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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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비사는 칭기스 칸의 22대 조상부터 셋째 아들 오고타이 칸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자 문학 작품이다. 칭기스 칸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구어체 산문과 운문으로 구성되었으며, 12권 282절로 이루어져 있다. 몽골비사는 칭기스 칸의 조상, 일생, 오고타이 칸 초기 통치를 다루며, 칭기스 칸의 전설적인 족보로 시작하여 유라시아 대륙 정복, 칭기스 칸의 죽음, 오고타이 칸의 즉위와 주변 국가 정벌까지를 기록한다. 몽골비사는 다른 역사서와는 달리 독특한 사건 기록과 문학적 특징을 가지며, 몽골의 역사, 언어,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완성 연도와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 몽골인들의 기억을 반영한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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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비사 - [서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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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저자 | 미상 |
국가 | 몽골 제국 |
언어 | 중세 몽골어 |
주제 | 몽골 제국의 역사 |
출판일 | 13세기 쥐띠 해 (c. 1228/1229, 1240, 1252, 1264) |
다른 이름 | 황금사(黃金史) 원조비사(元朝秘史) 몽골비사(蒙古秘史) |
번역 |
2. 내용
《몽골비사》는 칭기즈 칸의 22대 조상인 부르테 치노와 코아이마랄로부터 시작하여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인 외게데이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칭기즈 칸에 관한 내용이다.[17] 기본적으로는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기록하는 편년체 형식을 따르지만, 구어체 산문과 운문이 자유롭게 섞여 있는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18]
칭기즈 칸의 조상 이야기는 푸른 회색 늑대와 암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바타치칸으로부터 시작한다. 바타치칸의 11대 후손인 알란 구아는 과부가 된 후, 초자연적인 빛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더 낳았는데, 그중 막내가 보르지긴 씨족의 창시자인 보돈차르였다.[4]
칭기즈 칸(테무진)의 이야기는 아버지 예수게이가 어머니 홀룬을 납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칭기즈 칸의 탄생(약 1160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겪은 어려움, 1206년 칭기즈 칸이라는 칭호를 얻기까지의 갈등, 전쟁, 음모 등을 다룬다. 책의 후반부는 칭기즈 칸과 그의 셋째 아들 외게데이 칸의 정복 전쟁을 다루며, 외게데이 칸이 자신의 업적과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맺는다.
전반부는 칭기즈 칸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 영웅 서사시적인 성격을, 후반부는 사건과 명령 인용을 나열한 역사 서술적인 성격을 띤다.
《몽골비사》는 『원사(元史)』(14세기 후반)나 『집사(集史)』(14세기 초) 같은 후대 역사서에는 없는 사건 기록이 많고, 운율과 대화문을 많이 사용하는 등 문학적 특징이 강하다. 또한, 설화 묘사가 극적이고 생생하여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는 평가를 받으며, 칭기즈 칸을 다룬 많은 역사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사건의 전후 관계, 경위, 내용 등이 자유롭게 변경된 부분이 있어 기록의 사실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몽골비사》의 영웅 이야기적인 에피소드는 『집사』 등과 겹치는 부분이 많고, 탈리카르 전투의 승패 등 다른 자료에서 보이는 칭기즈 칸 미화나 실수 은폐가 없어,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많은 역사학자는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몽골인들이 조상의 영웅 이야기를 전승하며 짙게 반영된 책으로 평가한다.
2. 1. 구성
《몽골비사》는 총 12권(정집 10권과 속집 2권), 총 282절로 구성되어 있다.[18] 각 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8절: 칭기즈 칸의 조상들
# 59-93절: 칭기즈 칸의 소년기
# 94-103절: 칭기즈 칸의 결혼과 메르키트족의 침입
# 104-119절: 토그릴 완 칸, 자무카와의 연합 결성과 자무카와의 분열
# 120-140절: 몽골부의 칸위 계승과 주르킨족의 붕괴
# 141-149절: 쿠이텐 전투와 타이치구트족의 붕괴
# 150-188절: 칭기즈 칸과 완 칸의 대립 및 케레이트족의 멸망
# 189-201절: 나이만족 정복과 자무카의 처형
# 202-223절: 칭기즈 칸의 칸 즉위와 95천호의 임명 및 상사
# 224-234절: 호위군의 확대 개편
# 235-246절: 위구르의 귀부 및 삼림 부족의 정벌
# 247-264절: 금(金), 서하(西夏), 호라즘 정벌
# 265-268절: 서하의 멸망과 칭기즈 칸의 죽음
# 269-280절: 외게데이 카안의 즉위와 주변 국가들의 정벌
# 281-282절: 외게데이 카안의 공적 및 《몽골비사》의 완성
《몽골비사》는 원래 구전 문학이었으며, 현존하는 본문에는 12권본과 15권본이 있다. 원전은 위구르 문자로 쓰인 몽골어로 쓰여졌다고 추정되지만, 소실되었다. 17세기 몽골어 연대기 『알탄 토브치(황금사)』에 《몽골비사》와 같은 계통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몽골어 사본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12권본은 명나라 홍무제 연간에 원전의 몽골어를 한자로 음사하고 중국어 번역을 붙인 것으로, 본편 10권과 속편 2권으로 구성된다. 15권본은 영락제 연간에 12권본을 발췌, 재구성하여 『영락대전』에 수록한 것이다.
