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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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루살렘 입성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한 사건으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에 묘사되어 있다. 이 사건은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담고 있으며, 지지자들의 환호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모습 등이 묘사된다. 학자들은 이 사건의 역사적 사실 여부와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며, 로마의 반응, 군중의 규모, 나귀를 탄 이유 등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종교적으로는 평화의 왕, 희생양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상징하며, 구약성경과의 연관성을 통해 그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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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입성 | |
---|---|
사건 개요 | |
사건 | 예루살렘 입성 |
다른 이름 | 종려 주일 |
날짜 | 기독교에서 예수의 고난 주간 시작을 기념하는 절기 |
관련 성경 구절 | 마태 21:1-11 마르 11:1-11 루카 19:28-44 요한 12:12-19 |
묘사 | |
![]() | |
내용 |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벗어 길에 펴면서 그를 환영했다. |
종려나무 가지의 의미 | 승리와 왕권을 상징 |
군중의 환호 |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이스라엘의 임금님께 복이 있기를! |
예수의 반응 | 예수는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입성했다. |
신학적 의미 | |
의미 |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건 예수가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을 상징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
기념 | |
종려주일 | 사순절 마지막 주일 |
종려 가지 | 교회에서 종려 가지를 축복하고 나누어 가진다. |
예배 | 종려주일을 기념하는 특별 예배를 드린다. |
2. 복음서 기록
마태오 21:1-11, 마르코 11:1-11, 루카 19:28-44, 요한 12:12-19에는 예수의 예루살렘 개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1]
2. 1. 복음서별 비교
יְרוּשָׁלַיִם|예루샬라임he 입성 사건은 마태오 21:1-11, 마르코 11:1-11, 루카 19:28-44, 요한 12:12-19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주로 신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NIV)을 기준으로 복음서별 내용을 비교한 것이다.[1]마태오 복음서 | 마르코 복음서 | 루가의 복음서 | 요한 복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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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받은 예수의 지시 | ||||
나귀(들)를 데려옴 | ||||
입성과 반응 |
모든 유대인 남자는 세 순례 축제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한다. 유월절 전의 안식일은 유대교에서 위대한 안식일이라고 불리며, 각 가정이나 공동체가 유월절 양을 구별하는 때이다.
학자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지지자들에게 환호를 받았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불가지론 학자 바트 D. 어만은 정경 복음서의 묘사와는 달리, 실제 입성은 개선장군처럼 영광스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요소는 신학적 목적을 위해 창작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역사적 맥락
유월절은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한다. 로빈 라우트리지에 따르면, 초기 포로 귀환 이후 시대에 유월절 축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순례 축제"가 되었다.[2]
4. 학자들의 해석
네 복음서는 모두 개선 입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다중 증언 기준을 충족하지만, 복음서 간에는 모순이 존재하며, 각 이야기는 개선 입성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묘사한다.
E. P. 샌더스는 만약 입성이 복음서에 묘사된 대로였다면, 로마인들이 왜 예수 처형을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복음서에 묘사된 대규모 사건에서 예수가 이스라엘의 (미래의) 왕이라고 선포되었다면, 이는 로마인들이 즉시 처형했을 반역 행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로마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묘사된 것보다 훨씬 작고 겸손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샌더스에 이어 어만은 개선 입성이 맥락적 신뢰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만약 예수가 군중의 지지를 받으며 유대인의 새로운 통치자로서 환호와 함께 도시로 들어갔다면, 당국이 그를 즉시 체포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반면, 아델라 야브로 콜린스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소란이나 조직적인 시위가 아니라, 수천 명의 순례자들 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모리스 케이시는 로마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예수의 입성이 같은 날 예루살렘에 입성한 본디오 빌라도의 입성에 가려졌기 때문이며, 빌라도의 입성이 실제로 예수의 입장보다 훨씬 더 개선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로마인들이 유월절 기간에 한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도시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빌라도의 약 1,000명의 병사로는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열기로 가득 찬 수만 명의 유대인 순례자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며, 요세푸스 역시 순례 축제 기간 동안 혁명의 가능성이 상당했다고 기록했다. 예수는 군중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종말론적 희망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유월절 열기 속에서 부적절한 개입은 반란과 수천 명의 사망을 초래했을 수 있다.
