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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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갈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고제 때 낭(郞)을 지냈다. 고후 8년, 여씨 일족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에 참여하여, 주발의 명을 받아 여록을 설득하고 궁문을 닫아 여산의 입궁을 막는 활약을 했다. 이 공로로 양신후에 봉해졌으며, 14년 후 사망하여 시호를 이(夷)라 하였다. 그의 아들 유중의가 작위를 이었으나, 경제 6년에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그는 대홍려를 역임했으며, 《사기》와 《한서》에 기록이 남아있다.

유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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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적

유갈은 고제 때 낭(郞)이 되었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자 유장과 함께 여씨 타도를 모의한 제애왕이 거병하였다. 여산여록은 중앙군을 지휘하며 진압에 나서려 했으나, 주발과 진평의 사주를 받은 역기의 설득으로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가수의 간언을 들은 여산이 입궁하려 하자, 전객 유갈은 주발의 명으로 황명을 사칭하여 역기와 함께 여록을 설득하였다. 결국 여록은 북군(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돌아갔다.

여록이 돌아가자 유갈은 궁문을 닫고 여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대신들이 궁궐을 장악하고 여산은 유장에게 살해당했으며, 여씨 일족은 주멸되었다. 이후 대왕 유항이 황제로 옹립되었다. 유갈은 이 공으로 양신후(陽信侯)에 봉해지고 을 받았다.

양신이후 14년(기원전 166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이(夷)라 하였다. 아들 유중의(劉中意)가 작위를 이었으나, 경제 6년(기원전 151년)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2.1. 초기 활동

고제 때 낭(郞)이 되었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자 주허후 유장과 함께 여씨 타도를 모의한 제애왕이 거병하였다. 중앙군을 쥐고 있었던 여산여록은 진압에 나서려 하였으나, 주발·진평의 사주를 받은 역기의 설득으로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가수의 간언을 들은 여산이 돌아가지 않고 입궁하려 하였다. 전객 유갈은 주발의 명으로 황명을 사칭하여 역기와 함께 여록을 재차 설득하였고, 결국 여록은 북군(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돌아갔다.

여록이 돌아가자 유갈은 궁문을 닫고 여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곧 대신들이 궁궐을 장악하였고, 여산은 유장에게 살해당하였다. 여산을 죽인 대신들은 여씨 일족을 잡아들여 주멸하였고, 대왕 유항을 불러들여 황제로 옹립하였다(문제). 유갈은 이때의 공으로 양신(陽信侯)에 봉해지고 을 받았다.

2.2. 여씨 타도와 문제 옹립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자 동생 주허후 유장과 함께 여씨 타도를 모의한 제애왕이 거병하였다. 중앙군을 쥐고 있었던 여산여록은 진압에 나서려 하였으나, 주발·진평의 사주를 받은 역기의 설득으로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가수의 간언을 들은 여산이 돌아가지 않고 입궁하려 하였다. 전객 유갈은 주발의 명으로 황명을 사칭하여 역기와 함께 여록을 재차 설득하였고, 결국 여록은 북군(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돌아갔다.

여록이 돌아가자 유갈은 궁문을 닫고 여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곧 대신들이 궁궐을 장악하였고, 여산은 유장에게 살해당하였다. 여산을 죽인 대신들은 여씨 일족을 잡아들여 주멸하였고, 대왕 유항을 불러들여 황제로 옹립하였다(문제). 유갈은 이때의 공으로 양신(陽信侯)에 봉해지고 을 받았다.

2.3. 양신후 시절과 죽음

고제 때 낭(郞)이 되었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자 동생 주허후 유장과 함께 여씨 타도를 모의한 제애왕이 거병하였다. 중앙군을 쥐고 있었던 여산여록은 진압에 나서려 하였으나, 주발·진평의 사주를 받은 역기의 설득으로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가수의 간언을 들은 여산이 돌아가지 않고 입궁하려 하였다. 전객 유갈은 주발의 명으로 황명을 사칭하여 역기와 함께 여록을 재차 설득하였고, 결국 여록은 북군(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돌아갔다.

여록이 돌아가자 유갈은 궁문을 닫고 여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곧 대신들이 궁궐을 장악하였고, 여산은 유장에게 살해당하였다. 여산을 죽인 대신들은 여씨 일족을 잡아들여 주멸하였고, 대왕 유항을 불러들여 황제로 옹립하였다(문제). 유갈은 이때의 공으로 양신(陽信侯)에 봉해지고 을 받았다.

양신이후 14년(기원전 166년)에 죽어 시호를 이(夷)라 하였다. 아들 유중의(劉中意)가 작위를 이었으나, 경제 6년(기원전 151년)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

3. 역대 전객 (대홍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여산여록은 주발, 진평의 사주를 받은 역기의 설득으로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가수의 간언을 들은 여산이 돌아가지 않고 입궁하려 하였다. 이때 전객이었던 유갈은 주발의 명으로 황명을 사칭하여 역기와 함께 여록을 재차 설득하였고, 결국 여록은 북군(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봉국으로 돌아갔다.

여록이 돌아가자 유갈은 궁문을 닫고 여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곧 대신들이 궁궐을 장악하였고, 여산은 유장에게 살해당하였다. 여산을 죽인 대신들은 여씨 일족을 잡아들여 주멸하였고, 대왕 유항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유갈은 전한전객을 지냈다.(기원전 181년 ~ 기원전 177년?)

4. 출전

고제 때 낭(郞)이 되었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고후가 죽자 동생 주허후 유장과 함께 여씨 타도를 모의한 제애왕이 거병하였다. 중앙군을 쥐고 있었던 여산여록은 진압에 나서려 하였으나, 주발·진평의 사주를 받은 역기의 설득으로 봉국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가수의 간언을 들은 여산이 돌아가지 않고 입궁하려 하였다. 전객 유갈은 주발의 명으로 황명을 사칭하여 역기와 함께 여록을 재차 설득하였고, 결국 여록은 북군(北軍)을 주발에게 넘기고 정말로 봉국으로 돌아갔다.

여록이 돌아가자 유갈은 궁문을 닫고 여산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곧 대신들이 궁궐을 장악하였고, 여산은 유장에게 살해당하였다. 여산을 죽인 대신들은 여씨 일족을 잡아들여 주멸하였고, 대왕 유항을 불러들여 황제로 옹립하였다(문제). 유갈은 이때의 공으로 양신(陽信侯)에 봉해지고 을 받았다.

양신이후 14년(기원전 166년)에 죽어 시호를 이(夷)라 하였다. 아들 유중의(劉中意)가 작위를 이었으나, 경제 6년(기원전 151년)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