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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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원학안》은 명말청초 학자 황종희가 송, 원대 유학자들의 학문과 사상을 정리하기 위해 편찬을 시작했으나, 여러 학자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책이다. 황종희가 초고를 작성하고 아들 황백가가 이를 이어받았으며, 전조망이 보완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왕재재와 풍운호가 여러 판본을 비교 교정하여 현행본의 원본을 완성했다. 이 책은 주자성리학을 중심으로 송, 원 시대의 학자들을 다루고 있으며, 학맥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학안표를 특징으로 한다. 2007년에는 경상대학교에서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어 한국 유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송원학안》은 중국 송나라(宋)와 원나라(元) 시대 유학자들의 인명사전으로, 명 말 청 초 학자 황종희가 편찬을 시작했다. 황종희는 1676년 《명유학안》을 완성한 후 《송원학안》 수찬을 시작했으나, 17권과 서문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들 황백가, 제자 전조망, 양개원, 고제 등이 작업을 이어받았다.
2. 편찬 과정
전조망은 1747년부터 1755년까지 책의 내용을 보충하면서 송, 원대 유학자들을 91개 학파로 분류했다. 전조망이 죽기 1년 전에 책은 완성되었지만, 미처 간행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청 도광(道光) 연간에는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가 오탈자와 착오를 정리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송원학안보유》라는 제목으로 100권의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1838년 절강성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나 아편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879년 장여림(張汝霖)이 호남성 장사에서 다시 복간하여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이로써 《송원학안》은 편찬부터 유포까지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
2. 1. 황종희의 시작
명 말 청 초기의 학자 황종희(1610~1695)는 1676년 명나라 유학자들의 인명사전인 《명유학안》을 완성한 후, 이어서 송나라와 원나라 시대의 유학사를 다룬 《송원학안》 편찬을 시작했다. 그러나 황종희는 17권과 서문만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 황백가(黃百家)가 뒤를 이어 8권을 추가로 저술했다.
황종희는 명나라 유학사를 다룬 『명유학안』을 완성한 후, 송나라와 원나라의 유학사를 다루기 위해 『송원학안』을 기획했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여, 아들 '''황백가'''에게 완성을 위탁했다. 황종희가 직접 집필한 부분이 황씨 원본이다.
2. 2. 전조망의 보완
전조망은 황종희의 제자로, 황종희 사후 《송원학안》을 보완하고 체계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조망은 황종희의 원본을 바탕으로 수정, 보본, 차정, 보정의 네 가지 방식을 통해 내용을 보완했다.
방식 | 설명 | 표기 |
---|---|---|
수정(修定) | 황종희의 원본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 | "황모 원본, 전모 수정"(黃某原本、全某修定) |
보본(補本) | 황종희의 원본에 없는 내용을 전조망이 새롭게 추가 | "전모 보본"(全某補本) |
차정(次定) | 황종희의 원본 내용을 그대로 두되, 순서만 조정 | "황모 원본, 전모 차정"(黃某原本、全某次定) |
보정(補定) | 황종희의 원본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안을 설정하고 내용 보충 | "황모 원본, 전모 보정"(黃某原本、全某補定) |
전조망은 이러한 보완 작업을 통해 송, 원대 유학자들을 91개 학파로 분류하고 정리했다. 예를 들어, 여희철을 '형양학안'에 새로 추가하고, 관문 제자들을 '남전학안'에서 '여범제유학안'으로 변경하는 등 학안을 분할하거나 추가했다. 그는 "6백 년 이래 유림에 알려지지 못한 자"를 드러내 보였다고 자부했다.
또한 전조망은 총 100권의 "서록(序錄)"을 덧붙여 《송원학안》의 전체 골자를 완성했다. 그러나 전조망 역시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의 원고는 제자 노호에게 넘어갔다.
2. 3. 왕재재와 풍운호의 교정 및 간행
도광(道光) 18년(1838년)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는 독학 하릉한의 위탁을 받아 원고의 오탈자와 착오 부분을 정리, 《송원학안보유》라는 제목으로 전100권의 책을 완성하였고, 동시에 나머지 7, 8백 조를 보충하였다. 왕재재는 《송원학안보유》의 서문에서 풍운호의 도움에 대해 썼다. 완성된 원고는 도용석의 집에 맡겨졌다.왕재재와 풍운호는 여러 종류의 판본을 비교 교정하고 증보하여 현행본 《송원학안》의 원본을 만들었다. 이들이 이용한 판본은 다음과 같다.