브렌트 킨만은 로마인들이 예수의 입장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입장은 도시 외곽의 올리브 산에서 이루어졌고, 로마군은 약 300m 떨어진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단병들이 수많은 순례자들 틈에서 올리브 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듣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모리스 케이시는 유대 당국이 소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즉시 예수를 체포하지 않았다고 복음서에서 강조한다.[4] 그러나 이 행위가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은 것은 아니며, 예수는 며칠 후 유대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에 대한 혐의 중에는 그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선포하고 반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폴라 프레드릭센은 "입성과 처형은 서로 정확히 들어맞는다. 예수는 유월절 전에 왕처럼 도시로 행진한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런 것처럼 빌라도에 의해 처형된다"라고 강조한다.
4. 1. 군중과 지리
공관 복음서(마태오 20:29, 마르코 10:46, 루카 18:35–36)의 기록에 따르면, 예리코를 떠날 때 점점 더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와 열두 제자를 따랐으며,[1] 예수께서는 한두 명의 맹인을 고치셨고 그들 또한 무리에 합류하여,[2]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3] 예리코는 전통적으로 예루살렘의 유월절 축제를 향해 요르단 강을 건너는 순례자들의 장소였기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자연스러웠을 것이라고 언급했지만,[1] 텍스트(예: 마태오 20:29)는 특히 "갈릴리에서의 그의 명성으로 인해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한) 당나귀를 타신 후,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호산나!'를 외치고 예언과 관련된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루카 19:37에 따르면 올리브 산을 지나면서).
요한 복음서는 반대로 예리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며, 광야의 에브라임으로 도망쳐 나사로를 살린 사건(요한 11:46–57)으로 인해 제사장들의 눈을 피했다고 묘사한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와 열두 제자는 에브라임을 떠나 베다니에서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를 방문한다(요한 12:1–3). 그곳에서 예수와 나사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은 무리가 모였다(12:9). 그러나 12:12–13절은 그들이 베다니에서 짧은 만남을 가진 후 같은 날 다시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큰 무리', 즉 동일한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음 날 다시 예루살렘에서 나와 예수와 열두 제자를 만나 맞이하며, 이 예루살렘 군중들이 요한복음 12:12–15에 따라 '호산나!'를 외치고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외친다(공관 복음서에서 예리코에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외치는 것과 다르게). 요한복음 12:16절은 제자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외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반면, 마태, 마가,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그들 스스로 이 외침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며,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하다. 18절은 '무리가 그를 만나러 나왔다'(이미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다른 복음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과 연결한다.
예루살렘 입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다. 마커스 보그, 탄 김 홧, 브렌트 킨먼과 폴라 프레드릭슨은 예수의 입성을 추종자와 지지자들의 환호로 맞이했다고 주장하는 반면,[4][5][6][7] E. P. 샌더스에 따르면 예수는 소수의 제자들로부터 "호산나"라는 외침을 받았을 뿐이다.[8] 마태오복음 21:8–9에 따르면,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한 군중은 갈릴리에서 예수를 따라다니던 순례자들과 '예수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나온 순례자들(많은 이들이, 요한복음 12:12)'이 섞여 있었다.[1]
4. 2. 나귀
예수께서는 공관 복음서에서 두 명의 제자를 인근 마을 벳바게로 보내 나귀를 가져오게 하셨고, 질문을 받으면 주님께서 필요로 하신다고 말하라고 하셨다.[3] 신약 학자 마커스 보그와 존 도미니크 크로산은 이것을 축제 기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카이사레아 마리티마에서 이동했을 로마 총독의 행렬과 대조되는 미리 계획된 "반대 행렬"이라고 특징지었다. 존 버그스마 교수는 이것이 솔로몬의 즉위 (열왕기상 1장에 묘사됨)를 따라한 것으로 널리 여겨진다고 말하며, 다윗의 지시로 솔로몬이 기혼 샘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백성들의 환호 속에 아버지의 나귀를 타고 도성으로 들어간다고 설명한다.
