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해군공창 총기 난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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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워싱턴 해군공창 총기 난사 사건은 2013년 9월 16일, 애런 알렉시스가 워싱턴 해군공창 197호관에서 산탄총과 권총을 사용해 13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근 지역이 폐쇄되고, 항공편이 중단되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사건 이후, 군사 시설 보안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총기 규제 강화 시위가 열렸으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진행되었다.

워싱턴 해군공창 총기 난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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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 발생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오전, 에런 알렉시스는 워싱턴 해군 공창 내 197번 건물에서 총격을 시작했다. 총격은 오전 8시 16분경 시작되었으며, 첫 9-1-1 신고는 약 1분 뒤인 오전 8시 17분(EDT)에 접수되었다. 미국 해군은 오전 8시 20분(EDT) 기준으로 최소 3번의 총격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2.1. 총격 시작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범인 에런 알렉시스는 9월 16일 월요일 오전 7시 53분경, 빌린 토요타 프리우스를 타고 워싱턴 해군 공창에 도착했다. 그는 유효한 출입증을 사용하여 공창으로 들어갔다. 감시 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알렉시스는 오전 8시 8분 건물 197동 주 출입구를 통해 들어섰다. 당시 그는 어깨에 메는 가방 안에 총열과 개머리판이 절단되어 분해된 산탄총을 숨겨 소지하고 있었다.

알렉시스는 이전에 일했던 건물 4층으로 이동했다. 그는 4층 화장실에서 숨겨온 산탄총을 조립한 뒤, 복도를 건너 아트리움 근처 칸막이 구역인 4 West로 향했다. 오전 8시 16분, 알렉시스는 이곳에서 총격을 시작했다. 이 총격으로 6명이 총에 맞았으며, 이 중 5명이 사망했다. 나머지 1명은 머리와 손에 총상을 입었으나 생존했다. 총격이 시작된 지 1분 뒤인 오전 8시 17분, 첫 9-1-1 신고 전화가 접수되었다.

오전 8시 20분까지 알렉시스는 4층에서 총 8명을 살해했다. 이후 그는 3층으로 내려가 2분 안에 2명을 더 살해했다. 그는 또한 최소 5차례 이상 여러 사람에게 총격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계단을 오르던 한 여성이 어깨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 해군 해양 시스템 사령부(NAVSEA) 소속의 한 직원은 3층 복도에서 파란색 옷을 입은 알렉시스와 마주쳤다고 증언하며 "그는 그냥 돌아서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알렉시스는 3층에서 여러 발의 총격을 가한 뒤 1층으로 이동했다.

2.2. 경찰 대응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오전 8시 23분부터 워싱턴 D.C. 경찰청을 비롯한 여러 법 집행 기관 소속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지 내 많은 건물 중에서 사건이 발생한 197번 건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주변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야 했다. 경찰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방향으로 이동한 후에야 197번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부상당한 피해자가 197번 건물에서 대피해 인근 다른 건물 근처에서 의료 지원을 받으면서, 해당 건물에서도 총격이 발생했다는 오해가 생기는 등 혼란이 있었다. 한편,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은 소속 경찰관들에게 현장에서 대기하고 총격에 직접 대응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경찰 노조의 비판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총격범은 1층에서 무작위로 이동하다가 정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그곳에 배치된 경비원 리처드 리젤을 쏘아 살해하고 그의 9mm 베레타 M9 권총을 빼앗았다. 앞서 두 명의 경찰관은 리젤에게 자리를 지키며 총격범이 건물을 나가려 할 경우 저지하라고 요청했던 상황이었다. 이후 총격범은 1층 아트리움에 있던 다른 경비원과 해군 군사 경찰관에게 산탄총을 발사했으나 맞히지 못했다. 경비원이 반격하자 총격범은 복도 아래로 도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격범은 다른 복도에서 두 명의 경찰관과 해군범죄수사국(NCIS) 요원에게 총격을 가한 뒤 다시 달아났다.

