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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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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호는 북송 시대의 유학자로, 형이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신유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하남성 이양현 출신으로 주돈이에게서 수학했으며, 동생 정이와 함께 '이정(二程)'으로 불렸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며 지방관으로 활동했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했다. 정호는 인(仁) 사상을 통해 만물과의 일체감을 강조했으며, '이(理)'를 직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의 사상은 육상산, 왕양명에게 계승되었으며, 저서로는 《2정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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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인물 정보
이름정호
본관정(程)
백순(伯淳)
출생1032년
사망1085년
국적중국
직업철학자, 교육자
사상
주요 사상성리학 (이학)
강조점천리(天理) 존중
격물치지(格物致知)
거경궁리(居敬窮理)
인(仁) 사상
학문적 영향
영향 받은 인물주돈이(周敦頤)
영향을 준 인물정이(程頤)
주희(朱熹)
기타 정보
형제정이(程頤)
학파낙학(洛學)
시호순공(純公)
저서《식잠편(識箴篇)》

2. 생애

주돈이를 알아본 지방관이었던 부친 정향(珦)은 명도, 이천 형제를 주돈이에게 배우게 하였다.[2] 1057년에 진사에 급제한 후 섬서 호현(Hu County), 상원현(현재 남경 지역), 제주(Zezhou County) 등에서 지방관으로 활약하였다.[2] 1070년 경에는 여공저(呂公著)의 추천으로 중앙정부에 들어갔으나, 왕안석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직을 떠나 다시 지방관으로 지냈다.[2]

정호와 정이 형제는 북송 신유학의 선구자로, 주희 등과 함께 신유학 형성에 기여했다. 이들은 "이정(二程)" 또는 "대정(大程)", "소정(小程)"으로 불렸다. 형제는 우주론을 깊이 연구하고 신유학 원리를 천체 연구에 적용했다. 특히, "리(理)"를 하늘의 원초적이고 지도적인 힘인 천(天)으로 확인하고 적용했다.[3] 정호는 복구(Fugou)와 송양(현재 등봉 지역)에 서원을 설립하고, 학문이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4] 그는 1085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호는 동생 정이와 달리 사교적이고 활기찬 성격이었다. 2천년대 초 신유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주돈이, 장재, 소옹, 사마광과 함께 "북송의 육대 현인(The Six Masters of Northern Song)"으로 불렸다.[5]

정호는 사후 여러 추증을 받았다. 1220년 황제로부터 "순공(純公)"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1241년에는 "하남(河南) 백(伯)"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330년에는 "유국(豫國; 하남) 공(公)"으로 추봉되었다. 정호의 자손들은 오경박사(五經博士; ''Wǔjīng Bóshì'') 칭호를 받았다.[6][7][8][9]

1452년에는 맹자의 56대손 맹희문(孟希文), 안회의 59대손 안희혜(顔希惠), 주돈이의 12대손 주면(週冕), 정호와 정이의 17대손 정극인(程克仁),[10][11][12][13][14][15][16] 주희의 9대손 주정(朱梴)에게 오경박사가 추증되었다. 1456년~1457년1539년에는 증자의 60대손 증질취(曾質粹)에게, 1622년에는 장재의 자손에게, 1630년에는 소옹의 자손에게 같은 칭호가 수여되었다.[17][18]

하남 이양현(伊陽県) 출신인 정호는 15세 무렵부터 동생 정이와 함께 주돈이에게서 수학했다. 주돈이의 고결한 인품에 감명받은 후 과거(科挙) 학습을 멀리하고 내면 생활의 충실을 추구했다. 노장(老荘)과 불교(仏教)에 매료되기도 했으나 다시 육경(六経) 연구로 돌아왔다. 26세에 진사(進士)에 합격하고, 38세 무렵 중앙 관청의 관리가 되었으나 왕안석과 의견이 맞지 않아 호(鄠), 상원(上元), 택주(沢州), 여주(汝州) 등에서 지방관으로 지냈다.

정호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백성을 보는 것을 상처 입는 것처럼 여기라”는 정신을 좌우명으로 삼고, 정성으로 백성을 감화하는 것을 정치의 요결로 생각했다.[19] 온화한 인품과 뛰어난 실무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선정을 베풀어 "통유전재(通儒全才)"라고 칭송받았다.