판본 종류 | 내용 |
---|---|
황종희 원본 | 황종희가 직접 집필한 원본 |
전조망 수정보본 | 전조망이 수정한 판본 |
이로각 정씨 간본 | 전조망이 정씨에게 의뢰하여 출판한 것으로, "서록"과 "제17권 횡거학안상권"만 해당. 전조망이 사망하여 사업 중단. 전조망 미정고였으며, 노씨 소장본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
월선노씨 소장 저고본 | 전조망의 제자 노호가 소장한 원고본. 노호는 출판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원고본은 노씨 자손이 보관. |
초암장씨 소장 저교 잔본 | 전조망 원고본의 불완전본으로, 제자 장학용에게 넘어감. 60권 목록 존재. 노씨 소장본과 유사하나, 간혹 노씨 소장본에 없는 부분 포함. |
여요 황씨 교보본 | 황종희의 자손이 편찬. 노씨 소장본을 입수하여 출판, 총 86권. |
왕재재 등은 황종희 원본과 전조망 원고본을 명확히 구분하고, 전조망의 교정 상태를 주기했다. 또한 황씨 간본 86권을 100권으로 개정하여 전조망 "서록"의 원모습으로 되돌렸다.
완성된 《송원학안》은 청 도광 18년(1838년) 절강 성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나, 아편전쟁으로 소실되었다. 광서 5년(1879년) 장여림(張汝霖)이 다시 주도하여 호남 성의 장사에서 《송원학안》(전100권)을 복간해 유포하였다. 이로써 《송원학안》은 세상에 퍼지게 되었으며, 편찬, 간행부터 유포에 이르기까지 무려 2백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소기(何紹基)의 도움을 받아, 왕재재의 면밀한 교정을 거쳐 다시 출판된 '''하본(何本)'''이 현행본의 원본에 해당한다. 다만 이 판본도 출판 직후 화재로 소실되어 유통된 수는 소수에 그쳤다.
이후, 하본을 저본으로 한 몇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은 용여림(龍汝霖)의 각본이며, 그 외에 석인본(상해 문서루본), '''만유문고본(萬有文庫本)''' 및 '''세계서국본(世界書局本)'''(『사조학안(四朝學案)』 소록), '''사부비요(四部備要)본''', '''국학기본총서본(國學基本叢書本)''' 등이 존재한다.
2. 4. 송원학안보유
왕재재와 풍운호는 《송원학안》에 누락된 사료를 모아 《송원학안보유》를 만들었다. 왕재재는 《송원학안보유》의 서문에서 풍운호의 도움으로 책을 보충했다고 밝혔다.왕재재는 서문에서 "나는 오교(풍운호)와 함께 널리 《송원학안》의 빠진 부분을 모아 무릇 42권을 얻었다. ... 오교는 믿음이 두텁고 학문을 좋아하여 집에 취경각을 두고 경사자집 4부가 그 대오를 이루고 있으니, 송, 원대 유자의 문집은 1백 수십 가(家)를 내려가지 않았다. 그 문적은 양교의 학안으로 빌려올 것을 기다리지 않으니, 즉 '보유'의 수합 또한 이 각(취경각)이 있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는 도용석의 집에 맡겨졌다.
3. 내용 구성 및 특징
《송원학안》은 송나라와 원나라 시대 성리학자 및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개괄적으로 다룬 책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고략'이 있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역서'와 '서록'을 거쳐 본문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주자성리학을 존중하여, 주자학 계열 학파가 앞부분에 중요하게 서술되었다. 반면 왕안석(王安石) 계열이나 불교 및 도교적 특색이 강한 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 3부자는 그 영향력에 비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송원학안』은 각 인물의 사적과 고증을 중시하여 사상 분석보다는 자료 수집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각 인물의 사상적 문제와 학문의 종지를 중시한 『명유학안』과 차이를 보인다. 이는 황종희(黃宗羲)와 전조망(全祖望)의 학문 경향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3. 1. 주자학 중심의 학자 배열
『송원학안』의 학자 배열은 주자학의 정통성을 나타내는 '''도통(道統)'''을 중심으로 한다. 이 책은 머리말에 호원(胡瑗), 손복(孫復) 등을 배치하여 송대 도통의 연원으로 삼고, 그 다음으로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欧陽脩) 등을 배치한다. 그리고 주돈이(周敦頤) – 정호(程顥)·정이(程頤) – 장재(張載) – 주희(朱熹)를 도통의 중심으로 삼는다. 사마광(司馬光), 정문(程門)의 여러 사람, 주희의 교유자, 주희의 후학을 열거하고, 마지막으로 원(元)나라의 여러 유학자에까지 이른다. 또한 어느 계열에도 속하지 않는 학자들은 '제유학안(諸儒學案)'에 묶어 놓았다.3. 2. 학안표를 통한 학맥 탐구