오전 8시 34분경, 총격범은 건물 서쪽으로 이동하여 건물 모퉁이 골목길에 있던 두 남성과 마주쳤다. 그는 산탄총을 발사하려 했으나 탄약이 떨어진 것을 알고는 빼앗은 베레타 권총으로 바꿔 쏘아 남성 중 한 명을 살해했다. 다른 한 명은 다치지 않고 탈출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골목길의 피해자는 "빗나간 총알"에 맞았다고도 한다. 총격범이 골목길에서 산탄총이 아닌 권총을 사용했기 때문에, 경찰은 처음에 두 명의 총격범이 있는 것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2.3. 범인의 사망

범인 에런 알렉시스는 마지막 희생자를 살해한 뒤, 자신이 산탄총을 버렸던 큐비클 구역으로 다시 이동했다. 같은 시각, 경찰관 한 팀이 197동 건물로 진입했지만, 아트리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총성 때문에 범인이 위층에 있다고 오인했다. 경찰관들이 2층으로 이동하는 동안 알렉시스는 1층에 머물렀다. 오전 8시 55분경, 알렉시스는 3층으로 올라가 큐비클 칸막이 사이에 몸을 숨겼다.

오전 9시 12분, 경찰관 2명과 해군 범죄 수사국(NCIS) 요원 2명이 3층 큐비클 구역으로 들어섰다. 알렉시스는 이들에게 총격을 가했고, 스콧 윌리엄스 경관의 양쪽 다리에 총상을 입혔다. 함께 있던 에마누엘 스미스 경관과 NCIS 요원 브라이언 켈리, 에드 마틴은 부상당한 윌리엄스를 큐비클 구역 밖으로 끌어내며 다른 경찰관들에게 총격범의 위치를 알렸다. 윌리엄스 경관은 이후 1층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회복했다.

오전 9시 15분, 워싱턴 D.C. 경찰 긴급 대응팀 소속 도리안 데산티스 경관과 미국 국립공원 경찰 소속 앤드루 웡, 칼 히오트 경관이 큐비클 구역으로 진입하여 칸막이 구역을 하나씩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색 중 알렉시스가 갑자기 책상 뒤에서 뛰쳐나와 약 약 1.52m 거리에서 데산티스 경관을 향해 총을 쏘았다. 총알 두 발은 데산티스 경관이 입고 있던 전술 조끼에 맞았고, 세 명의 경찰관은 즉시 응사했다. 데산티스 경관은 조끼 덕분에 부상을 입지 않았다. 오전 9시 25분, 데산티스 경관이 쏜 총알이 알렉시스의 머리에 명중했고, 알렉시스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오전 11시 50분에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3. 희생자

이 사건으로 범인 에런 알렉시스를 포함하여 총 13명이 사망했다. 알렉시스를 포함한 11명은 사건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미 해군 프로그램 매니저였던 비슈누 판디트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희생자 모두 군인이 아닌 민간인 직원 또는 계약직 노동자였다.

사망자 외에도 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중 3명은 총상을 입었다. 워싱턴 D.C. 수도 경찰 소속 경찰관 스콧 윌리엄스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 민간인 2명이 총상을 입고 워싱턴 병원 센터에서 위중한 상태로 치료를 받았다. 부상자 중 한 명인 제니퍼 베넷은 어깨, 가슴, 엄지에 총상을 입었으며, 팔을 고정하기 위해 금속판과 10개의 나사를 사용하는 수술을 받았다.

사망한 희생자들의 연령은 46세에서 73세 사이였으며, 명단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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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나이
마이클 아놀드 (Michael Arnold)59세
마틴 보드로그 (Martin Bodrog)53세
아서 다니엘스 (Arthur Daniels)51세
실비아 프레이저 (Sylvia Frasier)53세
캐슬린 가르데 (Kathleen Gaarde)62세
존 로저 존슨 (John Roger Johnson)73세
메리 프랜시스 나이트 (Mary Frances Knight)51세
프랭크 콜러 (Frank Kohler)50세
비슈누 판디트 (Vishnu Pandit)61세
케네스 버나드 프로크터 (Kenneth Bernard Proctor)46세
제럴드 리드 (Gerald Read)58세
리처드 마이클 리델 (Richard Michael Ridgell)52세

4. 범인: 애런 알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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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공창 내부에서 이동하는 알렉시스의 CCTV 영상
해군공창 내부에서 이동하는 알렉시스의 CCTV 영상


애런 알렉시스(Aaron Alexis, 1979년 5월 9일 ~ 2013년 9월 16일)는 워싱턴 해군공창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다. 그는 뉴욕 퀸스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자랐으며, 사건 당시에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거주하고 있었다. 민간 군사 계약업체 직원이었으며, 이전에는 미국 해군에서 항공 전기 기술병으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알렉시스는 2007년 해군에 입대하여 2011년 명예 전역했다. 그러나 복무 중 여러 차례 문제 행동으로 지적받았으며, 해군 입대 전후로도 총기 관련 사건을 포함한 체포 기록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세한 군 복무 경력과 과거 행적은 하위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군 전역 후에는 HP 엔터프라이즈 서비스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본 등지에서 근무했으며, 이 과정에서 급여 문제나 차별에 대한 불만을 주변에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엠브리-리들 항공 대학교에서 온라인으로 항공학 학사 학위를 이수 중이었고, 불교 신자였다.