그 후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는데, 세 공관 복음서는 제자들이 먼저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었다고 말한다. 마태복음 21:7은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와 그 새끼에게 얹었다고 주장한다. 개신교 신학자 하인리히 마이어는 "예수께서 어느 짐승을 타실지 몰라 그들의 겉옷을 두 짐승 모두에게 덮어주었다"고 제안했다. 마태는 두 마리의 동물을 언급하는 유일한 공관 복음서이다. 새 아메리카 성경에 따르면, 이것은 마태가 인용한 구약 스가랴서 9:9절의 내용을 이해한 것을 반영하며, "...일반적인 히브리 문학 기법인 수사 병행법"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동물을 다른 방식으로 두 번 언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바트 D. 어만은 마태복음이 스가랴 9:9절을 잘못 이해했다고 동의했는데, 이 구절은 '[너의 왕이] 나귀를 타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온다'고 말한다. 이 반복은 히브리 시적 표현으로, 다른 단어로 같은 내용을 두 번 말하는 것이지만, 마태는 실수로 이것을 두 마리의 다른 동물로 만들어서 예수께서 한 마리의 나귀를 두 번 묘사하는 대신 동시에 탔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 12:14-15는 스가랴 9:9절의 동일한 구절을 언급하지만, 여기서는 한 마리의 나귀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마태가 실수로 예수께서 암나귀와 망아지 두 마리를 탔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스티븐 칼슨에 따르면, 마태는 암나귀의 존재를 스가랴가 망아지를 "암나귀의 아들"이라고 특징지은 것을 성취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또한 복수 대명사가 마태에게 전체-부분 제유법으로 작용하며, 암나귀와 망아지가 개념적인 전체를 구성하므로 예수께서 "그들" 위에 앉을 때 망아지를 타고 어머니 암나귀와 함께 히브리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어만은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사건이 예수께서 구약 예언을 성취하도록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유사성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마태가 스가랴 9:9절을 실수로 두 마리의 동물로 바꾸어 이 예언을 문자적으로 성취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신학적 동기를 강조하며, 마태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려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모리스 케이시는 동의하지 않으며, 이 사건이 스가랴서와 유사한 것은 이 사건의 역사성을 배제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마태만이 망아지를 언급하고 (아마도 스가랴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성취하려 시도했을 것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단순히 나귀를 언급한다고 지적한다.
4. 3. 외침
군중들은 각 복음서에서 다소 다른 다양한 예언 관련 성명들을 외쳤다고 전해진다. 호산나라는 외침(누가복음을 제외한 모든 복음서에서 언급됨[1])은 히브리어 '호시아-나'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를 구원하소서",[1] "지금 구원하소서" 또는 "구원하소서"를 의미한다. 네 복음서 모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복이 있으소서!'라고 외쳤다는 점에 동의한다(누가복음에서는 '그'를 '왕'으로 대체한다[1]). 이는 시편 118편 25절, 26절의 인용구이며, 마태복음 23장 39절과 누가복음 13장 35절에서도 이 구절을 암송한다. 시편 118편은 초막절 동안 성전 합창단이 매일 아침 부르는 전통적인 축제 할렐의 일부이므로 모든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2]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군중들은 예수가 곧 다윗 왕의 '아들'(후손)로서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실레벡스는 마태와 마가복음이 예수가 이스라엘 왕위에 대한 상속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언급했다.[3]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군중들은 다윗에 대한 언급 없이 예수가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명시적으로 주장한다.[3][1] 허프만(Huffman, 2012)에 따르면 누가는 예수의 임박한 왕국을 로마 제국에 대한 정치적 위협이 아닌 '하늘의 평화'를 추구하는 영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4. 4. 겉옷과 나뭇가지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고, 그곳 사람들이 예수 앞에 겉옷을 폈으며(요한복음 제외) 작은 나뭇가지를 폈다고 기록되어 있다.[1] 허프만(Huffman)은 "누가는 나뭇가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요한만이 종려나무 가지를 언급했다(요한 12:13)."라고 언급했다.[1]
4. 5. ''Flevit super illam'' (예루살렘을 보며 우시다)
Flevit super illamla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접근했을 때, 그 도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사건을 가리킨다. 이 때 예수는 도시에 닥칠 고난을 예언했다.