3. 사상

정호의 사상은 인(仁), 이(理), 성(性)과 기(氣)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정호는 현상 세계가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대립으로 생성·소멸하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천지만물의 이치와 사람의 본성이 하나라는 관점을 가졌으며, 인(仁)을 체득하면 천지만물과 일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은 성(性)은 곧 기(氣)이고, 기(氣)는 곧 성(性)이라는 논리로 발전했다. 그는 또 우주의 만물이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교감으로 생성되며, 다양한 자연 현상을 질서 짓는 법칙을 "이(理)"라고 부르며 직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호는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인(仁)"이라 생각하고, "성경(誠敬)"의 마음으로 인(仁)을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상은 남송의 육상산을 거쳐 왕양명에게 계승, 발전되었다.

3. 1. 인(仁) 사상

정호의 사상은 인설(仁說)과 성론(性論)을 특징으로 하며, 그 바탕에는 역(易)의 논리에 기반한 형이상학적 사유가 있다. 정호는 현상 세계가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대립으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易)에서 "음과 양이 하나 되는 것을 도(道)라 한다"는 구절과 연결되며, 천지만물의 이(理)나 도(道)는 사람에게 묵식심통(默識心通, 마음으로 깨우치는 것)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호의 인설(仁說)은 천지자연의 이(理)와 사람의 이(理, 일반적인 性)가 하나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한다. 〈식인편(識仁篇)〉에서 "인(仁)은 만물과 혼연히 한 몸이며,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모두가 인(仁)이다. 이 이치를 깨달아 성경(誠敬)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인(仁)은 '스스로 그러한' 천지만물의 이(理)이자 도(道)이며, 동시에 사람 마음의 이(理)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仁)을 체득하면 자신은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다. 이러한 생각은 성(性)은 곧 기(氣)이고, 기(氣)는 곧 성(性)이며, 태어날 때 지닌 그대로가 성(性)이라는 논리로 발전한다.

정호는 서재 창가의 잡초를 베지 않고 천지의 "생기(生意)"에 마음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스승인 주돈이가 초목을 "자신의 의지와 같다"고 여긴 것과 통하며, 만물이 하나라는 사상을 공유했음을 보여준다. 정호는 의학 서적에서 손발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것을 "불인(不仁)"이라 하는 것에 주목하여, 마음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불인(不仁)", 느낄 수 있으면 "인(仁)"이라고 보았다. 천지만물을 자신과 같이 하나로 인식하는 인(仁)을 체득하려면 "성경(誠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집착과 부자연스러운 공부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

정호는 우주의 만물이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교감으로 생성되며, 사물의 차이는 음양의 혼합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양한 자연 현상을 질서 짓는 법칙을 "이(理)"라 칭하고, 이 이(理)를 직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서(定性書)』와 『식인편(識仁篇)』은 그의 학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동생인 정이가 형의 생각을 분석하고 이론화한 반면, 정호는 직관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육구연에게 계승되었다.[1]

3. 2. 이(理) 사상

정호는 현상의 세계가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대대(對待)에 의해 생성소멸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는 '자연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易)에서 말하는 "1음 1양(一陰一陽), 이를 도(道)라고 한다"는 도(道)를 천지만물의 이(理)로 보았고, 이는 사람에게 묵식심통(默識心通)하게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2]

그의 인설(仁說)은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천지자연의 이(理)와 사람의 이(理, 일반적인 性)가 하나라는 관점에서 전개된다. 〈식인편(識仁篇)〉에서 "인(仁)은 혼연히 물(物)과 동체요 의례지신(義禮智信) 모두 인(仁)이다. 이 이(理)를 알아서 성경(誠敬)으로써 이것을 보존(存)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즉, 인(仁)은 천지만물의 이(理)이자 도(道)인 동시에 사람 마음의 이(理)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仁)을 체득하면 이미 나는 천지만물과 일체인 것이다.[2]

이러한 생각은 성(性)은 곧 기(氣)요, 기(氣)는 곧 성(性)으로서 생겨나면서 지닌 그대로 성(性)이라고 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정호의 사상은 남송의 육상산을 거쳐 왕양명에게 이어진다.[2]

정호는 우주의 만물이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교감으로 생성되며, 사물의 차이는 음양 혼합 정도의 치우침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양한 자연 현상을 질서 짓는 법칙을 "이(理)"라 부르며, 이 이(理)를 직관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정성서(定性書)』와 『식인편(識仁篇)』은 그의 학설을 잘 보여준다. 동생 정이가 형의 생각을 분석하고 이론화한 반면, 정호는 직관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육구연(陸九淵)에게 계승되었다.[4]

정호는 스승 주돈이처럼 만물은 하나라는 사상을 공유했다. 그는 중국 의학 서적에서 손발 마비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불인(不仁)"이라 하는 것에 주목하여, 마음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불인(不仁)", 느낄 수 있는 것을 "인(仁)"이라 생각했다. 천지만물을 나와 같이 하나로 인식하는 인(仁)을 터득하려면 "성경(誠敬)"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에 집착하는 마음과 부자연스러운 공부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4]

