르는 1973년 4월 24일 뭄바이의 다다르(Dadar)에 있는 니르말 간호원에서 마하라슈트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라메시 텐둘카르(Ramesh Tendulkar)는 마라티어 소설가이자 시인이었고, 어머니 라즈니(Rajni)는 보험업계에서 일했다. 텐둘카르의 아버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감독 사친 데브 버먼(Sachin Dev Burman)의 이름을 따서 그의 이름을 지었다. 텐둘카르에게는 니틴(Nitin)과 아짓(Ajit) 두 명의 이복형제와 사비타(Savita)라는 이복여동생이 있었다. 그의 형 아짓은 뭄바이의 칸가 크리켓 리그(Kanga Cricket League)에서 활동했다.
텐둘카르는 반드라 동부(Bandra (East))의 사히티야 사하와스 협동 주택 단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 텐둘카르는 폭력배로 여겨졌으며, 학교의 새로운 아이들과 종종 싸움을 벌였다.
어린 시절 텐둘카르는 테니스와 크리켓 모두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특히 미국 선수 존 매켄로(John McEnroe)를 우상으로 삼았고, 7~8살 때 그의 영웅을 본받아 머리를 길게 기르기도 했다. 이때 텐둘카르는 테니스 손목 보호대와 머리띠를 착용하고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다니며 테니스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폭력적인 성향을 다잡기 위해 그의 형 아짓은 1984년에 텐둘카르를 크리켓에 입문시켰다. 아짓은 그를 다다르의 시바지 공원(Shivaji Park)에 있는 크리켓 코치 라마칸트 아크레카르(Ramakant Achrekar)에게 소개했다. 텐둘카르는 아크레카르의 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되었고, 아크레카르는 그에게 다다르에 있는 샤라다슈람 비디야만디르 학교로 전학할 것을 권했다. 그는 1984년 말 샤라다슈람에서 크리케터로 데뷔했다. 텐둘카르는 아침과 저녁으로 시바지 공원에서 아크레카르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았다. 훈련이 지칠 때면 아크레카르는 1루피 동전을 스텀프(stumps) 위에 올려놓았고, 텐둘카르를 아웃시킨 볼러가 그 동전을 가져갔다. 텐둘카르가 아웃되지 않고 연습 세션을 마치면 코치가 그에게 동전을 주었다. 텐둘카르는 자신이 얻은 13개의 동전을 가장 소중한 소유물 중 하나로 여긴다.
학교 크리켓 외에도 텐둘카르는 클럽 크리켓도 했다. 1984년 11세 때 존 브라이트 크리켓 클럽에서 활동하며 칸가 크리켓 리그(Kanga Cricket League)에 데뷔했다. 1988년부터 그는 인도 크리켓 클럽(Cricket Club of India)에서 활동했다.
1987년에는 MRF 페이스 재단(MRF Pace Foundation)에 참석하여 속구 투수(fast bowler) 훈련을 받았지만, 데니스 릴리(Dennis Lillee)는 텐둘카르에게 대신 타격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해 수닐 가바스카르(Sunil Gavaskar)는 텐둘카르에게 자신의 패드를 선물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텐둘카르는 1987 크리켓 월드컵(1987 Cricket World Cup)에서 볼보이(ball boy)로 활동했다.
1988년, 텐둘카르는 비노드 캄블리(Vinod Kambli)와 함께 664점의 파트너십을 기록했다. 텐둘카르는 그 경기에서 326점을 기록했고, 토너먼트에서 1000점 이상을 기록했다.
2.3. 크리켓 입문
텐둘카르는 어린 시절 반드라 동부(Bandra (East))의 사히티야 사하와스 협동 주택 단지에서 성장했다. 그는 폭력배로 여겨졌으며, 학교의 새로운 아이들과 종종 싸움을 벌였다. 어린 텐둘카르는 테니스와 크리켓 모두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미국 선수 존 매켄로(John McEnroe)를 우상으로 삼았다. 7~8세 때에는 그의 영웅을 본받아 머리를 길게 기르기도 했다.
그의 형 아짓(Ajit)은 텐둘카르의 폭력적인 성향을 다잡기 위해 1984년에 그를 크리켓에 입문시켰다. 아짓은 그를 다다르의 시바지 공원(Shivaji Park)에 있는 크리켓 코치 라마칸트 아크레카르(Ramakant Achrekar)에게 소개했다. 텐둘카르는 첫 만남에서는 잘 치지 못했지만, 아크레카르는 그의 재능에 감명을 받고 그에게 다다르에 있는 샤라다슈람 비디야만디르 학교(Sharadashram Vidyamandir School)로 전학할 것을 권했다. 텐둘카르는 1984년 말 샤라다슈람에서 크리케터로 데뷔했다.
텐둘카르는 아침과 저녁으로 시바지 공원에서 아크레카르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았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연습했는데, 지칠 때면 아크레카르는 1루피 동전을 스텀프(stumps) 위에 올려놓았고, 텐둘카르를 아웃시킨 볼러가 그 동전을 가져갔다. 텐둘카르가 아웃되지 않고 연습 세션을 마치면 코치가 그에게 동전을 주었다. 텐둘카르는 자신이 얻은 13개의 동전을 가장 소중한 소유물 중 하나로 여긴다.
학교 크리켓 외에도 텐둘카르는 클럽 크리켓도 했다. 1984년 11세 때 존 브라이트 크리켓 클럽에서 활동하며 칸가 크리켓 리그(Kanga Cricket League)에 데뷔했다. 1988년부터 그는 인도 크리켓 클럽(Cricket Club of India)에서 활동했다.
1987년, 14세의 텐둘카르는 첸나이(Chennai)의 MRF 페이스 재단(MRF Pace Foundation)에서 속구 투수(fast bowler) 훈련을 받았지만, 데니스 릴리(Dennis Lillee)는 그에게 타격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해 수닐 가바스카르(Sunil Gavaskar)는 텐둘카르에게 자신의 패드를 선물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텐둘카르는 1987 크리켓 월드컵(1987 Cricket World Cup)에서 볼보이(ball boy)로 활동했다.
1988년, 텐둘카르는 비노드 캄블리(Vinod Kambli)와 함께 학교 간 경기에서 664점의 파트너십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텐둘카르는 그 경기에서 326점을 기록했고, 토너먼트에서 1000점 이상을 기록했다.
2.4. 학창 시절
텐둘카르는 뭄바이의 다다르(Dadar)에 있는 니르말 간호원에서 마하라슈트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라메시 텐둘카르(Ramesh Tendulkar)는 마라티어 소설가이자 시인이었고, 어머니 라즈니(Rajni)는 보험업계에서 일했다. 텐둘카르의 아버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감독 사친 데브 버먼(Sachin Dev Burman)의 이름을 따서 그의 이름을 지었다. 어린 시절 텐둘카르는 반드라 동부(Bandra (East))의 사히티야 사하와스 협동 주택 단지에서 성장했으며, 폭력배로 여겨져 학교에서 종종 싸움을 벌였다.