내용은 12권본이 더 우수하다고 평가되지만, 15권본은 12권본의 사본 과정에서 발생했을 오기(誤記)를 보충할 수 있어, 12권본 교감(校勘)에 사용될 수 있다.
12권본은 한자로 음역된 몽골어 원문의 각 어휘에 중국어로 축어역(逐語譯, 낱말을 일일이 번역)을 달고, 절마다 초역(抄譯)을 덧붙였기 때문에, 당시 몽골어 어휘의 발음과 의미를 분석할 수 있어 중세 몽골어 연구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2. 2. 주요 내용
몽골비사는 칭기스 칸의 22대 조상인 부르테 치노와 코아이마랄로부터 시작하여 칭기스 칸의 셋째 아들인 외게데이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칭기스 칸에 관한 내용이다.[17] 기본적으로는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기록하는 편년체 형식을 따르지만, 구어체 산문과 운문이 자유롭게 섞여 있는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18]몽골비사는 총 12권 (정집 10권과 속집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282절로 나뉜다. 각 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8]
절 번호 | 내용 |
---|---|
001-058절 | 칭기스 칸의 조상 |
059-093절 | 칭기스 칸의 소년기 |
094-103절 | 칭기스 칸의 결혼과 메르키트족 침입 |
104-119절 | 토그릴 완 칸, 자무카와 연합 및 자무카와의 분열 |
120-140절 | 몽골부 칸위 계승과 주르킨족 붕괴 |
141-149절 | 쿠이텐 전투와 타이치구트족 붕괴 |
150-188절 | 칭기스 칸과 완 칸의 대립 및 케레이트족 멸망 |
189-201절 | 나이만족 정복과 자무카 처형 |
202-223절 | 칭기스 칸 즉위, 95천호 임명 및 상사 |
224-234절 | 호위군 확대 개편 |
235-246절 | 위구르 귀부 및 삼림 부족 정벌 |
247-264절 | 금, 서하, 호라즘 정벌 |
265-268절 | 서하 멸망과 칭기스 칸의 죽음 |
269-280절 | 외게데이 카안 즉위와 주변 국가 정벌 |
281-282절 | 외게데이 카안 공적 및 몽골비사 완성 |
칭기스 칸의 조상 이야기는 푸른 회색 늑대와 암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바타치칸으로부터 시작한다. 바타치칸의 11대 후손인 알란 구아는 과부가 된 후, 초자연적인 빛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더 낳았는데, 그중 막내가 보르지긴 씨족의 창시자인 보돈차르였다.[4]
칭기스 칸(테무진)의 이야기는 아버지 예수게이가 어머니 홀룬을 납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칭기스 칸의 탄생(약 1160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겪은 어려움, 1206년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를 얻기까지의 갈등, 전쟁, 음모 등을 다룬다. 책의 후반부는 칭기스 칸과 그의 셋째 아들 외게데이 칸의 정복 전쟁을 다루며, 외게데이 칸이 자신의 업적과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맺는다.
12권의 책 중 본편은 칭기스 칸의 조상 전승부터 칸 즉위(1206년)까지, 속편은 칭기스 칸의 정복 사업부터 사망, 그리고 외게데이 즉위(1229년)와 그의 치세 동안의 대외 정벌 및 궁정 조직 재편 등을 기록하고 있다.
전반부는 칭기스 칸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 영웅 서사시적인 성격을, 후반부는 사건과 명령 인용을 나열한 역사 서술적인 성격을 띤다.
몽골비사는 『원사』(14세기 후반)나 『집사』(14세기 초) 같은 후대 역사서에는 없는 사건 기록이 많고, 운율과 대화문을 많이 사용하는 등 문학적 특징이 강하다. 또한, 설화 묘사가 극적이고 생생하여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는 평가를 받으며, 칭기스 칸을 다룬 많은 역사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사건의 전후 관계, 경위, 내용 등이 자유롭게 변경된 부분이 있어 기록의 사실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서라기보다는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몽골비사의 영웅 이야기적인 에피소드는 『집사』 등과 겹치는 부분이 많고, 탈리카르 전투의 승패 등 다른 자료에서 보이는 칭기스 칸 미화나 실수 은폐가 없어,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많은 역사학자는 13세기 후반~14세기 전반 몽골인들이 조상의 영웅 이야기를 전승하며 짙게 반영된 책으로 평가한다.
3. 가치
《몽골비사》는 칭기스칸 가문과 몽골 제국의 초기 역사를 다룬 중요한 기록이다. 칭기스칸의 조상 이야기부터 그의 어린 시절, 몽골 고원 통일, 외곽대 칸 시대의 정복 전쟁까지를 다룬다.
