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결의 제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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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엔 총회 결의 제498호는 1951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으로, 한국 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을 침략자로 규탄하고 유엔군의 한국 내 주둔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공산군의 참전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자 미국은 유엔 총회에서 중국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추진했다. 결의안은 44개국의 지지를 얻어 채택되었으며,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간의 대립이 국제기구의 의사 결정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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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결의 제498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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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 정보 | |
결의안 명칭 | 유엔 총회 결의 제498호 |
원문 명칭 |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498 |
채택 | 1951년 2월 1일 |
회의 | 제327차 총회 |
찬성 | 44 |
반대 | 7 |
기권 | 9 |
내용 | |
비고 | 중화인민공화국의 침략 행위 규탄 |
관련 사건 | 한국 전쟁 |
투표 결과 | |
찬성 국가 |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볼리비아 브라질 캐나다 칠레 중화민국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덴마크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이집트 엘살바도르 프랑스 그리스 아이슬란드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레바논 라이베리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니카라과 노르웨이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필리핀 시리아 남아프리카 연방 태국 튀르키예 영국 미국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
반대 국가 | 벨라루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소련 스웨덴 미얀마 |
기권 국가 | 아프가니스탄 버마 에티오피아 인도 파키스탄 사우디 아라비아 스웨덴 예멘 유고슬라비아 |
관련 링크 | |
역사 | A&E 텔레비전 네트워크 |
2. 배경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이후, 같은 해 말 수십만 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원하며 전쟁에 개입하였다. 이에 미국은 안전 보장 이사회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제재 조치를 추진하려 했으나,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번번이 무산되었다.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의 결의안 채택이 어려워지자, 미국은 논의의 장을 유엔 총회로 옮겨 중국을 침략자로 규탄하는 결의안 통과를 시도하게 되었다.
2. 1. 중국 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개입
1950년 말, 수십만 명의 중국인민지원군 병력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미국과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에 맞서 싸우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한반도 북부로 이동했다.
이 결의안(유엔 총회 결의 제498호) 표결은 유엔 주재 미국 대표단이 안보리에서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한 조치를 추진하려 했으나 실패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당시 안보리의 소련 대표는 거부권을 행사하여 미국의 이러한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켰다. 이에 미국 대표단은 유엔 총회로 논의의 장을 옮겨, 유엔이 중국을 한국 전쟁의 침략자로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2. 2.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채택 실패
1950년 말, 한국 전쟁 중에 수십만 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한반도 북부로 진입하여 미국과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유엔군과 교전하였다.
유엔 주재 미국 대표단은 이러한 중국의 개입에 대응하여 안전 보장 이사회가 중국 정부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 대표는 거부권을 행사하여 미국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막았다. 안보리에서 결의안 채택이 불가능해지자 미국 대표단은 유엔 총회로 논의를 옮겨 유엔이 중국을 침략자로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3. 유엔 총회 결의 498 (V)
1950년 말, 수십만 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 전쟁에서 미국과 한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에 맞서 싸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으로 넘어왔다.
이에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에 대한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소련 대표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미국의 노력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안보리에서의 결의안 채택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 대표단은 유엔 총회로 눈을 돌려 유엔이 중국을 한국 전쟁의 침략자로 규탄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 즉 '한국에서의 침략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규탄 결의안'(유엔 총회 결의 498 (V))을 상정하였다. 이 결의안은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유엔군의 한국 내 주둔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4. 한국의 입장과 대응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총회 결의 498 (V)를 환영하며, 이를 근거로 중국인민지원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이 결의안 통과로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북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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