어린 시절 텐둘카르는 테니스와 크리켓 모두에 관심이 있었고, 존 매켄로(John McEnroe)를 우상으로 삼았다. 1984년, 그의 형 아짓(Ajit)은 텐둘카르를 크리켓에 입문시켰고, 크리켓 코치 라마칸트 아크레카르(Ramakant Achrekar)에게 소개했다. 아크레카르는 텐둘카르의 재능에 감명을 받고 그에게 다다르에 있는 샤라다슈람 비디야만디르 학교로 전학할 것을 권했다. 텐둘카르는 1984년 말 샤라다슈람에서 크리케터로 데뷔하기 전에는 반드라 동부에 있는 인디언 에듀케이션 소사이어티의 뉴 잉글리시 스쿨에 다녔다.
텐둘카르는 아침과 저녁으로 시바지 공원에서 아크레카르의 지도 아래 훈련을 받았다. 훈련 중 아크레카르는 1루피 동전을 스텀프(stumps) 위에 올려놓았고, 텐둘카르를 아웃시킨 볼러가 그 동전을 가져갔다. 텐둘카르가 아웃되지 않으면 코치가 그에게 동전을 주었고, 텐둘카르는 자신이 얻은 13개의 동전을 가장 소중한 소유물 중 하나로 여긴다.
텐둘카르는 학교 크리켓 외에도 1984년 11세 때 존 브라이트 크리켓 클럽에서 활동하며 칸가 크리켓 리그(Kanga Cricket League)에 데뷔했고, 1988년부터는 인도 크리켓 클럽(Cricket Club of India)에서 활동했다.
1987년, 텐둘카르는 MRF 페이스 재단(MRF Pace Foundation)에서 속구 투수(fast bowler) 훈련을 받았지만, 데니스 릴리(Dennis Lillee)는 그에게 타격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해, 수닐 가바스카르(Sunil Gavaskar)는 텐둘카르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고, 텐둘카르는 1987 크리켓 월드컵(1987 Cricket World Cup)에서 볼보이(ball boy)로 활동했다.
1988년, 텐둘카르는 비노드 캄블리(Vinod Kambli)와 함께 세인트 자비에르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664점의 파트너십을 기록했다. 텐둘카르는 그 경기에서 326점(Not Out)을 기록했고, 토너먼트에서 1000점 이상을 기록했다.
3. 초기 경력
1992년, 19세의 텐둘카르는 요크셔를 대표하는 최초의 해외 출신 선수가 되었다. 요크셔는 텐둘카르가 합류하기 전까지 요크셔 출신이 아닌 선수는 심지어 영국에 거주하는 선수도 선발하지 않았다. 부상당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투수 크레이그 맥더모트를 대신하여 요크셔에 선발된 텐둘카르는 16경기의 1급 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46.52로 1,070점을 득점했다.
3.1. 국내 크리켓
1987년 11월 14일, 14세의 텐둘카르는 봄베이를 대표하여 란지 트로피의 1987–88 시즌에 출전할 선수로 선발되었지만, 어떤 경기에서도 최종 11인으로 선발되지는 못했고, 종종 대타 필더로 기용되었다. 1년 후인 1988년 12월 11일, 15세 232일의 나이로 완카데 스타디움에서 구자라트를 상대로 봄베이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100점(무실점)을 기록하며 일류 크리켓 데뷔전에서 세기를 달성한 최연소 인도 선수가 되었다. 그는 봄베이 주장 딜립 벵가르사르에 의해 팀에 선발되었는데, 벵가르사르는 완카데 스타디움의 크리켓 연습 네트에서 카필 데브와 경기를 하는 텐둘카르를 지켜보았다. 당시 인도 팀은 투어 중인 뉴질랜드 팀과 경기를 하기 위해 온 상태였다. 텐둘카르는 이어서 데오드하르와 줄립 트로피 데뷔전에서 각각 세기 기록을 달성했는데, 이 또한 인도의 국내 크리켓 토너먼트이다.
텐둘카르는 1988–89 란지 트로피 시즌을 봄베이의 최다 득점자로 마무리했다. 그는 평균 67.77로 583점을 기록하여 전체 8위에 올랐다. 1988년과 1989년에 그는 스타 크리켓 클럽 배너 아래 영국을 순회하는 어린 인도 팀에 선발되었다. 1990–91 란지 트로피 결승전에서 봄베이는 하리아나에 근소한 차이로 패했는데, 텐둘카르는 75개의 공으로 96점을 기록하며 봄베이가 마지막 날 단 70개의 오버로 355점을 추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9–90 시즌 초 인도 대표팀 이외 지역을 위해 경기하며 텐둘카르는 이라니 트로피 경기에서 델리를 상대로 무실점 세기를 기록했다.
1995 란지 트로피 결승전에서 봄베이의 주장을 맡은 텐둘카르는 펀자브를 상대로 140점과 139점을 기록했다.
1995–96 이라니컵에서 그는 인도 대표팀 이외 지역을 상대로 뭄바이를 이끌었다. 그의 첫 더블 세기 (204*)는 1998년 브라보른 스타디움에서 방문한 오스트레일리아 팀과의 경기에서 뭄바이 소속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국내 일류 크리켓 토너먼트 세 개(란지, 이라니, 줄립 트로피) 모두에서 데뷔전 세기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 또 다른 더블 세기는 2000년 란지 트로피 준결승전에서 타밀나두를 상대로 기록한 233점*으로, 그는 이를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여긴다.
총 5번의 란지 트로피 결승전에 출전했으며, 뭄바이는 그 중 4번 우승을 차지했다.
3.2. 칸가 크리켓 리그
요청하신 '칸가 크리켓 리그' 섹션에 대한 내용은 제공된 원본 소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3.3. 카운티 크리켓
1992년, 19세의 텐둘카르는 해외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요크셔를 대표하게 되었다. 텐둘카르가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요크셔는 요크셔 출신이 아닌 선수는, 심지어 영국에 거주하는 선수도 선발하지 않았다. 부상당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빠른 투수 크레이그 맥더모트를 대신하여 요크셔에 선발된 텐둘카르는 팀을 위해 16경기의 1급 경기에 출전하여 46.52의 평균 타율로 1,070점을 득점했다.
4. 국제 경력
라지 싱 둥가르푸르는 1989년 후반 파키스탄 인도 투어에서 텐둘카르를 선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텐둘카르는 16세의 나이로 테스트 크리켓과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경기에 데뷔하여 인도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다.
1989년 파키스탄과의 데뷔전에서 텐둘카르는 여러 차례 타격을 받았지만 침착하게 대처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뉴질랜드, 영국 투어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특히 1990년 영국 투어에서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119점을 기록하며 테스트 경기 최연소 득점 2위를 기록했다. 위즈던(Wisden)은 그의 경기를 극찬했다.
1991-1992년 호주 투어에서 텐둘카르는 시드니와 퍼스에서 100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1994년에는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ODI 오프너로 데뷔하여 49개의 공으로 82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첫 ODI 세기를 기록했다.
1996년 월드컵에서 텐둘카르는 최다 득점 선수가 되었고, 스리랑카와의 준결승전에서 관중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모하메드 아자루딘의 부진 속에 텐둘카르는 나브조트 싱 시두와 함께 활약하며 인도의 ODI 첫 300점 돌파를 이끌었다.
200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수들의 승부 조작 시도 사건 이후, 텐둘카르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성적과 행실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은 다시는 인도 대표팀에 뽑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투어 중에는 심판 마이크 데니스와의 마찰로 볼 조작 혐의를 받기도 했다.
