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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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길여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의료인, 교육자,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박애, 봉사, 애국' 정신을 실천해 온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수련 후 귀국하여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으며, '보증금 없는 병원'을 운영하고 서해 섬 지역 의료 봉사, 자궁암 무료 검진을 시행했다. 1978년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설립, 가천대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발전에 기여했으며, 뇌과학 연구원 설립 등 기초 의학 발전에 힘썼다. 전두환 정권과의 유착 의혹으로 논란이 있었으며, 따뜻한 청진기, 보증금 없는 병원 운영 등의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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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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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길여 |
출생일 | 1932년 6월 12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대학 총장 |
종교 | 무종교 |
소속 | 가천대학교 (총장), 가천길재단 (회장) |
학력 | 195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77년 日本대학교 의학부 의학박사 2008년 카이스트 명예 이학박사 |
본관 | 전주 |
현직 | 가천대학교 총장, 가천길재단 회장, 경인일보 회장 |
별명 | 호는 가천(嘉泉) |
웹사이트 | https://www.gachon.ac.kr/ |
수상 경력 | |
1985년 |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
1997년 | 제2회 자랑스런 전북인대상 수상 |
2003년 |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제13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서울대 총동창회 제5회 관악대상 수상 |
2006년 | 서울대 총동창회 ‘유공(有功)동문상’ 수상 |
2007년 | '2007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서울의대 제정 제8회 함춘대상 사회공헌부문 대상 수상 |
2010년 | 제1회 인천사랑대상 수상 |
2011년 | 한국과학기자협회, 우남 과학진흥상 여성신문사 '올해의 인물상' 수상 |
2012년 |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수상 뉴스위크 '2012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 선정 |
2013년 |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제12회 효령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제3회 성산효행대상 수상 몽골 최고 훈장 '훔테트 템테그 의료훈장' 포브스(FORBES)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선정 미국 하와이한인회 '한인이주 110주년 기념식' 공로패 |
2015년 | 키르기스스탄 최고 의료훈장 수훈 |
2016년 | 한국여자의사회 공로상 및 특별기여상 수상 |
2017년 | 제1회 대한민국을 빛낸 호남인상 수상 |
2019년 | 제16회 서재필의학상 수상 |
가족 | |
배우자 | 없음 (미혼) |
2. 생애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길여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하여 의사가 되었다.
의대 졸업 후 선진 의료에 대한 열망으로 1964년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해 뉴욕으로 갔다. 4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이길여 산부인과를 열고,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했다. 당시에는 형편이 어려워 병원비를 못 내는 환자가 많아 병원마다 보증금을 받고 입원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는 돈이 없는 환자들은 무료로 진료했고,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계속됐다. 당시 서해 섬에는 의사가 없어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는 틈 날 때마다 통통배를 타고 섬을 돌아다니며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했다. 자궁암으로 죽는 여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궁암 무료 검진도 도입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1978년 300병상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출범시켰다. 1980년대 초, 의료취약지인 농어촌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양평, 철원, 백령도에 길병원을 운영했다. 1987년에는 산업 재해로 고통받는 공단 근로자들을 위해 부평과 주안, 반월, 시화, 남동 공단이 인접한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지금의 본원인 중앙길병원(현 가천대 길병원)을 설립했다.
길병원은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한다는 원칙으로,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장애인구강진료센터, 해바라기센터(아동), 인천지역암센터, 광역치매센터, 고위험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 등 공공 의료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90년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중증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해주고 있고, 약 5천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몽골,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등 해외 심장병 어린이 무료 진료 사업을 통해 17개국 432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2001년 한센병국제후원회장을 맡아 베트남에 한센병 환자 자활을 위한 직업훈련원을 세웠고, 몽골과 키르기스스탄 정부로부터 최고 의료 훈장을 받았다.
‘인재 양성이 곧 애국’이라는 신념으로 1997년 ‘가천의과대학교’를 설립했다. 1998년 경원대를 인수, 2005년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 2006년 경원대와 경원전문대학을 통합하고, 2012년 4개 대학을 통합해 가천대학교를 탄생시켰다. 2020년 국내 대학 학부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하였다.
2006년 뇌과학 연구원, 2007년 바이오나노연구원, 2008년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을 설립, 정부의 WCU(World Class University,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에 선정됐다.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 ‘가천브레인밸리'에서 뇌전용 11.7T MRI와 중성자 암치료기 ‘A-BNCT’를 개발중이며, 뇌영상과 진단분야의 세계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친구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박애, 봉사, 애국'을 실천해왔다.
