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노디케
1. 개요
아그노디케는 고대 아테네에서 여성에게 의술이 금지되었음에도 남장을 하고 의학을 배운 여성으로, 동료 의사들의 모함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여성임을 증명하고 무죄 판결을 받아 여성의 의료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폐지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현대 역사학자들은 아그노디케의 실존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유사한 이야기의 존재와 기록의 불분명성을 근거로 문학적 허구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아그노디케 이야기는 16세기부터 여성의 의학 전공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여성 의료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여성의 사회 진출과 권리 신장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 이름 | 아그노디케 |
|---|---|
| 직업 | 의사 |
| 출생 |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 |
-
아테나이의 의사 -
에우독소스
에우독소스는 크니도스 출신의 고대 그리스 학자로, 천문학에서 동심구 모델을 통해 행성 운동을 설명하고 수학에서 비례 이론을 발전시켜 무리수 문제를 해결했으며, 윤리학에서는 쾌락주의를 옹호했다. -
산부인과 의사 -
구스모토 이네
구스모토 이네는 독일인 의사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와 일본인 여성 구스모토 타키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 최초의 여성 의사 중 한 명으로, 서양 의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란다 오이네'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
산부인과 의사 -
린징이
중화민국의 정치인이자 의사인 린징이는 민주진보당 소속으로 입법위원과 보건복지부 차관을 역임하며, 의료 봉사 활동에도 참여했다. -
남장여자 -
메리 리드
메리 리드는 소년으로 위장하여 군 복무와 여관 운영을 하다 해적에게 납치된 후 앤 보니와 함께 18세기 초 존 래컴 해적단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검술 실력을 보인 여성 해적이다. -
남장여자 -
앤 보니
앤 보니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활동한 아일랜드계 여성 해적으로, 캘리코 잭 랙험과 함께 해적 활동을 했으며 메리 리드와 용맹을 떨쳤고, 사형 선고 후 행적이 묘연하여 대중문화에서 여성 해적의 상징으로 재해석된다.
2. 생애
아그노디케는 고대 아테네 사람으로, 당시 여성에게는 의술을 배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그노디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장을 한 뒤 헤로필로스에게서 의학을 배웠다. 여성 환자들을 진료할 때에는 자신이 여성임을 밝혀 안심시켰고, 이를 통해 의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다른 의사들의 질투로 인해 그녀가 여성을 유혹한다는 모함을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아그노디케는 재판정에서 옷을 벗어 자신이 여성임을 증명해야 했다. 원고들은 여성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아테네의 법률을 근거로 처벌을 요구했으나, 아그노디케에게 치료받은 유력자 부인들의 변호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테네는 여성이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한 법률을 폐지하였다.
아그노디케에 관한 이야기는 히기누스의 《이야기》(Fabulae)에 기록되어 있다. 히기누스는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케이론, 아폴론, 아스클레피오스의 의학적 업적을 설명한 뒤 아그노디케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는 여성 발명가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중 하나이며(다른 하나는 데메테르가 곡물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신이나 신의 자손이 아닌 인간에 관한 몇 안 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히기누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그노디케는 여성의 의학 공부가 금지되었던 고대 아테네에서 살았다. 의학을 배우기 위해 남장을 하고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가 헤로필로스에게 의술을 배웠다. 이후 부끄러움 때문에 남자 의사에게 진찰받기를 꺼리는 여성 환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2.1. 호칭 논란: 산부인과 의사인가, 조산사인가?
히기누스는 아그노디케를 오브스테트릭스(obstetrix)라고 서술하였다. 미국의 고대사 연구자 새러 포메로이는 이것이 산부인과 의사(obstetrician)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시 아테네에 실재하였던 직업인 조산사를 뜻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헬렌 킹은 고대 그리스에는 의사 면허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의술을 배웠다면 아마도 산부인과 의사와 조산사를 겸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헬렌 킹은 라틴어 obstetrix라틴어가 어원적으로 앵글로색슨어 midwifeang와 비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역사적 사실성
현대 역사학자들은 아그노디케가 실존 인물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한다. 아그노디케의 생몰 연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히기누스가 아그노디케 이전에는 아테네에 여성 산부인과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문헌에는 이미 '조산사'라는 낱말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기누스는 아그노디케가 "어떤 헤로필로스"에게 의학을 배웠다고 하는데, 이는 난소 발견으로 유명한 칼케돈의 헤로필로스로 일반적으로 여겨진다. 만약 그렇다면, 아그노디케는 기원전 4세기 말이나 3세기 초에 활동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히기누스가 그를 "어떤 헤로필로스"라고 묘사한 점, 칼케돈의 헤로필로스는 이집트에서 활동했지만 아그노디케는 아테네 사람이었다는 점을 들어 헤로필로스가 칼케돈의 헤로필로스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헬렌 킹은 역사적 헤로필로스가 산파술과 관련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는 "아그노디케에게 가능한 가장 적합한 스승"이었다고 지적한다.
아그노디케가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라고 믿는 학자들도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하나는 아그노디케 이전에도 여성 치료사가 있었으나 법률적인 이유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아그노디케가 최초로 정식 의학 수업을 받고 개업한 여성 의사라는 것이다. 1938년 케이트 허드-미드는 여성들이 낙태를 했다는 혐의로 인해 의술을 금지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이 주장은 후대 학자들에게도 반복되었다.
3.1. 다른 이야기와의 유사성
아그노디케 이야기는 프로크리스와 케팔로스 신화, 에우게니아 전설 등 다른 그리스-로마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히기누스가 쓴 프로크리스와 케팔로스 신화에서는 프로크리스가 남장을 하고 치마를 들어 올려 케팔로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여성들이 치마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벨레로폰과 리키아 여성 이야기(플루타르코스), 헤로도토스와 시켈리아의 디오도로스의 역사 이야기에도 나온다.
헬렌 킹은 아그노디케 이야기에서 두 번이나 치마를 들어 올리는 행위가 첫째, 아그노디케가 치료하는 여성들과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둘째, 아테네 남성들과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아그노디케 이야기는 남장을 하고 부도덕한 행위로 고발당하며, 자신의 성별과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는 등 초기 기독교 순교자인 에우게니아의 전설과도 비슷하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아그노디케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적 허구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4. 여성 의료인에 대한 영향
16세기 유럽에서 아그노디케 이야기는 여성이 의학을 전공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었다. 훗날 이 이야기를 옮긴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아그노디케가 헤로필로스에게 의학 전반이 아닌 산부인과 지식, 특히 조산술을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17세기 영국의 가톨릭 조산사로 "교황의 조산사"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세일리어는 스스로를 근대의 아그노디케라고 칭했다.
1851년 아우구스투스 가드너는 강의에서 19세기 뉴욕에서 활동한 낙태술사였던 마담 레스텔을 아그노디케에 빗대어 고대 이래 여러 세기 동안 여성 조산사들은 "문자 그대로 발전이 없다"고 비난하는 등, 아그노디케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도 있다.
4.1. 대한민국에서의 의의
아그노디케 이야기는 대한민국 여성 의료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아그노디케는 여성에게 굳게 닫혀있던 의료계의 문을 연 선구자로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권리 신장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여성 의료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으며, 아그노디케의 이야기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다만, 아그노디케의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여성 의료인의 역사와 관련된 추가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