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친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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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무친정록》은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 성립 과정을 기록한 역사서로,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칭기즈 칸의 탄생부터 우구데이 칸의 죽음까지의 시기를 다루며, 훌라구 울루스에서 편찬된 페르시아어 사료인 《집사》의 '칭기즈칸기'와 내용상 매우 유사하다. 《성무친정록》은 《집사》와 비교 연구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기여하며, 왕국유, 나가 미치요, 폴 펠리오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번역되었다.

성무친정록
개요
제목 (한자)聖武親征錄
제목 (한국어)성무친정록
제목 (로마자 표기)Seongmu chinjeongnok
다른 이름원태조실록 (元太祖實錄)
금서 (金書)
일반 정보
저자미상
언어몽골어
한문
창작 시기13세기
주제칭기즈 칸의 생애와 군사적 업적
원천알탄 뎁테르 (황금사)
실록
역사적 중요성
중요성칭기즈 칸의 생애와 초기 몽골 제국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보존 상태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지 않음
내용
주요 내용칭기즈 칸의 초기 생애와 부족 통합 과정
금나라 정복 전쟁
호라즘 정복 전쟁
특징칭기즈 칸의 군사적 재능과 전략, 리더십 강조
관련 문서
관련 문서원사
집사기
참고 문헌
참고 문헌Ratchnevsky, Paul (1991). Genghis Khan: His Life and Legacy. Blackwell Publishing. ISBN 0-631-16785-4.
Morgan, David (1986). The Mongols. Blackwell. ISBN 0-631-13556-1.
Atwood, Christopher P. (2004).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the Mongol Empire. Facts on File, Inc. ISBN 0-8160-46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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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립 배경

《성무친정록》의 성립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몇 가지 방증을 통해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현재 주류 학설은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성무친정록》에 등장하는 옹구트부의 지배자 '아이부카'의 재임 기간이 쿠빌라이 칸 치세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 쿠빌라이 칸의 아버지 톨루이가 '태상황'으로 표기된 점 등을 근거로 한다. '태상황'은 주로 '황제의 아버지'를 의미하므로, 이는 《성무친정록》이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성무친정록》은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되었으며, 인종 치세에 편찬된 《성무개천기》와는 별개의 서적이라는 학설이 주류이다. 과거에는 《원사》 찰한전(察罕傳)의 기록을 토대로 《성무개천기》를 《성무친정록》의 원본 또는 그 자체로 보아 1310년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성무친정록》은 《집사》, 《원사》 등과 내용상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토브치얀》(또는 이와 비슷한 몽골어 사서)에서 직접 한문으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2.1. 초기 학설: 원 인종 시기

과거에는 《원사》의 기록을 근거로 인종(仁宗, 부얀투 칸) 시기(1310년대)에 편찬된 《성무개천기》(聖武開天紀)가 《성무친정록》의 원본이거나, 혹은 《성무친정록》 그 자체라고 여겨졌다. 《원사》 권137 찰한전(察罕傳, 차간의 열전)에 "또한 (차간에게) 조를 내려 토브치얀(脱必赤顔)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성무개천기》라 이름하였다."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2.2. 현재의 주류 학설: 쿠빌라이 칸 시기

《성무친정록》의 성립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몇 가지 방증을 통해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현재 주류 학설은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성무친정록》에 등장하는 옹구트부의 지배자 '아이부카'의 재임 기간이 쿠빌라이 칸 치세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 쿠빌라이 칸의 아버지 톨루이가 '태상황'으로 표기된 점 등을 근거로 한다. '태상황'은 주로 '황제의 아버지'를 의미하므로, 이는 《성무친정록》이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성무친정록》은 쿠빌라이 칸 치세에 편찬되었으며, 인종 치세에 편찬된 《성무개천기》와는 별개의 서적이라는 학설이 주류이다. 과거에는 《원사》 찰한전(察罕傳)의 기록을 토대로 《성무개천기》를 《성무친정록》의 원본 또는 그 자체로 보아 1310년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성무친정록》은 《집사》, 《원사》 등과 내용상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토브치얀》(또는 이와 비슷한 몽골어 사서)에서 직접 한문으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3. 내용

《성무친정록》은 칭기즈 칸이 몽골의 각 부족을 통합하고 서쪽을 향해 군사 원정에 나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칭기즈 칸의 탄생부터 신축년(1241년) 우구데이 칸의 죽음까지의 시간대를 다루고 있다.

