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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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래스카 매매는 1867년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입한 사건이다. 러시아는 크림 전쟁 패배로 인한 재정난과 영국의 알래스카 점령 우려로 매각을 결정했으며, 미국은 영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태평양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협상에 응했다. 미국 내에서는 처음에는 '수어드의 어리석은 짓'으로 비판받았으나,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 이후 알래스카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발견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알래스카 매입은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냉전 시대에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수행하는 등 미국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알래스카에서는 매입을 기념하는 알래스카 데이와 스워드 데이를 기념하고 있다.

알래스카 매매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알래스카 매입 대금으로 사용된 720만 달러 수표 ({{Inflation|US-GDP|7.2|1867}} 달러 상당)
알래스카 매입 대금으로 사용된 720만 달러 수표 ( 달러 상당)
명칭알래스카 매입
로마자 표기Allaseuka Maeip
영어 명칭Alaska Purchase
러시아어 명칭продажа Аляски (Prodazha Alyaski)
거래 정보
협상
서명1867년 3월 30일
서명 장소워싱턴 D.C.
비준1867년 5월 15일
효력 발생1867년 10월 18일
서명 국가
언어영어
프랑스어
면적 및 가격
매각 가격720만 미국 달러 ( 달러 상당)
평방 킬로미터 당 가격 달러/k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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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러시아 제국크림 전쟁(1853년~1856년)에서 패배한 후 재정난에 시달렸고, 영국 해군이 알래스카를 쉽게 점령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였다. 알렉산드르 2세는 알래스카를 영국에 매각할 경우 시베리아 극동부가 영국의 군사적 위협에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미국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1857년 러시아는 미국에 알래스카 매각을 제안했고, 미국은 영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태평양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협상에 응했다. 1859년 러시아는 미국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으나, 미국 남북 전쟁(1861년~1865년) 발발로 협상이 중단되었다.

2.1. 협상 과정

1867년 3월 초, 러시아 제국알렉산드르 2세는 주미 러시아 공사인 에두아르트 스테클(Эдуард Андреевич фон Стёкль)에게 미국 국무 장관 윌리엄 H. 수어드와의 협상을 지시했다. 협상은 밤새도록 이루어졌고, 3월 30일 오전 4시에 미화 7200000USD (현재 가치로 약 1670)에 매매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4월 9일, 미국 상원은 37 대 2로 조약 체결을 승인했다. 그러나 알래스카 매입 비용에 따른 세출 승인은 미국 하원의 반대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 1868년 7월에 가서야 113 대 48의 투표로 하원에서도 승인받았다.

알래스카의 날은 알래스카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공식 이전된 1867년 10월 18일을 기리는 날이다. 현재 알래스카는 매년 3월 마지막 월요일에 수어드의 날로 알래스카 매입을 기리고 있다.

3. 미국의 알래스카 매입에 대한 평가

알래스카 매입은 초기에는 미국 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슈어드의 어리석은 짓", "슈어드의 냉장고", "북극곰 정원" 등으로 불리며 멀리 떨어진 불모지를 비싼 값에 샀다는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H. 수어드 국무장관과 찰스 섬너 상원의장은 이 조약이 국가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러시아는 남북 전쟁 동안 미국의 우방이었던 반면, 영국은 적대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러시아를 지원하고 영국을 견제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알래스카가 영국령에 둘러싸여 있어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1867년 4월 9일, 미국 상원은 37 대 2로 조약을 승인했지만, 미국 하원의 반대로 매입 비용 지출 승인은 1년 이상 지연되었다. 1868년 7월에 가서야 하원에서도 승인(113 대 48)을 받았다.

섬너는 알래스카에 2,500명의 러시아인과 혼혈인, 8,000명의 원주민, 러시아 모피 회사 직원 1만여 명, 그리고 관할 영역 밖에 5만여 명의 에스키모와 인디언이 살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럽인들은 섬과 해안에 23개의 교역소를 설치했고, 노보아르항겔스크(싯카)와 세인트 폴이 주요 도시였다.

1867년 10월 18일 시트카에서 열린 할양식에서 러시아와 미국 군인들이 열병식을 했고, 러시아 국기가 내려가고 미국 국기가 게양되었다. 알렉시스 페스트초로프 대위는 로소 장군에게 알래스카 영토를 인도했고, 러벨 로소 장군은 영토를 받았다.

