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준지
1. 개요
오가와 준지는 일본의 전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하다가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코치와 2군 감독을 거쳐 2010년 감독 대행,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정식 감독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1군 감독으로 복귀하여 팀을 재건했으나, 201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감독에서 물러났다. 이후 제너럴 매니저로 프런트에서 활동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오가와 준지 |
|---|---|
| 원어 이름 | 小川 淳司 |
| 로마자 표기 | Ogawa Junji |
| 출생일 | 1957년 8월 30일 |
| 출생지 | 지바현 나라시노시 |
| 신장 | 186 |
| 체중 | 89 |
| 포지션 | 외야수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프로 입단 연도 | 1981년 |
|---|---|
| 드래프트 순위 | 4순위 |
| 첫 출장 | 1982년 4월 10일 |
| 마지막 경기 | 1992년 10월 13일 |
| 선수 생활 | 가와이 악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1982 ~ 199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1992) |
| 감독 및 코치 | 야쿠르트 스왈로스(1996 ~ 2014, 2018 ~ 2019) |
|---|---|
| 야쿠르트 스왈로스 단장 | 2020 ~ |
| 팀 | 선수 야쿠르트 스왈로스 (–) 닛폰-햄 파이터스 () 감독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코치 야쿠르트 스왈로스/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 |
|---|---|
| 등번호 | 80 |
| 타격 | 우타 |
| 투구 | 우투 |
| 데뷔일 | 1982년 4월 10일 |
| 데뷔팀 | 야쿠르트 스왈로스 |
| 마지막 경기일 | 1992년 10월 13일 |
| 마지막 팀 | 닛폰-햄 파이터스 |
| 타율 | .236 |
| 홈런 | 66 |
| 안타 | 412 |
-
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일본 프로 야구 외야수 -
다케우치 신이치
다케우치 신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내야수와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2018년 은퇴 후에는 야쿠르트 구단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 프로 야구 외야수 -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MVP를 수상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도류 야구 선수이다. -
주오 대학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주오 대학 동문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2. 선수 경력
프로 1년차부터 주로 대타나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지만, 타고난 장타력을 바탕으로 세 차례나 1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991년 방출 통보를 받은 후, 1992년 스미 미쓰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그 해 현역에서 은퇴했다.
가케후는 한신의 주력 타자로 오랫동안 활약했기 때문에, 오가와가 야쿠르트에 입단한 후에도 공식전에서 자주 대전했다. 오가와는 고등학교 시절의 가케후에 대해 "말도 못했지만, 존재는 의식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프로에서 유일한 만루 홈런은 1988년 10월 10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한신과의 경기에서 9회에 맷 키오를 상대로 기록했으며, 그 경기는 가케후의 은퇴 경기였다.
제5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서, 오가와는 2경기째(3회전) 다음 날부터 3일 연속 우천 순연으로 준준결승에 4일 휴식 후 등판했다. 준결승 다음 날 예정되었던 결승도 이틀 연속 우천 중지되었다. 오가와는 제103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2021년) 기간 중, "준결승을 마친 밤에는 어깨가 아팠는데, 결승이 이틀 연속 중지되면서 노스로우로 보낸 후 결승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더불어 고교 야구 지도자들에게 "선수들의 '경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잘 전환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성실한 성격으로, 연습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공을 줍는 모습에 세키네 준조 감독이 "오가와를 본받아라!"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2.1. 프로 입단 전
지바현 나라시노시 출신으로, 나리시노 시립 나리시노 고등학교 시절 팀의 중심 투수로 활약하며 제5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주오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 통산 98경기에 출장, 351타수 80안타, 타율 2할 2푼 8리, 5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회인 야구팀인 가와이 악기에서 활동하다가 198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3루수였으나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나리시노 시립 나리시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체격이 크고 어깨가 강했기 때문에 진학 직후에는 포수로 활동했지만, 팀 내 부상 선수 발생으로 1학년 가을부터 투수로 전향했다. 늑간 신경통을 앓으면서도 훈련을 거듭하여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2학년 때 여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지바 대회 4회전에서 지바현립 쵸시 상업고등학교와 맞붙었으나 0대 2로 패했다. 하지만 나리시노 고등학교는 가을 관동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하여 이듬해 제47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오가와는 오키나와현립 토미구스쿠 고등학교와의 1회전에서 아카미네 켄유와 맞붙었지만, 팀은 첫 경기에서 패했다.