2002년 서인도 제도 시리즈에서 텐둘카르는 도널드 브래드먼의 테스트 세기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미하엘 슈마허에게 페라리 360 모데나를 선물 받았다. 이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브래드먼의 기록을 넘어섰다. 2003 크리켓 월드컵에서는 11경기에서 673점을 기록하며 인도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 선수 상을 수상했다.
2003-2004년 호주 투어에서 텐둘카르는 마지막 테스트 경기에서 241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2005년에는 스리랑카를 상대로 35번째 테스트 세기 기록을 세웠다. 2006년에는 완칸데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DLF컵에서 복귀하여 40번째 ODI 세기 기록을 세웠다.
2007년 크리켓 월드컵에서 인도 대표팀은 부진했고, 텐둘카르의 태도는 감독 그렉 채플에게 비판받았다. 2007년 인도 국가대표팀의 영국 순회 경기 중 라훌 드라비드의 사퇴 의사가 알려졌다. 이후 인도크리켓관리위원회(BCCI) 회장 샤라드 파와르가 텐둘카르에게 주장직을 제안했지만, 텐둘카르는 마헨드라 싱 도니를 추천했다.
2012년 3월, 텐둘카르는 국제 경기 100번째 세기 기록을 달성했다. 2012년 12월에는 원데이 인터내셔널(ODI)에서 은퇴를 발표했고, 2013년 11월 서인도 제도와의 테스트 시리즈를 끝으로 모든 크리켓에서 은퇴했다.
4.1. 초기 투어 (1989-1992)
라지 싱 둥가르푸르는 1989년 후반 파키스탄 인도 투어에서 텐둘카르를 선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도 선발 위원회는 그해 초 서인도 제도 투어에 텐둘카르를 선발하려 했으나, 서인도 제도의 강력한 속구 투수진에 어린 텐둘카르가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여 결국 선발하지 않았다.
텐둘카르는 16세 205일의 나이로 인도 테스트 경기에 데뷔하여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고, 16세 238일의 나이로 인도 ODI 경기에 데뷔하여 역시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다. 1989년 11월, 텐둘카르는 카라치에서 파키스탄을 상대로 테스트 경기에 데뷔했다. 그는 와카르 유니스에게 볼드 아웃되며 15점을 득점했는데, 와카르 유니스 역시 이 경기에서 데뷔했다. 텐둘카르는 파키스탄의 빠른 공격에 여러 차례 타격을 받았지만,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시알코트에서 열린 마지막 테스트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유니스가 던진 바운서에 코를 맞았지만, 응급 처치를 거부하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타격을 계속했다. 페샤와르에서 열린 20오버 시범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레그 스피너 압둘 카디르가 던진 오버에서 27점을 포함하여 18개의 공으로 53점을 득점했다. 당시 인도 주장 크리슈나마차리 스리칸트는 이 경기를 "내가 본 최고의 이닝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텐둘카르는 테스트 시리즈에서 35.83의 평균으로 215점을 득점했고, 유일하게 출전한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경기에서는 무득점으로 아웃되었다.
이후 뉴질랜드 투어에서 텐둘카르는 테스트 경기에서 29.25의 평균으로 117점을 득점했다. 두 번의 ODI 경기 중 한 경기에서는 무득점으로 아웃되었고, 다른 한 경기에서는 36점을 득점했다. 1990년 영국 투어에서 8월 14일, 텐둘카르는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두 번째 테스트 경기에서 119점을 기록하며 테스트 경기에서 100점을 기록한 두 번째로 어린 크리켓 선수가 되었다. 위즈던(Wisden)은 텐둘카르의 이닝을 "엄청난 성숙함을 보여주는 규율 있는 경기"라고 묘사하며, "그는 인도의 유명한 오프너 가바스카르의 화신처럼 보였고, 실제로 그의 패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첫 번째 테스트 100점을 기록하는 동안 다양한 스트로크를 선보였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백풋에서 나온 오프사이드 샷이었다. 키가 165cm에 불과했지만, 영국 빠른 투수들의 짧은 공을 어려움 없이 제어할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텐둘카르의 명성은 1992 크리켓 월드컵 이전에 열린 1991년-1992년 호주 투어에서 더욱 높아졌다. 그는 시드니에서 열린 세 번째 테스트 경기에서 148점을 기록하며 호주에서 100점을 기록한 최연소 타자가 되었다. 이후 퍼스에서 열린 마지막 테스트 경기에서 머브 휴스, 브루스 레이드, 크레이그 맥더모트의 빠른 공격을 상대로 빠르고 바운싱이 심한 경기장에서 114점을 득점했다. 휴스는 당시 앨런 보더에게 "이 작은 녀석이 당신보다 더 많은 점수를 낼 거야, AB."라고 말했다.
4.2. 전성기 (1994-2002)
텐둘카르는 1996년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 선수가 되며 두 번의 세기 기록을 달성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스리랑카와의 준결승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유일한 인도 타자였으나, 타격 붕괴 속에 아웃되었다.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경기장으로 던지자 경기 심판은 스리랑카의 승리를 선언했다.
월드컵 이후 샤르자 크리켓 경기장에서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인도의 주장 모하메드 아자루딘은 부진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텐둘카르와 나브조트 싱 시두는 모두 세기 기록을 달성하여 당시 2위 기록을 세웠다. 텐둘카르는 아자루딘에게 타석에 들어설 것을 설득했고, 아자루딘은 이후 한 이닝에서 24점을 기록했다. 인도는 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ODI에서 처음으로 300점을 넘는 득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200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인도 방문 중 경기 승부를 조작하려고 시도했다. 이 사건 이후, 텐둘카르와 다른 세 명의 베테랑 크리켓 선수들은 "성적과 행실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은 다시는 인도 대표팀에 뽑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투어 중 두 번째 테스트 경기에서 심판 마이크 데니스는 과도한 어필을 이유로 인도 선수 4명에게 벌금을 부과했고, 팀을 통제하지 못한 혐의로 인도 주장 소브라브 간굴리에게도 벌금을 부과했다. 데니스는 볼 조작 혐의로 텐둘카르를 한 경기 출전 정지시켰다. TV 카메라는 텐둘카르가 크리켓 공의 솔기를 정리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영상을 포착했다. 이 사건은 스포츠 기자들이 데니스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더욱 악화되었고, 데니스가 세 번째 테스트 경기장 입장을 금지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양 팀이 임명된 심판을 거부함에 따라 ICC는 이 경기를 테스트 경기의 지위를 박탈했다. 텐둘카르에 대한 혐의는 인도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호주와의 콜카타 테스트 마지막 날, 텐둘카르는 매슈 헤이든과 애덤 길크리스트를 포함하여 3개의 위켓을 획득하며 인도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 후 5경기 ODI 시리즈에서 그는 파토르다 스타디움 고아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 ODI에서 100번째 위켓을 달성했다.
2002년 서인도 제도 시리즈에서 텐둘카르는 첫 번째 테스트에서 79점을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포트오브스페인에서 열린 두 번째 테스트에서 93번째 테스트 경기만에 117점을 기록하며 29번째 테스트 세기 기록을 달성, 도널드 브래드먼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그는 이 업적을 달성하여 미하엘 슈마허를 통해 피아트로부터 페라리 360 모데나를 선물 받았다.