3. 3. 성(性)과 기(氣)

정호는 현상의 세계가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대대(對待)에 의해 생성 소멸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易)에서 말하는 "1음 1양(一陰一陽), 이를 도(道)라고 한다"는 도(道)이며, 천지만물의 이(理)나 도(道)는 사람에게 묵식심통(默識心通-사람의 마음에 깨우쳐지는 것)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인설(仁說)은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천지자연의 이(理)와 사람의 이(理-일반적인 性)와의 일체관에서 논술된다. 〈식인편(識仁篇)〉에서 "인(仁)은 혼연히 물(物)과 동체요 의례지신(義禮智信) 모두 인(仁)이다. 이 이(理)를 알아서 성경(誠敬)으로써 이것을 보존(存)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인(仁)은 '저절로 그러한' 천지만물의 이(理)·도(道)인 동시에 사람 마음의 이(理)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仁)을 체득하면 이미 나는 천지만물과 일체요, 일신(一神)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발전하여 성(性)은 곧 기(氣)요, 기(氣)는 곧 성(性)으로서 생겨나면서 지닌 그대로 성(性)이라고 하는 논리가 전개된다.

정호는 서재 창에 드리운 잡초를 베어내지 않고, 항상 천지의 "생기(生意)"에 마음을 두었다고 한다. 스승인 주돈이가 역시 초목을 "자기 자신의 의지와 같다"고 생각했던 것과 통하며, 만물은 하나라는 사상을 공유했다. 중국 의학 서적에서 손발이 마비되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불인(不仁)"이라고 하는 것에 주목하여, 마음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불인(不仁)", 느낄 수 있는 것을 "인(仁)"이라고 생각했다. 천지 만물을 나의 일처럼 하나로 인식하는, 이러한 인(仁)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성경(誠敬)"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에 집착하는 마음과 부자연스러운 공부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1]

우주의 만물은 음양 이기(陰陽二氣)의 교감에 의해 생성되고, 사물의 차이는 음양의 혼합 정도에 치우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자연 현상을 질서짓고 있는 법칙을 "이(理)"라고 부르며, 이 이(理)를 직관에 의해 파악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정성서(定性書)』와 『식인편(識仁篇)』은 그의 학설을 잘 보여준다. 아우인 정이가 형의 발상을 분석·이론화한 것에 비해, 정호의 직관을 중시하는 경향은 육구연에게 계승되었다.[1]

4. 정치사상

정호는 북송 시대의 유학자로, 동생 정이(程頤)와 함께 주돈이(周敦頤)에게서 수학하며 유학을 배웠다. 주돈이의 고결한 인품에 감명받아 명리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 수양에 힘쓰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19] 노장(老荘)과 불교(仏教) 사상에도 관심을 가졌으나, 육경(六経) 연구로 돌아와 유학 사상을 심화시켰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였으며, 당시 정치와 사회의 폐단을 지적한 〈진치법 10사(陳治法 十事)〉를 저술했다.[2] 그는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백성을 상처 입은 사람처럼 보살피라"는 정신을 본받아 정성으로 백성을 감화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19]

정호의 사상은 남송의 육상산을 거쳐 왕양명에게 계승되어 발전되었다. 그의 어록과 저술은 《2정전서(二程全書)》에 수록되어 있다.

정호와 정이는 북송 신유학의 선구자로, 주희(朱熹) 등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신유학 형성에 기여했다. 이들 형제는 우주론을 깊이 연구하고, 신유학의 원리를 천체 연구에 적용했다. 특히 '리(理)'를 하늘의 근원적이고 지도적인 힘으로 보았다.[3] 정호는 학문을 통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평생 동안 이 견해를 널리 알렸다.[4]

5. 저서


  • 우노 테츠토(宇野哲人) 『중국철학사』(보문관) 1954년
  • 쿠스모토 마사츠구(楠本正継) 『송명시대 유학사상의 연구』(히로이케가쿠엔출판부) 1962년
  • 시마다 겐지(島田虔次) 『주자학과 양명학』(이와나미신서) 1967년 ISBN|4004120284일본어
  • 노구치 토요타(野口豊太) 『이정전서 이정유서 전역』(비츠솔루션) 2016년 ISBN|9784864764049일본어