사건 발생 몇 달 전부터 알렉시스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이며,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거나 초저주파 전자기파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경찰에 신고하거나 병원을 찾기도 했다. 범행에 사용된 산탄총은 사건 발생 이틀 전에 버지니아주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이며, 총기에는 자신의 고통 등을 암시하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2013년 9월 16일, 알렉시스는 유효한 출입증을 이용해 워싱턴 해군공창에 들어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켰고, 현장에서 경찰과의 교전 중 총상으로 사망했다.

4.1. 군 복무 경력

알렉시스는 2007년 5월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해군 항공기지 합동 예비 기지 포트워스의 제46 함대 군수 지원 비행대에서 복무했다. 그의 직책은 항공 전기 기술병이었으며, 2011년 1월 31일 해군에서 명예 전역할 당시 3등 수병 계급이었다. 해군은 당초 그에게 일반 전역을 부여하려 했었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알렉시스는 복무 중 최소 8차례의 부적절한 행위로 지적받았다. 그는 2004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분노로 인한 "블랙아웃" 상태에서 다른 남성의 차량 타이어에 총격을 가한 혐의(기물 파손)로 체포되었고, 2008년에는 조지아주 디칼브 카운티에서 공공 기물 파손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2010년에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시 경계 내에서 총기를 발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러한 체포 사건들은 기소로 이어지지 않아 그의 행동에 대한 별다른 처벌은 없었다.

알렉시스는 2008년 3월, 10년간 유효한 기밀 등급 보안 인가를 받았다. 해군공창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그의 인가 승인 배경 조사 과정에서 2004년 시애틀 체포 당시 총기 관련 사실이 누락되었음이 밝혀졌다. 알렉시스는 인가 신청서에 중범죄 기소 사실이나 지난 7년간의 체포 기록이 없다고 진술했으며, 연방 인사 보고서에는 2004년 혐의가 기각되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답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안 인가 조사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신원 조사를 수행했던 것과 동일한 하청업체인 USIS에서 실시했다. 이후 미국 법무부는 내부 고발자 사건(미국 대 USIS)에서 USIS를 사기 혐의로 제소했다.

4.2. 직업 및 사회생활

알렉시스는 1979년 5월 9일 뉴욕 퀸스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자랐으며,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거주했다.

2007년 5월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해군 항공기지 합동 예비 기지 포트워스의 제46 함대 군수 지원 비행대에서 복무했다. 항공 전기 기술병 3등 수병(Aviation electrician's mate Third Class) 계급까지 진급했으나, 복무 중 최소 8차례의 징계 사유가 될 만한 행위 및 2010년 포트워스 시내에서의 총기 발사 사건 등으로 인해 2011년 1월 31일 명예 전역했다. 해군은 당초 그에게 일반 전역 처분을 내릴 예정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2004년 시애틀에서 분노로 인한 "블랙아웃" 상태에서 차량 타이어에 총격을 가한 혐의(기물 파손) 및 2008년 디칼브 카운티에서 치안 문란(공공 기물 파손) 혐의로 체포된 기록이 있었으나, 두 사건 모두 기소되지는 않았다.

알렉시스는 2008년 3월, 10년간 유효한 비밀 취급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인가 승인 과정에서 2004년 시애틀 체포 당시 총기 관련 사실이 연방 인사 관리처(OPM) 기록에서 누락된 것이 밝혀졌다. 알렉시스는 인가 신청서에 중범죄 기소나 지난 7년간의 체포 기록이 없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2004년 혐의가 기각되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었다. 이 보안 인가 조사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신원 조사를 수행했던 것과 동일한 하청업체인 USIS가 담당했으며, 이 회사는 이후 내부 고발자 소송 미국 대 USIS에서 사기 혐의로 제소되었다.