이후 네 이닝에서 0, 0, 8, 0점을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마지막 테스트에서 41점과 86점을 기록하며 다시 제 기량을 되찾았다. 그러나 인도는 시리즈에서 패했다. 2002년 8월 잉글랜드와의 세 번째 테스트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99번째 테스트 경기에서 30번째 테스트 세기 기록을 세우며 브래드먼의 기록을 넘어섰다.
4.2.1. ODI 오프너 데뷔 (1994)
1994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49개의 공으로 82점을 기록하며 ODI 오프너로 데뷔했다. 1994년 9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콜롬보 크리켓 클럽 그라운드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첫 ODI 세기를 기록했다. 그는 첫 세기를 기록하기 전까지 78번의 ODI 경기에 출전했다.
4.2.2. 1996 크리켓 월드컵
텐둘카르는 1996년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 선수가 되어 두 번의 세기 기록을 달성하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는 스리랑카와의 준결승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유일한 인도 타자였다. 텐둘카르는 타격 붕괴 속에 아웃되었고,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경기장으로 던지자 경기 심판인 클라이브 로이드는 스리랑카의 승리를 선언했다.
4.2.3. 1998년 호주와의 경쟁
1994년 오클랜드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선두 타자로 나서 49개의 공으로 82점을 기록했다. 1994년 9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콜롬보 크리켓 클럽 그라운드에서 열린 호주와의 경기에서 첫 ODI 세기 기록을 달성했다.
4.2.4. 1999년 아시아 테스트 챔피언십 및 월드컵
텐둘카르는 1994년 오클랜드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선두 타자로 나서 49개의 공으로 82점을 기록했다. 1994년 9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콜롬보 크리켓 클럽 그라운드에서 열린 호주와의 경기에서 첫 ODI 세기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첫 세기 기록을 달성하기 전까지 78번의 ODI 경기에 출전했다.
텐둘카르의 상승세는 1996년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 선수가 되고 두 번의 세기 기록을 달성하면서 계속되었다. 그는 스리랑카와의 준결승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유일한 인도 타자였다. 텐둘카르는 타격 붕괴 속에 아웃되었고,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경기장으로 던지자 경기 심판인 클라이브 로이드는 스리랑카의 승리를 선언했다.
월드컵 이후 같은 해 샤르자 크리켓 경기장에서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인도의 주장 모하메드 아자루딘은 부진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텐둘카르와 나브조트 싱 시두는 모두 세기 기록을 달성하여 당시 2위 기록을 세웠다. 아웃된 후 텐둘카르는 아자루딘이 타석에 들어설지 말지 고민하는 것을 발견했다. 텐둘카르는 아자루딘에게 타석에 들어설 것을 설득했고, 아자루딘은 이후 한 이닝에서 24점을 기록했다. 인도는 그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인도는 ODI에서 처음으로 300점을 넘는 득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4.2.5. 국가대표팀 주장 (1996-2000)
텐둘카르의 상승세는 1996년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 선수가 되고 두 번의 세기 기록을 달성하면서 계속되었다. 그는 스리랑카와의 준결승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유일한 인도 타자였다. 텐둘카르가 타격 붕괴 속에 아웃되자,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경기장으로 던졌고, 경기 심판인 클라이브 로이드는 스리랑카의 승리를 선언했다.
월드컵 이후 같은 해 샤르자 크리켓 경기장에서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인도의 주장 모하메드 아자루딘은 부진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텐둘카르와 나브조트 싱 시두는 모두 세기 기록을 달성하여 당시 2위 기록을 세웠다. 텐둘카르는 아자루딘이 타석에 들어설지 고민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타석에 들어설 것을 설득했고, 아자루딘은 이후 한 이닝에서 24점을 기록했다. 인도는 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ODI에서 처음으로 300점을 넘는 득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200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인도 방문 중 경기 승부를 조작하려고 시도했다. 이 사건 이후, 텐둘카르와 다른 세 명의 베테랑 크리켓 선수들은 "성적과 행실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은 다시는 인도 대표팀에 뽑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4.2.6. 2001-2002년: 브래드먼의 기록 경신
1994년 오클랜드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선두 타자로 나서 49개의 공으로 82점을 기록했다. 그는 1994년 9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콜롬보 크리켓 클럽 그라운드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첫 ODI 세기 기록을 달성했다.
텐둘카르의 상승세는 1996년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 선수가 되고 두 번의 세기 기록을 달성하면서 계속되었다. 그는 스리랑카와의 준결승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유일한 인도 타자였다. 텐둘카르는 타격 붕괴 속에 아웃되었고, 관중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경기장으로 던지자 경기 심판인 클라이브 로이드는 스리랑카의 승리를 선언했다.
월드컵 이후 같은 해 샤르자 크리켓 경기장에서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인도의 주장 모하메드 아자루딘은 부진한 시기를 겪고 있었다. 텐둘카르와 나브조트 싱 시두는 모두 세기 기록을 달성하여 당시 2위 기록을 세웠다. 아웃된 후 텐둘카르는 아자루딘에게 타석에 들어설 것을 설득했고, 아자루딘은 이후 한 이닝에서 24점을 기록했다. 인도는 그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인도는 ODI에서 처음으로 300점을 넘는 득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200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인도 방문 중 경기 승부를 조작하려고 시도했다. 이 사건 이후, 텐둘카르와 다른 세 명의 베테랑 크리켓 선수들은 "성적과 행실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은 다시는 인도 대표팀에 뽑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4.3. 꾸준한 활약 (2003-2010)
1994년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49개의 공으로 82점을 기록하며 선두 타자로 나섰다. 1996년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 선수가 되는 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1996년 월드컵 이후 샤르자 크리켓 경기장에서 열린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나브조트 싱 시두와 함께 세기(100점 이상 득점)를 기록, ODI 최초로 300점을 넘는 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수들의 승부 조작 시도 사건이 발생했고, 텐둘카르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성적과 행실이 의심스러운 선수들은 다시는 인도 대표팀에 뽑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투어 중 심판 마이크 데니스와의 마찰이 있었다. 데니스는 과도한 어필을 이유로 인도 선수들에게 벌금을 부과했고, 볼 조작 혐의로 텐둘카르에게 한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 논란으로 번졌고, ICC는 해당 경기를 테스트 경기에서 제외했다.
2001년 호주와의 콜카타 테스트에서 텐둘카르는 3개의 위켓을 획득하며 인도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5경기 ODI 시리즈에서 파토르다 스타디움에서 ODI 100번째 위켓을 달성했다.
2002년 서인도 제도 시리즈에서 텐둘카르는 도널드 브래드먼의 29개 테스트 세기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미하엘 슈마허로부터 페라리 360 모데나를 선물 받았다. 이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브래드먼의 기록을 넘어섰다.
4.3.1. 2003 크리켓 월드컵
2003 크리켓 월드컵에서 텐둘카르는 11경기에서 673점을 기록하며 인도가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호주가 우승했지만, 텐둘카르는 대회 최우수 선수 상을 수상했다.
그는 같은 해 ODI 크리켓에서 뉴질랜드와 호주가 참가한 삼각 시리즈에서 두 번의 백점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파트타임 볼러로서 삼각 시리즈 결승전에서 지친 센추리언 매슈 헤이든을 잡아내기도 했다.
