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즈카 가즈노리
1. 개요
시노즈카 가즈노리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코치, 해설가이다. 197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1980년대 팀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두 차례 타격왕을 차지했다. 1990년대에는 부상으로 출장 기회가 줄었지만, 1994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은퇴 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타격 코치를 맡아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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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시노즈카 가즈노리 |
|---|---|
| 본명 | 시노즈카 도시오 |
| 출생일 | 1957년 7월 16일 |
| 출생지 | 일본 지바현 조시시 |
| 신장 | 176cm |
| 체중 | 68kg |
| 포지션 | 내야수 / 코치 |
| 투구 | 우 |
| 타석 | 좌 |
| 프로 입단 년도 | 1975년 |
|---|---|
| 드래프트 순위 | 1순위 |
| 데뷔 리그 | NPB |
| 데뷔일 | 1977년 8월 5일 |
| 데뷔 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마지막 리그 | NPB |
| 마지막 경기일 | 1994년 10월 26일 |
| 마지막 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소속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76–1994) |
| 코치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5–2003, 2006–2010) 일본 국가대표 (2009) |
|---|
| 최종 년도 | 1994년 |
|---|---|
| 리그 | NPB |
| 타율 | 0.304 |
| 홈런 | 92 |
| 안타 | 1696 |
| 수상 | 센트럴 리그 타격왕 2회 (1984, 1987) 베스트 나인 5회 (1981–1982, 1984, 1986–1987) 미쓰이 골든 글러브상 4회 (1981–1982, 1984, 1986) NPB 올스타 9회 (1982–1989,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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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출생 -
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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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출생 -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인권 탄압 등의 비판을 받았고, 퇴임 후 인민평의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지바현 출신 야구 선수 -
나가오카 히데키
나가오카 히데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 및 2루수로 활동하며 2022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고 2024년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
지바현 출신 야구 선수 -
모리 시게카즈
모리 시게카즈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 감독,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시절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으며,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으로 NPB 최고령 감독 데뷔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 야구 해설 및 평론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2. 프로 선수 경력
지바현 조시시 출신으로 197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드래프트 1위로 입단, 1980년에 2루수로 수비 포지션을 배정받으면서 좌타자로 활약했다. 이듬해인 1981년에 한신 타이거스의 후지타 다이라와의 타격왕 경쟁에서 밀려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시즌 3할 5푼 7리를 기록하며 현역 선수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1984년에는 타율 .334로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고, 1987년에는 .333으로 두 번째 타격왕을 차지했다. 1994년 18년간의 현역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2.1.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197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드래프트 1위로 입단했다. 고교 시절 습성 늑막염을 앓아 3개월간 입원하며 야구 생명이 위태로웠으나, 반년 후 복귀했다. 병실에서 요양하는 동안 침대에서 천장을 향해 끊임없이 스로잉 연습을 하여 손가락 끝의 감각과 팔꿈치 내는 법을 익혔다.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에게 발탁되어 드래프트 회의에서 자이언츠로부터 1위 지명을 받았다.
2.2. 전성기 (1980년대)
1980년, 시노즈카는 2루수로 수비 포지션을 배정받으면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에는 주전 2번 타자로 자리잡았다.
1981년에는 한신 타이거스의 후지타 다이라와 치열한 타격왕 경쟁을 벌였다. 시즌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으나, 결국 1리 차이로 타격왕 타이틀을 놓쳤다. 하지만 시노즈카는 타율 .357을 기록하며 현역 선수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5차전에서 기다 이사무를 상대로 쐐기 3점 홈런, 6차전에서 마시바 시게유키를 상대로 선제 적시타를 쳐내는 등 맹활약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84년에는 타율 .334, 12홈런을 기록하며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35개의 2루타는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
1987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쇼다 고조와 동률(.333)로 두 번째 타격왕을 차지했다. 이는 NPB 역사상 두 번째, 센트럴 리그 최초의 동률 타격왕 기록이었다. 시노즈카는 팀 순위, 안타 수, 홈런 수에서 쇼다를 앞서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팀이 2승 4패로 패했지만, 시노즈카는 타율 .409(22타수 9안타), 3타점, 1홈런의 뛰어난 활약으로 일본 시리즈 감투상을 수상했다.
2.3. 후반기 (1990년대)
부터 까지 선수 말년에는 지병인 허리 통증이 악화되는 등의 이유로 젊은 오가타 고이치가 2루를 맡는 기회가 많아져 규정 타석에 미치지 못하는 300타석 전후의 출전을 기록했다. 8월에는 출전 기회 감소에 대한 불만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트레이드 시켜주세요"라고 한 석간 신문에 발언했고, 같은 달 19일 구단으로부터 수뇌진 비판 발언을 이유로 엄중 주의와 벌금 1의 처분을 받았다.
7월 1일부터 등록명을 "시노즈카 토시오"에서 "시노즈카 가즈노리"(しのづか かずのり)로 변경했다. " '토시오라는 이름에는 분열, 분리의 의미가 있다'는 지인인 내기공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다"라고 한다.
에는 66경기에서 타율 .337, 4홈런, 23타점을 기록했다. 5월 15일 히로시마전에서 1991년 7월 이후 2년 만에 홈런인 통산 3번째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6월 9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이시카와현립 야구장)에서는 8회 2/3까지 무실점, 16탈삼진(당시 센트럴 리그 타이 기록)의 투구를 이어가던 루키 이토 토모히토를 상대로 9회 2사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다. 이 경기는 선발에서 제외되어 벤치에서 이토의 투구를 보며 "다들 슬라이더나 포크에 당하고 있다"라고 관찰했다. 마무리 투수인 이시게 히로시가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시작하자 타석에 서서 눈을 익혔다. 9회초에 2루수로 교체 출전했고, 그 이닝 말에 첫 타석을 맞이했다. 간격을 맞추기 위해 두 번 타석에서 벗어났는데, 그 사이에 "뭔가 확 오는 것이 있었다"라고 말하며 이토의 초구를 우중간 스탠드로 날려 보냈다.