이 책은 역사, 언어, 문학, 민족지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12세기와 13세기 몽골 부족 사회의 생활상과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당시 몽골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원래 위구르 문자로 쓰인 몽골어 원본은 소실되었고, 현재는 명나라 시대에 한자로 음역되고 중국어로 번역된 12권본과 15권본이 전해진다. 12권본은 몽골어 어휘의 발음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 중세 몽골어 연구에도 중요하다.
《몽골비사》는 문학적 가치도 높다. 칭기스칸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대화로 풀어내어 영웅 서사시적인 성격을 지니며,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몽골 정부는 금박으로 장식된 《몽골비사》 사본을 울란바토르의 정부 청사 후면에 배치하도록 명령했다.[8]
3. 1. 역사적 가치
몽골 역사 학자들은 이 책에 담긴 풍부한 민족지, 언어, 문학, 그리고 다양한 측면의 몽골 문화에 대한 정보 때문에 이 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5][13] 언어학 연구 분야에서의 가치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후대 문헌에 만연한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특한 몽골어 문헌의 사례로 간주된다. 특히 12세기와 13세기 몽골 문명의 일상적인 부족 생활과 조직에 대한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높이 평가되며, 페르시아어와 중국어로 된 다른 1차 자료들을 보완한다.[6]
역사적으로 정확한 자료로서의 가치는 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르네 그루세와 같은 일부 전문가들은 이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고르 드 라셰빌츠와 같은 다른 전문가들은 자료의 가치는 주로 "몽골 부족 생활에 대한 충실한 묘사"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13] 아서 웨일리는 「몽골비사」의 "역사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7]
3. 2. 민족지적, 언어적, 문학적 가치
《몽골비사》는 민족지, 언어, 문학 등 몽골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5][13] 특히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특한 몽골어 문헌으로, 12세기와 13세기 몽골 부족의 생활과 조직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페르시아어와 중국어로 된 다른 1차 자료들을 보완한다.[6]
12권본은 한자로 음역된 몽골어 원문에 각 단어마다 중국어 번역(逐語訳)을 붙이고, 절마다 번역을 추가하여 당시 몽골어 어휘의 발음과 의미를 알 수 있어 중세 몽골어 연구 자료로도 가치가 높다.
4. 몽골비사의 특징
《몽골비사》는 칭기스 칸의 22대 조상 부르테 치노와 코아이마랄로부터 칭기스 칸의 셋째 아들인 외게데이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칭기스 칸에 관한 기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본적으로 편년체 형식을 따르지만, 구어체의 산문과 운문이 자유롭게 섞여 있는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17]
《몽골비사》는 총 12권(정집 10권과 속집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282절로 이루어져 있다. 각 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8]
절 | 내용 |
---|---|
001-058절 | 칭기스 칸의 조상들 |
059-093절 | 칭기스 칸의 소년기 |
094-103절 | 칭기스 칸의 결혼과 메르키트족의 침입 |
104-119절 | 토그릴 완 칸, 자무카와의 연합 결성과 자무카와의 분열 |
120-140절 | 몽골부의 칸위 계승과 주르킨족의 붕괴 |
141-149절 | 쿠이텐 전투와 타이치구트족의 붕괴 |
150-188절 | 칭기스 칸과 완 칸의 대립 및 케레이트족의 멸망 |
189-201절 | 나이만족 정복과 자무카의 처형 |
202-223절 | 칭기스 칸의 칸 즉위와 95천호의 임명 및 상사 |
224-234절 | 호위군의 확대 개편 |
235-246절 | 우이구르의 귀부 및 삼림 부족의 정벌 |
247-264절 | 금(金), 서하(西夏), 호라즘 정벌 |
265-268절 | 서하의 멸망과 칭기스 칸의 죽음 |
269-280절 | 외게데이 카안의 즉위와 주변 국가들의 정벌 |
281-282절 | 외게데이 카안의 공적 및 《몽골비사》의 완성 |
《몽골비사》는 칭기스 칸의 반신화적인 족보로 시작한다. 푸른 회색 늑대와 암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바타치칸으로부터 11대 후손인 알란 구아는 남편 없이 빛나는 남자를 통해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막내아들이 보르지긴 씨족의 창시자인 보돈차르였다.[4]
12권짜리 책은 본편에서 칭기스칸의 조상 전승부터 출생, 청소년 시절, 몽골 고원 통일 사업을 거쳐 칸위에 즉위하는 1206년까지를 그리고, 속편에서는 칭기스칸의 정복 사업부터 사망, 그리고 후계자 외게데이의 즉위(1229년)와 그의 치세에서의 외정 및 궁정 조직 재편 등 몇몇 사건을 기록하며 끝맺는다.
전반부는 칭기스칸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언행을 생생하게 그린 영웅 서사시적인 성격을, 후반부는 에피소드와 명령서 인용을 나열한 역사 서술적인 성격을 지닌다.