학안표(學案表)를 통해 사승, 동조, 붕우 등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도록 하였다. 이는 『명유학안』 이상으로 학맥 탐구에 힘쓴 결과였다.3. 3. 왕안석, 소식 등 비주류 학자에 대한 평가
왕안석(王安石) 계열이나 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 3부자 등 주자성리학과 다른 흐름을 형성한 학자들은 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다. 『송원학안』 권말에는 '형공신학략(荊公新學略)', '소씨촉학략(蘇氏蜀學略)', '병산명도집설략(屏山鳴道集説略)'이 활약 시기를 무시하고 놓여 있다. 형공(荊公)은 왕안석(王安石)을, 소씨(蘇氏)는 소식(蘇軾)·소철(蘇轍) 형제를, 병산(屏山)은 이순보(李純甫)를 가리킨다. 이들은 정이(程頤)나 주희(朱熹)와 적대했거나 유학과 불교를 융합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정통 유학자로 간주되지 않고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았다.4. 한국어 번역 및 연구 활용
2007년 경상대학교 최석기 교수가 이끄는 한문학과 강독반이 《송원학안》을 번역하여 보고사에서 '송원시대 학맥과 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4. 1.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번역
2007년에 경상대학교 최석기 교수가 이끄는 이 대학교 한문학과 강독반이 번역, 보고사에서 '송원시대 학맥과 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4. 2. 한국 유학 연구의 자료
2007년에 한국의 경상대학교 최석기 교수가 이끄는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강독반이 번역하여, 보고사에서 '송원시대 학맥과 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5. 목록 (주요 인물 중심)
《송원학안》은 송나라와 원나라 시대의 주요 학자들과 그들의 학맥을 정리한 책이다. 책에 수록된 인물이 방대하므로, 여기서는 주요 학자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권수 | 편명 | 주요 인물 | 소속 | 비고 |
---|---|---|---|---|
권03 | 고평학안 | 범중엄 등 | 경력 신정 | |
권04 | 로릉학안 | 구양수, 유창 등 | ||
권07/08 | 속수학안 | 사마광 | 북송 육선생 | 북송 신종조 전후 |
권24 | 상채학안 | 사량좌 | 정호, 정이의 제자 | 북송 말 ~ 남송 초 |
권34 | 무이학안 | 호안국 | 호상학파 | |
권44 | 조장제유학안 | 조정, 장준 | 남송 초 | |
권46 | 옥산학안 | 왕응진 | 북송 중기 | |
권51 | 동래학안 | 여조겸 | 동남 삼현 | |
권52 | 간재학안 | 설계선 | 영가학파/사공파 | |
권53 | 지재학안 | 진부량 | ||
권54/55 | 수심학안 | 엽적 | ||
권56 | 용천학안 | 진량 | 영강학파/사공파 | |
권59 | 청강학안 | 유청지 | ||
권81 | 서산진씨학안 | 진덕수 | ||
권82 | 북산사선생학안 | 하기, 왕백, 금려상, 허겸 | 금화학파 | 남송 말 ~ 원나라 초 |
권90 | 로재학안 | 허형 | 화북 주자학 | 원나라 |
권92 | 초려학안 | 오징 | 강남 주자학 | |
권98 | 형공신학략 | 왕안석 | 형공신학 | 북송 중기 |
권99 | 소씨촉학략 | 소순, 소식, 소철 | 촉학 | 북송 중기 |
권100 | 병산명도집설략 | 이순보 | 원나라 |
송초삼선생(호원, 손복, 석개)과 북송오선생(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주희와 그의 제자들(채원정, 황간, 보광 등), 그리고 육구연과 그의 제자들(양간, 원섭, 서린, 침환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각각 해당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1. 송초 삼선생
호원은 송나라 초기의 유학자로, 안정학안(安定學案)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북송 인종조 전후 시기에 활동했으며, 송초 삼선생 중 한 명으로 꼽힌다.손복과 석개는 태산학안(泰山學案)을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진양, 정목, 진렬, 주희맹과 함께 활동했다.