에는 지병인 허리 통증 악화의 영향으로 5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38, 2홈런, 13타점의 성적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현역 속행할지 은퇴할지 고민했지만, 팀 사정과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고려하여 "과거에 매달리기보다는 아쉬움을 남기면서 그만두고 싶다"라고 하여, 이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3. 은퇴 후 경력
시노즈카 가즈노리는 은퇴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와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군 타격 코치, 1군 내야 수비 코치, 1군 내야 수비 겸 주루 코치, 1군 종합 코치를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니혼 TV, 라디오 닛폰 야구 해설가,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았다.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내야 수비 겸 주루 코치로 복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09년에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타격 코치를 겸임했다.
2011년부터 다시 니혼 TV, 라디오 닛폰 야구 해설가,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2014년 1월에는 KBO LG 트윈스 임시 코치를 맡았다.
3.1. 코치 및 해설위원 활동
부터 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 코치, 1군 내야 수비 코치, 1군 내야 수비 겸 주루 코치, 1군 종합 코치를 역임했다. 부터 까지는 니혼 TV · 라디오 닛폰 야구 해설가,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았다.
에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내야 수비 겸 주루 코치로 취임했다. 부터 까지 1군 타격 코치를 맡았고, 에는 제5회 WBC(일본 대표)의 타격 코치도 겸임했다.
부터는 다시 니혼 TV · 라디오 닛폰 야구 해설가, 닛칸 스포츠 야구 평론가를 맡고 있다. 1월에는 KBO의 LG 트윈스 임시 코치를 맡았다.
경기 전 연습 장면에서는 감독 하라 다쓰노리와 타격 코치 무라타 신이치가 젊은 선수나 중견 선수들을 담당하는 반면, 부진할 때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나 알렉스 라미레스 등의 주축 선수들과 웃으며 토스 타격 상대를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2010년 시즌 전반에 타격 부진에 빠졌던 에드가 곤잘레스는 7월 말부터 호조를 보인 것에 대해 8월 1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14차전 (도쿄 돔)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시노즈카 코치와의 타격 연습이 좋은 형태로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노스케, 카메이 요시유키, 사카모토 하야토, 다카하시 요시노부, 나가노 히사요시, 니오카 토모히로 등 선수들을 육성했으며, 타격 부진 시 지도 등을 했다. 결과적으로 시노즈카가 코치 시절에는 팀 타율이 항상 리그 상위권이었다.
제2차 나가시마 감독 시대에는 오랫동안 1군 내야 수비 코치를 담당했다. 제1차 하라 감독 시대에는 1군 종합 코치를 담당, 하라와 함께 공격 면과 작전 면을 총괄했다.
3.2. 지도 스타일
타격 이론과 지도 이론 모두 이상적인 폼을 면밀히 구축한 뒤 준비를 마치고, 단순하게 "오는 공을 친다"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경기 전 연습 장면에서는 하라 다쓰노리 감독과 무라타 신이치 타격 코치가 젊은 선수나 중견 선수들을 담당하는 반면, 부진할 때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나 알렉스 라미레스 등의 주축 선수들과 웃으며 토스 타격 상대를 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2010년 시즌 전반에 타격 부진에 빠졌던 에드가 곤잘레스는 7월 말부터 호조를 보였는데, 8월 1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14차전 (도쿄 돔)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 "시노즈카 코치와의 타격 연습이 좋은 형태로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노스케, 카메이 요시유키, 사카모토 하야토, 다카하시 요시노부, 나가노 히사요시, 니오카 토모히로 등 선수들을 육성했으며, 타격 부진 시 지도 등을 했다. 결과적으로 시노즈카가 코치 시절에는 팀 타율이 항상 리그 상위권이었다.
제2차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시대에는 오랫동안 1군 내야 수비 코치를 담당했다. 제1차 원 감독 시대에는 1군 종합 코치를 담당, 원 감독과 함께 공격 면과 작전 면을 총괄했다.
4. 개인 기록 및 수상
시노즈카 가즈노리는 올스타 게임에 통산 9회(1982년 ~ 1989년, 1991년) 출장했으며, 1987년 7월 4일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역대 272번째).
4.2. 수상
5. 출신 학교
조시 상업고등학교 2학년 때 쓰치야 마사카츠를 에이스로 하여 봄과 여름 고시엔 대회에 "4번·3루수"로 연속 출전했다. 봄 대회 준준결승에서 호토쿠가쿠엔에 2-1로 패했다. 여름 대회에서는 모든 경기를 승리하며 결승에서 호후 상업고를 7-0으로 꺾고 학교 최초로 여름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학년 후배로는 우노 마사루가 있었다.
다음 해 여름 지바 대회 준결승에서 오가와 준지가 있던 나라시노 고등학교에 1-2로 패했다.
6. 등번호
| 연도 | 등번호 |
|---|---|
| 1976년 ~ 1978년 | 37 |
| 1979년 ~ 1994년 | 6 |
| 1995년 ~ 2003년, 2006년 ~ 2010년 | 81 |
7. 등록명
篠塚 利夫일본어(1976년 ~ 1992년 6월 30일)
篠塚 和典일본어(1992년 7월 1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