3학년 여름의 제57회 선수권 지바 대회에서는 시노즈카 토시오가 있는 쵸시 상업고등학교와 다시 대결, 자신의 2점 홈런 등으로 설욕에 성공했고, 결승에서 지바현립 키미츠 고등학교를 꺾고 본 대회 출전을 확정지었다. 본 대회에서는 5경기에서 완투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3회전부터 준결승까지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했다. 준결승에서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했지만, 에히메현립 니이하마 상업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 10안타를 맞고 4실점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9회말 사요나라 승리로 8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후 전일본 고교 선발팀의 일원으로 미국 원정에 참가했고, 귀국 후 미에 국체 결승에서 니이하마 상업고등학교를 다시 꺾고 우승했다.
츄오 대학에서는 외야수로 전향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전에서 통산 98경기에 출전, 타율 0.228(351타수 80안타), 5홈런, 39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4학년 때 봄철 리그전에서는 에이스 카사카 히데노리와 함께 팀의 5년 만의 우승을 이끌었고,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미일 대학 야구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어 하라 타츠노리, 오카다 아키노부와 함께 중심 타선을 맡았다.
대학 졸업 후 카와이 악기에 입사,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2년 연속 출전했다.
2.2. 프로 선수 시절
지바현 나라시노시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팀의 중심 투수로 활약하여 제5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주오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 통산 98경기에 출장, 351타수 80안타, 타율 2할 2푼 8리, 5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가와이 악기에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198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4순위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프로 선수 시절 초기에는 주로 대타나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지만, 타고난 장타력을 바탕으로 세 차례나 11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1991년 방출 통보를 받은 후, 1992년 스미 미쓰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그 해 현역에서 은퇴했다.
;프로팀 경력
* 야쿠르트 스왈로스(1982년 ~ 1991년)
* 닛폰햄 파이터스(1992년)
1982년부터 1군에 정착했지만, 처음에는 좌완 투수가 등판하는 경우에만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1983년 8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전(고라쿠엔 구장)에서는, 동점으로 맞이한 9회초 2사에서 좌완 투수인 코사카(중앙대학교 출신으로 드래프트 외로 1980년에 입단)가 구원 등판하는 타이밍에 대타로 기용되었지만 범타로 물러났다. 그 뒤 거인이 끝내기 승리를 거두면서 코사카는 1군 공식전에서 생애 유일한 승리를 거두었다.
1984년과 1985년에는 우익수로 주전 자리를 굳혔다. 1986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타격 부진을 겪었다. 1987년 이후에는 아라이 유키오의 입단, 내야수였던 히로사와 가쓰미의 외야 전향 등의 영향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1992년 시즌 중 스미 요리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했지만,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는 장타력과 강한 어깨를 가진 선수였다. 야쿠르트에서 주전 우익수로 활약하던 1984년과 1985년에는 1군 공식 경기에서 두 자릿수 홈런(모두 11개)을 기록했지만, 타율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입단 초기와 1987년 이후에는 좌완 투수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거나 경기 후반 수비 강화를 위해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에도 1군 공식 경기에서 1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990年일본어에는 1군 공식 경기에서 기록한 13안타 중 7개가 홈런일 정도로 현역 생활 후반까지 장타력을 유지했다.
3. 지도자 경력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친정팀 야쿠르트에서 2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9년 동안 야쿠르트의 2군 감독을 맡았다. 2008년 다카다 시게루 감독 취임 후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 2010년 5월 27일 다카다 감독이 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을 맡아, 6월에 14승 8패(승률 6할대)의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최종 4위로 A클래스(1~3위)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와카마쓰 쓰토무 감독 시절인 2004년 이후 6년 만에 정규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했다.
