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사와라 미치히로
1. 개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내야수와 외야수로 활동했다. 지바현 지바시 출신으로, 1996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하여 2006년까지 활약했다. 2006년에는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2007년에도 MVP를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여 2015년 은퇴했다. 국가대표팀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6년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주니치 드래건스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타격 코치로 재직 중이다. 뛰어난 타격 능력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선수로, 통산 2회의 수위 타자, 1회의 홈런왕, 1회의 타점왕 등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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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
|---|---|
| 원어 이름 | 小笠原 道大일본어 (일본어) |
| 로마자 표기 | Michihiro Ogasawara |
| 출생일 | 1973년 10월 25일 () |
| 출생지 | 지바현 지바시 미하마구 |
| 포지션 | 내야수/코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좌타 |
| 프로 입단 | 1996년 |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3위 |
| 첫 출장 | 1997년 4월 8일 |
| 마지막 출장 | 2015년 9월 21일 (은퇴 경기) |
| 신장 | 178 cm |
| 체중 | 84 kg |
| 선수 | 닛폰햄 파이터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997년 ~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년 ~ 2013년) 주니치 드래건스 (2014년 ~ 2015년) |
|---|---|
| 코치 | 주니치 드래건스 (2016년 ~ 2019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020년 ~ 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2년 ~ 2023년) |
| 국가 | 일본 |
|---|---|
| 올림픽 | 2004년 하계 올림픽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일본 시리즈 우승 | 2회 (2006년, 2009년) |
|---|---|
| 리그 MVP | 2006년 퍼시픽 리그 MVP 2007년 센트럴 리그 MVP |
| 리그 타격왕 | 2회 (퍼시픽 리그 2002년, 2003년) |
| 리그 홈런왕 | 2006년 퍼시픽 리그 |
| 리그 타점왕 | 2006년 퍼시픽 리그 |
| 리그 최다 안타 | 2회 (퍼시픽 리그 2000년, 2001년) |
| 베스트 나인 | 7회 (1루수: 1999년, 2001년, 2006년; 3루수: 2003년, 2004년, 2007년, 2009년) |
| 골든 글러브 | 6회 (1루수: 1999년-2002년, 2006년; 3루수: 2003년) |
| 올스타 | 11회 (1999년-2007년, 2009년, 2010년) |
| 월간 MVP | 8회 |
| 사이클링 히트 | 2008년 9월 3일 |
| 올림픽 | 아테네 2004 야구 동메달 |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샌디에이고 금메달 2009년 로스앤젤레스 금메달 |
|---|
| 타율 | 0.310 |
|---|---|
| 안타 | 2,120 |
| 홈런 | 378 |
| 타점 | 1,169 |
-
일본 프로 야구 타격왕 -
마쓰이 히데키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과 미국 프로 야구에서 외야수 및 지명타자로 활약하며 NPB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센트럴 리그 MVP를 3회 수상하고 MLB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다. -
일본 프로 야구 타격왕 -
와카마쓰 쓰토무
와카마쓰 쓰토무는 홋카이도 출신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야쿠르트 아톰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통산 타율 0.319로 일본인 선수 역대 1위를 기록하고, 감독으로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센트럴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지바현 출신 야구 선수 -
나가오카 히데키
나가오카 히데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 및 2루수로 활동하며 2022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고 2024년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
지바현 출신 야구 선수 -
모리 시게카즈
모리 시게카즈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 감독, 야구 해설가 및 평론가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 시절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으며,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으로 NPB 최고령 감독 데뷔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 야구 해설 및 평론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
닛폰햄 파이터스 선수 -
장훈
장훈은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이자 해설가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다 안타 기록과 3,000안타-500홈런-300도루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보유했으며,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
닛폰햄 파이터스 선수 -
기무라 다쿠야 (야구인)
기무라 다쿠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으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2009년 은퇴 후 코치로 활동하다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2. 프로 입단 전
지바현 지바시 출신으로 7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지바 니시 리틀 리그에서 활동했다. 1989년 교세이 국제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유격수, 3루수, 외야수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지만, 팀 사정으로 2루수로 전향했다. 1990년에는 팀 사정으로 포수를 겸하게 되었는데, 본인은 포수가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이었다고 한다. 2학년 때 기타가와 데쓰야와 함께 여름 현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끌었다. 고교 통산 홈런은 한 개도 없었다.