4.3.2. 2003-2004 호주 투어
2003-04년 인도의 호주 순회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마지막 테스트 경기에서 괄목할 만한 활약을 펼쳤다. 시드니에서 436구를 소비하여 33개의 4점을 기록하며 55.27의 타율로 241득점을 기록, 인도를 사실상 승리로 이끌었다. 이닝 중 613분간 크리즈에 머물렀다. 이어진 테스트 경기 두 번째 이닝에서도 60점을 기록하며 득점을 이어갔다. 이 테스트 경기에 앞서 그는 이례적으로 부진한 기록을 보였는데, 앞선 세 개의 테스트 경기 여섯 이닝 모두 부진했다. 2003년은 평균 17.00, 50점 이상 기록 한 번에 그친 그의 테스트 크리켓 최악의 해였다.
4.3.3. 2005-2006 슬럼프
텐둘카르는 2005년 12월 10일 피로즈 샤 코틀라에서 스리랑카를 상대로 35번째 테스트 경기 세기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07년 5월 방글라데시를 상대로 101점을 기록하기 전까지 17이닝 동안 세기를 기록하지 못했다. 2006년 2월 6일 파키스탄과의 경기에서 39번째 ODI 100점을 기록했고, 2월 11일 파키스탄과의 두 번째 원데이 인터내셔널 경기에서 42점, 2월 13일 라호르에서 95점을 기록하며 인도의 승리를 이끌었다.
2006년 3월 19일, 홈구장인 완칸데 경기장에서 열린 세 번째 테스트 경기 1회전에서 단 1점을 기록한 후 관중 일부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텐둘카르는 50점대 기록 없이 3경기 시리즈를 마쳤고,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선수 생활 지속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텐둘카르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DLF컵에서 복귀했고, 2006년 9월 14일 서인도 제도와의 복귀전에서 40번째 ODI 세기 기록을 세웠다. 141점을 기록했지만, 서인도 제도는 D/L 방식으로 우천 연기된 경기에서 승리했다.
4.3.4. 2007 크리켓 월드컵
2007년 크리켓 월드컵 준비 기간 동안, 텐둘카르의 태도는 인도 대표팀 감독 그렉 채플에 의해 비판받았다. 채플은 텐둘카르가 하위 타순에서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텐둘카르는 자신의 경력 대부분 동안 맡아왔던 선두 타자 역할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채플은 또한 텐둘카르의 반복되는 부진이 팀의 승산을 해치고 있다고 믿었다. 드문 감정 표출 속에, 텐둘카르는 채플의 발언에 대해 어떤 감독도 자신의 크리켓에 대한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제안한 적이 없다고 지적하며 반박했다. 2007년 4월 7일, 인도 크리켓 관리위원회(BCCI)는 언론에 대한 그의 발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통지를 텐둘카르에게 발송했다. 채플은 이후 감독직에서 사퇴했지만, 이 사건이 자신의 결정과는 무관하며 텐둘카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인도 제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라훌 드라비드가 이끈 텐둘카르와 인도 크리켓 대표팀은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위 타순으로 밀려난 텐둘카르는 방글라데시전 7점, 버뮤다전 57점(낫아웃), 스리랑카전 0점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전 호주 대표팀 주장 이안 채플(그렉 채플의 형)은 자신의 신문 칼럼에서 텐둘카르의 은퇴를 촉구했다.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와의 경기 패배 후, 텐둘카르는 우울증을 겪었고 크리켓 은퇴를 고려했지만, 비브 리차즈와 아지트 텐둘카르가 그를 막았다. 텐둘카르에 따르면, 2007년 3월 23일 방글라데시와의 경기 패배는 그의 크리켓 경력 중 최악의 날 중 하나였다.
4.3.5. 2007-2008 호주 투어: 몽키게이트 논란
제공된 소스에는 '2007-2008 호주 투어: 몽키게이트 논란'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이전 답변과 동일하게 빈 문자열을 출력합니다.
4.3.6. 2008년: 브라이언 라라의 기록 경신
주어진 원본 소스에 2008년 브라이언 라라의 기록 경신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이 섹션에는 아무 내용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이전 답변과 동일)
4.3.7. 2009-2010: ODI 최고 기록
1994년 9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콜롬보 크리켓 클럽 그라운드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첫 ODI 세기(100점 이상 득점)를 기록했다. 그는 첫 세기를 기록하기 전까지 78번의 ODI 경기에 출전했다.
4.4. 월드컵 우승과 마지막 해 (2011-2013)
텐둘카르는 2012년 11월, 잉글랜드와의 국내 시리즈를 앞두고 기량 회복을 위해 란지 트로피에 복귀했다. 2009년 이후 첫 란지 트로피 경기에서 그는 136구에 21개의 4점과 3개의 6점을 포함, 137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의 첫 두 경기에서 부진했고, 2012년 11월 26일 두 번째 경기에서 인도가 10위키트 차이로 패배하면서, 일각에서는 텐둘카르의 대표팀 잔류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힌두스탄 타임스에 따르면, 텐둘카르는 국가 대표팀 수석 선발자 산딥 파틸과 논의를 통해 득점 부재를 이유로 자신의 미래를 선발 위원회에 맡기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추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텐둘카르는 2012-13 란지 트로피 결선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바로다와의 8강전에서 108점을 기록, 와심 자퍼(150점)와 함께 완칸데 스타디움에서 3위키트 234점 파트너십을 이루었다. 뭄바이는 645/9점을 기록하며 1회전 승리를 거두었다. 서비스와의 준결승전에서는 75구에 56점을 기록, 아비셰크 나야르(70점)와 81점의 4위키트 파트너십을 맺었다. 뭄바이는 경기 지연 끝에 1회전 승리를 거두었다. 소라슈트라와의 결승전에서는 와심 자퍼와의 의사소통 부재로 22점에 그쳤으나, 뭄바이는 2012-13 란지 트로피에서 우승했다.
텐둘카르는 이라니 트로피에서 뭄바이를 대표해 인도 대표팀을 상대로 140점을 기록, 뭄바이의 409점 득점에 기여했다. 이는 그의 81번째 일류 크리켓 백점으로, 수닐 가브스카르의 인도 최다 일류 크리켓 백점 기록과 동률이다.
4.4.1. 2011 크리켓 월드컵 우승
주어진 원본 소스에 '2011 크리켓 월드컵 우승'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전 결과물과 동일하게 출력합니다.
4.4.2. 100번째 국제 세기
텐둘카르는 2012년 3월 16일 미르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컵 방글라데시와의 경기에서 국제 경기 100번째 세기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크리켓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이 세기는 텐둘카르에게 중요한 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를 상대로 한 그의 첫 ODI 세기 기록이기도 했다. 이 기록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텐둘카르는 100번째 세기 기록에 대한 집중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텐둘카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방글라데시에게 5위키트 차이로 패배했다.
4.4.3. 은퇴
텐둘카르는 2012년 12월 23일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크리켓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영국과의 시리즈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이 결정을 내렸지만, 테스트 경기에는 계속 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은퇴 소식에 전 인도 대표팀 주장 소라브 간굴리는 텐둘카르가 파키스탄과의 시리즈에 참가할 수 있었음에도 은퇴를 결정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아닐 컴블레는 텐둘카르 없는 인도 원데이 팀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으며, 자바갈 스리나스는 1994년 뉴질랜드에서 오프닝 타자로 데뷔한 이후 텐둘카르가 경기에 미친 변혁적인 영향을 인정했다.