해군 전역 후, 알렉시스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1월까지 HP 엔터프라이즈 서비스의 하청업체 'The Experts' 소속으로 일본에서 해군-해병대 인트라넷(NMCI) 네트워크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그는 이전 룸메이트에게 업무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으며, 다른 룸메이트는 그가 차별의 피해자라고 자주 불평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2013년 7월 미국에서 다시 The Experts 소속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사건 당시에도 휴렛 팩커드(HP) 엔터프라이즈 서비스의 하청업체 직원으로 해군-해병대 컴퓨터 네트워크 지원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알렉시스는 엠브리-리들 항공 대학교에서 온라인으로 항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 중이었다. 그는 불교 신자였다.

4.3. 정신 건강 문제

사건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렉시스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알렉시스는 범행 전 정신적인 문제로 여러 차례 도움을 구하거나 이상 행동을 보인 기록이 있다.

2013년 8월 2일, 그는 로드 아일랜드에서 경찰에 신고하며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했다. 이틀 뒤인 8월 4일에는 뉴포트 해군기지에 있는 자신의 호텔 방에서 소란을 피웠다. 그는 누군가 침대 밑에 숨어 있다고 믿어 침대를 분해했으며,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천장에 마이크를 테이프로 붙여 놓은 상태였다. 당시 그는 해당 기지에서 계약업체 직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FBI 관계자에 따르면, 알렉시스는 자신이 초저주파 전자기파에 의해 조종당하거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개인 컴퓨터에서는 "지난 3개월 동안 초저주파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이 저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23일, 알렉시스는 로드 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아 불면증을 호소했고, 세로토닌 길항제 및 재흡수 억제제 계열의 항우울제트라조돈 50밀리그램을 처방받았다. 5일 후인 8월 28일에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VA 메디컬 센터 응급실에서도 불면증 치료를 받았다. 그는 의료진에게 우울하지 않으며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생각도 없다고 말했으며, 트라조돈 10정을 추가로 처방받았다.

4.4. 범행 준비

알렉시스는 2013년 8월 25일경 워싱턴 D.C. 지역에 도착하여 여러 호텔에 투숙했으며, 목소리를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9월 7일부터 워싱턴 D.C. 남서부의 레지던스 인 호텔에 다른 민간 계약자 5명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총격 사건 발생 이틀 전인 9월 14일 토요일, 알렉시스는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약 24.14km 떨어진 버지니아주 로턴에 위치한 '샤프슈터 소형 화기 사격장'(Sharpshooter Small Arms Range)을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AR-15 반자동 소총을 시험 삼아 사용해 보았으나 구매하지는 않았다. 소총 시험 후 권총 구매를 문의했지만, 연방법상 타주 거주자에게 직접 권총을 판매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대신 알렉시스는 주 및 연방 신원 조회를 통과한 후, 레밍턴 모델 870 익스프레스 택티컬 12게이지 산탄총 1정과 탄약 두 상자를 구매했다.

알렉시스는 범행 전에 이 산탄총의 총열과 개머리판을 절단했으며, 총몸에는 "이런 게 낫다!(Better off this way!)", "내 ELF 무기!(My ELF weapon!)", "너희들이 말하는 게 아냐!(Not what yall say!)", "고통의 끝!(End to the torment!)"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사건 당일인 9월 16일 월요일 오전, 알렉시스는 레지던스 인 호텔을 나섰다. 오전 7시 53분경, 그는 렌트한 토요타 프리우스를 운전하여 해군 공창에 도착했으며, 유효한 출입증을 이용해 공창 내부로 들어갔다. 감시 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그는 어깨에 메는 가방 안에 분해 및 절단된 상태의 산탄총을 숨겨 건물로 들어선 것으로 확인되었다.

5. 사건의 여파

사건 발생 직후 워싱턴 D.C. 일대에는 혼란 속에서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가 이어졌다. 최소 8곳의 학교가 문을 닫았고, 많은 도로와 교량이 통제되었으며,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립공항의 항공편 운항이 일시 중단되었다. 미국 상원 관련 시설 역시 잠시 폐쇄되었다. 또한, 사건 현장 인근의 내셔널스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워싱턴 내셔널스 야구팀은 당일 예정되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를 연기하여 다음 날 더블헤더로 치렀다.

