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로 마사시
1. 개요
오구로 마사시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99년 감바 오사카에서 J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2001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로 임대되었고, 2004년 J리그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일본 선수 중 최다 득점을 올렸다. 2005년에는 프랑스의 그르노블과 계약했으며, 2006년에는 이탈리아 토리노 FC로 이적했다. 2008년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 베르디에서 뛰었으며, 이후 요코하마 FC, FC 도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교토 상가 FC, 몬테디오 야마가타, 토치기 SC 등 여러 팀에서 활동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 일본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2021년부터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감바 오사카 아카데미 코치를 거쳐 현재 FC TIAMO 히라카타의 헤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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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오구로 마사시 (大黒 将志) |
|---|---|
| 출생일 | 1980년 5월 4일 |
| 출생지 | 오사카부 도요나카시 |
| 신장 | 1.78m |
| 포지션 | 공격수 |
| 현재 소속팀 (유소년 코치) | 감바 오사카 |
| 유소년 클럽 | 감바 오사카 (1993–1998) |
|---|---|
| 프로 클럽 | 감바 오사카 (1999–2005): 111경기 48골 콘사돌레 삿포로 (임대, 2001): 4경기 0골 그르노블 (2006): 19경기 6골 토리노 (2006–2008): 10경기 0골 도쿄 베르디 (2008–2009): 53경기 23골 요코하마 FC (2010): 16경기 12골 FC 도쿄 (2010): 22경기 7골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11–2013): 53경기 12골 항저우 뤼청 (2013): 24경기 3골 교토 상가 (2014–2017): 110경기 49골 몬테디오 야마가타 (임대, 2016): 26경기 9골 도치기 SC (임대, 2018): 40경기 12골 도치기 SC (2019–2020): 29경기 6골 |
| 총 출장 및 득점 | 517경기 181골 |
| 국가대표팀 | 일본 (2005–2008) |
|---|---|
|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 | 22경기 5골 |
| 감바 오사카 | J1리그 우승 (2005) J리그컵 준우승 (2005) |
|---|---|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J1리그 준우승 (2013) 천황배 우승 (2013) |
| 지도자 | 감바 오사카 (유소년 코치, 2021–) |
|---|
-
도요나카시 출신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7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
도요나카시 출신 -
고사키 사토루
일본의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고사키 사토루는 교토 대학교 정보공학과를 졸업하고 남코를 거쳐 현재 MONACA에 소속되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러키☆스타》, 《모노가타리》 시리즈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 및 게임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헤이세이 애니송 대상에서 여러 부문을 수상했다. -
이탈리아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이탈리아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980년 출생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1980년 출생 -
저신다 아던
저신다 아던은 뉴질랜드의 제39대 총리로, 노동당 당수로서 2017년 총선 승리로 총리에 취임하여 아동 빈곤 감소, 기후변화 대응, 코로나19 팬데믹 대처 등에 주력하고 다자주의 외교를 추진했으며 2023년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2. 클럽 경력
오구로는 1999년 J1 리그의 감바 오사카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콘사돌레 삿포로로 임대되어 경험을 쌓았고, 감바 오사카로 복귀한 후 점차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04년에는 J1 리그에서 일본인 선수 중 가장 많은 20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2위에 올랐고, 2005년에는 팀의 J1 리그 첫 우승에 기여했다.