200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스무 개의 20 인터내셔널 경기 출전 후, 그는 더 이상 이 형식의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5월 26일, 뭄바이 인디언스가 2013 인도 프리미어 리그 결승에서 첸나이 슈퍼 킹스를 꺾고 우승한 후 IPL 은퇴를 발표했다. 이후 2013년 9월~10월 2013 챔피언스 리그 트웬티20에 출전한 후 스무 개의 20 크리켓과 제한된 오버 크리켓에서 은퇴했다.
2013년 10월 10일, 텐둘카르는 11월 서인도 제도와의 2경기 테스트 시리즈를 끝으로 모든 크리켓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인도 크리켓 위원회(BCCI)는 그의 고별 경기가 그의 홈구장인 뭄바이에서 열릴 수 있도록 콜카타와 뭄바이에서 두 경기를 치르도록 준비했다. 그는 서인도 제도와의 마지막 테스트 경기에서 74점을 기록했다. 벵갈 크리켓 협회와 뭄바이 크리켓 협회는 그의 은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2014년 7월, 그는 로드 경기장에서 열린 200주년 기념 경기에서 MCC 팀의 주장을 맡았다. 2014년 12월, 그는 ICC 크리켓 월드컵 2015 대회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1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ICC 크리켓 월드컵 홍보대사직을 맡았다.
5. 은퇴 이후
2015년, 인도크리켓관리위원회는 VVS 락스만(VVS Laxman), 소브라브 강굴리(Sourav Ganguly)와 함께 텐둘카르를 크리켓 자문 위원회(Cricket Advisory Committee, CAC)에 임명했다. CAC는 인도 크리켓팀의 감독을 임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6년 6월 23일, CAC는 아닐 쿰블레(Anil Kumble)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 2018년 텐둘카르는 이해충돌 의혹으로 위원회에서 사임했고, 2019년 그에 대한 고소는 기각되었다.
5.1. 전시 및 자선 경기
2014년 7월, 그는 로드 경기장에서 열린 200주년 기념 경기에서 MCC 팀의 주장을 맡았다. 2014년 12월에는 ICC 크리켓 월드컵 2015 대회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ICC 크리켓 월드컵 2011에서 홍보대사를 역임한 데 이은 두 번째 임기였다. 그는 크리켓 월드컵(2011년과 2015년)에서 연속으로 ICC 크리켓 월드컵 홍보대사직을 맡았다.
텐둘카르는 전 오스트레일리아 크리켓 선수 셰인 워른과 협력하여 전시 크리켓 경기를 개최했다. 미국에서 열린 크리켓 올스타즈는 야구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소브 갱굴리, 쇼아이브 압타르, 와심 아크람 등 은퇴한 선수들이 참가했다.
2020년 2월 8일,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산불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조직된 자선 경기인 부시파이어 크리켓 배쉬에 참가했다.
그는 2020-21년 도로 안전 세계 시리즈에서 인도 레전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 토너먼트에서 인도 팀의 최다 득점자였다.
그는 더 빅 어필 기간 동안 폰팅 XI의 코치 역할을 했다. 이닝 휴식 시간에 그는 페리의 요청으로 엘리세 페리와 애너벨 서덜랜드를 상대로 한 이닝을 소화했다.
5.2. 인도 프리미어 리그 (IPL)
텐둘카르는 2008년 첫 인도 프리미어 리그 (트웬티20) 대회에서 고향 팀인 뭄바이 인디언스의 아이콘 선수이자 주장으로 활동했다. 아이콘 선수로서 그는 1121250USD에 계약했는데, 이는 팀 내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은 사나트 자야수리아보다 15% 더 많은 금액이었다.
2010년 인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뭄바이 인디언스는 결승에 진출했다. 텐둘카르는 이 대회에서 14경기에 출전하여 618점을 기록하며 션 마쉬가 가지고 있던 IPL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시즌 동안의 활약으로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2010 IPL 어워드 시상식에서 최우수 타자상과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텐둘카르는 주장으로서 두 시즌 동안 IPL에서 500점 이상을 득점했다.
사친 텐둘카르는 챔피언스 리그 T20 두 번째 시즌에서 뭄바이 인디언스를 4경기 이끌었다. 첫 경기에서는 68점, 가이아나와의 경기에서는 48점을 득점했다. 하지만 뭄바이 인디언스는 초반 두 경기에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텐둘카르는 총 135점을 기록했다.
2011년 IPL에서 코치 투스커스 케랄라와의 경기에서 텐둘카르는 자신의 첫 트웬티20 백점을 기록했다. 그는 66구 만에 100점을 기록했다. 2013년 텐둘카르는 인도 프리미어 리그에서 은퇴했고, 2014년 뭄바이 인디언스의 "팀 아이콘"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13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었으며, 이 경기에서 그는 14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IPL에서 78경기에 출전하여 총 2334점을 기록했으며, 은퇴 당시 리그 역대 득점 5위였다. 뭄바이 인디언스는 텐둘카르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는 최근 개인적인 이유로 프랜차이즈 멘토직에서 물러났으며, 2021년 인디언 프리미어 리그(IPL) 시즌에서 뭄바이 인디언스 팀의 멘토로 활동했다.
5.3. 크리켓 자문 위원회
2015년, 텐둘카르는 인도크리켓관리위원회에 의해 크리켓 자문 위원회(Cricket Advisory Committee, CAC)에 임명되었다. 그는 VVS 락스만(VVS Laxman)과 소브라브 강굴리(Sourav Ganguly)와 함께 위원회 3명 중 한 명이었다. CAC는 인도 크리켓팀의 감독을 임명하기 위해 BCCI에 의해 구성되었다. 2016년 6월 23일, CAC는 아닐 쿰블레(Anil Kumble)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 2018년 이해충돌 의혹으로 사임했고, 2019년 그에 대한 고소는 기각되었다.
5.4. 기타 활동
2014년 7월, 그는 로드 경기장에서 열린 200주년 기념 경기에서 MCC 팀의 주장을 맡았다. 2014년 12월, 그는 ICC 크리켓 월드컵 2015 대회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그가 이전 ICC 크리켓 월드컵 2011에서 홍보대사를 역임한 데 이은 두 번째 임기이다. 그는 크리켓 월드컵(2011년과 2015년)에서 연속으로 ICC 크리켓 월드컵 홍보대사직을 맡았다.
6. 플레이 스타일
텐둘카르는 크리켓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호주에서 많은 팬을 확보했으며, 그의 팬들은 "크리켓은 나의 종교이고, 사친은 나의 신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ESPNcricinfo는 텐둘카르를 "세계에서 가장 숭배받는 크리켓 선수"라고 언급한다.
매슈 헤이든은 1998년 호주 인도 투어 당시 "나는 신을 보았다. 그는 인도에서 테스트 경기 4번 타순에 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텐둘카르는 "나는 크리켓의 신이 아니다. 나는 실수하지만,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텐둘카르가 경기에 아웃되면 팬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젊은이는 텐둘카르가 100번째 세기 기록에 도달하지 못하자 자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언 채플은 텐둘카르가 "가발을 쓰고 밤에만 영화를 보러 외출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텐둘카르는 인터뷰에서 밤늦게 뭄바이 거리를 운전하며 평화와 고요함을 즐긴다고 말했다.
