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이그나티오스 4세
1. 개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이그나티오스 4세는 1979년부터 2012년까지 안티오키아 정교회의 수장이었던 인물이다. 본명은 하비브 하자임으로, 시리아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안티오키아 정교회에서 봉사했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후 레바논에 발라먼드 대학교를 설립하고 학장으로 재직하며 지도자를 양성했다. 1961년 주교로 서품되었고, 1979년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로 착좌하여 교회 생활과 영성 생활 향상에 힘썼다. 2012년 사망했으며, 시리아 내전 당시 평화적인 정치적 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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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그나티오스 4세 |
|---|---|
| 아랍어 이름 | إغناطيوس الرابع هزيم |
| 로마자 표기 | ʾIġnāṭiyūs ar-Rābiʿ |
| 아랍어 이름 (본명) | حبيب هزيم |
| 본명 | 하비브 하짐 |
| 소속 교회 | 안티오키아 그리스 정교회 |
|---|---|
| 직함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
| 관구 | 안티오키아 |
| 착좌 | 1979년 7월 2일 |
| 이임 | 2012년 12월 5일 |
| 전임자 | 엘리아스 4세 |
| 후임자 | 요한 10세 |
| 거주지 | 다마스쿠스 똑바른 길 마리아미테 대성당 |
| 출생 | 1920년 4월 17일 |
|---|---|
| 출생지 | 시리아 아랍 왕국 마르데 (현재의 하마 주, 시리아) |
| 사망 | 2012년 12월 5일 |
| 사망지 | 레바논 베이루트 |
| 모교 | 파리 생 세르기오 정교 신학원 |
| 주교 서품 | 19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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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주 출신 -
만 아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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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 총대주교 -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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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 총대주교 -
사모사타의 파울로스
사모사타의 파울로스는 3세기 안티오크 주교로, 군주신론적 가르침과 교회 내 부패 혐의로 이단으로 정죄되었으며, 삼위일체 교리와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고 아리우스파에 영향을 미쳤다. -
1921년 출생 -
낸시 레이건
낸시 레이건은 배우로 활동하다 로널드 레이건과 결혼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 부인과 영부인으로 활동하며 백악관 개조, 패션, 마약 퇴치 캠페인을 주도했고 남편의 정치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2016년에 사망했다. -
1921년 출생 -
진의종
진의종은 일제강점기 홋카이도청 농무과장을 거쳐 대한민국 상공부 차관, 보건사회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2. 생애
하마 주 무하르데영어의 독실한 아랍인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났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현지 정교회 예배에 참여, 성가대를 맡았고 이후 부제가 되었다. 1945년 파리로 건너가 성 세르기우스 신학교를 졸업하고 중동으로 돌아와 레바논에 발라만드 대학교를 설립했다.
1961년 주교로 서품되었고, 1970년 대주교를 거쳐 1979년 7월 2일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에 착좌했다. 안티오키아 교회 성 시노드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신자들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교회 및 영성 생활 향상에 힘썼다.
2012년 12월 5일, 베이루트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하비브 하자임은 1920년 4월 4일 시리아 하마 주 무하르데에서 독실한 안티오키아 정교회 아랍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봉사에 매료되었던 그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문학을 공부하면서 지역 안티오키아 정교회 교구에서 복사, 부제, 사제로 봉사했다. 베이루트 아메리카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철학 교수였던 찰스 말리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말리크는 학생들에게 철학과 영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심어주었으며, 그의 많은 학생들은 다양한 교파의 목사나 수사가 되었다.
1945년, 하자임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성 세르기우스 정교 신학 연구소를 졸업했다.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그는 정교회 신앙을 전파하고, 정교회를 현대 생활의 문제에 대한 살아있는 해답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는 성서 전통에서 해답을 찾아, 정교회가 비역사적인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돕고자 했다. 모국어인 아랍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에 유창했다.
2.2. 정교회 활동 및 쇄신 노력
하비브 하자임은 1942년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활동적인 정교 청년 운동을 창립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 운동을 통해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청의 교회 생활 갱신을 이끌었다. 정교 청년 운동은 일반 신자들이 성찬례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교회 참여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3년에는 정교 청년 및 신학 학교의 세계 친목 단체인 신데스모스(Syndesmos) 설립에 기여했다. 동지중해로 돌아온 후, 레바논에 발라만드 대학교를 설립하고 학장으로 봉사하며, 책임감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했다.
3. 주교 서품 및 총대주교 착좌
1961년 주교 서품을 받았고, 1970년에는 라타키아의 교구장(대주교)으로 선출되었다. 교구장으로서 그는 이전의 주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빈번한 성찬례를 실천했다. 1979년 7월 2일, 이그나티오스 4세라는 이름으로 동방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되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다음으로 서열 3위의 계층이 되었다. 안티오키아 교회의 성 시노드에 역동성을 불어넣었고,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교회 생활과 영성 생활의 향상에 힘썼다.
4. 총대주교 재임 기간 활동
1979년 7월 2일, 이그나티오스 4세는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로 선출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다음으로 서열 3위의 계층이 되었다. 그는 총대주교로서 안티오키아 교회의 성 시노드에 역동성을 불어넣었고,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교회 생활과 영성 생활 향상에 힘썼다.
2010년 5월, 러시아 연방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총대주교 관저를 공식 방문하여 이그나티오스 4세에게 러시아 우호 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