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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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날리기는 연을 날리는 민속놀이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시대에 걸쳐 존재해왔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연을 활용한 기록이 있으며, 고려 시대에는 최영이 몽골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연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의 종류는 사각장방형, 가오리연, 제비연 등 형태와 문양에 따라 다양하며, 연을 만드는 데는 대나무와 종이가 주로 사용된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2015년 지정이 해제되어 보편적인 민속문화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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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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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언어별 명칭 | hangul: 연날리기 |
로마자 표기 | Yeonnalligi |
매큔-라이샤워 표기 | Yŏnnalligi |
문화 정보 | |
이름 | 연날리기 |
원어 표기 | 鳶날리기 |
다른 이름 | 해당 정보 없음 |
지평 | 해당 정보 없음 |
지역 | 한국 |
시대 | 해당 정보 없음 |
연대 | 해당 정보 없음 |
표지 유적 | 해당 정보 없음 |
주요 유적 | 해당 정보 없음 |
기타 특징 | 해당 정보 없음 |
이전 | 해당 정보 없음 |
이후 | 해당 정보 없음 |
고안자 | 해당 정보 없음 |
폐기자 | 해당 정보 없음 |
2. 역사
《삼국사기》[2]에 따르면 647년 이전에 이미 연이 일반화되었으며, 놀이뿐만 아니라 전쟁 등 다양한 목적으로도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사》[3], 《조선왕조실록》[4], 그리고 개인 문집[5] 등에도 연날리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2. 1. 삼국시대
《삼국사기》에는 647년에 “대신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했다”는 기록[2]이 있다. 이로 볼 때 이 시기에는 이미 연이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놀이 도구뿐만 아니라 전쟁 목적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전기를 담은 책 《삼국사기》에는 진덕여왕 즉위 1년 뒤, 비담과 염종의 반란 이후 월성에 거대한 별이 떨어져 여왕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매달아 하늘로 날려 별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2. 2. 고려시대
《삼국사기》에는 647년 “대신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했다”는 기록[2]이 있다. 이로 볼 때 이 시기에는 이미 연이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놀이 도구뿐만 아니라 전쟁 목적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이후에도 《고려사》[3] 기록에 나타난다. 신라 장군 김유신의 전기를 담은 책 《삼국사기》에는 진덕여왕 즉위 1년 뒤의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고려 탐라에서 유목민인 몽골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최영이 불을 붙인 여러 개의 큰 연을 날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군인들이 연을 타고 적의 기지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 3. 조선시대
《삼국사기》에는 647년 “대신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했다”는 기록[2]이 있다. 이로 볼 때 이 시기에는 이미 연이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놀이 도구뿐만 아니라 전쟁 목적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이후에도 《고려사》[3], 《조선왕조실록》[4], 개인 문집[5] 등에 관련 기록이 나타난다.
3. 종류
연은 사각장방형 연, 가오리연, 제비연과 같이 동물 모양의 연으로 구분되나, 1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색칠이나 색종이를 다르게 오려 붙여 연의 표면에 나타내는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 이마에 반달 모양 색종이를 붙이면 반달연(검은색이면 먹반달연, 푸른색이면 청반달연, 붉은색이면 홍반달연)이 된다. 연 허리(동이)나 하반부에 칠하는 색깔에 따라서도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연 이마에 둥근 꼭지를 붙이면 꼭지연, 연 하반부에 색을 칠하면 치마연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꼭지 외 전체를 같은 색으로 칠한 초연, 돈점, 눈알, 긴 코 모양을 박아 특징을 나타낸 박이연, 연 아래나 가장자리에 발을 붙인 발연 등이 있다.
3. 1. 형태에 따른 분류
연은 외형적 형태를 기준으로 사각장방형 연과 가오리연, 제비연과 같은 동물 모양 연으로 구분되지만, 이름으로는 100여 종이 넘는다. 이는 색칠이나 색종이를 다르게 오려 붙여 연의 표면에 나타내는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여 구별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연 이마에 반달 모양 색종이를 붙이면 반달연이 되는데, 검은색이면 먹반달연, 푸른색이면 청반달연, 붉은색이면 홍반달연 등으로 불린다. 연 허리 부분(동이)도 색깔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연 이마에 둥근 꼭지를 붙이면 꼭지연, 연 하반부에 색을 칠하면 치마를 두른 것 같다고 하여 치마연이라고 하며, 이들 역시 색깔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이 외에도 꼭지 외 전체를 같은 색으로 칠한 초연, 전체나 부분에 돈점, 눈알, 긴 코 모양을 박아 특징을 나타낸 박이연, 연 아래나 가장자리에 발을 붙인 발연 등이 있다.