《성무친정록》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서방의 훌라구 울루스(일 칸국)에서 편찬되었던 페르시아어 사료인 《집사》「칭기즈칸기」와 내용상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성무친정록》은 칭기즈 칸의 선조에 대한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집사》와 내용 면에서 매우 가까우며, 무엇보다도 중앙아시아 원정 중의 연차가 1년씩 어긋나고 있다는 오류마저도 서로 공유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의 연차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의 상호 비교를 통해 어느 한쪽의 자료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특정할 수 없는 단어에 대해서 그 바른 의미를 특정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집사》에서 "이슬람력 599년에 해당하는 돼지 해(1203년)의 겨울"에 칭기즈 칸이 "확고하고 좋은 야삭을 명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성무친정록》에서는 "선포호령"(宣佈号令)라고 기록하고 있어, 법령(法令) 내지 군령(軍令)이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야삭이라는 번역어 가운데 해당 경우에는 호령(군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사》「칭기즈칸기」에서 코르라스족의 카라 메르키타이가 도망친 칭기즈 칸에게 주었다고 여겨지는 *āīgir-i qālīūn*는 몽골어를 페르시아어 발음으로 옮겨 적은 것으로 페르시아어 지식만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단어이지만, 《성무친정록》에서는 "뇌색전마"(獺色全馬)라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다른 사료의 기술을 가지고 보더라도 "특별히 빼어난 털색을 가진 (거세하지 않은) 온전한 말"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다.

이상의 점을 들어서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 그리고 아마도 《원사》「태조본기」 역시도 동일한 원사료로부터 제각기 페르시아어와 한어로 번역된 사서일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이들 사료의 원전이 된 사료에 대해서는 기록이 적어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며, 《집사》가 원사료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 《알탄 뎁테르》(Altan Debter, 금책/Алтан дэвтэр몽골어)와 《원사》에 실려 있는 《토브치얀》을 동일한 서적으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알탄 뎁테르는 《성무친정록》 등 세 책과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한편 《원조비사》는 몽골어로 읽으면 「몽골운 니우챠 톱치얀」(Mongγol-un niγuca tobčiyan)이 되기 때문에 《원조비사》야말로 《원사》에서 언급한 토브치얀이며 《성무친정록》, 《집사》, 《원사》 등의 사서의 원사료가 되었던 사료는 아닐까 하는 설도 존재하고 있는데, 주로 연대차의 부분에서 《원조비사》는 세 개의 다른 서적과는 아무래도 내용이 차이가 나고 있기 때문에 《원조비사》야말로 《성무친정록》 등 세 서적의 원사료가 된 사료 그 자체라는 설은 수용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사학자 요시다 슌이치(吉田順一)는 《원조비사》가 《성무친정록》 등 세 서적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것은 아니고, 역시 《성무친정록》 등 세 종의 서적과 동일한 원사료(토브치얀?)을 가지고는 있으되 영웅서사시로써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에피소드 순서를 바꾸는 등의 편집을 행해서 성립된 것이 《원조비사》라고 보았다.

3.1. 《집사》와의 유사성

《성무친정록》은 일 칸국에서 편찬된 페르시아어 사료 《집사》의 '칭기즈칸기'와 내용이 매우 흡사하며, 중앙아시아 원정 시기의 연도 오류를 공유하는 등 여러 사건의 연대가 일치한다.

《집사》와 《성무친정록》을 비교하면 한쪽의 자료만으로는 의미를 특정할 수 없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사》에서 "이슬람력 599년에 해당하는 돼지 해(1203년) 겨울"에 칭기즈 칸이 "확고하고 좋은 야삭을 명했다"라고 기술된 것에 대해, 《성무친정록》에는 "선포호령"(宣佈号令)라고 기록되어 있어, '야삭'은 호령(군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사》의 코르라스족 카라 메르키타이가 칭기즈 칸에게 주었다고 하는 *āīgir-i qālīūn*는 몽골어를 페르시아어 발음으로 옮긴 것으로, 《성무친정록》에서는 "뇌색전마"(獺色全馬)라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특별히 빼어난 털색을 가진 (거세하지 않은) 온전한 말"을 의미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집사》, 《성무친정록》, 《원사》"태조본기"는 동일한 원사료에서 각각 페르시아어와 한어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사료에 대해서는 기록이 적어 여러 학설이 존재하며, 《집사》가 원사료 중 하나라고 말하는 《알탄 뎁테르》(Altan Debter, 금책/Алтан дэвтэр몽골어)와 《원사》에 실린 《토브치얀》을 같은 책으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알탄 뎁테르》는 《성무친정록》 등 세 책과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원조비사》는 《원사》에서 언급된 《토브치얀》이며 《성무친정록》, 《집사》, 《원사》 등의 사서의 원사료가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연대 등에서 내용 차이가 커서 수용되지 않는다. 다만, 요시다 슌이치(吉田順一)는 《원조비사》가 동일한 원사료(토브치얀)를 가지되 영웅서사시로써의 색채를 위해 에피소드 순서를 바꾸는 등의 편집을 거쳐 성립된 것이라고 보았다.

