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노동당 (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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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회민주노동당(SDLP)은 1970년 창당된 북아일랜드의 사회민주주의 및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이다. SDLP는 민족주의 진영을 대표하며, 1970년대 초반 북아일랜드 의회에서 철수했으나, 1973년 지방 선거에서 두 번째로 큰 정당이 되었다. 서닝데일 협정에 참여하여 권력 분점 행정부에 참여했으나, 얼스터 노동자 평의회 파업으로 붕괴되었다. 이후 앵글로-아일랜드 협정 지지, 존 흄과 게리 애덤스의 비밀 회담, 굿 프라이데이 협정 체결 등 평화 프로세스에 기여했다. SDLP는 현재 사회적 주택 건설, LGBT 권리 지지, 기후 변화 대응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며, 아일랜드 통일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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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노동당 (북아일랜드)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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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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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어 명칭 | Páirtí Sóisialta agus Daonlathach an Lucht Oibre (파르티 쇼이살타 아구스 다온라타흐 안 루흐트 오이브러) |
약칭 | SDLP |
설립 | 1970년 8월 21일 |
전신 | 국민민주당 다음 정당의 분파: 아일랜드 노동당 국민당 북아일랜드 노동당 공화노동당 얼스터 자유당 |
본부 | 121 Ormeau Road (오르모 로드 121번지) 벨파스트 BT7 1SH |
청년 조직 | SDLP 청년 |
여성 조직 | SDLP 여성 |
LGBT 조직 | SDLP LGBT+ |
웹사이트 | sdlp.ie |
주요 인물 | |
대표 | 클레어 해나 |
총재 | 브리드 로저스 |
의장 | 다니엘 맥크로산 |
창립자 | 제리 피트 존 흄 아이반 쿠퍼 오스틴 커리 패디 데블린 패디 오한론 패디 윌슨 |
이념 및 정치적 성향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아일랜드 민족주의 |
정치적 위치 | 중도좌파 |
유럽 정당 | 유럽 사회당 |
국제 연맹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참관) |
의석수 | |
하원 (북아일랜드 의석) | 2/18석 |
북아일랜드 의회 | 8/90석 |
북아일랜드 의회 의원 | 37/462석 |
북아일랜드 주도 의회 | 1/11석 |
색상 | |
색상 | 녹색, 빨강 |
2. 역사
1970년 결성된 사회민주노동당은 가톨릭계 주민을 기반으로 하며, 북아일랜드 문제에 있어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일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들은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는 온건 노선을 추구하며, 1998년 벨파스트 협정 이후 얼스터 연합당과 연립 정권을 구성하는 등 평화 정착에 기여했다. 당시 당수 존 휴메는 데이비드 트림블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평화 정착 과정이 교착되면서, 최근에는 보다 급진적인 신 페인 당으로 지지가 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7년 영국 총선에서 영국 하원 의석 3석을 모두 잃었으나, 2019년 영국 총선에서 2석을 회복했다. 북아일랜드 의회에는 16석을 보유하고 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및 유럽 사회당의 가맹 정당이며, 영국의 노동당, 아일랜드 공화국의 노동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 당수는 콜럼 이스트우드이다.
