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독
1. 개요
우독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191년부터 193년까지 활동했다. 수고, 백요와 함께 거병하여 동군태수 왕굉을 격파했으나 조조에게 백요가 패배하며 세력이 위축되었다. 이후 조조에게 동무양 공격이 실패하고, 흉노족 어부라와 함께 패배했다. 193년에는 원소의 반란군과 연합하여 업을 함락시키고 율성을 살해했으나, 원소군의 반격으로 조가에서 패배하여 호수와 함께 처형되었다.
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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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2. 행적
191년, 수고(眭固), 백요(白橈)와 함께 10만 대군을 이끌고 거병하여, 동군태수(東郡太守) 왕굉(王肱)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원군으로 파견된 조조(曹操)에게 먼저 백요가 격파당했다.
192년, 조조가 돈구(頓丘)로 출진하자, 동무양(東武陽)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조조가 그의 허를 찔러 근거지를 급습하였다. 패배한 우독은 발길을 돌렸으나, 복병에 당하여 수고와 흉노족의 선우 어부라(於夫羅) 또한 조조군에 격파당하였다.
193년, 위군(魏郡)에 주둔 중이던 원소(袁紹)의 일부 부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우독은 그들과 연합하여 업(鄴)을 함락시켰으며, 위군태수 율성(栗成)도 살해하였다. 그리고 기주목(冀州牧) 호수(壺壽)와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원소군이 반격을 가하자, 일원이었던 도승(陶升)이 원소에게 내응하였다. 이로 인해 우독의 군세는 조가(朝歌)의 녹상산(鹿傷山) 창암곡(創巖谷)으로 몰렸고, 5일 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패배하였다. 이후 호수와 함께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