구단은 팀 재건에 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2011년부터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고 2년 계약을 맺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8년 ~ 2019년 다시 감독을 맡았으며, 2020년부터는 총괄 매니저(단장)를 맡고 있다.
* 야쿠르트 스왈로스 2군 수비 주루 코치 (1996년 ~ 1998년)
* 야쿠르트 스왈로스 2군 감독 (1999년 ~ 2007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군 수석 코치 (2008년 ~ 2010년 5월 26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 대행 (2010년 5월 27일 ~ 2010년 시즌 종료)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 (2011년 ~ 2014년, 2018년 ~ 2019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총괄 매니저(단장) (2020년 ~ )
감독 대행 시절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구단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
| 2010 | 야쿠르트 | 4 | 98 | 59 | 36 | 3 | .621 |
| 통산: 1년 | B클래스 1회 | ||||||
3.1. 야쿠르트 스왈로스 코치 및 감독 시절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친정팀 야쿠르트의 2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9년 동안 야쿠르트의 2군 감독을 맡았다. 2008년 다카다 시게루 감독 취임 후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 2010년 5월 27일부터 다카다 감독이 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을 맡아, 6월에 14승 8패(승률 6할대)의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최종 4위로 A클래스(1~3위)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와카마쓰 쓰토무 감독 시절인 2004년 이후 6년 만에 정규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했다.
구단은 팀 재건에 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2011년부터 오가와 준지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고 2년 계약을 맺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감독 대행 시절을 포함한 야쿠르트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구단 | 순위 | 경기 | 승리 | 패전 | 무승부 | 승률 |
|---|---|---|---|---|---|---|---|
| 2010 | 야쿠르트 | 4 | 98 | 59 | 36 | 3 | .621 |
| 통산: 1년 | B클래스 1회 | ||||||
3.2. 감독으로서의 특징
오가와 준지는 선수 시절부터 코치, 감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역 시절에는 주로 대타와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지만,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서 세 차례나 11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친정팀인 야쿠르트에서 2군 코치와 감독을 역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2010년 5월 27일부터 다카다 시게루 감독의 사임으로 감독 대행을 맡아 6월에 14승 8패(승률 6할대)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비록 팀은 최종 순위 4위로 A클래스(1~3위)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와카마쓰 쓰토무 감독 시절인 2004년 이후 6년 만에 정규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2011년부터는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야쿠르트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여 2년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4년 시즌 종료 후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4. 상세 정보
지바현 나라시노시 출신으로, 나라시노 시립 나라시노 고등학교 시절 팀의 중심 투수로 활약하여 제5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주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 가와이 악기에서 활동하다가 198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프로 1년 차부터 1군에서 뛰었지만 주로 대타 및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다.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서 세 차례나 11개 홈런을 기록했다. 1991년 방출 통보를 받고 1992년 스미 미쓰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은퇴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야쿠르트에서 2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9년 동안 야쿠르트 2군 감독을 맡았다. 2008년 다카다 시게루 감독 취임 후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 2010년 5월 27일부터 다카다 감독이 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을 맡아 6월에는 14승 8패, 승률 6할대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팀은 최종 4위에 그쳤다. 와카마쓰 쓰토무 감독 시절인 2004년 이후 6년 만에 정규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했다.
구단은 팀 재건에 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2011년부터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키고 2년 계약을 맺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4.1. 출신 학교
* 나라시노 시립 나라시노 고등학교
* 주오 대학
지바현 나라시노시 출신의 오가와 준지는 중학교 시절 3루수였으나 큰 실적을 남기지 못하고 지역 학교인 나리시노 시립 나리시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체격이 좋고 어깨가 강했기 때문에 진학 직후 포수로 활동하다가, 1학년 가을부터 투수로 전향했다. 2학년 때 제5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지바 대회 4회전에서 지바현립 쵸시 상업고등학교에게 패했지만, 이듬해 제47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오키나와현립 토미구스쿠 고등학교와 맞붙었으나 팀은 첫 경기에서 패했다.