6. 평가 및 영향

정호와 정이 형제는 북송 시대 신유학의 선구자로, 주희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과 함께 신유학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3] 이들은 종종 "이정(二程)"으로 불리며, 각각 "대정(大程)"(정호)과 "소정(小程)"(정이)으로 불렸다. 이들은 우주론을 깊이 연구하고 신유학의 원리를 천체 연구에 적용했다. 특히, 형제는 신(神) 또는 자연 질서의 원리인 "리(理)"를 천(天), 즉 하늘의 원초적이고 지도적인 힘으로 보았다.[3] 정호는 복구와 송양(현재 등봉 지역)에 서원을 설립하고, 학문이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4]

정호는 동생 정이와 달리 사교적이고 활기찬 성격이었다.[5] 2000년대 초 신유학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정호와 정이 형제는 주돈이, 장재, 소옹, 사마광과 함께 "북송의 육대 현인(The Six Masters of Northern Song)"으로 불리게 되었다.[5]

정호는 사후 여러 차례 추증되었다. 1220년에는 황제로부터 "순공(純公)"이라는 시호를 받았고,[5] 1241년에는 "하남(河南) 백(伯)"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330년에는 "유국(豫國; 하남) 공(公)"으로 추봉되었다.

정호의 자손들은 대대로 오경박사(五經博士; ''Wǔjīng Bóshì'') 칭호를 받았다.[6][7][8][9] 1452년에는 맹자의 후손 맹희문, 안회의 후손 안희혜, 주돈이의 후손 주면, 정호와 정이 형제의 후손 정극인,[10][11][12][13][14][15][16] 주희의 후손 주정 등에게 오경박사 칭호가 추증되었다. 이후에도 증자, 장재, 소옹의 자손들에게 같은 칭호가 수여되었다.[17][18]

7. 전기 자료

정호는 북송의 유학자 정이의 형이다. 그의 아버지 정향은 황주 판관을 지냈으며, 정호는 1032년에 태어났다.[1] 정호의 전기 자료는 《이천선생문집》 권7, 명도선생행장과 《송사》 권427, 열전186, 정호에 실려있다.[1]

8. 가계

정호의 할아버지는 황피(Huangpi)의 현령(縣令)이었고 그 직책을 수행하던 중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정호의 아버지 정향(程珦)은 당시 어렸기에 낙양으로 돌아갈 수 없어 황피에서 자랐다. 그는 나중에 현위(縣尉)가 되었고, 그때 두 아들 정호와 정이가 태어났다.[2]

정호의 자손들은 오경박사(五經博士; ''Wǔjīng Bóshì'') 칭호를 받았다.[6][7][8][9] 1452년에는 맹자의 56대손 맹희문(孟希文), 안회의 59대손 안희혜(顔希惠), 주돈이의 12대손 주면(週冕), 정호와 정이의 17대손 정극인(程克仁),[10][11][12][13][14][15][16] 주희의 9대손 주정(朱梴)에게 오경박사가 추증되었다. 1456~1457년과 1539년에는 증자의 60대손 증질취(曾質粹)에게, 1622년에는 장재의 자손에게, 1630년에는 소옹의 자손에게 같은 칭호가 수여되었다.[17][18]

참조

[1] 웹사이트 Cheng Hao http://www.iep.utm.e[...]
[2] 웹사이트 Huangpi Government Website (Chinese) http://www.huangpi.g[...] 2016-11
[3] 문서 Cheng Yi quote
[4] 문서
[5] 문서
[6] 서적 Present Day Political Organization of China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04-15
[7] 웹사이트 P.494-5. Present Day Political Organization of China http://www.forgotten[...] 2016-04-17
[8] 웹사이트 Present day political organization of China https://archive.org/[...]
[9] 서적 Men of Letters Within the Passes: Guanzhong Literati in Chinese History, 907-1911 https://books.google[...]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10] 웹사이트 熾天使書城----明史 http://www.angelibra[...]
[11] 웹사이트 Kanripo 漢籍リポジトリ : KR2m0014 欽定續文獻通考-清-嵇璜 https://www.kanripo.[...]
[12] 웹사이트 欽定歷代職官表 : 卷六十六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http://ctext.org/wik[...]
[13]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inspier.com/d[...] 2016-05-09
[14] 웹사이트 ●欽定續通典卷三十一 職官九-续通典-四大名著文学网 http://www.sidamingz[...] 2016-10-04
[15]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15269682.blog[...] 2016-05-09
[16] 웹사이트 Workingyam76的網路日誌 http://blog.xuite.ne[...]
[17] 웹사이트 The Ritual Formation of Confucian Orthodoxy and the Descendants of the Sage https://www.research[...] 2024-12-04
[18] 학술지 The Ritual Formation of Confucian Orthodoxy and the Descendants of the Sage https://www.jstor.or[...] 1996
[19] 서적 (책 제목 미상) https://books.google[...] 2017
[20] 서적 이천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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