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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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쿠드라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트라키아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 용어는 스키타이인의 고유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아카드어, 그리스어 명칭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513년 다리우스 1세는 스쿠드라 지역을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제국의 사트라피로 만들었다. 스쿠드라 사트라피는 트라키아의 에게해 연안과 도나우강까지 포함했으며,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스키타이 민족이 거주했다. 이오니아 반란 당시 트라키아인들은 페르시아를 지지했고,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아케메네스 제국의 지배는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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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드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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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통칭 | 아케메네스조 트라키아 |
고유 명칭 | '' |
고유 명칭 (음역) | 스쿠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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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시대 | 아케메네스 시대 |
구분 | 사트라피 |
국가 | 아케메네스 제국 |
시작 | 기원전 513년 |
종료 | 기원전 465년경 |
사건 시작 | 트라키아의 페르시아 침공 |
사건 종료 | 도리스코스 철수 |
주요 사건 | 이오니아 반란 (기원전 499-493년) 트라키아 재정복 (기원전 492년) 마케도니아 정복 (기원전 492년)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지배 전복 (기원전 479년) |
이전 국가 | 고대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왕국 |
이후 국가 | 오드뤼시아 왕국 마케도니아 왕국 델로스 동맹 |
정치 | |
정치 체제 | 군주제 |
통치자 칭호 | 왕 또는 만왕의 왕 |
초대 통치자 | 다리우스 대왕 |
초대 통치자 재임 기간 | 기원전 522–486년 |
마지막 통치자 | 크세르크세스 1세 |
마지막 통치자 재임 기간 | 기원전 486-465년 |
2. 명칭
스쿠드라라는 명칭은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스키타이와 관련된 언어학적 변화를 보여준다.
2. 1. 어원
고대 페르시아어로 이 지역의 이름은 였으며, 이는 스키타이의 고유어 에서 유래되었고, 이로부터 스키타이인을 지칭하는 아카드어와 그리스어 이름인 각각 Iškuzaya|, Askuzaya| 그리고 Skuthai|Σκυθαιgrc가 파생되었다.그러나 스키타이어는 페르시아의 침략 당시 /δ/ 소리가 /l/로 변하는 음운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당시 스키타이어에서 스키타이인의 고유어는 로 발음되었다. 고대 페르시아어 의 파생은 대신 기원전 7세기 메디아인과 스키타이인이 초기에 접촉하면서 /δ/에서 /l/로의 음운 변화가 완료되기 전에 고대 스키타이어 형태 를 보존했던 메디아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3. 역사
기원전 6세기 말, 아케메네스 제국이 유럽 원정을 하는 과정에서 스쿠드라 속주가 설치되었다. 스쿠드라 속주는 트라키아의 에게해 연안과 도나우강까지의 폰토스 연안을 모두 포함했다. 내륙에서 속주의 서쪽 경계는 아키우스 강과 벨라시차-피린-릴라 산맥이 현대 코스테네츠 지역까지 이어졌다. 이 속주의 중요성은 헤브로스 강이 포함되어 있다는 데 있었는데, 이곳의 강 계곡 경로는 페르시아 영구 정착지인 도리스쿠스와 에게해 연안, 그리고 흑해의 아폴로니아, 메셈브리아, 오데소스 항구 도시, 그리고 상부 트라키아 평원을 연결하여 이 지역에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부여했다.
페르시아 자료는 이 지방을 다음 세 그룹으로 묘사한다.
- '사카 파라드라야' ('바다 너머의 사카', 카스피해와 흑해 북쪽의 모든 스키타이 민족을 지칭하는 페르시아 용어)
- 스쿠드라 (대부분 트라키아 부족)
- '야우나 타카바라' ('방패 모양의 모자를 쓴 이오니아인', 마케도니아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
나크셰 로스탐의 제국 무덤 부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세 민족(사카, 마케도니아, 트라키아)은 아케메네스 군대에 입대하여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아케메네스 측에 참여했다.
아케메네스 제국의 정복 과정,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시기, 그리고 아케메네스 제국의 쇠퇴와 그 이후의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하라.
3. 1. 아케메네스 제국의 정복
기원전 513년, 아케메네스 제국의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이끌고 아나톨리아에서 트라키아로 진군하여 아르테스코스 강을 건너고 헤브로스 강 계곡을 따라 이동했다. 다리우스 1세는 행군 중 여러 트라키아 부족들에게 사절을 보냈고, 오드뤼세족을 포함한 모든 트라키아 부족들은 도나우강 남쪽의 게타이 부족 영토에 도달할 때까지 그에게 복종했다. 게타이 부족의 저항이 무너진 후, 에게해와 도나우강 사이의 모든 트라키아 부족들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다리우스 1세는 스키타이 원정을 위해 도나우강을 건넜다가 트라키아를 거쳐 아나톨리아로 돌아왔고, 장군 메가바주스에게 유럽에 대규모 군대를 남겨 지휘하도록 했다. 메가바주스는 페린토스를 시작으로 아케메네스 제국에 복종을 거부한 그리스 도시들을 강제로 복종시켰고, 트라키아 전역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여 모든 도시와 부족에게 아케메네스 통치를 강요했다. 그는 트라키아인 안내자들의 도움으로 파이오니아를 정복하고, 프라시아스호 지역을 제외한 파이오니아인들의 땅을 아케메네스 제국에 충성하는 트라키아인들에게 주었다. 또한 스트리몬 강과 아키우스 강 사이 지역을 정복했고,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1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봉신이 되었다.