NTT 간토에 입사하여 다테이시 나오유키와 배터리를 짜며 활약했고, 1996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마쓰나카 노부히코와 함께 신일본제철 기미쓰의 보강 선수로 출전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그 해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닛폰햄 파이터스로부터 3순위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1. 유소년기
지바현 지바시 출신으로 7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지바니시 리틀 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1989년 게이세이 국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입학 당시에는 무명 선수였으며, 당시 고시마 다쿠미치 감독은 "지바니시 리틀의 (중학교) 2학년 선수 중 탐나는 선수가 있어서, 그 선수를 데려가는 대신에 부탁받은 것이, 어디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오가사와라였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유격수, 3루수, 외야수 등 여러 포지션을 시도했지만, 2루수로 전향했고, 1990년에는 팀 사정상 포수를 겸하게 되었다. 오가사와라 본인은 포수가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이었다고 한다. 2학년 때는 기타가와 데쓰야와 함께 지바 대회 결승에 진출했지만, 나리타 고등학교에 패하여 고시엔 출전을 놓쳤다. 고교 통산 홈런은 없었다.
2.2. 고교 시절
지바현 지바시 출신으로 7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지바 니시 리틀 리그에서 활동했다. 1989년 교세이 국제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유격수, 3루수, 외야수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지만, 팀 사정으로 2루수로 전향했다. 1990년에는 팀 사정으로 포수를 겸하게 되었는데, 본인은 포수가 가장 싫어하는 포지션이었다고 한다.
2학년 때 기타가와 데쓰야와 함께 여름 현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끌었다. 고교 통산 홈런은 한 개도 없었지만, 성실한 플레이로 주목받았다. 고시마 타쿠미치 감독은 오가사와라의 꾸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여 "고교 통산 30홈런을 친 선수"라는 거짓 추천으로 졸업 후 NTT 간토에 입사시켰다.
2.3. 사회인 야구 시절
NTT 간토에 입사하여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다테이시 나오유키와 배터리를 짜며 활약했고, 1996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마쓰나카 노부히코와 함께 신일본제철 기미쓰의 보강 선수로 출전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오치아이 히로미쓰와의 주전 1루수 경쟁에서 승리한 오가사와라는 "번트를 하지 않는 2번 타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세이부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데뷔 첫 실점과 피홈런을 안겨주는 투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오가사와라는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한 명으로, 2002~2003년 2년 연속 타격왕, 2006년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며 MVP를 수상했다. 2000~2001년에는 최다 안타를 기록했고, 1루수와 3루수로 6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에스테반 로아이자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했다.
3.1.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1997~2006)
コンビニルーキー일본어라고 불리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던 오가사와라는 1997년 닛폰햄에 입단하여 중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며 히로세 데쓰로의 후임으로 기대를 받았다. 같은 해 개막전에서 1군 엔트리에 포함되어 선발 출전했고, 가토 히데지 타격 코치의 지도로 풀스윙 타법을 전수받았다. 내야수로 등록되었지만 23경기에 포수로 출전했다.
1998년에는 주로 대타로 출전했지만 타율 3할 2리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남겼다. 5월 22일 경기에서 플라이를 잡다가 왼손 집게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7월 1일 1군에 등록되어 대타 홈런을 기록했다. 이 홈런으로 오가사와라는 '근성'(ガッツ일본어)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마지막 선언을 한 니시우라 가쓰히로와의 포지션 경쟁에서 승리하여 주전 1루수가 되었다. '번트를 하지 않는 2번 타자'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고, 세이부 라이온스의 괴물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데뷔 첫 등판 경기에서 8회에 마쓰자카에게 데뷔 첫 실점과 첫 피홈런을 안겨주는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
1999년 타격이 완전히 개선되면서 프로 첫 타이틀인 182개의 최다 안타를 기록했고, 도루에서도 퍼시픽 리그 3위인 24개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2001년에는 2년 연속 최다 안타를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2002년에는 타율 .340으로 자신의 첫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3년에는 3루수로 전향하여 2년 연속 수위 타자 및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 출전으로 인해 부진했지만, 5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개인 최다 홈런을 기록했지만, 6년 만에 타율 3할을 밑돌았다.
