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마제미
1. 개요
석마제미는 588년 백제의 와박사로 일본에 파견된 인물이다. 그는 혜총 등 승려, 다라미타, 문가고자, 백미순, 양귀문, 황귀문, 백가, 양고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토 요시노리, 이모토 에이이치 등은 석마제미를 포함한 백제의 장인들이 이란계 호인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석마제미의 일본 파견은 백제가 고대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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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박사 -
왕인
왕인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학문을 가르친 백제의 학자로, 실존 여부와 출신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일본에 문물을 전파한 인물로 숭상받는다. -
백제의 박사 -
고안무
고안무는 백제가 일본에 파견한 오경박사를 지칭하며, 516년 게이타이 천황 시대에 파견되었으나 일본서기 기록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통해 파견 전승의 사실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다. -
일본에 거주한 한국인 -
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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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거주한 한국인 -
지석영
지석영은 조선 후기의 의학자이자 개화 사상가로, 종두법 도입에 기여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그의 업적이 식민지배 정당화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며, 《우두신설》 등의 저서를 통해 의학 지식을 전파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587년, 모노노배(物部守屋)파가 왜의 정권을 잡으며 불교를 적극 수용하자, 석마제미는 백제의 와박사(瓦博士)로서 왜에 파견되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88년에 백제 위덕왕의 명으로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이토 요시노리, 이모토 에이이치 등은 석마제미를 포함하여 백제가 왜국에 파견한 장인들이 이란계(페르시아) 호인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도 중국남조와의 교섭이 활발했으며,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남조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 당시 중국인이 신라인과 대화할 때는 백제인을 통역으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백제가 중국과 밀접한 교류를 했다는 것은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동진으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남조에는 이른 시기부터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 아랍인상인들이 진출했으며, 법흥사 조영에 참여한 백제의 장인들은 이러한 경로를 통해 백제에 이른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이거나, 그 자손으로 보인다.
2.1. 일본 파견
588년(위덕왕 35년) 일본서기에 따르면, 은솔 수신, 덕솔 개문, 나솔 복부미신 등 수신사 일행과 혜총 등 승려,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미순, 와박사 마나문노, 양귀문, 황귀문, 화공 백가, 양고 등과 함께 일본에 파견되었다.
2.2. 주요 활동 및 업적
588년 (위덕왕 35년), 와박사로서 일본 건축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불교 수용 초기 단계에 불교 관련 건축물 제작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스카데라(법흥사) 조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서기』 스슌 원년 조에는, 588년에 은솔 수신, 덕솔 개문, 나솔 복부미신 등 수신사 일행과 혜총 등 승려들,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미순, 와박사 마나문노, 양귀문, 황귀문, 화공 백가, 양고 등과 함께 일본에 왔다고 전한다.
이토 요시노리, 이모토 에이이치 등은 백제가 왜국에 공헌한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미순, 와박사 마나문노, 양귀문, 황귀문, 석마제미, 화공 백가, 양고 등의 장인들은 모두 이란계(페르시아) 호인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고 보았다.
백제는 중국남조와의 교섭이 활발하여 중국남조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 법흥사 조영에 참여한 백제의 장인들은, 그러한 경로를 거쳐 백제에 이른 이란계(페르시아) 호인이거나, 그 자손으로 추정된다.
3. 인물 배경 및 평가
587년 석마제미는 모노노베(物部守屋)파가 왜의 정권을 잡고 불교를 적극 수용하는 과정에서 백제의 와박사(瓦博士)로서 왜에 파견되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88년 (위덕왕 35년)에 은솔 수신, 덕솔 개문, 나솔 복부미신 등 수신사 일행과 혜총 등 승려,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미순, 와박사 마나문노, 양귀문, 황귀문, 화공 백가, 양고 등과 함께 일본에 왔다고 한다.
이들은 백제의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1. 이란계 민족 기원설
이토 요시노리, 이모토 에이이치 등은 복원된 인명의 원어에 차이가 있지만, 백제가 왜국에 공헌한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미순, 와박사 마나문노, 양귀문, 황귀문, 석마제미, 화공 백가, 양고 등의 장인들이 모두 이란계(페르시아) 호인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도 중국남조와의 교섭이 활발했으며,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인해 중국남조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동진으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백제는 중국 강남과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 중국남조에는 이른 시기부터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 아랍인상인들이 진출했으며, 법흥사의 조영에 참여한 백제의 장인들도 그러한 경로를 거쳐 백제에 이른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이거나, 그 자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