3. 2. 문양에 따른 분류
사각장방형의 연과 가오리연, 제비연처럼 동물 모양의 연으로 구분되나, 연의 명칭은 100여 종이나 된다. 이는 색칠을 하거나 색종이의 모양을 다르게 오려 연 표면에 붙이는 표시에 따라 특징을 나타내고, 그에 따라 일정한 명칭을 붙여 구별하기 때문이다.[1]예를 들어 연 이마에 반달 형상을 오려 붙이면 반달연이 되는데, 검은색이면 먹반달연, 푸른색이면 청반달연, 붉은색이면 홍반달연이라 한다. 동이도 그 빛깔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연 이마에 둥근 꼭지를 오려 붙이면 꼭지연이라 하고, 연 하반부에 빛깔을 칠하는 것을 치마 두른다고 하여 치마연이라 한다. 이들도 그 빛깔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1]
이 외에도 꼭지 외에 전체를 동일한 색으로 한 초연, 전체나 부분에 돈점이나 눈알, 긴 코 같은 모양을 박아서 특징을 표시한 박이연, 연의 아래나 가장자리에 발 같은 것을 붙인 발연 등이 있다.[1]
4. 제조
연은 대나무와 종이를 주재료로 하여 만들어진다. 대는 고황죽, 백갈죽, 석대 등을, 종이는 도개 창호지를 주로 사용하며, 과거에는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연의 크기는 날리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연줄은 상백사, 당백사, 떡줄, 세철사줄 등이 있다. 상백사는 한국산 명주실로, 당백사는 중국산 명주실로, 떡줄은 재치실로 만든 것이다. 세철사줄은 가느다란 철사인데, 잘 끊어져 사용 빈도가 낮다. 연실을 강하게 하기 위해 물고기 부레 등으로 풀을 끓여서 사금파리나 유리가루를 타서 연실에 서슬이 일도록 하는데, 이것을 ‘가미’ 혹은 ‘갬치’라고 하며, 이를 ‘가미 먹인다’고 한다. 연줄을 감는 얼레는 모양에 따라 네모얼레, 육모얼레, 팔모얼레, 볼기짝얼레(납짝얼레) 등이 있다. 보통 네모얼레를 많이 사용하나 경기용으로는 육모얼레나 팔모얼레를 많이 사용한다.
4. 1. 재료
일반적으로 연을 만드는 데는 대와 종이가 필요하다. 대는 보통 고황죽, 백갈죽, 석대를 사용하며, 종이는 도개 창호지를 사용하는데 옛날에는 대개 손수 만들어 날렸다. 연을 만들 때는 먼저 연의 바탕이 될 종이를 접어서 크기를 정한다. 연의 크기는 연을 날리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일정하지 않다.연줄은 상백사, 당백사, 떡줄, 세철사줄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상백사는 한국산 명주실로 만든 것이고 당백사는 중국산 명주실로 만든 것이며, 떡줄은 재치실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철사줄은 가느다란 철사인데, 이것은 휘기만 하면 잘 끊어지므로 사용하는 예는 아주 드물다.
연실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고기 부레 등으로 풀을 끓여서 사금파리나 유리가루를 타서 연실에 서슬이 일도록 하는데, 이것을 ‘가미’ 혹은 ‘갬치’라고 하며, 이를 ‘가미 먹인다’고 한다.
연줄을 감는 얼레는 모양에 따라 네모얼레, 육모얼레, 팔모얼레, 볼기짝얼레(납짝얼레) 등이 있다. 보통 네모얼레를 많이 사용하나 경기용으로는 육모얼레나 팔모얼레를 많이 사용한다.
4. 2. 제작 과정
일반적으로 연을 만드는 데는 대와 종이가 필요하다. 대는 보통 고황죽, 백갈죽, 석대를 사용하며, 종이는 도개 창호지를 사용하는데 옛날에는 대개 손수 만들어 날렸다. 연을 만들 때는 먼저 연의 바탕이 될 종이를 접어서 크기를 정한다. 연의 크기는 연을 날리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일정하지 않다.연줄은 상백사, 당백사, 떡줄, 세철사줄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상백사는 한국산 명주실로 만든 것이고 당백사는 중국산 명주실로 만든 것이며, 떡줄은 재치실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철사줄은 가느다란 철사인데, 이것은 휘기만 하면 잘 끊어지므로 사용하는 예는 아주 드물다.
연실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고기 부레 등으로 풀을 끓여서 사금파리나 유리가루를 타서 연실에 서슬이 일도록 하는데, 이것을 ‘가미’ 혹은 ‘갬치’라고 하며, 이를 ‘가미 먹인다’고 한다.
연줄을 감는 얼레는 모양에 따라 네모얼레, 육모얼레, 팔모얼레, 볼기짝얼레(납짝얼레) 등이 있다. 보통 네모얼레를 많이 사용하나 경기용으로는 육모얼레나 팔모얼레를 많이 사용한다.
5. 문화재 지정 및 해제
1992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연은 누구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전승 활동이 활발하고, 연의 제작과 연행이 여러 단체의 다양한 보존과 전승 활동을 통해 일정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연날리기의 지정을 해제하여 보편적 민속문화로 확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되어 2015년 12월 31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6]
참조
[1]
서적
무명자집·시고
[2]
서적
삼국사기
647
[3]
서적
고려사
1284-02
[4]
서적
명종실록
1566-01-15
[5]
서적
동국이상국집·후집
[6]
간행물
서울특별시고시 제2015-417호
서울특별시장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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