2005년 12월, 프랑스 리그 2의 그르노블과 계약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2006년 8월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토리노로 이적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2008년 6월, 일본으로 복귀하여 도쿄 베르디로 이적했다. 이후 요코하마 FC, FC 도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등 여러 J리그 팀을 거쳤으며, 2013년에는 중국 슈퍼 리그의 항저우 그린타운으로 임대되어 오카다 다케시 감독과 재회하기도 했다. 2014년 교토 상가 FC로 이적하여 J2 리그 득점왕(26골)을 차지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이후 몬테디오 야마가타 임대, 교토 상가 복귀를 거쳐 2018년부터 토치기 SC에서 뛰었으며, 2019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클럽별 출전 기록
| 클럽 | 시즌 | 리그 | 자국 컵 | 리그 컵 | 합계 | ||||
|---|---|---|---|---|---|---|---|---|---|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 감바 오사카 | 1999 | 11 | 0 | 0 | 0 | 2 | 0 | 13 | 0 |
| 2000 | 7 | 1 | 1 | 0 | 2 | 0 | 10 | 1 | |
| 2002 | 6 | 1 | 0 | 0 | 2 | 1 | 8 | 2 | |
| 2003 | 26 | 10 | 2 | 0 | 5 | 3 | 33 | 13 | |
| 2004 | 30 | 20 | 2 | 6 | 7 | 4 | 39 | 30 | |
| 2005 | 31 | 16 | 2 | 2 | 4 | 0 | 37 | 18 | |
| 합계 | 111 | 48 | 7 | 8 | 22 | 8 | 140 | 64 | |
| 콘사돌레 삿포로 (임대) | 2001 | 4 | 0 | 0 | 0 | 2 | 0 | 6 | 0 |
| 그르노블 | 2005-06 | 17 | 5 | 0 | 0 | 0 | 0 | 17 | 5 |
| 2006–07 | 2 | 1 | 0 | 0 | 1 | 0 | 3 | 1 | |
| 합계 | 19 | 6 | 0 | 0 | 1 | 0 | 20 | 6 | |
| 토리노 | 2006–07 | 7 | 0 | 0 | 0 | – | 7 | 0 | |
| 2007–08 | 3 | 0 | 1 | 0 | – | 4 | 0 | ||
| 합계 | 10 | 0 | 1 | 0 | 0 | 0 | 11 | 0 | |
| 도쿄 베르디 | 2008 | 14 | 2 | 0 | 0 | 0 | 0 | 14 | 2 |
| 2009 | 39 | 21 | 0 | 0 | – | 39 | 21 | ||
| 합계 | 53 | 23 | 0 | 0 | 0 | 0 | 53 | 23 | |
| 요코하마 FC (임대) | 2010 | 16 | 12 | 0 | 0 | – | 16 | 12 | |
| FC 도쿄 (임대) | 2010 | 22 | 7 | 2 | 0 | 2 | 0 | 26 | 7 |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2011 | 28 | 10 | 3 | 4 | 5 | 3 | 36 | 17 |
| 2012 | 25 | 2 | 1 | 0 | 3 | 1 | 29 | 3 | |
| 2013 | 0 | 0 | 0 | 0 | 0 | 0 | 0 | 0 | |
| 합계 | 53 | 12 | 4 | 4 | 8 | 4 | 65 | 20 | |
| 저장 그린타운 (임대) | 2013 | 24 | 3 | 2 | 3 | – | 26 | 6 | |
| 교토 상가 FC | 2014 | 42 | 26 | 2 | 1 | – | 44 | 27 | |
| 2015 | 40 | 16 | 3 | 0 | – | 43 | 16 | ||
| 2017 | 28 | 6 | 1 | 0 | – | 29 | 6 | ||
| 합계 | 110 | 48 | 6 | 1 | 0 | 0 | 116 | 49 | |
| 몬테디오 야마가타 (임대) | 2016 | 26 | 9 | 1 | 1 | – | 27 | 10 | |
| 토치기 SC | 2018 | 40 | 12 | 0 | 0 | – | 40 | 12 | |
| 2019 | 29 | 6 | 0 | 0 | – | 29 | 6 | ||
| 합계 | 69 | 18 | 0 | 0 | 0 | 0 | 69 | 18 | |
| 통산 | 488 | 180 | 22 | 17 | 35 | 12 | 545 | 209 | |
2.1. 유소년 시절
5세 때 형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도요나카 SS에 소속되었고, 3학년 때부터는 전 일본 대표 FW 가마모토 구니시게가 대표를 맡고 있던 가마모토 FC(감바 오사카 주니어의 전신)에서도 뛰었다. 4학년 때부터는 가마모토 FC에서 이관된 감바 오사카 주니어에서의 플레이에 전념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감바 오사카 주니어 유스에 승격되었다. 당시에는 별도의 선발 과정(셀렉션)이 없었고 100명 이상의 선수를 거느린 대규모 팀이었지만, 오구로는 A팀(1군)에 계속 포함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감바 오사카 유스로 승격되었다. 유스팀 소속 시기에는 FW와 MF로 뛰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 FW로 포지션을 확정했다. 유스 동기인 후타가와 다카히로와 함께 클럽 유스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개최된 고엔노미야배 전일본 U-18 선수권에서는 결승전에서 후지에다히가시 고등학교에 패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2.2. 감바 오사카 (1999-2005)
오구로는 1999년 J리그의 감바 오사카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3월 1일, 도도로키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베르디 가와사키와의 J1리그 1라운드 경기에서 J리그 첫 득점을 기록했다.
