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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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환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원술, 여포, 조조를 섬겼다. 그는 유비에 의해 무재로 천거되었으며, 원술 휘하에서 정론을 펼쳐 존경받았다. 여포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유비를 비난하는 것을 거부하여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조조에게 투항한 후에도 청렴한 생활을 했다. 조조 휘하에서 내정에 기여하며 충의지사로 명성을 얻었으며, 유비의 죽음에 슬퍼하는 등 곧은 성품을 보여 조조의 존경을 받았다.

원환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원환
원어 이름袁渙
로마자 표기Yuán Huàn
요경 (曜卿)
출생 및 사망
출생생년 미상
출생지예주진군부락현
사망생년 미상
사망지미상
가족 관계
아버지원방 (袁滂)
친척원패 (袁霸; 사촌 동생)
원휘 (袁徽; 원패의 사촌 동생이자 동생)
원민 (袁敏; 원패와 원휘의 사촌 동생이자 동생)
원량 (袁亮; 조카이자 원패의 아들)
자녀원간 (袁侃)
원우 (袁㝢)
원오 (袁奥)
원준 (袁准)
관직
주요 관직낭중령 (郎中令)
어사대부 (御史大夫) (대행)
임관 시기213년
군주헌제
승상조조
소속 세력
주요 소속유비
원술
여포
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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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원환은 젊을 때부터 지방 관리를 역임했다. 196년 예주자사 유비에 의해 무재로 천거되었다. 그 후 원술을 섬겼으며, 항상 정론을 펼쳤기 때문에 원술은 그를 공경하였다.

197년, 원술은 부릉(阜陵)에서 여포에게 패하여 원환은 여포의 포로가 되었다. 198년 12월, 여포가 조조에게 토벌당하자 원환은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원환은 패군 남부도위, 양국상, 간의대부 겸 승상군좨주, 낭중령 겸 행사공어사대부를 역임하였다. 주로 내정 분야에서 정책을 제안했고, 충의지사로 명성이 높았으며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을 정치의 요체로 삼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였다.

유비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다른 관료들은 경하하였으나 원환은 홀로 참여하지 않았다.

원환이 사망하자 조조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사망년도는 불확실하나, 조조가 위왕이 된 216년부터 조조가 사망한 220년 사이로 추정된다.

2.1. 원술 · 여포 휘하에서의 행적

젊을 때부터 지방 관리를 역임했다. 196년 예주자사 유비에 의해 무재로 천거되었다. 그 후 원술을 섬겼으며, 항상 정론을 펼쳤기 때문에 원술은 그를 공경하였다.

197년, 원술은 부릉(阜陵)에서 여포에게 패하였고 원환은 여포의 포로가 되어 그를 섬겼다.

어느 날, 여포는 원환에게 유비를 비난하는 글을 쓰도록 하였다. 원환은 이를 거절하였고, 급기야 여포는 무기를 원환에게 들이밀며 협박하였다. 그러나 원환의 안색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고, 곧 여포는 부끄러워하여 이를 물렸다.

198년 12월, 여포의 세력은 조조에 의해 토벌당했다. 이때 진군 등 조조에게 투항한 자들은 모두 조조의 앞에서 엎드렸으나, 원환은 조조와 대등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때 조조는 투항한 자들에게 물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물자를 가득 실어 갔으나 원환은 수백 권의 책과 약간의 식량만 가져갔다. 조조는 이러한 원환의 모습을 보고 그를 존중하였다.

2.2. 조조 휘하에서의 행적

원환은 패군 남부도위, 양국상, 간의대부 겸 승상군좨주, 낭중령 겸 행사공어사대부를 역임하였다. 주로 내정 분야에서 정책을 제안했고, 충의지사로 명성이 높았으며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백성들을 교화하는 것을 정치의 요체로 삼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였다.

유비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다른 관료들은 경하하였으나 원환은 홀로 참여하지 않았다.

원환이 사망하자 조조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사망년도는 불확실하나, 조조가 위왕이 된 216년부터 조조가 사망한 220년 사이로 추정된다.

3. 평가

후한 말 난세 속에서도 원환은 충의와 청렴함을 지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4. 친족 관계

원환의 친족 관계도
원환의 친족 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