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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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구성은 전한 무제 때 활약한 관료이다. 기원전 91년 무고의 난 진압에 기여하여 투후에 봉해졌으며, 흉노 정벌에 참여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홍려와 어사대부를 역임했으며, 기원전 87년에 자결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배경은 《한서》에 두 가지 상반된 기록으로 전해진다.

상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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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제의 태자 유거가 자신을 무제에게 참소한 강충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무고의 난). 조정에서는 곧 진압에 나섰는데, 이때 대홍려 상구성은 힘써 싸운 끝에 장광(張光)을 사로잡았다. 진압 후 상구성은 공로를 인정받아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정화 3년(기원전 90년), 흉노가 변경을 노략질하니 조정에서 이를 물리치려 하였다. 이때 상구성은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서하로 출진하였는데, 흉노의 호록고선우가 몸소 정예를 이끌고 고저수(姑且水)를 건너니 상구성은 이를 추격하였지만 결국 물리치지 못하고 돌아갔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 상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구성이 죽은 배경으로는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진다. 《한서》 권17에서는 첨사로서 문제의 종묘에 있었을 때 술에 취하여 술주정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권19에서는 무고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에서는 상구성은 첨사를 지낸 적이 없다면서 전자의 기록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2.1. 무고의 난 진압 (기원전 91년)

정화 2년(기원전 91년), 무제의 태자 유거가 자신을 무제에게 참소한 강충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무고의 난). 조정에서는 곧 진압에 나섰는데, 이때 대홍려 상구성은 힘써 싸운 끝에 장광(張光)을 사로잡았다. 진압 후 상구성은 공로를 인정받아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2.2. 흉노 정벌 (기원전 90년)

정화 3년(기원전 90년), 흉노가 변경을 노략질하니 조정에서 이를 물리치려 하였다. 이때 상구성은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서하로 출진하였는데, 흉노의 호록고선우가 몸소 정예를 이끌고 고저수(姑且水)를 건너니 상구성은 이를 추격하였지만 결국 물리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에 흉노에서는 대장과 이릉이 3만여 기병을 이끌고 상구성을 추격하였고, 9일 동안 싸웠다. 상구성은 선전하였고, 흉노는 포노수(蒲奴水)에 이르러 전황이 불리하다고 여기고 물러났다.

2.3. 죽음 (기원전 87년)

후원 2년(기원전 87년), 상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구성이 죽은 배경으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진다. 《한서》 권17에서는 첨사로서 문제의 종묘에 있었을 때 술에 취하여 술주정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권19에서는 무고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에서는 상구성은 첨사를 지낸 적이 없다면서 전자의 기록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3. 관직

상구성은 전한 무제 때의 관리로, 대홍려어사대부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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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재임 기간전임자후임자
전한대홍려기원전 103년 ~ 기원전 91년 9월호충국전천추
전한어사대부기원전 91년 9월 ~ 기원전 87년 6월포승지상홍양
전한의 투후기원전 91년 ~ 기원전 87년 6월(첫 봉건)(1년 후) 투경후 김일제

3.1. 대홍려 (기원전 103년 ~ 기원전 91년)

상구성은 전한 무제 때 대홍려를 지냈다. 기원전 103년에 대홍려가 되었고, 기원전 91년 9월까지 재임하였다.

3.2. 어사대부 (기원전 91년 ~ 기원전 87년)

상구성은 전한 무제 때의 관리로, 대홍려어사대부를 역임하였다. 기원전 91년, 포승지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가 되었고, 기원전 87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 직위를 유지하였다. 상홍양이 상구성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가 되었다.

4. 출전

상구성은 전한 무제 때의 인물로, 대홍려어사대부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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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임기전임자후임자
대홍려기원전 103년 ~ 기원전 91년 9월호충국전천추
어사대부기원전 91년 9월 ~ 기원전 87년 6월포승지상홍양
투후기원전 91년 ~ 기원전 87년 6월(첫 봉건)투경후 김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