2006년에는 타율 .313, 32홈런, 100타점으로 홈런왕, 타점왕을 동시에 석권하며 퍼시픽 리그 MVP를 차지했고,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5월 15일에 FA권을 획득했고, 시즌 종료 후 FA권을 행사했다.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자 | 희번 | 희플 | 볼넷 | 고사 | 사구 | 삼진 | 병살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97년 | 닛폰햄 | 44 | 98 | 94 | 7 | 21 | 10 | 2 | 0 | 35 | 7 | 1 | 0 | 0 | 1 | 3 | 0 | 0 | 10 | 2 | .223 | .245 | .372 | .617 |
| 1998년 | 71 | 98 | 86 | 7 | 26 | 5 | 0 | 1 | 34 | 9 | 1 | 1 | 0 | 1 | 11 | 1 | 0 | 17 | 3 | .302 | .378 | .395 | .773 | |
| 1999년 | 135 | 608 | 547 | 90 | 156 | 34 | 4 | 25 | 273 | 83 | 3 | 4 | 0 | 4 | 56 | 1 | 0 | 84 | 6 | .285 | .349 | .499 | .848 | |
| 2000년 | 135 | 635 | 554 | 126 | 182 | 23 | 4 | 31 | 306 | 102 | 24 | 6 | 0 | 5 | 74 | 2 | 2 | 91 | 6 | .329 | .406 | .552 | .959 | |
| 2001년 | 140 | 643 | 576 | 108 | 195 | 40 | 2 | 32 | 335 | 86 | 1 | 6 | 0 | 0 | 63 | 7 | 4 | 102 | 8 | .339 | .407 | .582 | .989 | |
| 2002년 | 135 | 574 | 486 | 77 | 165 | 27 | 2 | 32 | 292 | 81 | 8 | 1 | 0 | 6 | 76 | 14 | 6 | 77 | 6 | .340 | .430 | .601 | 1.031 | |
| 2003년 | 128 | 546 | 445 | 83 | 160 | 34 | 1 | 31 | 289 | 100 | 8 | 3 | 0 | 3 | 93 | 12 | 5 | 65 | 13 | .360 | .473 | .649 | 1.122 | |
| 2004년 | 101 | 452 | 377 | 78 | 130 | 19 | 2 | 18 | 207 | 70 | 3 | 1 | 0 | 2 | 70 | 3 | 3 | 70 | 10 | .345 | .449 | .549 | .998 | |
| 2005년 | 133 | 580 | 514 | 91 | 145 | 27 | 2 | 37 | 287 | 92 | 2 | 1 | 0 | 1 | 61 | 3 | 4 | 114 | 8 | .282 | .362 | .558 | .920 | |
| 2006년 | 135 | 579 | 496 | 77 | 155 | 31 | 1 | 32 | 284 | 100 | 4 | 3 | 0 | 8 | 73 | 5 | 2 | 85 | 8 | .313 | .397 | .573 | .970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07~2013)
2006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인 2007년에는 3할 타율과 31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2년 연속 리그 MVP를 수상했다.
2008년에는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후반기에 회복하며 팀의 리그 2연패에 공헌했다. 타율 .310, 36홈런, 96타점을 기록했다.
2009년에는 주로 3번 타자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3연패에 기여했다. 타율 .309, 31홈런, 107타점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요미우리 이적 후 4년 연속 3할-30홈런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타율 .308, 34홈런, 90타점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13년 만에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7년 | 요미우리 | 142 | 617 | 566 | 95 | 177 | 33 | 1 | 31 | 305 | 88 | 4 | 0 | 0 | 4 | 43 | 5 | 4 | 98 | 10 | .313 | .363 | .539 | .902 |
| 2008년 | 144 | 589 | 520 | 93 | 161 | 27 | 1 | 36 | 298 | 96 | 0 | 2 | 1 | 5 | 56 | 8 | 7 | 105 | 14 | .310 | .381 | .573 | .954 | |
| 2009년 | 139 | 580 | 514 | 78 | 159 | 25 | 1 | 31 | 279 | 107 | 2 | 1 | 0 | 2 | 60 | 2 | 4 | 107 | 8 | .309 | .384 | .543 | .927 | |
| 2010년 | 137 | 591 | 510 | 83 | 157 | 24 | 1 | 34 | 285 | 90 | 1 | 0 | 0 | 5 | 73 | 2 | 3 | 101 | 9 | .308 | .394 | .559 | .953 | |
| 2011년 | 83 | 314 | 281 | 21 | 68 | 12 | 0 | 5 | 95 | 20 | 1 | 3 | 0 | 2 | 27 | 1 | 4 | 66 | 4 | .242 | .315 | .338 | .653 | |
| 2012년 | 34 | 99 | 92 | 4 | 14 | 3 | 0 | 0 | 17 | 4 | 0 | 0 | 1 | 1 | 5 | 0 | 0 | 22 | 1 | .152 | .194 | .185 | .379 | |
| 2013년 | 22 | 40 | 36 | 2 | 9 | 2 | 0 | 1 | 14 | 8 | 0 | 1 | 0 | 1 | 2 | 0 | 1 | 7 | 2 | .250 | .300 | .389 | .689 |
3.3.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2014~2015)
2013년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하여 2015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에서 은퇴하였다.
