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교회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소래교회는 1883년 5월 16일 평안도 의주 출신 서상륜과 그의 동생 서경조가 황해도 장연군 송천리의 한 초가집에서 한국 최초로 한국인이 스스로 세운 개신교 교회이다. 서상륜은 만주에서 존 로스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소래교회는 이후 예배당을 건축하고 신임 서양 선교사의 한국어 교육 장소로, 동학 농민 운동 시기에는 동학군의 피신처로 사용되었다. 한국 개신교의 자생적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으며,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 복원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독교 건축 - 라브라
라브라는 개인 수행과 공동체 생활의 조화를 추구하는 반 은둔적 수도원 정착지를 지칭하며, 4세기 니트리아 사막에서 기원하여 다양한 지역에 설립되었고,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규모가 큰 수도원을 라브라라고 칭한다. - 기독교 건축 - 성구실
성구실은 교회 예배 준비를 위해 사제와 봉사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예복, 성물, 제단 덮개 등을 보관하고 사제가 예복을 착용하거나 성물을 정리하며 교구 등록부가 보관되기도 하며, 사용한 세례수를 흘려보내는 피스치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1885년 설립 -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는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되어 설립되었으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이념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사립 연구중심대학교이다. - 1885년 설립 - 배재고등학교
배재고등학교는 1885년 아펜젤러가 설립하여 고종 황제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받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학교 중 하나로, 민족 교육의 전통을 이어가며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나 과거 논란도 있었다. -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당 - 삼일교회
삼일교회는 1954년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창립되어 선교, 구제 활동을 펼치며, 전병욱 목사 재임 시절 교세가 성장했으나 여러 논란이 있었다. -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당 -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에 의해 1958년 시작되어 교세 확장을 거쳐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했으며,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소래교회 |
---|
2. 설립
1883년 5월 16일, 서상륜과 서경조는 황해도 장연구 대구면 송천리(소래마을)의 초가집에서 한국인이 스스로 세운 첫 개신교 교회인 소래교회를 설립하였다.[1] 초기에는 비밀 장소에서 주일 집회를 가졌으며, 복음 전파를 통해 신자 수를 늘려갔다. 1895년에는 8칸 기와집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896년에 8칸을 증축하여 16칸 32평 규모로 확장하였다.[2]
2. 1. 설립 배경
평안도 의주 출신의 서상륜은 인삼장사로 만주를 오고 갔는데, 영국 개신교 선교사 존 로스 목사를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성경 번역을 도왔다.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1878년 붉은 인삼을 팔기 위해 만주로 갔으나, 잉커우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로스와 맥킨타이어의 도움으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1] 1883년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가려다 중국 정부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곧 탈출했다.서상륜은 잠시 의주 고향에 들렀다. 그는 동생과 함께 송천, 장연군, 황해도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고, 몇 달 후 신자 18명을 얻었다. 그들은 1883년 5월 16일부터 비밀 장소에서 매주 일요일 집회를 열었고, 한국교회사 처음으로 한국인이 스스로 개신교 교회를 세웠다.[1]
2. 2. 초기 활동
평안도 의주 출신의 서상륜은 인삼 장사로 만주를 오고 갔는데, 영국 개신교 선교사 존 로스 목사를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성경 번역을 도왔다.[1] 서상륜과 그의 동생 서경조는 1883년 5월 16일 황해도 장연구 대구면 송천리(소래마을)의 한 초가집에서 한국 교회 வரலா상 처음으로 한국인이 스스로 개신교 교회를 세웠다.[1] 그 후 1895년 8칸의 기와집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1896년 8칸을 증축하였다.[1] 이후 소래교회는 신임 서양 선교사의 한국어 교육 장소로, 동학농민혁명 기간에는 동학군의 피신처로 사용되었다.[1]3. 유산
소래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자생적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황해노회는 소래교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 소래교회를 복원하였다.[3] 소래교회 출신 장철수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복원된 교회는 원래 교회보다 높이가 약간 낮다고 한다.
참조
[1]
서적
한국기독교회사 1
생명의말씀사
2004-09-10
[2]
웹사이트
소래교회(한국 최초의 개신교회)
http://kcm.kr/dic_vi[...]
2006-12-26
[3]
웹사이트
함께 떠나는 교단역사기행 / ② 경기도 양지 총신신대원 - ‘학문의 감옥’서 비전 향한 몰두
http://www.kidok.com[...]
2003-02-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