그러나 1986년 전두환의 형제 전경환에게 인하대학교 부속병원 신축을 막아달라며 뇌물을 건넨 사건[2]과, 가천대 길병원 노조 결성을 주도한 4명을 해고[4]하는 등 논란이 되는 사건들도 있었다.
2. 1. 어린 시절과 의사의 꿈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길여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했다.2. 2. 미국 유학과 귀국
이길여는 의대 졸업 후 수련 생활 동안 선진 의료에 대한 열망을 품고 1964년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에는 유학 후 귀국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이길여는 조국의 환자들을 잊지 않고 4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귀국 후, 이길여는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하여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을 도왔다. 당시에는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아 병원들이 보증금을 요구하던 시절이었다. 이길여는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으며, 이는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서해 섬 지역의 의료 취약성을 인지하고, 틈틈이 배를 타고 섬을 방문하여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자궁암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궁암 무료 검진도 도입하여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2. 3. 의료 봉사와 사회 공헌
이길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사회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해 의사가 되었다. 1964년에는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뉴욕에서 4년간 선진 의료를 경험하고 귀국했다.귀국 후 이길여는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하여 돈이 없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당시에는 병원비를 내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아 병원마다 보증금을 요구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의료 취약 지역인 서해 섬들을 방문하여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자궁암 무료 검진도 도입했다.
1978년, 이길여는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했다. 1980년대 초에는 의료 취약 지역인 양평, 철원, 백령도에 길병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1986년, 이길여는 전경환에게 뇌물을 주고 인하대 부속병원의 신축 허가를 저지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인하대 의대생들은 이길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2][3]
1987년, 이길여는 산업 재해로 고통받는 근로자들을 위해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중앙길병원(현 가천대 길병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길병원은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주도한 4명을 해고하는 등 노조 활동에 강경하게 대응하였다.[4]
길병원은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원칙 아래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등 다양한 공공 의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0년에는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중증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해주고 있으며, 약 5천여 명이 이 혜택을 받았다. 또한, 해외 심장병 어린이 무료 진료 사업을 통해 17개국 432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2001년, 이길여는 한센국제후원회장을 맡아 베트남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직업훈련원을 설립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몽골과 키르키스스탄 정부로부터 최고 의료 훈장을 받았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에 의대 설립과 의학 교육 프로그램을 전수하고, 페루 정부와 공동으로 원격 의료 기술 전수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 4. 가천대학교 설립과 교육 혁신
이길여는 ‘가슴이 따뜻한 의사’를 키우기 위해 1997년 국내 41번째로 ‘가천의과대학교’를 설립했다.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하고, 2005년에는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을, 2006년에는 경원대와 경원전문대학을 통합했으며, 2012년에 이들 4개 대학을 모두 통합해 지금의 가천대학교를 만들었다.[2] 이 과정에서 이길여 당시 인천 길병원장은 1986년 8월 2일에 전두환의 형제인 전경환에게 인하대학교 부속병원의 신축 허가를 저지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4천 700만 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3] 이 사건으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은 "뇌물수수한 이길여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가천대학교는 입학 정원 3750여 명, 의대, 한의대, 약대, 간호대를 갖춘 수도권 명문 대학으로 성장했으며,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0년에는 국내 대학 학부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하였다.
2. 5. 뇌과학 연구와 의학 발전
이길여는 기초 의학 발전을 위해 2006년 뇌과학 연구원, 2007년 바이오나노연구원, 2008년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을 설립하였다.[1] 이들 연구소는 정부가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WCU(World Class University,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에 선정되었다.[1]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가천브레인밸리'(Gachon Brain Vally)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 뇌전용 11.7T MRI와 중성자 암치료기 ‘A-BNCT’를 개발중이며, 뇌영상과 진단분야의 세계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1]
2. 6. '박애, 봉사, 애국'의 철학
이길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사의 꿈을 키웠다.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의사가 되었다.이길여는 미국에서 선진 의료 기술을 배우고 귀국한 후,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하여 돈이 없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또한, 의료 취약 지역인 섬을 방문하여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자궁암 무료 검진을 도입하는 등 의료 봉사에 헌신했다.
