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마르코프
1. 개요
안드레이 마르코프는 러시아의 수학자로, 확률론과 해석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856년 랴잔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으며, 1880년 석사 학위, 1884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확률 과정 연구를 통해 마르코프 과정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연분수, 함수 공간의 극값 문제, 직교다항식, 미분방정식 등 해석학 분야에서도 기여했다. 마르코프는 1896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정규 회원이 되었으며, 1905년 퇴직 후에도 1910년까지 강의를 이어갔다. 그는 무신론자였으며, 1922년 사망할 때까지 확률론과 차분법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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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Андре́й Андре́евич Ма́рков |
|---|---|
| 로마자 표기 | Andrei Andreevich Markov |
| 다른 표기 | Andrei, Markoff |
| 출생 | 1856년 6월 14일(신식) |
| 출생지 | 랴잔, 러시아 제국 |
| 사망 | 1922년 7월 20일 |
| 사망지 | 페트로그라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
| 국적 | 러시아 |
| 분야 | 수학, 특히 확률론 및 통계학 |
|---|---|
| 알려진 업적 | 마르코프 연쇄 마르코프 과정 확률 과정 |
| 근무 기관 |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
|---|---|
| 모교 |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
| 박사 지도교수 | 파프누티 체비쇼프 |
| 주요 제자 | 아브람 베시코비치 니콜라이 군터 베니아민 카간 프세볼로트 이바노비치 로마노프스키 야코프 타마르킨 J. V. 우스펜스키 게오르기 보로노이 |
| 자녀 | 안드레이 마르코프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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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통계학자 -
안드레이 콜모고로프
안드레이 콜모고로프는 확률론, 난류, 고전 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확률 공간의 공리를 제시하여 현대 확률론의 기초를 다진 러시아의 수학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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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쿠즈네츠
사이먼 쿠즈네츠는 러시아 제국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하여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민 소득 연구를 통해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경제 성장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쿠즈네츠 사이클과 쿠즈네츠 곡선을 제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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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페렐만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과 기하화 추측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즈상과 밀레니엄 문제 상금을 거부하며 은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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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칸토어
게오르크 칸토어는 집합론의 기초를 다지고 무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집합의 크기가 다를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대각선 논법과 초한수 이론을 제시한 독일계 수학자이다. -
1856년 출생 -
우드로 윌슨
우드로 윌슨은 진보적 국내 정책 추진과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국제 연맹 창설 주도 등으로 기억되지만 인종차별적 견해와 뇌졸중으로 인한 무능력 상태로 비판받는 제28대 미국 대통령이다. -
1856년 출생 -
필리프 페탱
필리프 페탱은 제1차 세계 대전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비시 프랑스 정권 수반으로서 나치 독일과 협력한 행위로 인해 반역죄로 기소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2. 생애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마르코프(Андрей Андреевич Марков러시아어)는 1856년 6월 14일 러시아 제국 랴잔에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문법학교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으며, 파프누티 체비쇼프 등 저명한 수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모교에 남아 수학자로서 경력을 쌓았으며, 초기에는 고등학교에서도 강의했다. 그는 자신의 수학적 지식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졌고, 마르코프 연쇄 이론을 발전시켜 러시아 문학 작품 속 모음과 자음의 배열 패턴을 분석하는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확률론, 정수론, 해석학 등 다양한 수학 분야에 기여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교수와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을 역임했다. 1905년 교수직에서 은퇴했으나 강의는 계속했으며, 1908년 학생 운동과 관련하여 정부 방침에 반대하여 대학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2월 혁명 이후 잠시 교단에 복귀했으나, 1922년 7월 20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마르코프(Андрей Андреевич Марков러시아어)는 1856년 6월 14일 러시아 제국 랴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업청 소속이었던 안드레이 그리골리예비치 마르코프(Андрей Григорьевич Марков러시아어)였고, 어머니는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나데즈다 페트로브나 마르코바(Надежда Петровна Маркова러시아어)였다. 1860년대 초, 아버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예카테리나 알렉산드로브나 발바체바(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Варвачева러시아어) 공주의 재산 관리인이 되었다.
마르코프는 186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제5 문법학교에 입학하며 학업을 시작했다. 그는 일찍부터 고등수학에 강한 흥미를 보였으나, 수학을 제외한 대부분 과목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일부 교사들은 그를 반항적인 학생으로 여기기도 했다. 문법학교 재학 중이던 17세 때, 그는 선형 상미분방정식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여 당시 수학자들인 빅토르 부냐콥스키(Виктор Буняковский러시아어), 알렉산드르 코르킨(Александр Коркин), 예고르 졸로타레프(Его́р Ива́нович Золотарёв) 등의 주목을 받았다. 이 일로 코르킨의 제자들이 모이는 '코르킨의 토요일'에 초대받기도 했다.