3.2. 사료 비교 연구

《성무친정록》은 서방의 훌라구 울루스(일 칸국)에서 편찬된 페르시아어 사료인 《집사》「칭기즈칸기」와 내용상 매우 흡사하다. 《성무친정록》은 칭기즈 칸의 선조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집사》와 내용 면에서 매우 가깝고, 중앙아시아 원정 중의 연차가 1년씩 어긋나는 오류마저도 서로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의 상호 비교를 통해 어느 한쪽의 자료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특정할 수 없는 단어에 대해서 그 바른 의미를 특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사》에서 "이슬람력 599년에 해당하는 돼지 해(1203년)의 겨울"에 칭기즈 칸이 "확고하고 좋은 야삭을 명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성무친정록》에서는 "선포호령"(宣佈号令)라고 기록하고 있어, 법령(法令) 내지 군령(軍令)이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야삭이라는 번역어 가운데 해당 경우에는 호령(군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사》「칭기즈칸기」에서 코르라스족의 카라 메르키타이가 도망친 칭기즈 칸에게 주었다고 여겨지는 āīgir-i qālīūn는 몽골어를 페르시아어 발음으로 옮겨 적은 것으로 페르시아어 지식만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단어이지만, 《성무친정록》에서는 "뇌색전마"(獺色全馬)라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특별히 빼어난 털색을 가진 (거세하지 않은) 온전한 말"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이상의 점을 들어서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 그리고 아마도 《원사》「태조본기」 역시도 동일한 원사료로부터 제각기 페르시아어와 한어로 번역된 사서일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이들 사료의 원전이 된 사료에 대해서는 기록이 적어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며, 《집사》가 원사료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 《알탄 뎁테르》(Altan Debter, 금책/Алтан дэвтэр몽골어)와 《원사》에 실려 있는 《토브치얀》을 동일한 서적으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알탄 뎁테르는 《성무친정록》 등 세 책과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원조비사》는 몽골어로 읽으면 "몽골운 니우챠 톱치얀"(Mongγol-un niγuca tobčiyan)이 되기 때문에 《원조비사》야말로 《원사》에서 언급한 토브치얀이며 《성무친정록》, 《집사》, 《원사》 등의 사서의 원사료가 되었던 사료는 아닐까 하는 설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연대차의 부분에서 《원조비사》는 세 개의 다른 서적과는 내용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원조비사》야말로 《성무친정록》 등 세 서적의 원사료가 된 사료 그 자체라는 설은 수용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사학자 요시다 슌이치(吉田順一)는 《원조비사》가 《성무친정록》 등 세 서적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것은 아니고, 역시 《성무친정록》 등 세 종의 서적과 동일한 원사료(토브치얀?)을 가지고는 있으되 영웅서사시로써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에피소드 순서를 바꾸는 등의 편집을 행해서 성립된 것이 《원조비사》라고 보았다.

3.3. 원사료 추정

《성무친정록》은 일 칸국에서 편찬되었던 페르시아어 사료인 《집사》「칭기즈칸기」와 내용상 매우 흡사하다. 《성무친정록》은 칭기즈 칸의 선조에 대한 기술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집사》와 내용 면에서 매우 가깝고, 중앙아시아 원정 중의 연차가 1년씩 어긋나는 오류를 공유하는 등 여러 사건의 연대가 완전히 일치한다.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을 비교하면 한쪽 자료만으로는 의미를 특정하기 어려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사》에서 "이슬람력 599년에 해당하는 돼지 해(1203년)의 겨울"에 칭기즈 칸이 "확고하고 좋은 야삭을 명했다"라고 기술된 것에 대해, 《성무친정록》에서는 "선포호령"(宣佈号令)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야삭이 여러 의미 중 호령(군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사》「칭기즈칸기」에서 코르라스족의 카라 메르키타이가 도망친 칭기즈 칸에게 주었다고 여겨지는 āīgir-i qālīūn는 몽골어를 페르시아어 발음으로 옮겨 적은 것으로, 《성무친정록》에서는 「뇌색전마」(獺色全馬)라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특별히 빼어난 털색을 가진 (거세하지 않은) 온전한 말"을 의미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 그리고 《원사》'태조본기'는 동일한 원사료에서 각각 페르시아어와 한문으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사료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며, 《집사》에서 언급된 《알탄 뎁테르》(금책/Altan Debterper)와 《원사》의 《토브치얀》을 동일한 서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알탄 뎁테르》는 《성무친정록》 등과는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설도 있다.