3학년 여름, 제57회 선수권 지바 대회에서 시노즈카 토시오가 있는 지바현립 쵸시 상업고등학교를 꺾고 결승에서 지바현립 키미츠 고등학교를 누르며 본 대회 출전을 결정했다. 본 대회 결승까지 5경기에서 완투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후 전일본 고교 선발팀 일원으로 미국 원정에 동행했고, 귀국 후 미에 국체 고등학교 야구 결승에서 에히메현립 니이하마 상업고등학교를 꺾고 우승했다.
츄오 대학에서 외야수로 전향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전 통산 98경기에 출전, 타율 0.228(351타수 80안타), 5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4학년 봄철 리그전과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미일 대학 야구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4.2. 선수 경력
지바현 나라시노시 출신으로, 고교 시절 팀의 중심 투수로 활약하여 제5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주오 대학 진학 후 도토 대학 야구 리그 통산 98경기에 출장, 351타수 80안타, 타율 2할 2푼 8리, 5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가와이 악기에서 활동하다가 198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프로 1년차부터 1군에서 뛰었지만, 주로 대타나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서 세 차례나 11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1년 방출 통보를 받고, 이듬해인 1992년 스미 미쓰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같은 해 현역에서 은퇴했다.
; 사회인 시대
* 가와이 악기
; 프로팀 경력
* 야쿠르트 스왈로스 (1982년 ~ 1991년)
* 닛폰햄 파이터스 (1992년)
; 개인 기록
| 기록 종류 | 내용 |
|---|---|
| 첫 출장 | 1982년 4월 10일, 대 한신 타이거스 1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7회초에 스기무라 시게루의 대타로 출장, 고바야시 시게루 앞에서 범퇴 |
| 첫 선발 출장 | 1982년 5월 2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9차전(고라쿠엔 구장), 8번·좌익수로 선발 출장 |
| 첫 안타 | 상동, 3회초에 니우라 히사오로부터 단타 |
| 첫 타점 | 1982년 6월 22일, 대 한신 타이거스 15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1회말에 후쿠야 마사아키로부터 2점 적시타 |
| 첫 홈런 | 1982년 7월 18일, 대 주니치 드래곤스 13차전(나고야 구장), 9회초에 우시지마 가즈히코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 |
; 연도별 타격 성적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82년 | 야쿠르트 | 85 | 201 | 197 | 12 | 42 | 4 | 0 | 3 | 55 | 16 | 2 | 1 | 1 | 1 | 2 | 0 | 0 | 39 | 4 | .213 | .220 | .279 | .499 |
| 1983년 | 71 | 132 | 131 | 13 | 33 | 5 | 0 | 4 | 50 | 13 | 0 | 1 | 0 | 0 | 1 | 0 | 0 | 28 | 0 | .252 | .258 | .382 | .640 | |
| 1984년 | 115 | 303 | 278 | 34 | 70 | 11 | 2 | 11 | 118 | 35 | 0 | 2 | 4 | 3 | 17 | 4 | 1 | 49 | 3 | .252 | .294 | .424 | .718 | |
| 1985년 | 118 | 369 | 335 | 41 | 80 | 13 | 1 | 11 | 128 | 30 | 0 | 1 | 2 | 3 | 27 | 1 | 2 | 80 | 4 | .239 | .297 | .382 | .679 | |
| 1986년 | 94 | 91 | 87 | 10 | 16 | 3 | 0 | 3 | 28 | 10 | 3 | 1 | 1 | 2 | 1 | 0 | 0 | 34 | 3 | .184 | .189 | .322 | .511 | |
| 1987년 | 113 | 245 | 229 | 32 | 55 | 5 | 3 | 11 | 99 | 31 | 2 | 2 | 2 | 1 | 13 | 0 | 0 | 48 | 5 | .240 | .280 | .432 | .712 | |
| 1988년 | 103 | 229 | 207 | 28 | 60 | 16 | 1 | 8 | 102 | 24 | 2 | 1 | 4 | 2 | 15 | 0 | 1 | 51 | 0 | .290 | .338 | .493 | .831 | |
| 1989년 | 95 | 122 | 106 | 11 | 28 | 8 | 0 | 4 | 48 | 13 | 3 | 4 | 1 | 0 | 14 | 1 | 1 | 24 | 3 | .264 | .355 | .453 | .808 | |