2001년에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스스로 콘사돌레 삿포로로의 임대 이적을 선택했다. 비록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오카다 다케시의 지도 아래 훈련 태도를 개선하며 선수로서 성장할 가능성을 보였다.
2002년 감바 오사카로 복귀한 오구로는 초기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으나, 본인이 원하던 최전방 공격수(FW) 포지션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감독 니시노 아키라에게 직접 전달했다. 2004년 마침내 공격수로서 잠재력을 터뜨리며 J1리그에서 20골을 기록, 리그 득점 랭킹 2위이자 일본인 선수 중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같은 해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오구로의 이름 한자 표기(大黒)가 대흑천(大黒天)과 비슷하여 '대흑천'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감바 오사카의 공식 상품 매장 이름도 '대흑천의 신사'로 불리기도 했다.
2005년에는 아라우조, 페르난지뉴와 함께 감바 오사카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리그 6위에 해당하는 16골을 기록했고, 팀의 J1리그 첫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인 2005년 12월, 프랑스 리그 2의 그르노블과 계약하며 유럽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다.
주요 기록 (감바 오사카 소속)
* J리그 첫 출장: 1999년 3월 27일 J1리그 1st 스테이지 4라운드 vs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지바 (이치하라 린카이 경기장)
* J리그 첫 득점: 2000년 3월 1일 J1리그 1st 스테이지 1라운드 vs 베르디 가와사키 (도도로키 육상 경기장)
2.3. 유럽 리그 진출 (2006-2008)
2005년 12월, 오구로는 프랑스 리그 2 소속의 그르노블 푸트 38과 계약하여 2006년 1월부터 뛰게 되었다. 당시 그르노블은 일본 기업 인덱스 홀딩스가 소유하고 있었다. 오구로는 동료 선수들로부터 원하는 만큼 패스를 받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2005-06 시즌 17경기 5득점, 2006-07 시즌 2경기 1득점을 기록하며 총 19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넣었다.
2006년 8월 31일, 유럽 이적 시장 마감일에 맞춰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토리노 FC로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는 오구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세리에 A 무대 진출이었으나, 연습 경기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공식 경기에서는 충분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토리노 소속으로는 2006-07 시즌 7경기, 2007-08 시즌 3경기에 출전했지만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고, 이탈리아에서의 도전은 아쉬움 속에 마무리되었다. 2008년 6월, 오구로는 토리노 FC를 떠나 일본으로 복귀했다.
2.4. J리그 복귀 (2008-2019)
2008년 6월 30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J1 리그의 도쿄 베르디로 완전 이적하며 일본 무대에 복귀했다. 에이스 공격수 훅크의 이적으로 생긴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14경기 2골에 그쳤고 팀은 J2 리그로 강등되었다. 2009년에도 팀에 잔류하여 J2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팀은 7위에 머물러 J1 승격에 실패했다. 클럽의 모회사 변경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2010년, 도쿄 베르디의 경영난으로 인해 J2 리그의 요코하마 FC로 임대 이적했다. 요코하마 FC에서는 6월까지 16경기에 출전하여 2번의 해트트릭을 포함, 12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같은 해 6월, 월드컵 휴식기 동안 J1 리그의 FC 도쿄로 다시 임대 이적했다 (소유권은 도쿄 베르디 유지). FC 도쿄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하뉴 나오타케와 같은 동료들에게서 이타적인 플레이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8월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에서는 LDU 키토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어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9월 감독 교체 이후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다음 시즌 전력 구상에서 제외되어 임대 기간 만료로 팀을 떠났다.