《원조비사》는 몽골어로 읽으면 「몽골운 니우챠 톱치얀」(Mongγol-un niγuca tobčiyan)이 되기 때문에 《원조비사》가 《원사》에서 언급한 토브치얀이며, 《성무친정록》, 《집사》, 《원사》 등의 사서의 원사료가 아니냐는 설이 있었지만, 연대 차이 부분에서 《원조비사》는 세 서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는다. 요시다 슌이치(吉田順一)는 《원조비사》가 《성무친정록》 등 세 서적과 동일한 원사료(토브치얀)을 가지되, 영웅서사시로써의 색채를 위해 에피소드 순서를 바꾸는 등의 편집을 행해서 성립된 것이 《원조비사》라고 보았다.

3.4. 《원조비사》와의 관계

《성무친정록》은 서방의 일 칸국에서 편찬되었던 페르시아어 사료인 《집사》 「칭기즈칸기」와 내용상 매우 흡사하다. 칭기즈 칸의 선조에 대한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집사》와 내용 면에서 매우 가까우며, 중앙아시아 원정 중의 연차가 1년씩 어긋나고 있다는 오류마저도 서로 공유하고 있다.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을 상호 비교를 통해 어느 한쪽의 자료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특정할 수 없는 단어에 대해서 그 바른 의미를 특정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집사》에서 "이슬람력 599년에 해당하는 돼지 해(1203년)의 겨울"에 칭기즈 칸이 "확고하고 좋은 야삭을 명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성무친정록》에서는 "선포호령"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법령 내지 군령이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야삭이라는 번역어 가운데 해당 경우에는 호령(군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집사》「칭기즈칸기」에서 코르라스족의 카라 메르키타이가 도망친 칭기즈 칸에게 주었다고 여겨지는 āīgir-i qālīūn는 몽골어를 페르시아어 발음으로 옮겨 적은 것으로 페르시아어 지식만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단어이지만, 《성무친정록》에서는 "뇌색전마"라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특별히 빼어난 털색을 가진 (거세하지 않은) 온전한 말"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집사》「칭기즈칸기」와 《성무친정록》, 《원사》「태조본기」는 동일한 원사료로부터 각각 페르시아어와 한어로 번역된 사서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다만 이들 사료의 원전이 된 사료에 대해서는 기록이 적어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며, 《집사》가 원사료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는 《알탄 뎁테르》와 《원사》에 실려 있는 《토브치얀》을 동일한 서적으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알탄 뎁테르는 《성무친정록》 등 세 책과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원조비사》는 몽골어로 읽으면 「몽골운 니우챠 톱치얀」이 되기 때문에 《원조비사》야말로 《원사》에서 언급한 토브치얀이며 《성무친정록》, 《집사》, 《원사》 등의 사서의 원사료가 되었던 사료는 아닐까 하는 설도 존재했다. 그러나 연대 차이 부분에서 《원조비사》는 세 개의 다른 서적과는 내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원조비사》가 이들 서적의 원사료라는 설은 수용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사학자 요시다 슌이치는 《원조비사》가 《성무친정록》 등 세 서적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서적이라는 것은 아니고, 역시 동일한 원사료(토브치얀)를 가지고 있으되 영웅서사시로서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에피소드 순서를 바꾸는 등의 편집을 행해서 성립된 것이 《원조비사》라고 보았다.

4. 판본 및 번역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 학자 왕국유(王国维)는 《설부》(說郛)에 실려 있는 판본을 토대로 《성무친정록교주》(聖武親征錄校注)를 지었다. 일본의 나가 미치요(那珂通世)도 《성무친정록》을 번역하였으며, 폴 펠리오(Paul Pelliot)의 프랑스어 역주본(1951년, 앵비스와 공저)은 뛰어난 주석으로 이후 《성무친정록》 학술 연구의 고전이 되었다. 가경안(贾敬颜)은 여러 교주본을 포함한 18종의 판본을 취합해 《성무친정록교본》(聖武親征錄校本)을 저술하고 주석을 붙여 1955년에 출판하였다.

5. 한국사와의 관련성 (별도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