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사네스에
1. 개요
아키타 사네스에는 데와국의 유력자였던 안도 지카스에의 아들로,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이다. 그는 158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으나 사촌 형과의 내분(미나토 전투)을 겪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종하며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하고, 데와국 내 영지를 인정받아 아키타씨를 칭하며 북 데와의 다이묘로 성장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했으나, 1602년 히타치국 시시도 번으로 이봉되었고, 1630년에는 불만으로 인해 이세국 아사마로 유배되어 165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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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족 | 아키타 씨 |
|---|---|
| 이름 | 아키타 사네스에 (秋田 実季) |
| 이명 | 후지타로 (藤太郎, 가명), 소지쓰 (宗実, 아호) |
| 계명 | 고켄인덴류간료쿠다이코지 (高乾院殿隆巌梁空大居士) |
| 묘소 | 미에현이세시 아사마초 에이쇼지 |
| 관위 | 종5위하 |
|---|---|
| 직책 | 아키타 성개 |
| 봉록 | 히타치국시시도 번 번주 |
| 출생 | 덴쇼 4년 (1576년) |
|---|---|
| 사망 | 만지 2년 11월 29일 (1660년1월 11일) |
| 사망 장소 | 이세국아사마 |
|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부모 | 아버지: 안도 지카스에 , 어머니: 하타케야마 기요노부 딸 |
|---|---|
| 형제자매 | 노리아키, 아키타 국, 아키타 사네스에, 히데스에, 스에카쓰, 나미오카 아키무라 정실 |
| 배우자 | 호소카와 아키모토 딸 엔코인, 아라키 다카카네 딸 즈이호인 |
| 자녀 | 도시스에, 스에쓰구, 스에노부, 스에나가, 스에노리, 아라키 다카쓰나 부인, 쓰가루 노부타케 정실 |
| 섬긴 주군 | 도요토미 히데요시 → 히데요리 → 도쿠가와 이에야스 → 히데타다 → 이에미쓰 |
|---|---|
| 영지 | 히타치시시도 번 번주 |
| 거성 | 시시도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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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도번주 -
아키타 도시스에
아키타 도시스에는 아키타 사네스에의 아들이자 에도 시대 무장으로, 오사카 전투에 참전 후 가문을 계승하여 미하루 번의 번주가 되었으나 오사카성에서 병사하였다. -
시시도번주 -
마쓰다이라 요리타카 (1810년)
마쓰다이라 요리타카는 에도 시대 후기 시시도 번의 초대 번주이자 미토 번의 양자로, 미토 번 번정 개혁에 참여 후 시시도 번 번주가 되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시시도 번 부흥에 힘쓰고 문화 활동도 펼쳤다. -
1576년 출생 -
아사노 요시나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아사노 요시나가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 아사노 나가마사의 아들이며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등에 참전했고, 세키가하라 전투 후 와카야마 번주가 되었으며 도요토미 가문 몰락 후 암살설이 돌기도 했다. -
1576년 출생 -
정충신
정충신은 임진왜란 때 무관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했고, 다방면에 능통했으며, 사후 충무의 시호를 받았다. -
도자마 다이묘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도자마 다이묘 -
아리마 하루노부
아리마 하루노부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기리시탄 다이묘로, 히젠 아리마 씨의 당주이자 히노에 번 번주였으며, 가톨릭 개종 후 덴쇼 소년사절단 파견, 임진왜란 참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이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 후 처형되었고, 그의 죽음은 에도 막부의 기독교 탄압 강화와 시마바라의 난의 배경이 되었다.
2. 출신
안도씨는 아베 사다토의 후예로 전해지는 명문가이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쓰가루(아오모리현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동해 무역과 에조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히노모토 쇼군'을 자칭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가마쿠라 시대 후기, 안도씨의 일파가 남하하여 아키타군에 거점을 마련했고, 이를 '상국가'라고 칭했다. 센고쿠 시대에는 오모노가와 하구의 미나토 안도씨와 요네시로가와 하구의 히야마 안동씨로 분열되어 있었다. 아버지 안도 지카스에 대에 이르러 안도씨의 통합을 이루고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이 시기부터 난부씨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3. 생애
안도 지카스에의 아들로 데와국에서 태어났다. 1590년 오다와라 전투에 참전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하였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에 가담했으나, 모가미 요시미쓰의 참언으로 혐의를 받기도 했다. 1602년 사타케 요시노부가 아키타로 전봉되면서 히타치국 시시도 번으로 이봉되었다. 1615년 오사카 전투에 참전하였다.