2011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완전 이적했다. 이적 첫 해에는 리그에서 10골을 기록하며 2005년 이후 처음으로 J1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했고, 공식전 총 17골을 넣었다. 2012년에는 개막전에서 득점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시즌 총 2골에 그치며 후반기에는 출전 기회가 감소했다.
2013년에는 시즌 초 요코하마 FM에 등록되었으나, 2월 중국 슈퍼 리그의 항저우 그린타운으로 임대 이적하여, 삿포로 시절 은사였던 오카다 다케시 감독과 재회했다.
2014년 1월, 항저우 그린타운으로 완전 이적 후, 곧바로 J2 리그의 교토 상가 FC로 임대 이적하며 일본 무대로 복귀했고, 시즌 중 완전 이적으로 전환되었다. 복귀 첫해 리그 42경기에 출전하여 26골을 기록, J2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5년에는 팀 내 최다인 16골을 기록했으나, 자신에게 맞는 패스를 공급해 줄 선수의 부재와 이시마루 키요타카 감독의 수비적인 전술 운용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2016년 2월, 몬테디오 야마가타로 임대 이적했다. 이는 삿포로와 요코하마 FM 시절 함께했던 이시이 하지메 테크니컬 디렉터와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잦은 전술 변화와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으나, 임대 기간 만료로 팀을 떠났다. 2017년에는 임대 복귀하여 교토 상가에서 뛰었다.
2018년, 토치기 SC로 다시 임대 이적했다. 계약상 원 소속팀 교토와의 경기를 제외한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8월 18일 J2 29라운드 아비스파 후쿠오카전에서 J2 리그 통산 100번째 골을 기록하며 J2 리그 최초 100골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3시즌 만에 리그 두 자릿수 득점(시즌 12골)도 달성했다. 2019년 시즌부터 토치기 SC로 완전 이적했다. 2020년에는 선수 등록은 되지 않은 채 계약 상태를 유지하다가 6월 계약이 해지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오구로는 2005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2006년 FIFA 월드컵 등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그의 첫 국제 A매치 출장은 2005년 1월 29일 요코하마 국제 종합 경기장에서 열린 기린 챌린지 컵 카자흐스탄 전이었고, 첫 득점은 같은 해 2월 9일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북한 전에서 기록했다.
2008년까지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22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연도별 출장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 일본 | 2005 | 15 | 5 |
| 2006 | 6 | 0 | |
| 2007 | 0 | 0 | |
| 2008 | 1 | 0 | |
| 합계 | 22 | 5 | |
오구로가 기록한 A매치 득점은 다음과 같다.
| No.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2005년 2월 9일 | 사이타마 스타디움, 사이타마, 일본 | 북한 | 2–1 | 2–1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 2 | 2005년 6월 8일 | 수파찰라사이 국립 경기장, 방콕, 태국 | 북한 | 2–0 | 2–0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 3 | 2005년 6월 19일 | 발트슈타디온, 프랑크푸르트, 독일 | 그리스 | 1–0 | 1–0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 4 | 2005년 6월 22일 | 라인에네르기슈타디온, 쾰른, 독일 | 브라질 | 2–2 | 2–2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 5 | 2005년 8월 17일 | 요코하마 국제 종합경기장, 요코하마, 일본 | 이란 | 2–0 | 2–1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3.1. 2006년 FIFA 월드컵
감바 오사카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5년,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코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는 대표팀 소속으로 치른 두 번째 경기인 2005년 2월 9일,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북한과의 경기에서 후반 막판 교체 투입되어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57.7%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오구로의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J리그에서 20골을 넣어도 아무도 몰라줬는데, 대표팀에서 1골 넣으니 이렇게 유명해져서 놀랐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그리스전(1-0 승리)과 브라질전(2-2 무승부)에서 교체 투입되어 중요한 골을 넣는 등, 2005년 한 해 동안 A매치 5골을 기록하며 대표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하지만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했을 때 좋은 활약을 보였고,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진했기 때문에 지코 감독은 그를 주로 '슈퍼 서브'로 기용했다.