5. 2. 북송 오선생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은 북송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성리학의 기초를 다졌다.인물 | 학안 | 비고 |
---|---|---|
소옹 | 백원학안 | 북송 오선생 중 한 명 |
주돈이 | 염계학안 | 북송 오선생 중 한 명 |
정호 | 명도학안 | 북송 오선생 중 한 명 |
정이 | 이천학안 | 북송 오선생 중 한 명 |
장재 | 횡거학안 | 북송 오선생 중 한 명 |
5. 3. 주희와 그의 제자들
주희는 남송의 유학자로, 회옹학안(권48/49)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학문은 송나라 유학을 집대성한 것이었으며, 그의 제자들 또한 송원학안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주희의 주요 제자로는 채원정, 황간, 보광 등이 있다.- 채원정은 서산채씨학안(권62)에 기록되어 있으며, 주희의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 황간은 면재학안(권63)에 기록되어 있으며, 주희의 학문을 실천하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 보광은 잠암학안(권64)에 기록되어 있다.
5. 4. 육구연과 그의 제자들
육구연은 주희와 동시대 인물로, 주자학에 비판적인 심학(유심학)을 주창하여 독자적인 학풍을 구축하였다. 그의 사상은 주희의 이학과 대비되어 '심학'으로 불리며,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육구연의 제자로는 양간이 대표적이다. 양간은 육구연의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자호학파를 형성했다. 원섭, 서린, 침환 등도 육구연의 가르침을 받은 주요 제자들이다.
6. 판본 정보 및 참고 자료
《송원학안(宋元學案)》은 황종희(黃宗羲)가 《명유학안(明儒學案)》에 이어 송대와 원대의 유학사를 정리하려 한 책이다. 황종희 사후 아들 황백가(黃百家)를 거쳐 손자 황천인(黃千人)에게 완성 작업이 위탁되었고, 전조망(全祖望)이 증정에 참여했다.
전조망은 수정, 보본, 차정, 보정 4가지 방식으로 증정하고 "'''서록(序錄)'''" 100권을 덧붙였으나, 그 역시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원고는 제자 노호(盧鎬)를 거쳐 황종희의 현손 황장(黃璋), 황징(黃徵), 황직후(黃直垕)에게 전해져 출판되었는데, 이것이 황씨 교보본이다.
《송원학안》은 널리 읽히지 않아 왕재재(王梓材)와 풍운호(馮雲濠)가 재교정을 진행, 여러 판본을 참고하여 현행본의 원본을 완성했다. 이들은 황종희 원본, 전조망 수정보본, 이로각 정씨 간본, 월선노씨 소장 저고본, 초암장씨 소장 저교 잔본, 여요 황씨 교보본 등을 참고했다.
왕재재 등은 원본과 교정본을 구분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황씨 간본 86권을 100권으로 개정했다. 완성본은 풍운호의 사재로 출판되었으나 아편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하소기(何紹基)의 도움으로 재출판된 '''하본(何本)'''이 현행본의 원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화재로 소실되어 유통된 수는 적다.
하본을 저본으로 한 판본으로는 용여림(龍汝霖) 각본, 석인본(상해 문서루본), '''만유문고본(萬有文庫本)''', '''세계서국본(世界書局本)'''(《사조학안(四朝學案)》 수록), '''사부비요(四部備要)본''', '''국학기본총서본(國學基本叢書本)''' 등이 있다. 현재는 중화서국(中華書局) 교점본인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이 주로 이용되며, 하소기본을 바탕으로 여러 판본을 참고하여 보정했다.
왕재재와 풍운호는 《송원학안》 누락 자료를 모아 《'''송원학안보유(宋元學案補遺)'''》를 만들었고, 이는 《사명총서(四明叢書)》 등에 수록되었다.
6. 1. 주요 판본
송원학안의 주요 판본은 다음과 같다.- '''하본(何本)''': 하소기(何紹基)의 도움을 받아 왕재재가 면밀하게 교정한 판본으로, 현행본의 원본이다. 다만 출판 직후 화재로 소실되어 시중에 유통된 수는 적다.
- '''용여림(龍汝霖) 각본''': 하본을 저본으로 한 판본 중 하나이다.
- '''만유문고본(萬有文庫本)'''
- '''세계서국본(世界書局本)''': 사조학안(四朝學案)에 수록되어 있다.
- '''사부비요(四部備要)본'''
- '''국학기본총서본(國學基本叢書本)'''
-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판한 교점본으로, 신식 구두점을 적용했다. 용여림 각본을 저본으로 하고, 사부비요(四部備要), 만유문고본, 세계서국본 등으로 보정하였다.
6. 2. 관련 서적 및 논문
- 도쿄 제국 대학 문학부 지나 철학 연구실 독경회 편, 《송원학안 인명 색인 부 이명 색인》(관서원, 1935년)
- 이노카와 츠요시 편, 《송원학안·송원학안 보유 인자 호 별명 색인》(교토 대학 인문 과학 연구소,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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