2014년에는 대타 요원으로 활약하며 팀에 공헌했다. 81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301, 1홈런, 18타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시즌 중 은퇴를 선언하고, 친정팀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은퇴 경기를 치렀다. 53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94, 8타점을 기록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에스테반 로아이자를 상대로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홈런을 치는 등 활약하며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일본의 대회 2연패에 기여했다.
2006년과 2009년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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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도자 경력
오가사와라는 선수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주니치 드래건스 2군 감독(2016~2019년),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 1군 수석 코치 겸 타격 코치(2020~2021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2022년~)를 역임했다.
5.1. 주니치 드래건스 2군 감독 (2016~2019)
은퇴 후, 오가사와라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2군 팀인 웨스턴 리그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8월 8일, 1군 감독 타니시게 모토노부가 해임된 후, 오가사와라는 시즌 말에 물러나는 감독을 대체할 주요 후보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드래건스 고위 관계자들은 팀 재건을 돕기 위해 더 경험 많은 감독인 모리 시게카즈를 임명하기로 결정하여 감독직을 얻는 데 실패했다.
2019년 9월 29일, 오가사와라가 2020 시즌을 위해 드래건스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되었으며, 닛폰햄 파이터스의 감독직과 연결되었다는 추측이 있었다.
5.3.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22~)
2022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타격코치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3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6. 플레이 스타일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리그가 바뀌어도 뛰어난 배팅 센스를 유지했다. 2000년부터 2005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타율 3할 대를 기록했으며, 2004년을 제외하면 3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장타력도 뛰어났다. 큰 타구 자세에서 풀스윙으로 넓은 각도에 장타를 날리는 타격 스타일을 가졌으며, 가토 히데지 배팅 코치의 영향을 받았다. 프로 1년 차인 1997년을 제외하면 매년 출루율이 타율보다 5푼 이상 높아 선구안도 뛰어났다. 신주타법을 익혔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영향은 적다고 밝혔다.
우에다 도시하루 감독의 방침에 따라 2번 타자로 뛴 적도 있지만, 2008년 6월 8일 세이부전까지 정규 경기에서 희생 번트는 한 번도 없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보내기 번트에 성공하기도 했다. 요미우리 이적 후 2007년 시즌부터는 번트가 요구되기도 했지만, 기록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같은 해 9월 1일, 8년 만에 번트를 시도해 성공했으나 1루에서 세이프되어 안타로 기록되었다.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홈런 2개에 그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였다. 2009년 시즌 종료 시점까지 통산 타율이 2할 2푼 8리로, 전체 통산 타율보다 현저히 낮았다. 고시엔 구장에서의 첫 홈런은 타격 코치 기무라 다쿠야가 사망한 날인 4월 7일에 구보 야스토모를 상대로 기록했다.