4. 6. 반응
학자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불가지론 학자 바트 D. 어만은 정경 복음서의 묘사와 달리, 실제 입성은 개선장군처럼 영광스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요소는 신학적 목적을 위해 창작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네 복음서는 모두 개선 입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다중 증언 기준을 충족하지만, 복음서 간에는 모순이 존재하며, 각 이야기는 개선 입성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묘사한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루살렘 입성 당시 예수는 큰 흥분을 불러일으켰고, "온 도시가 동요"했으며, 도시 사람들은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고, "무리"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언자 예수다."라고 대답했다.
E. P. 샌더스는 만약 입성이 복음서에 묘사된 대로였다면, 로마인들이 왜 예수 처형을 그렇게 오래 기다렸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복음서에 묘사된 대규모 사건에서 예수가 이스라엘의 (미래의) 왕이라고 선포되었다면, 이는 로마인들이 즉시 처형했을 반역 행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로마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묘사된 것보다 훨씬 작고 겸손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샌더스에 이어 어만은 개선 입성이 맥락적 신뢰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만약 예수가 군중의 지지를 받으며 유대인의 새로운 통치자로서 환호와 함께 도시로 들어갔다면, 당국이 그를 즉시 체포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반면, 아델라 야브로 콜린스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소란이나 조직적인 시위가 아니라, 수천 명의 순례자들 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모리스 케이시는 로마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예수의 입성이 같은 날 예루살렘에 입성한 본디오 빌라도의 입성에 가려졌기 때문이며, 빌라도의 입성이 실제로 예수의 입장보다 훨씬 더 개선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로마인들이 유월절 기간에 한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 도시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빌라도의 약 1,000명의 병사로는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열기로 가득 찬 수만 명의 유대인 순례자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며, 요세푸스 역시 순례 축제 기간 동안 혁명의 가능성이 상당했다고 기록했다. 예수는 군중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종말론적 희망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유월절 열기 속에서 부적절한 개입은 반란과 수천 명의 사망을 초래했을 수 있다.
브렌트 킨만은 로마인들이 예수의 입장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입장은 도시 외곽의 올리브 산에서 이루어졌고, 로마군은 약 300m 떨어진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단병들이 수많은 순례자들 틈에서 올리브 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듣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모리스 케이시는 유대 당국이 소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즉시 예수를 체포하지 않았다고 복음서에서 강조한다고 말한다.[4] 그러나 이 행위가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은 것은 아니며, 예수는 며칠 후 유대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에 대한 혐의 중에는 그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선포하고 반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폴라 프레드릭센은 "입성과 처형은 서로 정확히 들어맞는다. 예수는 유월절 전에 왕처럼 도시로 행진한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런 것처럼 빌라도에 의해 처형된다"라고 강조한다.
5. 종교적 의미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단순한 행렬이 아닌,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 유월절과의 연관성: 유월절은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기념하는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모든 유대인 남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다.[2] 유월절 전 안식일은 위대한 안식일이라 불리며, 각 가정에서는 유월절 양을 준비했다.
- 스가랴서의 예언: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이는 스가랴서 9장 9절에 나오는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다.[3]
- זְכַרְיָה|즈카르야he (스가랴) 9장 9절: "
- 기타 구약성경과의 연결:
- 솔로몬의 즉위 (열왕기상 1장): 존 버그스마 교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솔로몬의 즉위식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기혼 샘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백성들의 환호 속에 아버지의 나귀를 타고 도성으로 들어갔다.
- 예후의 즉위 (열왕기하 9:11-13):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될 때, 사람들이 옷을 벗어 층계 위에 깔고 나팔을 불었다.
- Maccabees|마카베오영어상 13장 51절: 유대인 해방 축하 행사에서 사람들이 감사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송가를 불렀다.[7]
- 감람산과 황금문:
- זְכַרְיָה|즈카르야he(스가랴) 14장 4절은 메시아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 황금문은 성전 산 동쪽 벽 북쪽에 있으며, '자비의 문'(Sha'ar HaRakhamim)이라고 불린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셰키나 (שכינה) (신의 임재)는 동쪽 문을 통해 나타났고, 기름부음받은 자(메시아)가 올 때 다시 나타날 것이다(에제키엘 44:1–3).
