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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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1966은 룩셈부르크 시에서 개최되었으며, 오스트리아의 우도 유르겐스가 독일어로 부른 'Merci, Chérie'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1965년과 동일한 18개국이 참가했으며, 네덜란드 대표 밀리 스콧은 유로비전 사상 최초의 흑인 가수였고, 덴마크 대표 울라 피아는 댄서 2명을 동반, 노르웨이 대표 오세 클리브랜드는 바지를 착용, 영국 대표 케네스 맥켈러는 스코틀랜드 킬트를 착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이탈리아 대표 도메니코 모두뇨는 리허설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불만을 품고 기권하려 했으나, EBU의 양보로 자신의 앙상블과 함께 공연했다. 투표 과정에서 사회자의 실수와 스페인 대변인의 독특한 발표 방식이 있었으며, 우승 이후 북유럽 국가들 간의 점수 경쟁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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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최 장소
196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는 1965년 콘테스트와 동일하게 18개국이 참가했다.[2]
196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룩셈부르크 시에서 개최되었다. 1966년 콘테스트 개최 장소는 빌라 루브니였으며, 이곳은 1962년에도 개최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RTL 그룹의 전신인 Compagnie Luxembourgeoise de Télédiffusion|룩셈부르크 텔레비전 회사프랑스어의 본부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시내 중심가의 Ville Haute|빌 오트프랑스어 구역에 있는 시립 공원에 위치해 있다.
3. 참가 국가

( ) 내 숫자는 참가 횟수
다음은 불참했지만 중계를 실시한 국가이다.3. 1. 참가자
1965년 콘테스트에 참가했던 모든 국가들이 2년 연속으로 참가했다.[2]
3. 2. 재참가 아티스트
4. 형식
올해 새로운 규칙 변경으로 음악 전문가가 심사단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66년은 유로비전 무대에 최초의 흑인 가수가 등장한 해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밀리 스콧이었다. 그녀는 또한 휴대용 마이크를 사용한 최초의 가수였다.[9]
투표 과정에서, 사회자 (조시안 셴)는 실수로 영국에게 "굿나잇 런던"이라고 인사했다가, 이내 실수를 깨닫고 "굿 이브닝, 런던"이라고 말했다. 당시 영국의 대변인이었던 마이클 아스펠은 "굿 모닝, 룩셈부르크"라고 답하여 조시안과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스페인 대변인은 결과를 역순으로 발표하여 5점을 먼저, 3점을 두 번째, 1점을 세 번째로 제시했다.[9]
4. 1. 이탈리아 대표의 리허설 소동
새로운 규칙 변경으로 음악 전문가가 심사단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66년은 유로비전 무대에 최초의 흑인 가수가 등장한 해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밀리 스콧이었다. 그녀는 또한 휴대용 마이크를 사용한 최초의 가수였다.[9]이번 대회는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출품된 곡이 있었던 최초의 대회 중 하나였다. 도메니코 모두뇨가 부른 이탈리아 출품작 "Dio, come ti amo|디오, 코메 티 아모it"는 산레모 뮤직 페스티벌 공연 이후 편곡되었으며, 편곡은 사전에 완료되어야 한다는 EBU 규칙을 공식적으로 위반했다. 토요일 오후 리허설 동안 모두뇨는 오케스트라 대신 자신의 뮤지션 3명과 함께 새로운 편곡을 연주했는데, 이는 3분 시간 제한을 초과했다. 리허설 후 모두뇨는 시간 초과에 대해 쇼 프로듀서와 대면했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원래 편곡을 사용할 것을 요청받았다. 모두뇨는 오케스트라에 너무 불만을 느껴 대회에서 기권하겠다고 위협했다. 프로듀서와 EBU 감시원 클리포드 브라운 모두 질리올라 친퀘티를 룩셈부르크로 급히 불러 이탈리아를 대표하게 하는 것은 너무 촉박하다고 생각했기에, EBU는 양보하여 모두뇨가 오케스트라 대신 자신의 앙상블을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웹사이트와 공식 프로그램에 지휘자로 안젤로 자코마치가 등재되었지만, 자코마치는 실제로는 출품곡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9]
2년 연속으로 소동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대표인 도메니코 모두뇨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트집을 잡아 리허설을 중단했다. 잠시 이탈리아의 출전이 위태로워졌지만, 그는 저녁 본 공연에는 돌아와 무대에 오르는 것을 해냈다.[9]
4. 2. 투표 방식
각국 심사위원 20명은 각자 9점을 배분할 수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세 곡에 5-3-1, 6-3-0, 9-0-0 등 원하는 방식으로 점수를 줄 수 있었다. 각 방송국은 심사위원 득점을 합산하여 1위 곡에 5점, 2위 곡에 3점, 3위 곡에 1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결정하고 현장에 결과를 통보했다.[9]진행자 조지안은 BBC 대변인 데이비드 제이콥스에게 "Good evening, London !" (저녁입니다, 런던!)이라고 인사해야 했으나, "Good night, London !" (안녕히 주무세요, 런던!)이라고 잘못 말했다. 이에 데이비드는 "Good morning, Luxembourg" (안녕하세요, 룩셈부르크)라고 답했다.[9]
5. 결과
196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결과, 3년 연속 출전한 오스트리아 대표 우도 유르겐스의 「메르시 셰리」가 우승하였다. 이 곡은 독일어 노래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1]
2위와 3위는 각각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차지했다. 이에 대해 북유럽 국가들이 서로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스웨덴 대표 릴 린드포르스는 "프랑스어권의 시대를 끝내려고 북유럽이 단결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1]
모나코와 이탈리아는 무득점을 기록했다.[1]
5. 1. 득표
계전
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