사건 다음 날인 9월 17일, 척 헤이글 당시 미국 국방장관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미국 해군 기념관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화환 헌정식을 가졌다. 이 사건은 총기 규제 논의를 다시 불러일으켰고, 9월 19일에는 의사당 앞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 시위에는 이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유족들도 참여하여 총기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변화를 촉구했다.

5.1. 다른 총격범에 대한 보고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사건 당일, 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오전 8시 23분부터 워싱턴 D.C. 경찰청과 여러 법 집행 기관 인력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지만, 기지 내 많은 건물 중에서 총격이 발생한 197번 건물의 위치를 즉시 파악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야 했다. 경찰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방향으로 이동하여 겨우 197번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인근 다른 건물에서도 총격이 발생했다는 혼란이 있었는데, 이는 부상당한 피해자가 197번 건물에서 대피하여 의료 지원을 받기 위해 다른 건물 근처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한편,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은 경찰 노조로부터 소속 인력에게 대기하고 총격에 대응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총격범 에런 알렉시스가 1층에서 경비원 리처드 리젤을 살해하고 그의 9mm 베레타 M9 권총을 빼앗은 후, 오전 8시 34분경 건물 서쪽 골목길에서 이 권총을 사용하여 남성 한 명을 살해하고 다른 남성은 무사히 탈출하게 했다. 알렉시스가 처음에는 산탄총을 사용하다가 골목길에서 권총을 사용했기 때문에, 경찰은 초기에 두 번째 총격범이 연루된 것으로 오인했다. 골목길의 피해자는 "빗나간 총알"에 맞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워싱턴 경찰청장 캐시 L. 라니에는 초기 발표를 통해, 권총을 소지하고 카키색 군복과 베레모를 착용한 백인 남성과 장총을 휴대하고 올리브색 군복을 입은 흑인 남성, 이렇게 두 명의 용의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백인 남성은 신원이 확인되어 용의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흑인 남성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당일 오후 7시경, 관계자들은 다른 총격범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사건과 관련되었을 수 있는 다른 한 명의 인물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5.2. 보안 강화 조치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펜타곤 채널의 사건 보고

사건 발생 당일인 9월 16일, 워싱턴 D.C. 일대에는 즉각적인 통제 조치가 이루어졌다. 다수의 도로와 교량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고,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립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 운항이 잠시 중단되었다. 해군 공창 인근의 최소 8개 학교가 봉쇄 조치되었으며, 미국 상원 건물 역시 상원 경위에 의해 "과도한 주의 차원"에서 오후 3시 직후부터 약 1시간 동안 봉쇄되었다. 또한, 사건 현장과 가까운 내셔널스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워싱턴 내셔널스 야구팀은 당일 저녁 예정되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를 연기했다. 연기된 경기는 다음 날 더블헤더로 치러졌다.

사건으로 폐쇄되었던 해군 공창은 3일 뒤인 2013년 9월 19일에 다시 문을 열고 정상 운영을 시작했다. 총격이 발생했던 197동 건물은 복원 작업을 거쳐 2015년 2월 2일에 재개장했다. 2013년 10월, 미국 해군은 197동 복원 계약을 발표하며 "수리는 공간의 느낌, 마감, 외관 및 레이아웃을 변경하여 시설 자체가 돌아오는 입주자에게 미칠 수 있는 심리적 및 정서적 영향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약 44가 투입된 복원 공사를 통해 건물은 희생자 중 한 명인 조슈아 험프리스의 이름을 따 '험프리스 빌딩'으로 개명되었으며, 내부에는 반성을 위한 공간, 새로운 방문자 입구, 바닥재, 가구 등이 마련되었고 구내식당도 새롭게 단장되었다.

사건 다음 날인 9월 17일, 척 헤이글 당시 미국 국방장관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미국 해군 기념관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화환 헌정식을 가졌다. 한편, 9월 19일에는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으며, 이 시위에는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유가족들도 참여하여 총기 폭력의 비극을 알리고 변화를 촉구했다.

6. 각계 반응

사건 발생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범인에 대한 책임 추궁을 약속하고 희생자 추모를 위해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군사 시설의 보안 문제와 총기 규제 강화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군사 시설 보안과 관련해서는, 척 헤이글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이 전 세계 미군 시설의 보안 절차에 대한 전면 검토를 지시하는 등 후속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외부 인력의 기지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 접근 카드(CAC) 시스템의 허점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범인 역시 이 카드를 이용해 기지에 출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재검토를 강력히 촉구하고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등 이전 총기 사건 유족들과 시민 단체들이 더욱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전미 총기 협회(NRA)를 비롯한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군 기지 내 총기 소지 금지 정책을 비판하는 등 총기 규제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오랜 갈등이 재점화되었다.