6.1. 타격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뛰어난 선구안과 정교한 타격 능력을 바탕으로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했다. 큰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스윙으로 장타 생산 능력도 뛰어났다. 신주타법을 익혔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영향은 적다고 한다. 우투수에 강하고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번트를 거의 하지 않는 공격적인 스타일의 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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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전향했다. 빠른 발을 인정받아 2번 타자를 맡았고, 전혀 번트를 하지 않아 "번트를 하지 않는 2번 타자"로 개막부터 주전으로 정착하여 좋은 성적을 냈다. 타율 .285(리그 7위), 25홈런(리그 5위), 83타점(리그 6위) 등 리그 내에서도 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타율 .329(리그 3위), 31홈런(리그 4위), 102타점(리그 4위), 리그 신기록(당시)인 126득점, 구단 신기록 182안타(당시)를 기록하며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또한 리그 3위인 24도루를 기록, 구단에서는 장훈 이후 3할 20홈런 20도루를 달성했다. 같은 해 126득점으로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가지고 있던 퍼시픽 리그 연간 기록을 경신했다(다음 해에 타피 로즈가 경신).
2001년에는 시즌 초반 타순은 주로 2번이나 3번이었지만, 후반기부터 1번에 정착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후쿠우라 카즈야와의 수위 타자 경쟁에서 패했지만, 타율 .339(리그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년에 이어 퍼시픽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195안타)했다. 195안타는 시즌 안타 수 양 리그 역대 2위의 숫자(당시)이며, 이치로 이후, 사상 2번째로 복수 년간 18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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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는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한 가타오카 아츠시가 빠진 타선의 기둥으로서 3번 타자로 정착했다. 같은 해 신 스트라이크 존 도입에도 맹타를 휘둘러, 타율 .340으로 수위 타자를 획득했다.
2003년에는 팀 사정으로 3루수로 전향했다. 시즌 내내 수위 타자 경쟁을 벌였고 타율 .360이라는 고타율로 2년 연속 수위 타자를 획득함과 동시에 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획득했다. 또한, 31홈런(리그 7위), 100타점(리그 7위)을 기록하여 2000년부터 4년 연속 3할, 30홈런을 달성했다.
2004년는 오른쪽 제12 늑골 골절과 아테네 올림픽 출전의 영향으로, 홈런, 타점은 규정 타석 도달 연도에서 과거 최저를 기록했다. 그래도 타율은 .345(리그 2위)로 5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 또한 타율 .345를 기록하여 4년 연속으로 타율 .33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2005년에는 자기 최다인 37홈런을 기록했지만, 6년 만에 타율 3할을 밑돌았다. 삼진도 자기 최다인 114삼진을 기록했다.
2006년은 주로 1루를 지키며, 타율 .313, 32홈런, 100타점으로 홈런, 타점의 2관왕 및 본인 첫 퍼시픽 리그MVP에도 빛났다.
2007년, 개막전에 "3번·3루"로 선발 출장했다. 최종적으로는 2년 연속 3할 30홈런을 달성했다.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MVP를 획득했다. 세-퍼 양 리그에서 MVP를 수상한 것은 에가와 유타카 이후 2번째이며, 야수로는 사상 첫 수상이었다. 게다가, 리그를 넘나들며 2년 연속 MVP 획득 또한 사상 최초이다.
2008년 9월 3일의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 (오사카 돔)에서 사상 62번째(사상 66번째, 구단 사상 5번째) 사이클 안타를 달성했다.
2009년은 부동의 3번 타자로서 안정된 활약을 보이며, 팀의 리그 3연패에 기여했다. 이적 후 첫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타점은 커리어 하이).
2010년 최종적으로 이 해에도 3할 30홈런을 기록했고, 이적 후 4년 연속 3할 30홈런과 오 사다하루의 18년 연속,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13년 연속에 이은 11년 연속 OPS.900 이상을 달성했다.
2011년은 1루수에 고정되었다. 타율 .242, 5홈런, 20타점으로, 13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쳤다.
2012년 프로 입단 이후 최소인 34경기 출전에 그쳤고, 타율 .152, 15년 만에 시즌 무홈런을 기록했다.
2013년 22경기 출전에 타율 .250, 홈런 1개에 그쳤다.
2014년 타석 수는 100타석에 미치지 못했지만 타율 .301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다.