《몽골비사》는 《원사》나 《집사》와 같은 후대의 역사서와 비교하면, 사건에 대한 기록이 더 많고 본문이 운율을 맞추며 대화문을 많이 사용하는 등 문학적인 특징이 강하며, 설화의 묘사가 극적이고 생생하여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사건의 전후 관계와 경위, 내용 등이 설명에 편리하도록 자유롭게 변경된 부분이 곳곳에 보여 기록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역사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4. 1. 구전 문학적 특징
《몽골비사》(元朝秘史)는 원래 구전문학이다.[4] 《몽골비사》의 현존하는 본문에는 12권본과 15권본이 있다. 원전은 위구르 문자로 쓰인 몽골어로 쓰여졌다고 생각되지만, 이미 소실되었다. 다만, 17세기 몽골어 연대기 『알탄 토브치(황금사)』에 《몽골비사》와 같은 계통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몽골어로 된 사본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4. 2. 영웅 서사시적 특징
칭기스 칸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언행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영웅 서사시적인 성격을 지닌다. 『몽골비사』는 『원사』나 『집사』와 같은 후대에 편찬된 역사서와 비교하면, 사건에 대한 기록이 많고 본문이 운을 맞추며 대화문을 많이 사용하는 등 문학적인 특징이 강하다. 또한, 설화의 묘사가 극적이고 생생하여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라고 평가받는다.[4]이러한 문학성과 극적인 에피소드는 많은 역사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전후 관계, 경위, 내용 등이 자유롭게 변경되어 기록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역사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몽골비사』의 영웅 이야기적인 에피소드는 『집사』 등과 겹치는 부분이 많고, 탈리카르 전투의 승패 등 다른 자료에서 보이는 칭기스칸 미화나 실수 은폐가 없어,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따라서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의 몽골인들이 조상의 영웅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 기억을 짙게 반영한 책이라고 많은 역사가들은 생각하고 있다.
4. 3. 역사 서술적 특징
『몽골비사』는 대체로 전반부에서는 칭기스 칸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언행을 생생하게 그린 영웅 서사시적인 성격을 지니는 반면, 후반부에서는 에피소드와 명령서 인용을 나열한 역사 서술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여겨진다.[17]『몽골비사』(元朝秘史)는 『원사』(元史)(14세기 후반)나 『집사』(集史)(14세기 초)와 같이 다소 후대에 편찬된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이들 역사서에는 없는 사건에 대한 기록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본문이 운을 맞추고 대화문을 많이 사용하는 등 문학적인 특징이 짙다는 점이 꼽힌다.[18] 또한, 전체적으로 설화의 묘사가 극적이고 생생하여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라고 평가된다. 이처럼 뛰어난 문학성과 다른 책에는 없는 극적인 에피소드는 매력적이며, 칭기스 칸을 그린 많은 역사 소설이 몽골비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편, 다른 책과 비교하면 사건의 전후 관계와 경위, 내용 등이 설명에 편리하도록 자유롭게 변경된 부분이 곳곳에 보이며, 기록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남는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몽골비사는 "역사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몽골비사가 말하는 영웅 이야기적인 에피소드는 『집사』 등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이 보이며, 탈리카르 전투(十三翼の戦い)의 승패를 비롯하여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있는 과도한 칭기스 칸 미화나 실수 은폐가 없고,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의 몽골 사람들이 조상의 영웅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 기억을 짙게 반영한 책이라고 많은 역사가들은 생각하고 있다.
4. 4. 문학적 특징
『몽골비사』는 『원사』나 『집사』와 같은 후대의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문학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본문은 운을 맞추고 대화문을 많이 사용하는 등 문학적인 특징을 짙게 띠고 있다. 또한, 설화 묘사가 극적이고 생생하여 "초원의 향기가 넘쳐난다"는 평가를 받는다.[4] 이러한 뛰어난 문학성과 다른 책에는 없는 극적인 에피소드는 많은 역사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하지만, 사건의 전후 관계와 경위, 내용 등이 자유롭게 변경된 부분이 있어, 기록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역사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비사』의 영웅 이야기적인 에피소드는 『집사』 등과 겹치는 부분이 많고, 탈리카르 전투의 승패 등 다른 자료에서 보이는 과도한 칭기스칸 미화나 실수 은폐가 없어,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많은 역사가들은 『몽골비사』가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의 몽골 사람들이 조상의 영웅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 기억을 짙게 반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4. 5. 역사 기록의 신뢰성 논란
Монголын Нууц Товчооmn(몽골비사)는 다른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사건의 전후 관계, 경위, 내용 등이 자유롭게 변경된 부분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기록의 사실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역사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 소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17]그러나 Монголын Нууц Товчооmn에 나오는 영웅 이야기들은 집사와 같은 다른 역사서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또한 탈리카르 전투(十三翼の戦い)의 승패와 같이, 다른 자료에서 보이는 과도한 칭기즈 칸 미화나 실수 은폐가 없고 오히려 사실에 더 가깝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17]
Монголын Нууц Товчооmn가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에 걸쳐 몽골인들이 조상의 영웅 이야기를 전승하며 남긴 기억을 짙게 반영한 책이라는 점을 많은 역사가들이 인정하고 있다.[17]
5. 성립 연도 논쟁
《몽골비사》는 허더 아랄(Köde'e Aral)에서 완성되었다는 발문으로 끝맺는다.[1]
이 기록에 나오는 '쥐띠 해'가 정확히 몇 년을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여, 학자들 간에 여러 추측이 있어왔다. 1228년(클리브스, 오논), 1229년(라셰빌츠), 1240년,[13] 1252년(애트우드), 1264년(헝) 등 다양한 연도가 제시되었다.
