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삼국지)
1. 개요
신의는 삼국 시대 위나라의 무장으로, 형 신탐과 함께 조조에게 협력하다가 유봉과 맹달에게 투항했다. 유비에게 건신장군과 서성 태수로 임명되었으나, 맹달이 위나라에 귀순하자 다시 위나라에 붙어 유봉을 몰아냈다. 맹달과 사이가 좋지 않아 맹달의 촉나라 내통 사실을 고발하여, 사마의가 토벌에 나서 맹달이 처형되었다. 이후 국경 지역에서 권세가 커지자 낙양으로 소환되어 누선장군으로 전임되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방릉 도위로 등장하며, 맹달과 함께 위나라에 항복하고 사마의와 내응하여 맹달을 공격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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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조위의 장군 -
하후돈
하후돈은 후한 말기부터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조조의 사촌이자 그의 거병 때부터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연주 전투에서 왼쪽 눈을 잃어 "애꾸눈 하후"라는 별명을 얻었고, 군사적 능력과 청렴한 성품으로 조조의 신임을 받아 사후 조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
조위의 장군 -
두예
두예는 서진 시대의 장군이자 학자로, 촉한 정벌에 참여하고 오나라 정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춘추좌씨전》 연구에 깊이 있는 학자였다. -
유비 휘하의 장군 -
제갈량
제갈량은 삼국 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한에 합류하여 승상이 되었고, 섭정으로서 남정을 통해 촉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북벌을 통해 위나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법치주의와 인재 등용을 중시하고 경제 정책을 통해 국력을 강화했다. -
유비 휘하의 장군 -
관우
관우는 후한 말기 ~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이자 정치인으로,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로서 유비를 보좌하며 뛰어난 무예와 충절로 이름을 알렸으나, 손권의 계략으로 최후를 맞이한 후 동아시아에서 신으로 숭배받고 대중문화에서 영웅적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강직함과 자만심이 정치적 판단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2. 생애
형 신탐과 함께 한중군 동부 일대에서 세력을 모으고 조조에게 협조하였다. 219년 (건안 24년) 촉나라에서 쳐들어온 유봉과 맹달에게 투항하여 자리를 보전하였고, 유비에게서 건신장군(建信將軍) 겸 서성태수에 임명되었다. 220년 (황초 원년) 위나라에 귀순한 맹달이 하후상, 서황과 함께 상용으로 진격해오자 다시 위나라에 붙어 유봉을 축출했다. 이 공으로 위흥태수를 유지하고 형의 작위였던 원향후(員鄕侯)에 봉해졌다.
신의는 맹달과 사이가 좋지 않아, 맹달이 촉한과 내통하고 있다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 227년 섣달(태화 원년)부터 228년 정월에 걸쳐 사마의가 맹달을 토벌하러 왔을 때, 신의는 촉나라의 구원군을 막았고, 결국 맹달은 처형되었다.
사마의는 신의가 오랫동안 위흥이라는 벽지에서 위세를 떨치며 칙명이라고 칭하며 제멋대로 명령을 내린 것을 알고, 맹달 토벌을 핑계로 신의를 불러 체포해 수도로 압송했다. 《삼국지》 유봉전 주석 《위략》에 따르면, 맹달 토벌 후 신의는 사마의의 권유로 상락하여 누선장군에 임명되어 제후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2.1. 위나라 귀순과 맹달과의 갈등
219년(건안 24년) 촉나라에서 쳐들어온 유봉과 맹달에게 투항하여 자리를 보전하였다. 유비로부터 건신장군(建信將軍) 겸 서성태수에 임명되었다. 220년(황초 원년) 위나라에 귀순한 맹달이 하후상, 서황과 더불어 상용으로 진격해오자 재차 위나라에 붙어 유봉을 축출했다. 이 공적으로 위흥태수를 유지하고 형의 작위였던 원향후(員鄕侯)에 봉해졌다.
조비 사후 신성태수 맹달이 촉나라와 내통하였다. 맹달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신의는 이 사실을 수차례 중앙에 알렸고, 독형예이주제군사(督荊豫二州諸軍事)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러 왔다. 227년 섣달(태화 원년)부터 228년 정월에 걸친 전투 동안 신의는 촉나라의 구원군을 막았고 결국 맹달은 처형되었다.
2.2. 맹달 토벌과 중앙 진출
219년(건안 24년) 형 신탐과 함께 한중군 동부 일대에서 세력을 모아 조조에게 협조하였다. 촉나라에서 쳐들어온 유봉과 맹달에게 투항하여 자리를 보전하였고, 유비에게서 건신장군(建信將軍) 겸 서성태수에 임명되었다. 220년(황초 원년) 위나라에 귀순한 맹달이 하후상, 서황과 함께 상용으로 진격해오자 다시 위나라에 붙어 유봉을 축출했다. 이 공으로 위흥태수를 유지하고 형의 작위였던 원향후(員鄕侯)에 봉해졌다.
신의는 맹달과 사이가 좋지 않아, 맹달이 촉한과 내통하고 있다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 227년 섣달(태화 원년)부터 228년 정월에 걸쳐 사마의가 맹달을 토벌하러 왔을 때, 신의는 촉나라의 구원군을 막았고, 결국 맹달은 처형되었다.
사마의는 신의가 오랫동안 위흥이라는 벽지에서 위세를 떨치며 칙명이라고 칭하며 제멋대로 명령을 내린것을 알고, 맹달 토벌의 봉하를 핑계로 신의를 초빙하여 그를 체포해 수도로 압송했다. 《삼국지》 유봉전 주석 《위략》에 따르면, 맹달 토벌 후 신의는 사마의의 권유로 상락하여 누선장군에 임명되어 제후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고 한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신의는 방릉도위로 처음 등장한다. 맹달, 형 신탐과 함께 위나라에 귀순할 계획을 세운다. 먼저 위나라로 귀순한 맹달이 하후상, 서황과 함께 유봉을 격퇴한다. 그 사이 신탐이 상용을, 신의가 방릉을 닫아걸어 유봉을 성도로 쫓아낸다.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유비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맹달의 상담을 받고, 형인 신탐은 위나라에 항복할 것을 권한다. 신의도 그들과 행동을 함께하여 유봉의 공격을 물리치고 위나라에 항복한다.
이후 금성태수(金城―)로서 신성태수 맹달의 모반에 가담하는 척하면서 사마의와 내응한다. 상용태수 신탐과 함께 군을 이끌고 신성으로 가 마중나온 맹달을 습격한다. 제94회에 위나라의 금성 태수로 다시 등장하여 맹달의 반란에 신탐과 함께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신성에 갇힌 맹달을 구원하러 나타나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성 밖으로 나온 맹달을 공격한다. 결국 신탐이 맹달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형제 모두 그 전공으로 승진한다. 가정 전투에도 형과 함께 참전해 공을 세운다.
4. 가계
* 형: 신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