2015년 타율 .294를 기록했다.
| 연 도 | 소 속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자 | 희 생 번 | 희 생 플 | 볼 넷 | 고 4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 1997년 | 닛폰햄 | 44 | 98 | 94 | 7 | 21 | 10 | 2 | 0 | 35 | 7 | 1 | 0 | 0 | 1 | 3 | 0 | 0 | 10 | 2 | .223 | .245 | .372 | .617 |
| 1998년 | 71 | 98 | 86 | 7 | 26 | 5 | 0 | 1 | 34 | 9 | 1 | 1 | 0 | 1 | 11 | 1 | 0 | 17 | 3 | .302 | .378 | .395 | .773 | |
| 1999년 | 135 | 608 | 547 | 90 | 156 | 34 | 4 | 25 | 273 | 83 | 3 | 4 | 0 | 4 | 56 | 1 | 0 | 84 | 6 | .285 | .349 | .499 | .848 | |
| 2000년 | 135 | 635 | 554 | 126 | 182 | 23 | 4 | 31 | 306 | 102 | 24 | 6 | 0 | 5 | 74 | 2 | 2 | 91 | 6 | .329 | .406 | .552 | .959 | |
| 2001년 | 140 | 643 | 576 | 108 | 195 | 40 | 2 | 32 | 335 | 86 | 1 | 6 | 0 | 0 | 63 | 7 | 4 | 102 | 8 | .339 | .407 | .582 | .989 | |
| 2002년 | 135 | 574 | 486 | 77 | 165 | 27 | 2 | 32 | 292 | 81 | 8 | 1 | 0 | 6 | 76 | 14 | 6 | 77 | 6 | .340 | .430 | .601 | 1.031 | |
| 2003년 | 128 | 546 | 445 | 83 | 160 | 34 | 1 | 31 | 289 | 100 | 8 | 3 | 0 | 3 | 93 | 12 | 5 | 65 | 13 | .360 | .473 | .649 | 1.122 | |
| 2004년 | 101 | 452 | 377 | 78 | 130 | 19 | 2 | 18 | 207 | 70 | 3 | 1 | 0 | 2 | 70 | 3 | 3 | 70 | 10 | .345 | .449 | .549 | .998 | |
| 2005년 | 133 | 580 | 514 | 91 | 145 | 27 | 2 | 37 | 287 | 92 | 2 | 1 | 0 | 1 | 61 | 3 | 4 | 114 | 8 | .282 | .362 | .558 | .920 | |
| 2006년 | 135 | 579 | 496 | 77 | 155 | 31 | 1 | 32 | 284 | 100 | 4 | 3 | 0 | 8 | 73 | 5 | 2 | 85 | 8 | .313 | .397 | .573 | .970 | |
| 2007년 | 요미우리 | 142 | 617 | 566 | 95 | 177 | 33 | 1 | 31 | 305 | 88 | 4 | 0 | 0 | 4 | 43 | 5 | 4 | 98 | 10 | .313 | .363 | .539 | .902 |
| 2008년 | 144 | 589 | 520 | 93 | 161 | 27 | 1 | 36 | 298 | 96 | 0 | 2 | 1 | 5 | 56 | 8 | 7 | 105 | 14 | .310 | .381 | .573 | .954 | |
| 2009년 | 139 | 580 | 514 | 78 | 159 | 25 | 1 | 31 | 279 | 107 | 2 | 1 | 0 | 2 | 60 | 2 | 4 | 107 | 8 | .309 | .384 | .543 | .927 | |
| 2010년 | 137 | 591 | 510 | 83 | 157 | 24 | 1 | 34 | 285 | 90 | 1 | 0 | 0 | 5 | 73 | 2 | 3 | 101 | 9 | .308 | .394 | .559 | .953 | |
| 2011년 | 83 | 314 | 281 | 21 | 68 | 12 | 0 | 5 | 95 | 20 | 1 | 3 | 0 | 2 | 27 | 1 | 4 | 66 | 4 | .242 | .315 | .338 | .653 | |
| 2012년 | 34 | 99 | 92 | 4 | 14 | 3 | 0 | 0 | 17 | 4 | 0 | 0 | 1 | 1 | 5 | 0 | 0 | 22 | 1 | .152 | .194 | .185 | .379 | |
| 2013년 | 22 | 40 | 36 | 2 | 9 | 2 | 0 | 1 | 14 | 8 | 0 | 1 | 0 | 1 | 2 | 0 | 1 | 7 | 2 | .250 | .300 | .389 | .689 | |
| 2014년 | 주니치 | 81 | 99 | 83 | 4 | 25 | 6 | 0 | 1 | 34 | 18 | 0 | 0 | 0 | 1 | 14 | 1 | 1 | 16 | 1 | .301 | .404 | .410 | .814 |
| 2015년 | 53 | 59 | 51 | 2 | 15 | 3 | 0 | 0 | 18 | 8 | 0 | 0 | 0 | 1 | 7 | 1 | 0 | 10 | 1 | .294 | .373 | .353 | .726 | |
| 통산:19년 | 1992 | 7801 | 6828 | 1126 | 2120 | 385 | 24 | 378 | 3687 | 1169 | 63 | 33 | 2 | 53 | 867 | 68 | 50 | 1247 | 120 | .310 | .389 | .540 | .932 |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2005년을 제외하고 2000년부터 2010년까지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한 정교한 타자이면서, 꾸준히 30개 이상 홈런을 쳐내는 장타력도 겸비했다.