초기 연도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쥐띠 해 이후의 사건을 다룬 부분이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트우드를 포함한 일부 학자들은 주제 및 연대기적 요소를 고려할 때 본문은 항상 오고타이 칸의 통치까지, 그리고 그 통치를 포함하여 이어지도록 의도되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참고로 사슴 달은 음력 7월, 즉 여름 중순에 해당한다.
나카 미치요 등 일부 학자들은 원본이 더 짧았고, 본문 첫머리에 해당하는 '''『칭기즈 칸의 기원』(Chinggis Qan-u ujaγur)'''이라는 제목이었다고 주장한다.[13]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제목은 '''『몽골비사』(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이며, 이는 1300년대 후반에 편찬된 편집본 제목이다. 중국어 제목은 '''『원비사(元秘史)』(Yuán mìshǐ)'''이고, 몽골어 제목은 중국어 제목을 다시 음역한 '''『몽골 니구차 토브치얀(Mongγol-un niγuča tobčiyan)』'''이다. (오늘날 알려진 사본의 중국어 음역 제목에는 이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훼손의 결과일 수 있다.[9])
이 제목은 『영락대전』에 포함될 때 '''『원조비사(元朝秘史)』(Yuáncháo bìshǐ)'''로 변경되었다. 현대판 정본은 모두 이 명나라 시대 사본을 기반으로 하지만, 몽골과 티베트 (톨링 사원)에서 다양한 부분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651년에 쓰여지고 1926년에 발견된, 불교적 영향을 받은 몽골어 확장 서술인 『알탄 토브치』(ᠯᠤ᠋ ᠠᠯᠲᠠᠨ
ᠲᠣᠪᠴᠢmn)로, 『몽골비사』의 3분의 2를 그대로 담고 있다.[1]
《몽골비사》의 완성 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며,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할 수 있다.
5. 1. 완성 연도에 대한 학설
《몽골비사》의 완성 연도에 대한 논쟁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완성 연도의 근거는 속편(續集) 마지막인 제282절의 “대 쿠릴타이가 열린 쥐띠 해 7월에 케룰렌 강의 코데에 아랄이라는 곳에 오르도(막영)가 있을 때 완성하였다”라는 기록이다.[13] 따라서 십이지 (쥐띠 해)에 완성되었다는 점은 거의 확실하지만, 이 쥐띠 해가 정확히 몇 년을 가리키는지가 문제이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학설을 제시해 왔다.
- 1228년설: 칭기즈 칸 사후 후계자를 선출하기 위한 쿠릴타이에서 쓰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속편에 오고데이 치세기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제282절이 속편 끝에 있다는 점과 모순되므로 지지자가 적다. 다만, 오자와 시게오 등은 제282절이 원래 본편 제10권 끝 또는 속편의 칭기즈 칸 사망 기록 바로 뒤에 있었으나, 오고데이 치세기 추보 과정에서 위치가 변경되었다고 보아 1228년 완성설을 부분적으로 지지한다.
- 1240년설: 오고데이 치세 말기에 해당하며, 나카 미치요를 비롯한 가장 많은 연구자가 지지하는 학설이다. 몽골에서도 유력한 설로 받아들여진다.[13] 그러나 이 해에 코데에 아랄에서 쿠릴타이가 열렸다는 역사적 기록이 없어 중대한 약점으로 남는다.
- 1252년설: 《몽골비사》에 황위가 오고데이 가문에서 툴루이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전년부터 코데에 아랄에서 툴루이 가문의 몽케를 추대하는 쿠릴타이가 열렸던 1252년을 완성 연도로 보는 학설이다. 하지만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1258년 고려 원정, 1260년 이후 쿠빌라이 치세에 개명된 지명 등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1264년설, 1276년설 등이 제시되었지만, 이들 역시 쿠릴타이 개최 기록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이 외에도 1324년 태정제 즉위 시 코데에 아랄에서 쿠릴타이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오카다 히데히로는 13세기 말 이후 번영한 콩기라트 부족에 대해 “대대로 카안(칸)의 집과 통혼하여 황후를 내놓았다”라고 언급하는 등 13세기 말 이후의 관념이 혼입되었다고 판단하여, 1324년설을 제시했다. 오카다에 따르면, 《몽골비사》는 1292년 이후 칭기즈 칸 묘의 제사를 진왕 칭호를 가진 왕족이 시작한 이후 제사를 위한 연기로서 구전된 송시이며, 1324년에 필사되었다는 것이다.
