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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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티게네스는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장군이다. 페린토스 공성전에서 부상을 입었으며, 알렉산드로스에게 빚을 갚지 않아 추방당했다가 용서받은 일화가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페르디카스, 셀레우코스 등과 함께 페르디카스 암살에 가담했으며,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수시아나의 태수이자 은방패 병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에우메네스와 폴리페르콘의 지시로 함께 행동했으나, 에우메네스와의 불화로 안티고노스에게 투항하여 에우메네스를 넘겨주었다. 이후 안티고노스에게 체포되어 산 채로 불태워 죽임을 당했다.

안티게네스 - [인물]에 관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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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기원전 340년 필리포스 2세의 통치기에 안티게네스는 페린토스 공성전에 참여했다가 화살을 맞고 한쪽 눈을 잃었다. 이때 그는 동료가 화살을 뽑아 주겠다고 했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적을 몰아치며 공격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안티게네스는 수사에서 거행된 합동결혼식 때 빚을 지고 있다고 속여 알렉산더로부터 돈을 받았지만, 그것이 발각되어 궁정에서 추방되어 벼슬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너무 의기소침해져서 자살하려는 안티게네스를 보고 알렉산더가 그를 용서했다.

기원전 323년, 안티게네스는 일단 제대를 하고 크라테로스가 이끄는 다른 제대 군인과 함께 마케도니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마케도니아에 도착하기 전에 알렉산더가 갑작스럽게 사망을 했다. 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바빌론 회의에서 제국 섭정의 자리에 오른 페르디카스는 마케도니아의 실권을 쥐고서도 기반이 취약하여 각지의 여러 장수가 반기를 들었다. 기원전 321년, 페르디카스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집트 원정을 떠나지만, 작전 실패로 인해 아군 병사들의 반란으로 버림을 받고, 살해당했다. 이때, 안티게네스 또한 페르디카스를 따라 원정에 참여하고 있었고, 셀레우코스와 페이톤 등과 함께 페르디카스의 암살에 가담했다. 페르디카스 사후 제국의 체제를 결정하기 위해 개최된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안티게네스는 스시아나의 태수이자 동시에 은방패 병단의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다.

에우메네스와 안티고노스와의 전투에 즈음하여 제국의 섭정 폴리페르콘의 지시를 받은 안티게네스는 부하 병사와 함께 에우메네스 옆에 있었다. 당초 안티게네스는 동료 은방패 병단의 지휘관 테우타모스가 에우메네스에 대한 음모를 꾸몄을 때 그를 설득해 음모를 그만두게 하였다. 기원전 317년에 셀레우코스와 페이톤(그들은 안티고노스의 동맹자가 되어 있었다)이 에우메네스로부터 군 지휘권을 빼앗도록 부추겨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등 에우메네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에우메네스와 지휘권을 다투다가 다시 기획된 에우메네스에 대한 음모에 참가하게 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에우메네스의 유능함을 질투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 에우메네스와의 관계

기원전 323년 안티게네스는 제대하여 크라테로스가 이끄는 제대 군인들과 함께 마케도니아로 가려 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에 도착하기 전 알렉산더 대왕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바빌론 회의에서 제국 섭정이 된 페르디카스는 마케도니아의 실권을 쥐었으나 기반이 취약하여 각지의 여러 장수가 반기를 들었다. 기원전 321년 페르디카스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집트 원정을 떠났지만, 작전 실패로 아군 병사들에게 배신당하고 살해당했다. 이때 안티게네스는 페르디카스를 따라 원정에 참여했고, 셀레우코스, 페이톤 등과 함께 페르디카스 암살에 가담했다. 페르디카스 사후 제국 체제를 결정하기 위해 개최된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안티게네스는 스시아나의 태수이자 은방패 병단의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다.

에우메네스와 안티고노스의 전투에 즈음하여 제국의 섭정 폴리페르콘의 지시를 받은 안티게네스는 부하 병사와 함께 에우메네스 곁에 있었다. 안티게네스는 동료 은방패 병단의 지휘관 테우타모스가 에우메네스에 대한 음모를 꾸몄을 때 그를 설득해 음모를 그만두게 했다. 기원전 317년 셀레우코스페이톤이 에우메네스로부터 군 지휘권을 빼앗도록 부추겨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등 에우메네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에우메네스와 지휘권을 다투다가 다시 기획된 에우메네스에 대한 음모에 참가하게 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에우메네스의 능력을 질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원전 317년 시작된 중동을 무대로 한 에우메네스와 안티고노스의 전투에서 안티게네스는 에우메네스 진영에서 싸웠으며, 안티게네스와 테우타모스가 이끄는 은방패 병단은 팔라에타케네, 가비에네(기원전 316년)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가비에네 전투에서 에우메네스 군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후방에 배치한 보급부대를 빼앗겼다. 이 보급부대에는 은방패 병단의 가족과 재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은방패 병단은 에우메네스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고, 안티게네스 등 여러 장군은 안티고노스와 거래하여 에우메네스를 넘겨주고 항복했다. 그러나 안티게네스는 안티고노스에게 붙잡혀 구멍에 갇혀 불에 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4. 최후

기원전 317년 중동에서 벌어진 에우메네스와 안티고노스 간의 전투에서 안티게네스는 에우메네스 진영으로 참전했다. 안티게네스와 테우타모스가 이끄는 은방패 병단은 팔라에타케네, 가비에네(기원전 316년)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러나 가비에네 전투에서 에우메네스 군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후방의 보급부대를 안티고노스에게 빼앗겼다. 이 보급부대에는 은방패 병단의 가족과 재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은방패 병단은 에우메네스에게 불만을 품었고, 안티게네스 등 여러 장군들은 안티고노스와 거래하여 에우메네스를 넘겨주고 항복했다. 하지만 안티게네스는 안티고노스에게 붙잡혀 구덩이에 갇힌 채 불에 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