7. 수상 및 영예
사친 텐둘카르는 크리켓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뛰어난 업적은 수많은 수상과 영예로 이어졌다.
2002년, 위즈던 크리케터스 알마낙(Wisden Cricketers' Almanack)은 텐둘카르를 역대 최고의 테스트 타자 중 도널드 브래드먼에 이어 2위, ODI 타자 중 비브 리차즈에 이어 2위로 선정했다. 이후 텐둘카르는 브래드먼과 리차즈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2010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되었으며, 2013년에는 위즈던 크리케터스 알마낙이 선정한 150년 역사상 최고의 월드 일레븐(World XI)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 인도 공군은 텐둘카르에게 명예 공군 대령 계급을 수여했다.
7.1. 국가 훈장 (인도)
* 1994년 – 아르주나상 (인도 정부가 스포츠 분야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하여 수여).
* 1997~98년 – 클 랏나 상 (인도 스포츠 분야 최고 영예).
* 1999년 – 파드마 슈리 (인도에서 4번째로 높은 민간인상).
* 2008년 – 파드마 비부샨 (인도에서 2번째로 높은 민간인상).
* 2014년 – 바라트 라트나 (인도 최고 민간인상).
7.2. 기타 영예
* 1994년 - 인도 스포츠계의 명예상인 아르주나상(Arjuna Award) 수상.
* 1997-98년 - 인도 스포츠계 최고 영예상인 수상.
* 1999년 - 인도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네 번째로 높은 훈장인 파드마 슈리 훈장(Padma Shri) 수훈.
* 2001년 -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마하라슈트라 부샨 상(Maharashtra Bhushan Award) 수상.
* 2008년 - 인도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두 번째로 높은 훈장인 파드마 비부샨 훈장(Padma Vibhushan) 수훈.
* 2014년 - 인도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 훈장(Bharat Ratna) 수훈.
* 1997년 – 위즈든 올해의 크리켓 선수(Wisden Cricketer of the Year).
* 1998년, 2010년 – 위즈든 세계 최고 크리켓 선수(Wisden Leading Cricketer in the World).
* 2001년 – 뭄바이 크리켓 협회에서 완카데 스타디움의 스탠드 중 하나의 이름을 사친 텐둘카르의 이름을 따서 바꿈.
* 2002년 – 텐둘카르가 테스트 크리켓에서 돈 브래드먼의 29세기 기록과 동률을 이룬 것을 기념하여 포뮬러 원(F1) 팀 페라리(Scuderia Ferrari)가 7월 23일 영국 그랑프리 전야에 그를 패독으로 초청하여 F1 세계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로부터 페라리 360 모데나를 받게 함.
* 2003년 – 2003 크리켓 월드컵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
* 2004년, 2007년, 2010년 – ICC 월드 ODI XI.
* 2006–07년, 2009–10년 – 올해의 국제 크리켓 선수 폴리 움리가르 상(Polly Umrigar Award)
* 2009년, 2010년, 2011년 – ICC 월드 테스트 XI.
* 2010년 – 런던에서 열린 아시안 어워즈에서 스포츠 부문 뛰어난 업적상과 인기상 수상.
* 2010년 – 올해의 크리켓 선수 서 가필드 소버스 트로피(Sir Garfield Sobers Trophy).
* 2010년 – LG 인기상.
* 2010년 – 인도 공군에서 명예 그룹 캡틴(Group Captain) 임명.
* 2011년 – 캐스트롤 인도 크리켓 선수 상(Castrol Indian Cricketer of the Year award).
* 2012년 – 위즈든 인디아 뛰어난 업적상(Wisden India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
* 2013년 – 인도우체국에서 텐둘카르 우표 발행, 생전에 우표가 발행된 두 번째 인도인이 됨(마더 테레사 이후).
* 2014년 – ESPN크리크인포 세대의 크리켓 선수(ESPNcricinfo Cricketer of the Generation).
* 2017년 – 제7회 아시안 어워즈에서 아시안 어워즈 펠로우십 상(The Asian Awards Fellowship Award) 수상.
* 2019년 – ICC 크리켓 명예의 전당 헌액.
* 2020년 – 최고의 스포츠 순간(2000-2020) 로레우스 월드 스포츠 어워드 수상.
* 2023년 – 50세 생일에 샤르자 크리켓 스타디움의 서쪽 스탠드 이름을 '사친 텐둘카르 스탠드'로 변경.
* 2023년 4월 24일,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텐둘카르의 50세 생일과 라라의 그라운드에서 277득점 이닝 30주년을 기념하여 텐둘카르와 브라이언 라라의 이름을 딴 게이트를 공개.
7.3. 스포츠 영예
* 1994년 – 인도 정부에서 스포츠 부문 공로를 인정하여 아르주나 상을 수여.
* 1997년 – 위즈든 올해의 크리켓 선수 선정.
* 1997-98년 – 인도 스포츠계 최고 영예인 수상.
* 1998년, 2010년 – 위즈든 세계 최고 크리켓 선수 선정.
* 1999년 – 파드마 슈리 훈장: 인도에서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네 번째로 높은 훈장.
* 2001년 – 마하라슈트라 부샨 상: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
* 2001년 – 뭄바이 크리켓 협회에서 완카데 스타디움의 스탠드 중 하나의 이름을 사친 텐둘카르의 이름을 따서 바꿈.
* 2002년 – 텐둘카르가 테스트 크리켓에서 돈 브래드먼의 29세기 기록과 동률을 이룬 것을 기념하여 포뮬러 원(F1) 팀 페라리가 7월 23일 영국 그랑프리 전야에 그를 패독으로 초청하여 F1 세계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로부터 페라리 360 모데나를 받게 함.
* 2003년 – 2003 크리켓 월드컵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
* 2004년, 2007년, 2010년 – ICC 월드 ODI XI 선정.
* 2006–07년, 2009–10년 – 올해의 국제 크리켓 선수 폴리 움리가르 상(Polly Umrigar Award) 수상.
* 2008년 – 파드마 비부샨 훈장: 인도에서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두 번째로 높은 훈장.
* 2009년, 2010년, 2011년 – ICC 월드 테스트 XI 선정.
* 2010년 – 런던에서 열린 아시안 어워즈에서 스포츠 부문 뛰어난 업적상과 인기상 수상.
* 2010년 – 올해의 크리켓 선수 서 가필드 소버스 트로피(Sir Garfield Sobers Trophy) 수상.
* 2010년 – LG 인기상.
* 2010년 – 인도 공군에서 명예 그룹 캡틴(Group Captain) 임명.
* 2011년 – 캐스트롤 인도 크리켓 선수 상(Castrol Indian Cricketer of the Year award) 수상.
* 2012년 – 위즈든 인디아 뛰어난 업적상(Wisden India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 수상.
* 2013년 – 인도우체국에서 텐둘카르 우표 발행, 생전에 우표가 발행된 두 번째 인도인이 됨(마더 테레사 이후).
--
--
* 2014년 – ESPN크리크인포 세대의 크리켓 선수(ESPNcricinfo Cricketer of the Generation) 선정.
