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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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종제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세조 때의 정승 서거정의 후손이며 영조의 장인이다. 1687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딸 정성왕후가 연잉군(훗날 영조)과 혼인하여 사릉 참봉에 임명되었다. 이후 신천군수를 지내다 1719년에 사망했으며, 영조 즉위 후 의정부 우의정, 영의정에 추증되고 달성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신임옥사로 손자가 연루되어 가문이 위기를 겪었으나 영조 즉위 후 복권되었고, 1743년 효희의 시호가 내려졌다.

서종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달성부원군
達城府院君
배우자잠성부부인 우봉 이씨
자녀아들 서명백(徐命伯), 딸 정성왕후(貞聖王后)
가문대구 서씨
아버지서문도
출생일1656년
사망일1719년
사망 원인병사
국적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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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세조 때 정승 서거정의 후손으로 영조의 장인이다. 숙종 13년(1687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신천군수를 지냈으나 숙종 45년(1719년) 사망했다. 사후 영조 즉위 후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고 달성부원군에 추봉되었다. 그의 딸 정성왕후는 영조의 정비였으나 자식은 없었다.

2.1. 초기 생애

세조 때의 정승 서거정의 후손으로 그의 형 서거광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사평(司評)을 지낸 서문도(徐文道)이며, 영조의 장인이다. 1687년(숙종 13년) 생원시와 진사시 사마 양시에 모두 합격하였다. 1704년 그의 딸이 뒷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과 결혼하여 특별히 음직으로 사릉참봉(思陵參奉)에 임명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신천군수(信川郡守)로 부임했으나 숙종 45년인 1719년 사망했다.

2.2. 사망과 추증

1719년(숙종 45년) 사망하였으나,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면서 의정부좌찬성추증되었다. 1724년(영조 즉위년) 연잉군이 즉위하면서 의정부우의정에 추증되고,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에 추봉되었다. 그 뒤 의정부 영의정이 더해졌다.

그러나 영조의 형 경종이 즉위할 때 일어난 신임옥사에 그의 손자 서덕수가 연루되면서, 아들인 서명백 등도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영조 즉위 후 서종제의 동생 부사과 서종일(徐宗一)의 건의로 손자 서덕수가 복권되었고, 조정대신들이 영조에게 건의해 또다른 손자 서인수(徐仁修)는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되었다. 1743년 효희(孝禧)의 시호가 내려졌다. 딸인 정성왕후는 영조의 정비로서 66세까지 장수했으나 친자식은 없었다.

2.3. 신임옥사와 가문의 위기

경종 즉위 후 신임옥사에 손자 서덕수가 연루되면서, 아들 서명백 등이 흑산도로 유배되는 등 가문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영조가 즉위하면서 서종제의 동생 부사과 서종일(徐宗一)의 건의로 손자 서덕수가 복권되었고, 조정 대신들은 영조에게 건의해 또 다른 손자 서인수(徐仁修)를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했다.

2.4. 영조 즉위와 가문의 복권

영조 즉위 후, 서종제의 동생 부사과 서종일(徐宗一)의 건의로 손자 서덕수가 복권되었고, 조정 대신들은 영조에게 건의하여 또 다른 손자 서인수(徐仁修)를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제수하였다. 1743년 효희(孝禧)의 시호가 내려졌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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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증조부서경수
조부서형리
부친서문도
형제서종척, 서종신, 서종협, 서종일
장남서명백
손자서덕수, 서인수, 서신수
장녀정성왕후
사위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