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섭 (18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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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우섭은 1890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출생하여, 휘문의숙을 졸업하고 언론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최남선, 이광수 등과 교류하며 《매일신보》에서 활동했으며, 이광수의 소설 《무정》의 신문기자 신우선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1920년대에는 조선여자교육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면담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으며, 경성방송국 제2방송과장을 역임하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순회강연반 연사로 활동하는 등 일제에 적극 협력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194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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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언은 일제강점기 야담 무대 공연, 라디오 방송, 소설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친일 행적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인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의 방송인 - 이석훈 (1908년)
일제강점기 언론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이석훈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등단 후 극예술연구회와 문예좌에서 연극 운동에 참여하고 김유정을 문단에 데뷔시켰으나, 말년에 친일 행적을 남겼으며 해방 후 해군 입대 후 한국 전쟁 중 실종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개신교도 - 김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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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 김동인
김동인은 '약한 자의 슬픔'으로 시작하여 '감자'와 같은 작품을 통해 사실주의를 개척하고, 《창조》를 창간했으며, 사후 동인문학상이 제정되었다.
2. 생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언론/출판 부문과 종교 부문에 동생 심명섭과 함께 포함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2. 1. 초기 활동 (1910년대 ~ 1920년대)
본관은 청송이다. 충청남도 당진이 가문의 고향이지만 경기도 시흥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충청남도 당진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경기도 과천군과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막내 동생인 심훈과 11세 차이가 난다.휘문의숙을 제1회로 졸업하였고, 최남선, 이광수 등과 가까이 지내면서 1918년에 최남선이 발기한 계명구락부에 출입하고 기관지 《계명》의 주간을 맡으며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했다.[1] 1910년대 중반에 《매일신보》에 입사하여 언론인으로 활동하였으며 《형제》 등 신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에 나오는 신문기자 신우선의 모델이 심우섭이다.[2][3]
1920년대에는 매일신보를 나와 조선여자교육회에서 고문으로 근무하는 등 여러 사회 활동을 벌였다. 이 시기에 심우섭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자주 면담한 기록이 있어 직업적 친일 분자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4] 동민회에서 이사를 지내고 구일회도 참가하였다.[5]
2. 2. 친일 활동 (1930년대 ~ 1945년)
1927년 경성부 학교 평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조선교육연구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35년 경성방송국에 입사하여 제2방송과장이 되면서 초창기 방송계에서 업적을 남겼다.[1]태평양 전쟁 시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순회강연반 연사가 되어 함경남도 지역에서 연설을 하고 조선임전보국단에도 참여하는 등 일본 제국에 협조하였다.[1] 1941년 매일신보 편집고문으로 복귀하여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 당시 매일신보 이사대우 촉탁을 맡고 있었다.[1]
2. 3. 사망
심우섭은 1946년 3월 6일 서울 계동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자유신문이 보도했다.[1]3. 친일 행적 논란
1920년대에 심우섭은 매일신보를 나와 조선여자교육회 고문으로 근무하는 등 여러 사회 활동을 벌였다. 이 시기에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자주 면담한 기록이 있어 직업적 친일 분자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4] 동민회 이사를 지내고 구일회에도 참가하였다.[5]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순회강연반 연사가 되어 함경남도 지역에서 연설을 하고 조선임전보국단에도 참여하는 등 일본 제국에 협조하였다. 1941년 매일신보 편집고문으로 복귀하여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 당시 매일신보 이사대우 촉탁을 맡고 있었다.[1]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언론/출판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의 종교 부문에는 동생인 목회자 심명섭도 들어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4. 가족 관계
참조
[1]
서적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02-25
[2]
뉴스
그 세월의 흔적들 - 심우섭과 춘원 이광수
http://www.djtimes.c[...]
당진시대
2008-07-26
[3]
서적
한국문단 이면사
깊은샘
1999-10-20
[4]
서적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비평사
1998-11-05
[5]
서적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민족문제연구소
200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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