1874년 문법학교를 졸업한 마르코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교(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수학부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 그는 여러 저명한 교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 교수 | 담당 과목 |
|---|---|
| 율리안 소호츠키 (Юлиан Сохоцкий러시아어) | 미적분학, 고등대수학 |
| 콘스탄틴 포세 (Константин Поссе러시아어) | 해석기하학 |
| 예고르 졸로타레프 (Его́р Ива́нович Золотарёв러시아어) | 적분학 |
| 파프누티 체비쇼프 (Пафнутий Чебышев러시아어) | 정수론, 확률론 |
| 알렉산드르 코르킨 (Александр Коркин러시아어) | 상미분방정식, 편미분방정식 |
| 미하일 오카토프 (Михаил Окатов러시아어) | 기구학 |
| 오시프 소모프 (Осип Сомов러시아어) | 역학 |
| 니콜라이 부다예프 (Николай Будаев러시아어) | 기술기하학, 고등기하학 |
1877년, 마르코프는 '연분수법을 이용한 미분방정식의 적분과 방정식 (1+x2) dy/dx = n (1+y2) 에의 응용' 문제에 대한 뛰어난 해법을 제시하여 금메달을 받았다. 이듬해인 1878년, 그는 선발 시험에 합격한 뒤 강사직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에 남기로 결정했다.
2.2. 대학교 시절과 초기 연구 활동
187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율리안 소호츠키, 콘스탄틴 포세, 예고르 졸로타레프, 파프누티 체비셰프, 알렉산드르 코르킨 등에게 배웠다.
1877년, 마르코프는 '연분수를 이용한 미분 방정식 적분에 관하여, 그리고 방정식 에의 응용' 문제에 대한 뛰어난 해결책으로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이듬해인 1878년, 그는 후보 시험을 통과했고 강사직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에 남았다.
1880년 4월, 마르코프는 알렉산드르 코르킨과 예고르 졸로타레프의 지도 아래 "양의 판정식을 갖는 이항 이차 형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4년 후인 1884년, 그는 "대수적 연분수의 특정 응용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을 발표했다.
2.3. 대학교수 임용 및 연구 활동
1880년 4월, 마르코프는 알렉산드르 코르킨과 예고르 졸로타레프의 지도 아래 "양의 판정식을 갖는 이항 이차 형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교육 활동은 같은 해 가을, 석사 논문 발표 후 시작되었다. 사강사(privatdozent)로서 미적분학을 강의했으며, 이후 "해석학 개론", 확률론(1882년 대학을 떠난 체비셰프의 후임), 그리고 차분법을 번갈아 강의했다. 1895년부터 1905년까지는 미분적분학도 강의했다.
1884년에는 "대수적 연속 분수의 특정 응용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을 발표했다. 박사 논문 발표 1년 후인 1886년, 마르코프는 비정규 교수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준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890년, 빅토르 부냐콥스키 사망 후 마르코프는 아카데미의 비정규 회원이 되었다. 1894년 가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정규 교수로 승진했다.
1896년, 마르코프는 체비셰프의 후임으로 아카데미 정규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2.4. 은퇴와 말년
1905년, 마르코프는 공로 교수로 임명되어 퇴직할 권한을 얻었고, 곧바로 퇴직했다. 그러나 차분법 강의는 1910년까지 계속했다.
190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학생 시위가 발생하자, 대학 당국은 교수와 강사들에게 학생들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르코프는 이 명령을 거부하며, 자신이 "정부의 대리인"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설명을 작성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대학에서 완전히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마르코프는 무신론자였다. 1912년, 러시아 정교회가 레오 톨스토이를 파문한 것에 항의하여 자신의 파문을 요청했고, 교회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19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평의회는 마르코프를 포함한 9명의 과학자를 대학 명예 회원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그의 선출은 교육부 장관에 의해 승인되지 않았다. 승인은 4년 후인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마르코프는 그 후 교육 활동을 재개하여, 1922년 사망할 때까지 확률론과 차분법을 강의했다.
3. 주요 업적
파프누티 체비쇼프, 알렉산드르 랴푸노프와 함께 러시아 확률론 연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그의 가장 큰 기여는 오늘날 마르코프 과정으로 알려진 확률 과정 연구이다. 이 외에도 해석학 분야에서 연분수, 함수 공간의 극값 문제, 직교다항식, 미분방정식 등 다양한 문제 해결에 기여했으며, 수론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3.1. 확률론
마르코프는 파프누티 체비쇼프, 알렉산드르 랴푸노프와 함께 러시아에서 확률론 연구의 좋은 전통을 만들었다.
확률론에서 마르코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오늘날 마르코프 과정으로 알려진 확률 과정의 연구이다.
마르코프는 러시아 작가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소재로, 문장에 나타나는 글자 간의 연결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실시했다. 그리고 글자의 계열과 같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할 때 각 사건의 발생 확률이 그것에 선행하는 사건의 영향을 받는 경우를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고 마르코프 과정의 개념을 도입했다.
마르코프 과정의 이론은 현대 확률 과정론의 한 부분으로서,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확률적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 공학, 운영 연구, 생물학, 사회 과학 등에 널리 응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