5. 1. 평화의 왕
예수께서는 3대 절기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번 예루살렘에 가셨지만,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입성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는 평화의 겸손한 왕으로서 엄숙하게 입성했다.[5] 전통적으로, 나귀를 타고 도시에 들어가는 것은 전쟁을 벌이는 왕이 말을 타고 도착하는 것보다 평화로운 도착을 상징한다.[5] 20세기 영국의 학자 윌리엄 닐은 "[O]우리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심으로써 자신의 첫 번째 메시아적 상징을 연출하신다. 이것은 스가랴가 묘사했듯이, 메시아가 올 때 정복자가 아닌 평화의 왕으로서 겸손한 짐승을 타고 시온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라고 논평했다.[5]N. T. Wright는 "자신의 시대와 문화 속에서,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기드론을 지나 성전 산까지 나귀를 타고 가시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왕의 주장을 이야기했다. 스가랴에 대한 암시는 분명하다. ... 소위 '개선 입성'은 분명히 메시아적이었다."라고 말했다.[5]
5. 2. 희생양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벳바게를 지나셨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월절 양은 벳바게에서 가져와 성전 산으로 인도되었다.5. 3. 구약성경과의 연관성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구약성경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유월절과의 연관성: 모든 유대인 남자는 세 순례 축제 중 하나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다.[2] 유월절은 이집트의 속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능력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유월절 전 안식일은 위대한 안식일이라 불리며, 각 가정에서는 유월절 양을 준비했다.
- 스가랴서의 예언: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이는 스가랴서 9장 9절에 나오는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다.[3] 새 아메리카 성경에 따르면, 스가랴서는 "...일반적인 히브리 문학 기법인 수사 병행법"을 사용해 동일한 동물을 다른 방식으로 두 번 언급한다.[3]
- זְכַרְיָה|즈카르야he (스가랴) 9장 9절: "
- Matthew|매튜영어(마태)는 두 마리의 동물을 언급했지만, 새 아메리카 성경에 따르면 이는 마태가 수사 병행법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동물을 다른 방식으로 두 번 언급하는 히브리 문학 기법을 오해했기 때문이다.[3] 바트 D. 어만은 마태복음이 스가랴 9장 9절을 잘못 이해하여, 예수님이 한 마리의 나귀를 두 번 묘사하는 대신 동시에 두 마리에 탔다고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 겸손과 평화의 왕: 전통적으로, 나귀를 타고 도시에 들어오는 것은 전쟁을 벌이는 왕이 말을 타고 오는 것과 달리 평화로운 도착을 상징했다.[6] 20세기 영국의 학자 윌리엄 닐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스가랴가 묘사했듯이 메시아가 정복자가 아닌 평화의 왕으로서 겸손한 짐승을 타고 시온에 들어오는 방식이었다."라고 설명한다.[7]
- 다윗 왕과의 연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군중들은 예수를 다윗 왕의 후손으로 묘사하며, 이는 예수가 이스라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 기타 구약성경과의 연결:
- 솔로몬의 즉위 (열왕기상 1장): 존 버그스마 교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솔로몬의 즉위식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기혼 샘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백성들의 환호 속에 아버지의 나귀를 타고 도성으로 들어갔다.
- 예후의 즉위 (열왕기하 9:11-13):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될 때, 사람들이 옷을 벗어 층계 위에 깔고 나팔을 불었다.
- Maccabees|마카베오영어상 13장 51절: 유대인 해방 축하 행사에서 사람들이 감사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찬송가를 불렀다.[7]
- 감람산과 황금문:
- זְכַרְיָה|즈카르야he(스가랴) 14장 4절은 메시아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 황금문은 성전 산 동쪽 벽 북쪽에 있으며, '자비의 문'(Sha'ar HaRakhamim)이라고 불린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셰키나 (שכינה) (신의 임재)는 동쪽 문을 통해 나타났고, 기름부음받은 자(메시아)가 올 때 다시 나타날 것이다(에제키엘 44:1–3).
참조
[1]
웹사이트
Online Bible – New International Version
https://biblehub.com[...]
2011
[2]
논문
Passover and Last Supper
https://www.tyndaleb[...]
2002-11-01
[3]
성경
[4]
성경
[5]
성경
[6]
서적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Families on Luke 19:30
https://biblehub.com[...]
1891
[7]
서적
Jerusalem Bible
1966
[8]
웹사이트
Catena Aurea: commentary on the four Gospels; collected out of the works of the Fathers. Volume 3: St. Mark
https://archive.org/[...]
Parker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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