6. 연구사
『몽골비사』는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영락대전(永樂大典)』에 수록된 15권본만이 알려져 있었으나, 국외에서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팔라디 카파로프가 번역본을 출판했고, 청나라 고증학자들에 의해 12권본이 재발견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재발견된 12권본이 국내외 역사가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1]
『몽골비사』는 칭기즈 칸 사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원사』나 『집사』에는 없는 묘사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어, 20세기 전반에는 칭기즈 칸의 청년기를 전하는 귀중한 사료로 역사학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집사』의 기록과 상세한 비교를 통해 서로 다른 해에 발생한 사건들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사료로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여겨지게 되었다.[7]
몽골어 해석을 포함한 문헌학, 언어학적인 연구는 일본의 나카 미치요가 12권본을 최초로 외국어 번역하고 주석을 단 『징기스칸실록(成吉思汗実録)』이 선구적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폴 페리오, 독일의 에리히 헤니슈, 벨기에의 모스타르트, 러시아의 코진, 일본의 고바야시 다카시로 등이 연구 및 번역 주석을 수행하며 널리 행해졌다. 20세기 후반 오자와 시게오는 수십 년에 걸쳐 『원조비사』에 대한 상세한 언어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일본어 번역 및 방대한 해설을 저술했다.[13]
6. 1. 초기 연구
『몽골비사』는 원래 『원조비사(元朝秘史)』라는 제목으로 영락대전(永樂大典)에 수록되어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이 15권본만이 알려져 있었다.[1] 국외에서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나,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팔라디 카파로프에 의해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한편, 청나라 시대에 고증학자들에 의해 12권본이 재발견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이 12권본이 국내외 역사가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의 나카 미치요는 12권본을 최초로 외국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단 『징기스칸실록(成吉思汗実録)』을 저술하여, 몽골어 해석을 포함한 문헌학적, 언어학적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13] 이후 프랑스의 폴 페리오, 독일의 에리히 헤니슈, 벨기에의 모스타르트, 러시아의 코진, 일본의 고바야시 다카시로 등이 연구 및 번역 주석을 수행했다. 특히, 20세기 후반 오자와 시게오는 수십 년에 걸쳐 『원조비사』에 대한 상세한 언어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일본어 번역 및 방대한 해설을 저술했다.
6. 2. 20세기 연구
《몽골비사》는 칭기스칸 사후 멀지 않은 시기에 성립되었고, 《원사》나 《집사》에는 없는 묘사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어, 20세기 전반에는 칭기스칸의 청년기를 전하는 귀중한 사료로서 역사학에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집사》의 기록과 상세히 비교하면서 서로 다른 해에 발생한 사건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사료로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여겨지게 되었다.[7]6. 3. 문헌학적, 언어학적 연구
나카 미치요가 쓴 12권본 최초의 외국어 번역 주석서 『징기스칸실록』은 몽골어 해석을 포함한 문헌학 및 언어학적 연구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20세기 중반부터 널리 행해졌다. 폴 펠리오(프랑스), 에리히 헤니슈(독일), 모스타르트(벨기에), 코진(러시아), 고바야시 다카시로(일본) 등이 연구 및 번역 주석을 했다.[1] 오자와 시게오는 20세기 후반에 수십 년에 걸쳐 『원조비사』(元朝秘史)의 상세한 언어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일본어 전역 및 방대한 해설을 저술했다.7. 몽골 정부의 가치 부여
몽골 역사 학자들은 몽골비사에 담긴 풍부한 민족지, 언어, 문학, 그리고 다양한 측면의 몽골 문화에 대한 정보 때문에 이 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5][13] 언어학 연구 분야에서 이 책은 후대 문헌에 만연한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특한 몽골어 문헌으로 간주된다. 특히 12세기와 13세기 몽골 문명의 일상적인 부족 생활과 조직에 대한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높이 평가되며, 페르시아어와 중국어로 된 다른 1차 자료들을 보완한다.[6]
역사적으로 정확한 자료로서의 가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르네 그루세와 같은 일부 전문가들은 이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고르 드 라셰빌츠와 같은 다른 전문가들은 자료의 가치는 주로 "몽골 부족 생활에 대한 충실한 묘사"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13] 아서 웨일리는 몽골비사의 "역사적 가치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7]
2004년 몽골 정부는 금박으로 장식된 몽골비사 사본을 울란바토르의 정부 청사 후면에 배치하도록 명령했다.[8]
8. 판본
『몽골비사』는 허더 아랄(Köde'e Aral)에서 완성되었다는 발문으로 끝맺는다.[1]
이 날짜에 해당하는 원본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쥐띠 해는 1228년(클리브스, 오논), 1229년(라셰빌츠), 1240년,[13] 1252년(애트우드), 1264년(헝) 등으로 추정된다. 초기 연도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쥐띠 해 이후의 사건을 다룬 부분이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주제적 요소와 연대기적 요소를 고려할 때 본문은 항상 오고타이 칸의 통치까지, 그리고 그 통치를 포함하여 이어지도록 의도되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13] 사슴 달은 7번째 음력 달, 즉 여름 중순에 해당한다.