* 2014년 – 바라트 라트나 훈장: 인도에서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
* 2017년 – 제7회 아시안 어워즈에서 아시안 어워즈 펠로우십 상(The Asian Awards Fellowship Award) 수상.
* 2019년 – ICC 크리켓 명예의 전당 헌액.
* 2020년 – 최고의 스포츠 순간(2000-2020) 로레우스 월드 스포츠 어워드 수상.
* 2023년 – 50세 생일에 샤르자 크리켓 스타디움의 서쪽 스탠드 이름을 '사친 텐둘카르 스탠드'로 변경.
* 2023년 4월 24일,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텐둘카르의 50세 생일과 라라의 그라운드에서 277득점 이닝 30주년을 기념하여 텐둘카르와 브라이언 라라의 이름을 딴 게이트를 공개.
8. 개인적인 삶
1995년 5월 24일, 텐둘카르는 1990년에 처음 만난 구자라트계 소아과 의사인 안잘리 메타와 결혼했다. 안잘리는 결혼 후 의사직을 그만두었다. 슬하에 두 자녀 사라와 아르준을 두고 있다. 텐둘카르는 뭄바이 교외 지역인 반드라에 있는 방갈로에 거주한다.
텐둘카르는 힌두교 신자이다. 그는 가네샤 신을 숭배하며, 1997년에 처음으로 만난 사티야 사이 바바의 추종자이기도 하다. 2011년, 텐둘카르의 38번째 생일에 사이 바바가 사망하자 그는 생일 축하 행사를 취소했다.
9. 비즈니스 관심사
텐둘카르는 인도 크리켓 사업 거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95년, 그는 월드텔(WorldTel)과 5년간 300 규모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며 당시 기록을 세웠다. 2001년에는 월드텔과 5년, 800 규모의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2006년에는 텐둘카르의 마케팅 권리가 3년간 1.8 규모의 계약을 통해 사치 앤드 사치(Saatchi and Saatchi)에 매각되었다. 그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기업인 사친 라메시 텐둘카르 스포츠 매니지먼트 주식회사(Sachin Ramesh Tendulkar Sports Management Pvt Ltd)를 설립하여 자신의 모든 사회적, 상업적 활동을 관리하고 있다.
텐둘카르는 뭄바이 콜라바와 뭄바이 뮬룬드에 각각 텐둘카르스(Tendulkar's)와 사친스(Sachin's)라는 두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이 레스토랑들은 마스 레스토랑(Mars Restaurants)의 산자이 나랑(Sanjay Narang)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소유하고 있다.
2013년, 포브스 세계 최고 수입 운동선수 명단(Forbes' list of world's highest-paid athletes)에서 텐둘카르는 총 수입이 2,200만 달러로 추산되어 51위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 웰스-X(Wealth-X)는 텐둘카르의 순자산을 1억 6천만 달러로 추산하며 그를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크리켓 선수로 평가했다.
2017년까지 텐둘카르는 프라사드 V. 포툴리(Prasad V. Potluri)의 PVP 벤처스와 함께 인도 슈퍼리그(Indian Super League) 축구팀인 케랄라 블래스터스 FC(Kerala Blasters FC)의 공동 소유주였다. 이 팀의 이름은 텐둘카르의 별명인 "마스터 블래스터(Master Blaster)"에서 따왔다. 2016년에는 프리미어 배드민턴 리그(Premier Badminton League)에 참가하는 벵갈루루 블래스터스(Bengaluru Blasters) 배드민턴 팀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2021년 10월, 텐둘카르는 판도라 페이퍼스(Pandora Papers) 유출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의 대리인들은 텐둘카르의 투자가 합법적이며 모든 세금이 완납되었다고 밝혔다.
10. 정치 경력
2012년 4월, 텐둘카르는 프라티바 파틸 대통령에 의해 인도 의회 상원인 라자야 사바에 추천되었다. 그는 이 영예를 받은 최초의 현역 스포츠 선수이자 크리켓 선수였다. 그는 6월 4일에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뉴델리에 배정된 관저를 받는 것을 거부하며, "뭄바이에 거주하는 저에게는 세금 납부자들의 돈 낭비"라고 말했다.
라자야 사바 의원으로서 텐둘카르는 의회 회기 및 본회의 출석률이 매우 저조한 의원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추천 의원들을 포함한 여러 정당의 동료 의원들은 그의 불참을 비판했다. 첫 해에는 예산 회기나 겨울 회기에 단 하루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계절 회기 출석률은 5%에 불과했다. 의원 재직 기간 동안 그는 22개의 질문을 했을 뿐이며, 어떤 토론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정보기술 상임위원회 위원이었다. 6년 임기 동안 그의 전체 출석률은 8%였다. 출석에 대한 비판에 대해 텐둘카르는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불참했다고 밝혔다.
2015년, 텐둘카르는 학교 측의 요청을 받고 국회의원 지역개발 계획 기금에서 76l를 서벵골주 웨스트 미드나포레의 한 학교에 지원했다. 2019년에는 라자야 사바 의원 재직 당시 배정받았던 국회의원 지역개발 기금(MPLAD)에서 22l를 기부하여 동 밤드라의 어린이 공원을 개보수했다.
6년간의 라자야 사바 의원직 재임 기간 동안 텐둘카르는 급여와 기타 월급 보조금으로 약 90l를 받았다. 그는 이 급여와 보조금 전액을 총리 구호 기금에 기부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총리는 이러한 사려 깊은 제스처에 감사를 표하며, 이 기부금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11. 대중매체
그는 테스트 경기에서 13회의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고, 시리즈 최우수 선수에는 4회 선정되었는데, 여기에는 보더-가바스카르 트로피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두 번 포함된다. 원데이 국제 경기(ODI)에서는 62회의 경기 최우수 선수, 15회의 시리즈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2001년, 텐둘카르는 비노드 캄블리와 함께 스타 플러스의 인기 퀴즈 프로그램인 카운 바네가 크로레파티에 출연했다.
2011년, 전문 서적 출판사인 크레이큰 오퍼스에서 "텐둘카르 오퍼스"가 출시되었다. 10권 한정으로 제작된 "블러드 에디션"은 서명 페이지의 종이 펄프에 텐둘카르의 혈액을 섞어 만들었다. 권당 75000USD에 판매된 "블러드 에디션"의 수익금은 텐둘카르의 자선 단체에 기부되었다. 이 외에도 2000USD~3000USD의 양장본 약 1,000권, 200USD~300USD의 소장판, 그리고 디지털 에디션이 출시되었다.
텐둘카르의 자서전인 "내 방식대로(Playing It My Way)"는 2014년 11월 6일에 출간되었다. 2016년 "림카 기록록"에 성인 양장본 사전 주문 기록(150,289권)을 경신한 것으로 등재되었다. 보리아 마주마다르가 고스트라이터로 참여했다.
2017년에는 제임스 어스킨 감독의 영화 "사친: 10억 개의 꿈(Sachin: A Billion Dreams)"이 개봉되었다. 크리켓 선수들과 스포츠 해설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텐둘카르에 대한 다큐드라마 영화로,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2023년에는 영화 "사친: 궁극의 승자(Sachin: The Ultimate Winner)"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텐둘카르라는 영웅이자 동명이인에게 영감을 받은 사친이라는 아이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크리켓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