2006년 5월, 오구로는 독일에서 열리는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 본선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교체로 출전했지만, 출전 시간은 호주전 1분, 크로아티아전 5분, 브라질전 24분으로 매우 짧았고,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오구로는 2008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총 22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4. 지도자 경력
* 2021년 ~ 2023년: 감바 오사카 아카데미 스트라이커 코치
* 2024년: FC TIAMO 히라카타 헤드 코치
* 2025년 ~ 현재: 가와사키 프론탈레 코치
5. 개인 수상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1회 (2004)
* J리그 우수 선수상: 2회 (2004년, 2005년)
* J리그 페어 플레이 개인상: 1회 (2005년)
* J2 득점왕: 1회 (2014년)
* J2 월간 MVP: 1회 (2014년 9월)
6. 클럽 수상
감바 오사카 유스
* 일본 클럽 유스 선수권(U-18):1회 (1998년)
감바 오사카
* J1리그:1회 (2005년)
FC 도쿄
* 수르가 은행 챔피언십:1회 (2010년)
7. 기타
그는 한신 타이거스의 팬이다.
스포츠 선수 및 문화인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써니사이드업에 소속된 경험이 있다. 또한 이탈리아인 에이전트 조반니 브란키니와 계약을 맺은 적이 있으며, 토리노로 이적할 당시 브란키니가 협상을 담당했다.
가족으로는 부모, 형, 남동생(전 축구 선수 오구로 사토시), 여동생 5명이 있다. 아버지는 학생 시절 복싱을 했었지만, 오구로 본인에 따르면 "상냥한 아버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열렬한 감바 오사카 팬으로, 오구로가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했을 때에도 삿포로 경기는 보러 가지 않고 감바 오사카 경기를 관전하러 갔다고 한다. 남동생 오구로 사토시는 두 형과 마찬가지로 도요나카 SS/카마모토 FC를 거쳐 감바 오사카 유스팀에 입단했고, 이후 간사이 가쿠인 대학에 진학하여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지바 클럽의 선수 선발 테스트에 응시했다. 2007년에는 도쿠시마 보르티스에서 선수로 뛰었다.
또한 "라오우"와 "크리링"이라는 이름의 치와와 두 마리를 기르고 있다. 이름은 만화 『북두의 권』에서 따왔다. 라오우는 2001년 삿포로 시절부터 오구로의 애완견이 되었고, 오구로가 그르노블과 토리노로 이적했을 때 함께 현지에서 생활했다. 2015년 라오우의 건강이 악화되자, 오구로는 당시 몬테디오 야마가타로부터 받은 영입 제의를 거절했다. 이후 라오우가 건강을 회복하고 야마가타현 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물병원을 찾게 되면서, 2016년에 야마가타의 영입 제의를 수락했다.
UNO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2005년에는 일본 우노 협회로부터 'UNO 대사'로 임명되었다. 효고현 이타미시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오구로는 이 행사에서 2006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원정 북한전 전날 밤에도 대표팀 동료들과 UNO를 즐겼으며, 이를 통해 동료들과 친목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2006년 3월에는 카드 패키지를 축구 디자인으로 바꾸고 오구로 자신이 고안한 오리지널 카드를 추가한 '오구로 선수 한정판' UNO가 발매되었다.
이름의 한자가 대흑천(大黒天)과 같다는 점에서 "대흑님", "대흑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감바 오사카의 연고지인 스이타시에 있는 감바 오사카 공식 샵 내에는 대흑천을 본뜬 "감바 대흑(다이코쿠) 신사"가 2005년 3월 23일에 세워졌다. 오구로는 2006년에 감바 오사카를 떠났지만, 기타센리 새턴에 있는 대흑 신사의 대흑상은 이적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광고 출연
| 기업 | 브랜드 | 광고명 | 연도 | 비고 |
|---|---|---|---|---|
| 파나소닉(Panasonic) | Strada | 미리 읽는 내비 편 | 2005년 | 미야모토 츠네야스와 공동 출연 |
| 파나소닉(Panasonic) | Strada | 간단 투 톱 편 | 2005년 | 미야모토 츠네야스와 공동 출연 |
| 다이하츠(ダイハツ) | Move Custom | 히어로 인터뷰 편 | 2005년, 2006년 | 올해를 대표하는 CM 대상 2005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