이 외에도 범인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고용주의 책임 문제, 정부의 보안 인가 및 신원 조회 절차에 대한 미국 상원 차원의 검토 등이 이루어졌다.

6.1.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반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9월 1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왼쪽)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으로부터 총기 난사 사건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9월 1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왼쪽)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으로부터 총기 난사 사건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총격 사건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모든 공공 건물, 모든 군사 및 해군 기지, 부대 및 선박에 9월 20일 일몰까지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9월 17일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임스 코미 FBI 국장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으로부터 총기 난사 사건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며 총기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9월 22일, 그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하여 "선진국 중 이러한 폭력을 견뎌야 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연설하며 다시 한번 총기 규제 강화를 호소했다.

2014년 12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난사 사건 기념비 건립을 승인하는 2015 회계 연도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6.2. 정치권 및 사회의 반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9월 1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왼쪽)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으로부터 총기 난사 사건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9월 1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왼쪽)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으로부터 총기 난사 사건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을 포함한 모든 공공 건물, 군사 및 해군 기지, 부대, 선박에 9월 20일 일몰까지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9월 17일, 국방부 관계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해군 기념관 광장에 화환을 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일을 계기로 의회에 총기 규제 법안 재검토를 촉구했으며, 9월 22일 열린 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하여 "선진국 중 이러한 폭력을 견뎌야 하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다"고 강조하며 총기 규제 강화를 호소했다.

이 사건은 미국 군사 시설의 보안 실태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9월 18일, 미국 국방부 장관 척 헤이글은 전 세계 미군 시설의 보안 절차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지시했다. 포린 폴리시지는 정부 계약자, 국방부 민간 직원, 군인에게 발급되는 공통 접근 카드(CAC) 소지자 대부분이 신체 검색이나 금속 탐지기 검사 없이 많은 군사 시설에 출입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범인 에런 알렉시스는 비밀 등급의 보안 인가와 해군 기지 출입이 가능한 CAC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알렉스 존스, 테드 뉴전트 등 일부 보수 논객들은 군 기지 내 "총기 금지 구역" 설정이 참사를 불렀다는 주장을 폈다. 전미 총기 협회(NRA)의 웨인 라피에르 회장은 NBC 방송의 밋 더 프레스에 출연하여 "총기를 소지한 선량한 시민들이 도착했을 때 총격이 멈췄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잡지 리즌의 J.D. 투칠레는 미국 내 군 기지에서 대부분의 군인들이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 기지가 외부 공격에 더 취약해졌다고 분석했다.

9월 17일에는 총기 규제 운동가들과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2012년 오로라 총격 사건, 위스콘신 시크 사원 총격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워싱턴 D.C.에 모여 더 강력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해군 공창 사건이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발생한 만큼, 의원들이 신원 조회 강화와 총기 전시회 허점 폐쇄 등 관련 입법 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사건 이후 범인의 정신 건강 문제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론도 부상했다. 2013년 9월 25일, 휴렛 팩커드(HP)는 범인 알렉시스를 고용한 하청업체 'The Experts'가 그의 정신 건강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2013년 10월 31일과 12월 17일, 미국 상원의 미국 상원 국토안보 및 정부 문제 위원회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의 보안 인가 발급 실태, 신원 조회 절차, 연방 시설의 물리적 보안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사건 대응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이들에 대한 표창도 진행되었다. 2014년 2월 20일에는 범인을 수색하기 위해 건물에 진입했던 워싱턴 D.C. 수도경찰국(MPD) 소속 경찰관 57명을 포함한 170여 명의 법 집행관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특히 MPD 소속 스콧 윌리엄스와 도리안 데산티스 경관은 총격전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용감무공훈장, 미국 국립공원경찰 명예 훈장, 블루 배지 메달을 수여받았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졌다. 2014년 12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난사 사건 추모비 건립을 승인하는 내용이 포함된 201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이듬해 2월에는 추모 벽이 헌정되었다.

6.3. 추모 및 기념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9월 17일 해군 기념관에 화환을 헌납했다.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9월 17일 해군 기념관에 화환을 헌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