나카 미치요를 시작으로 일부 학자들은 이 원본이 더 짧았고, 본문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칭기즈 칸의 기원』(Chinggis Qan-u ujaγur)'''이라는 제목이었다고 주장한다.[13]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제목은 '''『몽골비사』(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이며, 1300년대 후반에 편찬된 편집본에 해당한다. 중국어 제목은 '''『원비사(元秘史)』(Yuán mìshǐ)'''이며, 여기서 다시 몽골어로 음역한 제목은 '''『몽골 니구차 토브치얀(Mongγol-un niγuča tobčiyan)』'''이다 (오늘날 알려진 사본의 중국어 음역 제목에는 이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훼손의 결과일 수 있다[9]).
이 제목은 『영락대전』에 포함될 때 '''『원조비사(元朝秘史)』(Yuáncháo bìshǐ)'''로 변경되었다. 현대판 정본은 모두 이 명나라 시대 사본을 기반으로 하지만, 몽골과 티베트(톨링 사원)에서 다양한 부분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651년에 쓰여지고 1926년에 발견된 불교적 영향을 받은 몽골어 확장 서술인 『알탄 토브치(Altan Tobchi)』 (ᠯᠤ᠋ ᠠᠯᠲᠠᠨ
ᠲᠣᠪᠴᠢ|루 알탄 토브치mn)로, 『몽골비사』의 3분의 2를 그대로 담고 있다.[1]
8. 1. 12권본
12권본은 명나라 홍무제 연간에 원전의 몽골어를 한자로 음사하고, 중국어 번역을 붙인 것으로, 본편 10권과 속편 2권으로 구성된다.[1]
12권본은 한자로 음역된 몽골어 원문의 개별 어휘에 중국어로 逐語訳(일일이 낱말을 번역)을 대고, 절마다 초역을 덧붙이고 있어 당시 몽골어 어휘의 발음과 의미를 분석할 수 있으며, 중세 몽골어 연구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15권본은 전하는 12권본이 사본을 거듭하는 동안 오기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12권본의 교감 등에 사용될 수 있다.[1]
『몽골비사』의 서명은 전하는 본에 붙여진 중국어 서명이지만, 12권본 서두에 있는 몽골어 「忙中豁侖紐察脱察安」즉 「Mongγol-un Niuča Tobča'anmn」(몽골운 니우차 토브차안, 「몽골의 비밀 역사」의 뜻)을 의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8. 2. 15권본
15권본은 명나라 영락제 연간에 12권본을 발췌, 재구성하여 영락대전에 수록한 것이다. 15권본은 전해지는 12권본이 사본을 거듭하는 동안 오기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12권본의 교감 등에도 사용될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12권본이 더 우수하다고 여겨진다.[1]8. 3. 한림원 텍스트
명나라 시대에 편찬된 이 문서는 한림원에서 통역관들이 몽골어를 배우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문서는 한자로 표기한 몽골어 발음, 중국어로 된 행간 주석, 종종 축약된 중국어 번역본,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본 이후 거의 1세기 만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몽골어 표기는 징기스칸 시대의 원래 중세 몽골어가 아닌 당시 베이징의 몽골인들의 발음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길이에 따라 12부 282절로 나뉘어진 이 문서는 결국 1408년 15부로 된 작품으로 '''용례대전'''에 수록되었고,[1] 원본 12부짜리 작품 또한 1410년경 베이징에서 출판되었다.[1]8. 4. 알탄 토브치
17세기 몽골어 연대기 『알탄 토브치(黃金史)』에는 《몽골비사》와 같은 계통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몽골어로 된 사본이 존재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1] 몽골 제국 붕괴 후, 몽골인들은 북원을 형성하며 후퇴했고, 문해력이 감소하는 가운데 칭기즈 칸을 초자연적 존재로 숭배하는 종교가 형성되었다. 이는 ''칭기즈 칸의 알탄 토브치 (칭기즈 칸 금궤, Chinggis Qaan-u Altan Tobchi)''와 같은 작품을 낳았는데, 이 작품에는 ''비사(Secret History)''의 반(半) 역사적 서술을 대체하는 칸의 허구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다.16세기 후반부터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전래되었고, 문해력이 증가함에 따라 1620년대에 알려지지 않은 저자에 의해 새로운 ''알탄 토브치(Altan Tobchi)''가 만들어졌다. 이 ''알탄 토브치(Altan Tobchi)''에는 초기 ''비사''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전의 허구적인 전설과 결합되어 있다. 1651년, 승려 루브산단잔은 이 이야기를 확장하여 (저자의 이름을 따서 일반적으로 ''루 알탄 토브치(Lu Altan Tobchi)''라고 부른다) ''비사''의 3분의 2를 포함시켰다.[1] 이것은 1926년 도르노드 출신의 학자에 의해 몽골 인민 공화국의 학문적 및 문화적 부흥의 일환으로 발견되었다.