메가바주스가 아시아로 돌아간 후, 다리우스 1세는 장군 오타네스를 임명하여 헬레스폰트 지역을 감독하게 했다. 오타네스는 비잔티움, 칼케돈, 안탄드루스, 람포네이아, 임브로스, 레므노스를 점령했다.
3. 2.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시기
이오니아 반란이 시작되자 아케메네스 제국의 유럽 영토에 대한 통제가 붕괴되었지만, 트라키아인들은 그리스 반군을 돕지 않았다. 그들은 아케메네스 통치를 더 선호했는데, 아케메네스인들이 트라키아인들에게 호의적이었고 더 많은 땅을 주었으며, 아케메네스 통치가 그리스의 팽창과 스키타이의 공격에 대한 방어벽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반란 기간 동안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는 에도네족으로부터 미르키누스를 점령했고, 다른 트라키아 도시를 공격하려다 사망했다.이오니아 반란이 완전히 진압된 후, 아케메네스 장군 마르도니우스는 대규모 함대와 군대를 이끌고 헬레스폰트를 건너 어떠한 노력도 없이 트라키아를 재정복했으며, 마케도니아를 스쿠드라 사트라피의 완전한 일부로 만들었다. 그러나 마르도니우스는 도이란호와 현대 발란도보 지역에서 브리게스의 밤습을 받았지만, 그들을 격파하고 복종시킬 수 있었다. 헤로도토스가 아케메네스 군대에 병력을 제공한 부족 목록에는 해안과 중앙 트라키아 평원에서 온 트라키아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마르도니우스의 원정이 이오니아 반란 이전 아케메네스 통치하에 있던 모든 트라키아 지역을 재정복했음을 증명했다.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 제국의 두 번째 침공 시도를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격파했을 때, 그들은 스쿠드라 사트라피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는 트라키아인과 페르시아군에 의해 저항받았다. 트라키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아이온을 포위했을 때 계속해서 보급품을 총독에게 보냈다. 기원전 475년 그리스인들에게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 키몬은 그 땅을 아테네에 식민지화하도록 주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격퇴한 후 에게해와 헬레스폰트를 장악했지만, 페르시아인들은 여전히 중앙 트라키아의 기지를 두고 트라키아인들의 지원을 받아 트라키아 남부 해안을 통제할 수 있었다. 트라키아인들이 헤브루스 강로를 따라 보급품과 군사적 증원을 보내 페르시아인들과 협력한 덕분에 중앙 트라키아에서 아케메네스 권위는 기원전 465년까지 지속되었고, 총독 마스카메스는 그때까지 도리스쿠스에서 많은 그리스 공격을 막아냈다.
3. 3. 아케메네스 제국의 쇠퇴와 이후
기원전 5세기 중반,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권력 공백은 트라키아의 오드뤼세 왕국, 마케도니아 왕국, 그리고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이 채우게 되었으며, 이들은 각자의 세력권을 형성해 나갔다.4. 지리
스쿠드라peo 속주는 에게해 연안에서 도나우강까지, 내륙으로는 바르다르강과 벨라시차-피린-릴라 산맥까지 뻗어 있었다. 페르시아 자료는 이 지방을 '바다 너머의 사카' (카스피해와 흑해 북쪽의 모든 스키타이 민족을 지칭), 스쿠드라peo (대부분 트라키아 부족), '방패 모양의 모자를 쓴 이오니아인' (마케도니아인)의 세 그룹으로 묘사했다. 이 세 민족은 아케메네스 군대에 입대하여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했다.
4. 1. 주요 지역
사트라피에 포함된 지역은 트라키아의 에게해 연안과 도나우강까지의 폰토스 연안을 모두 포함했다. 내륙에서 사트라피의 서쪽 경계는 아키우스 강과 벨라시차-피린-릴라 산맥이 현대 코스테네츠 지역까지 이어졌다. 이 사트라피는 헤브로스 강을 포함했는데, 이 강의 계곡 경로는 페르시아 영구 정착지인 도리스쿠스와 에게해 연안, 그리고 흑해의 아폴로니아, 메셈브리아, 오데소스 항구 도시, 상부 트라키아 평원을 연결하여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녔다.5. 민족 구성
스쿠드라 속주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다. 이 지역은 트라키아의 에게 해 연안과 도나우 강까지의 폰토스 연안을 모두 포함했으며, 내륙으로는 아키우스 강과 벨라시차-피린-릴라 산맥이 현대 코스테네츠 지역까지 이어지는 곳이 경계였다.
5. 1. 주요 민족
스쿠드라peo 사트라피에 포함된 민족은 크게 세 그룹으로 묘사된다.민족 | 설명 |
---|---|
스쿠드라peo | 대부분 트라키아 부족 |
야우나 타카바라 | "방패 모양의 모자를 쓴 이오니아인", 마케도니아인으로 추정 |
사카 파라드라야 | "바다 너머의 사카", 카스피해와 흑해 북쪽의 모든 스키타이 민족을 지칭하는 페르시아 용어 |
나크셰 로스탐의 제국 무덤 부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들 세 민족(사카, 마케도니아, 트라키아)은 아케메네스 군대에 입대하여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아케메네스 측에 참여했다.
5. 2. 아케메네스 군대 복무
나크셰 로스탐의 제국 무덤 부조에서 볼 수 있듯이, 스쿠드라 출신 민족들은 아케메네스 제국 군대에 입대하여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아케메네스 제국 측에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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