알래스카의 날은 알래스카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공식 이전된 1867년 10월 18일을 기념하는 날이며, 현재 알래스카는 매년 3월 마지막 월요일에 수어드의 날로 알래스카 매입을 기념하고 있다.

이후 알래스카에서 금광과 유전이 발견되면서 알래스카 매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스워드의 결정은 재평가받게 되었다.

한편, 알래스카를 포기한 러시아 제국은 면화에 주목하여 중앙아시아로 관심을 돌렸고, 이는 동투르키스탄(신장)을 지배하던 중국(청나라)과의 충돌을 야기했다.

3.1. 매입 당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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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과 앤드루 존슨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의 제24대 국무장관 윌리엄 H. 시워드의 초상화
에이브러햄 링컨앤드루 존슨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의 제24대 국무장관 윌리엄 H. 시워드의 초상화

당시 미국 여론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으나, 일부에서는 "수어드의 어리석은 짓", "수어드의 냉장고", "북극곰 정원" 등으로 비판하며, 불모지를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다. 특히 뉴욕 월드는 알래스카를 "다 빨아먹은 오렌지"라고 비유하며, 털짐승 외에는 가치가 없다고 혹평했다. 뉴욕 트리뷴은 알래스카를 "얼어붙은 황무지"라고 폄하했다.

역사가 엘리스 팍스턴 오버홀처는 매입에 반대하는 일부 미국 신문 편집자들의 소수 의견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3.2. 매입 이후의 재평가

1896년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를 계기로 알래스카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확인되면서 매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알래스카에서는 막대한 양의 석유, 천연가스, 금, 구리 등이 발견되었고, 특히 석탄은 전 세계 매장량의 10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57년에는 대형 유전이 발견되었고, 1967년 말에는 세계 굴지의 거대 유전인 프루도 베이 유전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에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베링 해협북극해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 일본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군사적 중요성이 컸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게 아투 섬을 점령당하고 더치 하버가 폭격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의 군사적 대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알래스카 주에는 알래스카 매입과 관련된 두 개의 기념일이 있다. 하나는 1867년 10월 18일 알래스카가 공식적으로 미국 영토가 된 날을 기념하는 10월 18일이고, 다른 하나는 매입 조약 조인에 기여한 국무장관을 기념하는 스워드 데이(Seward's Day)로, 3월 마지막 월요일이다.

4. 알래스카 매입의 영향 및 의의

알래스카 매입은 미국의 영토를 크게 넓히고,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알래스카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미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며, 특히 석유는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사적으로도 알래스카는 베링 해협북극해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어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알래스카 매입 당시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이 결정을 비판했다. 그들은 알래스카를 '슈어드의 어리석은 짓', '슈어드의 냉장고', '북극곰 정원'이라고 부르며, 멀리 떨어진 쓸모없는 땅을 비싼 값에 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896년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1957년에는 대형 유전이 발견되면서 알래스카는 자원 보고임이 증명되었다. 1959년에는 미국의 주로 승격되었으며, 1967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프루도 베이 유전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에게 아투 섬을 점령당하고 더치 하버가 폭격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의 군사적 대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알래스카 매입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크게 기여한 현명한 결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알래스카 주에서는 알래스카 매입을 기념하는 두 개의 기념일이 있다. 10월 18일은 알래스카가 공식적으로 미국 영토가 된 날을 기념하는 알래스카 데이이고, 3월 마지막 월요일은 매입 협상을 주도한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를 기리는 수어드의 날이다.

5. 기념

현재 알래스카 주에서는 알래스카 매입과 관련하여 두 개의 기념일이 제정되어 있다. 하나는 10월 18일로, 알래스카의 포트 시트카에서 영토 이양식이 거행되어 알래스카가 명실상부하게 미국령이 된 1867년 10월 18일에 근거한다. 또 하나는 그로부터 약 반년 전, 러시아와 미국의 매입 조약 조인에 임했던 국무장관을 기념하는 스워드 데이이다. 날짜는 조약 조인이 이루어진 같은 해 3월 30일에 따르며, 3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