1981년 아일랜드 단식 투쟁과 그에 따른 선거 참여로 민족주의 유권자들의 지지가 분산되었으며, 1982년 북아일랜드 의회 선거에서 신 페인이 등장하면서 사회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감소했다.[10]
존 흄은 팁 오닐, 테드 케네디,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휴 케리 등 아일랜드계 미국 정치인들과의 연계를 활용하여[44]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아일랜드 정부와 협력하여 해결 방안에 합의하도록 권유하도록 설득했다. 또한, 존 흄은 미국 정치인들과의 연계를 통해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간의 협상을 이끌어냈으며, 1985년 앵글로-아일랜드 협정 체결에 기여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진행된 흄-애덤스 회담은 SDLP 대표 존 흄과 신 페인 대표 게리 애덤스 간의 비밀 회담이었다. 이 회담은 다우닝가 합의로 이어졌고, IRA의 휴전과 협상의 기반을 마련했다.[57]
2. 1. 창당과 초기 역사 (1970-1972)
1970년 8월 21일, 스톰몬트의 국회의원 6명 (게리 피트, 공화당 노동당; 오스틴 커리, 민족당; 패디 데블린, 북아일랜드 노동당; 존 흄, 이반 쿠퍼, 패디 오'한론, 무소속)과 상원의원 1명 (패디 윌슨, 공화당 노동당)이 모여 사회민주노동당(SDLP)을 창당했다.[5] 게리 피트가 초대 당수로 선출되었고, 존 흄이 부대표, 패디 윌슨이 초대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5]1970년 10월, 소규모 정당이었던 국민 민주당이 해산되면서 당원들에게 SDLP 가입을 권유했다.[14] 아일랜드 노동당, 민족당, 북아일랜드 노동당, 공화당 노동당, 얼스터 자유당 등 다른 정당 출신 인사들도 SDLP에 합류했다.[15]
SDLP는 창당 초기, 스톰몬트(북아일랜드 의회) 내에서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고자 했다.[17] 그러나 1971년 6월, 스톰몬트가 개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국정 개회에 불참했으며, 7월에는 데리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항의하며 의회에서 완전히 철수했다.[18]
1971년 8월, SDLP는 구금 조치에 반대하며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도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공공 기관 철수, 임대료 및 세금 납부 거부, SDLP 국회의원들의 런던 다우닝가 10번가 앞 48시간 단식 투쟁 등이 포함되었다.[19]
1971년 10월, SDLP는 더니븐에서 첫 연례 회의를 개최하고 당의 헌법 초안을 채택했다. 이 회의에서 에디 맥그레이디가 초대 의장, 쉴라 카슨이 초대 비서로 선출되었으며, 당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확고히 하고 스톰몬트 철수 결정을 지지하는 등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20]
2. 2. 서닝데일 협정 (1973-1974)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서닝데일 협정 (1973-1974)' 섹션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2. 3. 합의를 위한 노력 (1975-1980)
죄송합니다. 주어진 원문 소스에는 "합의를 위한 노력 (1975-1980)" 섹션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해당 섹션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2. 4. 신 페인의 등장 (1981-1982)
1981년 아일랜드 단식 투쟁과 그에 따른 선거 참여로 민족주의 유권자들의 지지가 분산되었다. 1982년 북아일랜드 의회 선거에서 신 페인이 등장하면서 사회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감소했다.[10]2. 5. 뉴 아일랜드 포럼 (1983-1984)
존 흄은 팁 오닐, 테드 케네디,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휴 케리 등 아일랜드계 미국 정치인들과의 연계를 활용했다.[44] 이들 "4인의 기사"와 다른 고위 정치인들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아일랜드 정부와 협력하여 집단적인 해결 방안에 합의하도록 권유하도록 설득했다.2. 6. 앵글로-아일랜드 협정 (1985-1987)
존 흄은 미국 정치인들과의 연계를 활용하여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간의 협상을 이끌어냈다. 1985년 앵글로-아일랜드 협정 체결에 기여했으며, 이는 북아일랜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진전을 가져왔다.2. 7. 흄-애덤스 회담 (1988-1994)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진행된 흄-애덤스 회담은 SDLP 대표 존 흄과 신 페인 대표 게리 애덤스 간의 비밀 회담이었다. 이 회담은 다우닝가 합의로 이어졌고, IRA의 휴전과 협상의 기반을 마련했다.[57]2. 8. 굿 프라이데이 협정 (1995-1998)
사회민주노동당은 폭력을 거부하는 온건 노선을 통해 1998년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 체결에 기여하여 북아일랜드 평화 정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당수였던 존 휴메는 데이비드 트림블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 수석 장관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3. 이념 및 정책
사회민주노동당(SDLP)은 사회민주주의[93]와 아일랜드 민족주의[94]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긴축재정과 브렉시트에 반대한다.[93]
이 정당은 낙태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취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당론을 강제하지는 않는다.[95] LGBT 권리를 지지하며, 여기에는 동성 결혼, 북아일랜드 전역에 PrEP 도입, 학교 내 LGBT 교육 등이 포함된다.[96] 외국인 혐오에 반대하며,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96] 아일랜드어법을 지지한다.[97]
사회경제적 정책으로, 매년 3,000채의 사회적 주택과 저렴한 주택 건설[98], 긱 이코노미와 제로 시간 계약 반대[98], 복지 개혁과 유니버설 크레딧 삭감 반대[99][100] 등을 제시한다.