6.2. 수비 및 주루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1루수와 3루수로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수비 능력을 갖췄다. 1루수로는 5차례, 3루수로는 1차례 선정되었다. 2000년에는 24개의 도루를 기록했지만, 부상 이후 도루 개수는 감소했다. 두 자릿수 도루는 2000년 뿐이다.
| 연도 | 1루 | 3루 |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1999 | 135 | 1222 | 80 | 9 | 106 | .993 | - | |||||
| 2000 | 135 | 1157 | 67 | 5 | 115 | .996 | - | |||||
| 2001 | 140 | 1281 | 70 | 4 | 116 | .997 | - | |||||
| 2002 | 135 | 1192 | 76 | 6 | 92 | .995 | - | |||||
| 2003 | - | 115 | 89 | 203 | 14 | 28 | .954 | |||||
| 2004 | 5 | 40 | 2 | 0 | 2 | 1.000 | 93 | 70 | 158 | 15 | 8 | .938 |
| 2005 | - | 133 | 100 | 235 | 12 | 28 | .965 | |||||
| 2006 | 120 | 917 | 61 | 4 | 95 | .996 | 39 | 16 | 56 | 4 | 6 | .947 |
| 2007 | 7 | 33 | 1 | 0 | 3 | 1.000 | 139 | 90 | 250 | 11 | 15 | .969 |
| 2008 | 100 | 807 | 54 | 6 | 53 | .993 | 41 | 27 | 53 | 3 | 5 | .964 |
| 2009 | 50 | 216 | 7 | 0 | 19 | 1.000 | 123 | 65 | 163 | 10 | 13 | .958 |
| 2010 | 49 | 310 | 21 | 2 | 28 | .994 | 102 | 71 | 171 | 15 | 19 | .942 |
| 2011 | 79 | 679 | 36 | 1 | 55 | .999 | 9 | 5 | 9 | 0 | 0 | 1.000 |
| 2012 | 27 | 202 | 16 | 0 | 14 | 1.000 | - | |||||
| 2013 | 7 | 22 | 1 | 0 | 2 | 1.000 | - | |||||
| 2014 | 5 | 23 | 3 | 0 | 3 | 1.000 | - | |||||
| 통산 | 997 | 8103 | 495 | 37 | 703 | .996 | 753 | 506 | 1245 | 80 | 117 | .956 |
7. 수상 및 타이틀 경력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고, 제1회 및 제2회 WBC에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일본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2006년 WBC 결승전에서는 3타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2005년 제외)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했으며, 30개 이상 홈런을 쳐내는 장타력도 겸비한 선수였다. 통산 타율은 역대 9위(.310)에 해당하며, 3할 30홈런을 9번 달성하여 왕정치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타율 |
|---|---|---|---|---|---|---|---|
| 1997 | 닛폰햄 | 44 | 94 | 21 | 2 | 7 | .223 | |
| 71 | 86 | 26 | 1 | 9 | .302 | ||
| 135 | 547 | 156 | 25 | 83 | .285 | ||
| 135 | 554 | 182 | 31 | 102 | .329 | ||
| 140 | 576 | 195 | 32 | 86 | .339 | ||
| 135 | 486 | 165 | 32 | 81 | .340 | ||
| 128 | 445 | 160 | 31 | 100 | .360 | ||
| 101 | 377 | 130 | 18 | 70 | .345 | ||
| 133 | 514 | 145 | 37 | 92 | .282 | ||
| 135 | 496 | 155 | 32 | 100 | .313 | ||
| 2007 | 요미우리 | 142 | 566 | 177 | 31 | 88 | .313 | |
| 144 | 520 | 161 | 36 | 96 | .310 | ||
