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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지 (17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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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이지(沈頤之)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조판서, 판중추부사, 우의정을 역임했다. 심연원의 10대손으로, 1763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사간원 헌납, 홍문관 부수찬, 암행어사, 도승지, 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796년 판중추부사로 청나라에 사행을 가던 중 사망했으며, 사후 우의정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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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지 (1735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심이지
원래 이름沈頤之
출생일1735년
국가조선
사망일1796년 (62세)
학력1763년(영조 39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1767년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
경력호조판서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
좌참찬
형조판서
공조판서
수어사
직책홍문관 예하 부응교
임기1770년 3월 1일 ~ 1770년 5월 31일
군주조선 영조 이금
정당무소속
종교유교(성리학)
부모아버지: 보국숭록대부 이조판서 심수
어머니: 정경부인 은진 송씨
배우자정경부인 청주 한씨
자녀슬하 3남 1녀(그 중 장남 심능정, 차남 심능용, 삼남 심능인(김이소의 사위))
형제심양지(동생)
심회지(동생)
심눌지(동생)
심은지(동생)
심밀지(동생)
친인척심속(증조부)
심계현(조부)
송상유(외조부)
한익모(장인)
이천보(사돈)
이석보(사돈)
이일회(사돈)
김한철(사돈)
김원주(매부)
유경중(매부)
이문원(매부)
이덕현(매부)
심택현(종조부)
심최현(종조부)
심몽현(종조부)
심득현(종조부)
심태현(종조부)
심탁(숙부)
심규(당숙)
심구(당숙)
심둔(당숙)
심진(당숙)
유언현(당고모부)
이명식(당고모부)
심이지(沈履之, 사촌, 어유구의 사위)
심능필(당질, 홍인한의 사위)
심능철(당질, 신만의 사위)
심관지(6촌)
심정지(6촌)
심항지(6촌)
심건지(6촌)
심풍지(6촌)
심뇌지(6촌)
심환지(6촌)
홍낙성(6촌 재종매부)
어석정(6촌 재종매부)

2. 가계

심이지는 청송 심씨 가문 출신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심수의 아들이다. 영의정 심연원의 10대손, 명종의 국구 심강의 9대손, 서인의 초대 영수 심의겸의 8대손이다. 아버지는 심수이다.

2. 1. 주요 가계

관계이름 및 설명
10대조심연원 (영의정 · 청천부원군)
9대조심강 (명종의 국구, 영돈녕부사 · 청릉부원군 · 증 영의정)
8대조심의겸 (서인의 초대 영수, 병조판서)
7대조심엄 (옥과현감 · 증 영의정 · 청송부원군)
6대조심광세 (홍문관 응교 · 증 이조참판)
5대조심은 (증 이조참판)
고조부심약명 (함창현감 · 증 이조판서)
증조부심속 (증 영의정)
조부심계현 (담양부사 · 증 좌찬성)
조모증 정경부인 전주 이씨
숙부심탁 (광주목사 · 증 이조참판)
사촌심이지 (이조참판)
사촌부인정부인 함종 어씨 (경종의 국구 영돈녕부사 · 함원부원군 · 증 영의정 어유구의 딸)
당질심능필 (정주목사)
당질며느리풍산 홍씨 (좌의정 홍인한의 딸)
당질심능철
당질며느리평산 신씨 (영의정 신만의 딸)
아버지심수 (정1품 하계 보국숭록대부 이조판서)
어머니정경부인 은진 송씨 (부사 송상유의 딸, 판서 송규렴의 손녀)
본인심이지 (호조판서 · 판중추부사 · 증 우의정)
부인정경부인 청주 한씨 (영의정 한익모의 딸)
장남심능정 (함양군수)
차남심능용
삼남심능인
며느리신 안동 김씨 (좌의정 김이소의 딸)
동생심양지
제수진주 강씨
동생심회지
제수연일 정씨
동생심눌지
제수경주 김씨
동생심은지
제수연안 이씨 (대사간 이석보의 딸)
동생심밀지
제수고성 이씨 (승지 이일회의 딸)
여동생청송 심씨
매부경주 김씨 김원주 (판서 김한철의 아들)
여동생청송 심씨
매부기계 유씨 유경중
여동생정부인 청송 심씨
매부연안 이씨 이문원(李文源, 이조판서) (영의정 이천보의 아들)
여동생청송 심씨
매부전주 이씨 이덕현


2. 2. 혼인 관계

3. 생애

심이지는 영조정조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763년(영조 39년) 증광 문과와 1767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판중추부사가 된 후에는 동지 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에 가던 중 설유참(薛劉站)에서 사망했고, 사후 우의정에 추증되었다.[3]

3. 1. 영조 시대 (1763년 ~ 1776년)

1763년(영조 39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67년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8년 사간원 헌납, 세자시강원 문학, 1769년 홍문관 부수찬, 수찬, 부교리, 교리, 수원 시재 어사(水原 試才 御史)를 거쳤다. 1770년 홍문관 부응교, 세자시강원 보덕, 1771년 사헌부 장령, 충청도 암행어사, 승지, 1772년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1774년 도승지, 수원부사를 역임했다.

3. 2. 정조 시대 (1776년 ~ 1796년)

1778년(정조 2년) 심이지는 예조참판을 지냈고, 1779년에는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1780년 충청도 관찰사와 경주부윤, 1782년 해서 안문사(海西 按問使)와 대사헌, 1783년 의주부윤, 대사헌, 경기도 관찰사, 1784년 비변사 제조, 공조참판, 대사헌, 1786년 나주목사, 전라도 관찰사를 거쳤다. 1789년 도승지, 오위도총부 도총관, 형조판서, 1790년 평안도 관찰사, 1792년 형조판서, 호조판서, 1794년 호조판서 겸 정리사(整理使), 1795년 판의금부사, 광주부 유수 겸 수어사[1][2], 1796년 좌참찬, 공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3. 3. 주요 활동

1763년(영조 39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67년 문과 중시에도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8년 사간원 헌납, 세자시강원 문학, 1769년 홍문관 부수찬, 수찬, 부교리, 교리, 수원 시재 어사(水原 試才 御史), 1770년 홍문관 부응교, 세자시강원 보덕, 1771년 사헌부 장령, 충청도 암행어사, 승지, 1772년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1774년 도승지, 수원부사를 역임했다.

1778년(정조 2년) 예조참판, 1779년 도승지, 1780년 충청도 관찰사, 경주부윤, 1782년 해서 안문사(海西 按問使), 대사헌, 1783년 의주부윤, 대사헌, 경기도 관찰사, 1784년 비변사 제조, 공조참판, 대사헌, 1786년 나주목사, 전라도 관찰사, 1789년 도승지, 오위도총부 도총관, 형조판서, 1790년 평안도 관찰사, 1792년 형조판서, 호조판서, 1794년 호조판서 겸 정리사(整理使), 1795년 판의금부사, 광주부 유수 겸 수어사,[1][2] 1796년 좌참찬, 공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했다. 이후 판중추부사가 되어 동지 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 수도 연경(燕京, 북경)으로 가다가 설유참(薛劉站)에서 사망했다. 사후,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 우의정에 추증되었다.[3]

참조

[1] 역사기록 정조실록 43권, 정조 19년 8월 18일 병신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 역사기록 정조실록 43권, 정조 19년 8월 19일 정유 5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3] 역사기록 정조실록 46권, 정조 21년 2월 9일 경진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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