학업적 선발에 반대하지만, 문법 학교 폐지를 옹호하지는 않는다.[101] 수업료 폐지를 지지하며, 현대 언어를 GCSE까지, 수학 교육을 18세까지 의무화할 것을 주장한다.[101] 데리의 메기 칼리지 캠퍼스를 10,000명 수용 규모로 확장해야 한다고 믿는다.[102]
환경 정책으로는 많은 양의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에 대한 녹색 법인세와 녹색 일자리 전략을 지지한다. 또한 기후 비상사태 선언을 선포하고 정부가 탄소 중립을 달성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103]
4. 전 아일랜드 통합
사회민주노동당(SDLP)은 피아나 페일과의 통합에 대해 당내 논쟁을 벌였다.[66]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큰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전 당 대표인 다운패트릭 남작 부인 마가렛 리치는 통합 아이디어를 거부했다. 2010년 아일랜드 노동당 전국 회의에서 그녀는 "피아나 페일과의 통합이요? 내가 있는 동안은 안 됩니다."라며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통합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67] 2011년 1월 미할 마틴이 피아나 페일 대표로 선출된 후에도, 그는 SDLP와의 통합이나 선거 연합 가능성을 거듭 부인했다. 2019년 1월, SDLP 당원들에게는 "현재대로 계속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이 발송되었는데, 이는 당의 쇠퇴하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었다.[68]
2019년 2월, 특별 당 회의에서 당원들은 아일랜드 공화국의 주요 야당인 피아나 페일과의 파트너십을 승인했다.[69] 양당은 북아일랜드의 현재 정치 상황 해결, 아일랜드 양 지역의 보건 의료 및 교육과 같은 공공 서비스 개선, 섬 내 국민의 추가적인 단결 및 협력, 그리고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미래 투표 준비 등 주요 분야에서 정책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70]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여 벨파스트 사우스의 MLA이자 브렉시트 관련 당 대변인이었던 클레어 한나는 의회 그룹에서 탈퇴했다.[71]
2022년 북아일랜드 의회 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 컬럼 이스트우드는 "SDLP는 스스로 설 것입니다."라며 파트너십을 축소하는 발언을 했다.[72] 이로 인해 파트너십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으며, 2020년부터 "조용히 잊혀졌다"는 언급도 있었다.[73][74][75] 결국 이 파트너십은 2022년 9월 28일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76]
5. 주요 선거 결과
사회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빠르게 북아일랜드에서 주요 정당으로 성장했다. 1998년 북아일랜드 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 기준으로 최대 정당이 되기도 했지만, 2001년 존 흄의 은퇴 이후 지지율이 감소하면서 신 페인에 밀려났다.
마크 더칸 대표 체제 하에서 2001년 총선과 2003년 의회 선거에서 신 페인이 사회민주노동당보다 더 많은 의석과 득표수를 얻어 처음으로 앞섰으며, 이후 이 우위를 계속 유지했다. 2004년 유럽 선거에서 흄이 물러나면서 사회민주노동당은 1979년부터 흄이 지켜온 의석을 신 페인에게 잃었다.[106]
2017년 총선에서는 모든 의석을 잃는 위기를 겪었지만, 2019년 총선에서 벨파스트 사우스와 포일을 탈환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2022년 의회 선거에서는 5위 정당으로 밀려나 8석을 확보했다.[107]
이러한 선거 결과 변동은 사회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가톨릭교도 중산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과 데리와 사우스 벨파스트 외 지역에서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108][109][110][111]
5. 1. 영국 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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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합당 신임 및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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