| 139 | 514 | 159 | 31 | 107 | .309 | ||
| 137 | 510 | 157 | 34 | 90 | .308 | ||
| 83 | 281 | 68 | 5 | 20 | .242 | ||
| 34 | 92 | 14 | 0 | 4 | .152 | ||
| 22 | 36 | 9 | 1 | 8 | .250 | ||
| 2014 | 주니치 | 81 | 83 | 25 | 1 | 18 | .301 | |
| 53 | 51 | 15 | 0 | 8 | .294 | ||
| 통산:19년 | 1992 || 6828 || 2120 || 378 || 1169 || .310 | |||||||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니혼햄 시절 타격 코치였던 가토 에이지의 영향을 받은 큰 자세(신주 타법)에서 풀 스윙을 하는 타격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니혼햄 시절에는 감독 우에다 토시하루의 방침으로 2번 타자로 기용되기도 했으며, 2008년 6월 8일까지 공식 경기에서 희생 번트 성공이 없었다. 2006년 WBC에서는 희생 번트를 성공시킨 적이 있다.
7.1. 타이틀
* 수위 타자: 2회(2002년, 2003년)
* 홈런왕: 1회(2006년)
* 타점왕: 1회(2006년)
* 최다 안타: 2회(2000년, 2001년)
* 최고 출루율: 1회(2003년)
7.2. 수상
* MVP: 2회(2006년, 2007년)
양 리그 MVP 획득은 에나츠 유타카 이후 2번째이며, 리그를 넘나들며 2년 연속 수상은 사상 최초이다.
* 베스트 나인: 7회(1999년, 2001년, 2003년, 2004년, 2006년, 2007년, 2009년)
* 골든 글러브상: 6회(1999년 ~ 2003년, 2006년)
* 월간 MVP: 8회(2000년 8월, 2001년 8월, 2002년 4월, 2003년 5월, 2004년 7월, 2008년 9월, 2009년 5월, 2010년 3·4월)
* 도쿄 돔 MVP: 6회(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8년)
* 퍼시픽 리그 회장 특별상(2000년)
* IBM 플레이어오브더이어상: 1회(2000년)
*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야구 부문 센트럴 리그): 1회(2008년)
* 골든 스피릿상(2009년)
* "조지아 혼" 상: 1회 (2013년 제5회)
* 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표창: 1회 (공로상: 2015년)
* 출신지별 동서 대항전 우수 선수: 1회 (2001년)
* 베스트 파더 옐로 리본 상 in "프로 야구 부문" (2008년)
* 야나세・자이언츠 MVP상: 1회 (2008년)
* 월간 앳홈 클러치 히어로상: 1회 (2013년 6월)
* 지바시 시민 영예상: 3회 (2004년, 2006년, 2009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멤버로서 동메달 획득, 제1회・제2회 WBC 일본 대표팀 멤버로서 우승을 기념하여 수여함.
* 이치카와시 시민 영예상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멤버로서 동메달 획득을 기념하여 수여함.
* 지바현 지사상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멤버로서 동메달 획득을 기념하여 수여함.
8. 기타
별명은 갓츠이다. 닛폰햄 시절 팀 동료였던 이와모토 츠토무, 우에다 요시노리, 카타오카 아츠시, 타테야마 요시노리, 카네무라 아키라, 카네코 마코토 6명이 지어준 별명이다. 합동 미팅 자리에서 먹는 것과 여성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갓츠 군"이라고 부른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새끼 손가락이 골절된 상태에서 홈런을 친 것을 계기로 "근성이 있다"는 의미로 이 별명이 정착되었다.
"고독한 사무라이"라는 이명도 가지고 있었다.
야구 외적으로는 도쿄도오가사와라 촌의 관광 친선 대사로 1999년 12월 25일에 취임하여, 섬의 소년 야구팀에 유니폼을 선물하거나, 동 촌의 교류 사업에 참가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사생활에서는 두 딸이 있으며, 장녀인 마유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2009년 WBC에서 등번호 9번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