1630년 쇼군에 대한 불경죄로 이세국 아사쿠마(현재의 미에현 이세시 아사쿠마 정)에 칩거를 명받았고, 1660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들 아키타 도시스에는 미하루 번으로 옮겨가 메이지 유신까지 가문을 이어갔다.
3.1. 미나토 전투
1587년(덴쇼 15년), 아버지 안도 지카스에가 사망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사촌 형이자 12세 연상인 안도 쓰네스에가 "조코쿠 미나토 안도씨 부흥"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미나토 소동) 쓰네스에는 도자와씨, 오노데라씨, 난부씨 등 여러 세력과 연계했다.
1589년(덴쇼 17년), 사네스에는 선제공격을 감행했으나 오히려 격퇴당하고, 히야마성에서 농성하며 고전했다. 쓰네스에 등의 군세는 농성 측의 십수 배에 달했고, 농성 측은 조총을 300정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5개월 이상이나 히야마성을 지켜냈다고 전해진다. 결국 사네스에는 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는 난부 노부나오, 오우라 다메노부 등 주변 세력 간의 갈등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네스에는 오노데라 요시미치와 싸우는 한편, 동쪽에서 침입한 난부 노부나오와도 격렬하게 싸웠다.
1589년 7월, 유리군의 아카오쓰씨, 쓰가루의 오우라 다메노부와 협력하여 쓰네스에를 격파했다.
1590년(덴쇼 18년), 히나이 오다테를 난부씨로부터 탈환했다. 여기에는 오우라 다메노부의 원조가 있었고, 아사리 요리히라는 다메노부의 알선으로 히나이 땅으로 돌아왔다.
3.2. 북 데와의 다이묘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하여 복종하였다. 같은 해 오슈 시오키가 단행되었고, 1591년에는 다이코 겐치가 실시되었다. 미나토 전투는 소무사령 위반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중앙 공작을 통해 데와국 내 영지 중 약 5만 2,440석을 인정받았다. (실제 수확량은 약 15만 석)
히나이 지역 영유를 확정지으며 아키타, 히야마, 히나이 등 아키타 시모산 군에 도요시마군을 더한 영지를 소유한 다이묘로 자리매김했다. 아키타 삼나무 운송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쓰치자키 미나토(현재의 아키타항), 노시로 미나토(노시로항)를 정비하여 영내 경제를 발전시켰다.
오모노가와 하구의 쓰치자키 미나토에 미나토성을 축조하고 본거지를 이전, 아키타 조노스케를 칭하며 아키타씨로 개칭했다. 오다테성, 와키모토성, 바바메성 등 주요 거점에 가신과 일족을 배치하여 안정적인 영지 지배를 구축했다.
3.4. 시시도로의 이봉과 이세에서의 칩거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아키타 사네스에는 동군에 가담했다. 게이초 데와 전투에서는 오노데라 요시미치를 오모리 성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모가미 요시미쓰가 "사네스에가 오노데라 측과 내통하고 있어 사실상 동군이라 할 수 없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참언하여 혐의를 받았다. 사네스에는 변명하여 혐의를 벗었지만, 160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히타치국 시시도 번으로 이봉되었다. 이는 사타케 씨의 아키타, 센보쿠 입부에 따른 것이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받은 영지는 몰수되어 사실상 감봉되었다.
1614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사네스에는 도요토미 측 선봉대와 격돌했지만, 큰 손해를 입고 패배했다. 1630년 에도 막부는 사네스에가 전국 다이묘다운 기질을 가진 것을 꺼려 이세국 아사쿠마(현재의 미에현 이세시 아사쿠마 정)에 칩거를 명했다. 1660년 사네스에는 이세국 아사쿠마에서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