9. 번역 현황
《몽골비사》는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3] 외국 학계에서는 러시아 승려이자 한학자인 팔라디우스 카파로프가 1866년 베이징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선교부의 책임자로 재직 중 축약된 중국어 번역본을 처음으로 번역하였다. 그 외에도 나카 미치요, 에리히 하이니슈, 세르게이 코진, 폴 펠리오, B. I. 판크라토프 등 여러 학자들이 번역에 참여했다.[10]
9. 1. 한국어 번역
- 유원수 옮김, 《몽골비사》, 사계절, 1994년 12월 15일(초판)/2004년 1월 22일(개정판)
- 최기호·수미야바아타르 엮어 지음, 《몽골비사: 최초 몽골 위올진자로 전사한》, 한국문화사, 2005년 2월 25일
- 박원길·김기선·최형원 함께 지음, 《몽골비사의 종합적 연구》, 민속원, 2006년 4월 28일
9. 2. 기타 언어 번역
팔라디우스는 1866년 베이징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선교부의 책임자로 재직 중 축약된 중국어 번역본을 처음으로 번역하였다.[3] 그는 또한 바오팅보(Bao Tingbo)의 사본을 이용하여 1872년부터 1878년까지 미발표된 몽골어 음역을 시도하였다. 나카 미치요는 1907년에 번역본을 출판하였다.[13] 에리히 하이니슈는 1937년에 몽골어 원문의 최초 복원을 수행하였으며, 번역본은 1941년(제2판 1948년)에 출판되었다. 세르게이 코진은 1941년에 별도의 복원 및 번역본을 출판하였고, 폴 펠리오는 사후에 출판된 1949년 프랑스어 번역본을 냈다. B. I. 판크라토프는 1962년에 러시아어 번역본을 출판하였다.[10]9. 3. 몽골어 번역

Бодлогот_Баатар_Цэнд_Гүн|zh|成德 (達斡爾族)mn (Duke Tsengde, 1875–1932)는 1915년에서 1917년 사이에 『몽골비사』를 재구성하려 시도한 최초의 몽골 학자였으나, 그의 작업은 1996년에야 사후에 출판되었다. 츠엥데의 아들 엘덴테이(Eldengtei)와 손자 아르다자브(Ardajab)가 이 작업을 계속하여 1980년 후허하오터(Hohhot)에서 번역본을 출판했다.[11]
내몽골 작가 알탄오치르(Altan-Ochir)와 보케케시그(Bokekeshig)는 카이러우(Kailu)에서 1941년에, 멩장(Mengjiang)의 국가 부흥의 일환으로 독자적으로 본문을 재구성하여 출판하였다. Цэнд의 담딘수렌(Tsendiin Damdinsüren)이 1947년에 몽골 문자(Mongolian script)를 사용하여 완성한 현대 몽골어 각색본은 가장 영향력 있는 각색으로 평가받는다. 몽골 키릴 문자로 된 후속 버전은 1957년에 출판되어 현대 몽골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진다.[1]
9. 4. 영어 번역
아서 웨일리가 처음으로 『몽골비사』의 일부를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했으며, 프랜시스 우드먼 클리브스가 1982년에 『몽골비사: 원전에서 영어로 처음 번역되어 주해가 첨가됨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For the First Time Done into English out of the Original Tongue and Provided with an Exegetical Commentary)』이라는 제목으로 완전한 영어 번역본을 출판하였다.[12] 클리브스의 번역본은 고풍스러운 언어를 사용하여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1972년부터 1985년까지 이고르 드 라셰빌츠는 『극동사 연구 논문집 (Papers on Far Eastern History)』 시리즈 11권에 걸쳐 새로운 번역본을 발표했으며, 번역뿐 아니라 몽골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방대한 각주도 곁들였다. 이 번역본은 2003년에 2권으로 출판되었고, 2015년에는 원본의 방대한 각주를 생략한 오픈 액세스 버전으로 재출판되었다.[13] 다우르족 학자 우르군게 오논은 1980년 내몽골인민출판사의 엘덴그테이 판본을 바탕으로 1990년에 몽골 원주민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한 판본을 출판했고, 2001년에 『몽골비사: 칭기즈 칸의 삶과 시대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The Life and Times of Chinggis Khan)』라는 제목으로 재출판되었다. 크리스토퍼 P. 앳우드의 영어 번역본은 2023년에 출판되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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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īwān lughāt at-Turk〉와 《몽골秘史》에 등장하는 王名과 官職名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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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비사》(元朝秘史) 언어특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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