| 1990년 | 50 | 90 | 77 | 11 | 13 | 1 | 0 | 7 | 35 | 15 | 1 | 0 | 1 | 0 | 12 | 0 | 0 | 22 | 6 | .169 | .281 | .455 | .736 | |
| 1991년 | 49 | 57 | 52 | 6 | 8 | 0 | 0 | 2 | 14 | 5 | 0 | 0 | 2 | 0 | 3 | 1 | 0 | 15 | 0 | .154 | .200 | .269 | .469 | |
| 1992년 | 닛폰햄 | 47 | 58 | 48 | 5 | 7 | 0 | 0 | 2 | 13 | 3 | 0 | 0 | 6 | 0 | 3 | 0 | 1 | 16 | 0 | .146 | .212 | .271 | .483 |
| NPB: 11년 | 940 | 1897 | 1747 | 203 | 412 | 66 | 7 | 66 | 690 | 195 | 13 | 13 | 24 | 12 | 108 | 7 | 6 | 406 | 28 | .236 | .281 | .395 | .676 | |
4.3. 지도자 경력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친정팀 야쿠르트에서 2군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9년 동안 야쿠르트 2군 감독을 맡았다. 2008년부터 다카다 시게루 감독 취임 후 1군 수석 코치로 승격했다. 2010년 5월 27일부터 다카다 감독이 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면서 감독 대행을 맡아 6월에는 14승 8패, 승률 6할대의 성적을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겼지만, 팀은 최종 4위에 그쳤다. 그래도 와카마쓰 쓰토무 감독 시절인 2004년 이후 6년 만에 정규 시즌 승률 5할 이상을 달성했다.
이후 구단은 팀 재건에 대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2011년부터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키고 2년 계약을 맺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야쿠르트 스왈로스 2군 수비 주루 코치 (1996년 ~ 1998년)
* 야쿠르트 스왈로스 2군 감독 (1999년 ~ 2007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군 수석 코치 (2008년 ~ 2010년 5월 26일)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 대행 (2010년 5월 27일 ~ 2010 시즌 종료)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 (2011년 ~ 2014년, 2018년 ~ 2019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총괄 매니저(단장) (2020년 ~ )
| 연도 | 소속 | 경기명 | 상대팀 | 성적 |
|---|---|---|---|---|
| 2011년 | 야쿠르트 |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요미우리 자이언츠(센트럴 리그 3위) | 2승 1패 =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
|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 주니치(센트럴 리그 1위) | 2승 4패 = 탈락(※1) | ||
| 2012년 |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주니치(센트럴 리그 2위) | 1승 2패 = 탈락 | |
| 2018년 |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 요미우리 자이언츠(센트럴 리그 3위) | 0승 2패 = 탈락 |
* 성적에서의 굵은 글씨는 승리한 것을 나타냄
* (※1) 리그 우승 구단에게 주어지는 어드밴티지에 의한 1패를 포함
4.4. 프런트 경력
지바현 나라시노시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 팀의 중심 투수로 활약하며 제5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주오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 통산 98경기에 출장, 351타수 80안타, 타율 2할 2푼 8리, 5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 가와이 악기에서 활동하다 198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프로 1년차부터 1군에서 뛰었지만, 주로 대타 및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장타력을 갖춘 타자로서 세 차례나 11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1년 방출 통보를 받고 이듬해인 1992년 스미 미쓰오와의 맞트레이드로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같은 해 현역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