1978년, 이길여는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했다. 이후 의료 취약 지역인 양평, 철원, 백령도에 길병원을 운영하며 의료 접근성을 높였다. 1987년에는 산업 재해로 고통받는 근로자들을 위해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중앙길병원(현 가천대 길병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길병원은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 대하여 노조 결성을 주도한 4명을 해고시키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4]
1986년에는 전경환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인하대 부속병원의 설립을 방해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인하대 의과대학생들의 시위를 야기했다.[2][3]
길병원은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원칙 아래,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등 다양한 공공 의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0년에는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중증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하고 있으며, 해외 심장병 어린이 무료 진료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2001년, 이길여는 한센국제후원회장을 맡아 베트남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직업훈련원을 설립하는 등 국제적인 박애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몽골과 키르키스스탄 정부로부터 최고 의료 훈장을 받았다.
이길여는 '인재 양성이 곧 애국'이라는 신념으로 1997년 가천의과대학교를 설립하고, 경원대학교를 인수하여 가천대학교로 통합하는 등 교육 분야에도 기여했다. 2020년에는 국내 대학 학부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하였다.
또한, 뇌과학 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원,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을 설립하여 기초 의학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이들 연구소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에 선정되었으며, '가천브레인밸리'에서는 뇌전용 11.7T MRI와 중성자 암치료기 'A-BNCT'를 개발 중이다.
이길여는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친구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박애, 봉사, 애국'의 철학을 실천해왔다.
3. 학력
1951년 이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77년 니혼 대학 대학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
3. 1. 정규 학력
3. 2. 명예 박사 학위
4. 경력
연도 | 경력 |
---|---|
1958년 | 이길여 산부인과 개원 |
1978년 |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설립, 現) 가천대 길병원 설립자 및 명예이사장 |
1981년 ~ 2005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여성부의장 |
1982년 ~ 1984년 | 사단법인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
1985년 | '85 UN여성대회 정부대표 참가(케냐) |
1991년 ~ | 가천문화재단 설립, 現)설립자 및 명예이사장 |
1992년 ~ | 사회복지법인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설립, 現)설립자 및 명예이사장 |
1993년 ~ | 사단법인 가천미추홀청소년봉사단 설립, 現)총재(2010년 ~ ) |
1993년 ~ | 現)한센국제협력후원회 회장 |
1995년 ~ 2005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장(5회 연임) |
1995년 ~ | 가천박물관 설립, 現)설립자 |
1999년 ~ | 現) 경인일보 회장 |
2001년 ~ 2003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부의장 |
2002년 ~ | 現) 가천길재단 회장 |
2003년 ~ 2007년 | 의사협회 ‘한국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
2003년 ~ 2004년 |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 의장 |
2007년 ~ 2008년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이사장 |
2009년 | 인천세계도시축전 시민위원장 |
2011년 ~ 2013년 |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
2011년 ~ 2012년 |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초대 이사 |
2012년 ~ | 現) 통합 가천대학교 초대 총장 및 설립자 |
2014년 ~ 2016년 | 경인지역 대학총장협의회 초대 회장 |
2016년 ~ | 現) 한국차문화협회 명예이사장 |
5. 수상 경력
연도 | 수상 내역 |
---|---|
1985년 | 국민훈장 목련장 |
1993년 | 제29회 용신봉사상 |
1997년 | 제2회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 |
2003년 | 국민훈장 무궁화장 |
2003년 | 제13회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 |
2003년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제5회 관악대상 |
2006년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유공(有功)동문상’ |
2007년 | 한국언론인협회 선정 '2007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
2007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정 제8회 함춘대상 사회공헌부문 대상 |
2009년 |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
2009년 | 제12회 효령상 사회봉사부문 |
2009년 | 제3회 성산효행대상 |
2009년 | 몽골 최고 훈장 '훔테트 템테그 의료훈장' |
2010년 | 제1회 인천사랑대상 |
2011년 | 한국과학기자협회, 우남 과학진흥 |
2011년 | 여성신문사 '올해의 인물상' |
2012년 | 뉴스위크 2012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 선정 |
2012년 | 인촌상 '공공봉사부문' |
2013년 | 과학기술훈장 창조장(1등급) |
2013년 | 제12회 효령상 사회봉사부문 |
2013년 | 제3회 성산효행대상 |
2013년 | 몽골 최고 훈장 '훔테트 템테그 의료훈장' |
2013년 | 포브스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선정 |
2013년 | 미국 하와이한인회 한인이주 110주년 기념식 공로패 |
2015년 | 키르기스스탄 최고 의료훈장 |
2015년 | 대한적십자사 '박애장 금장' |
2016년 | 한국여자의사회 공로상 및 특별기여상 |
2016년 | YWCA 제14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
2016년 | 대한민국 사회공헌 명예의전당 선정 노블레스 오블리주 명예의 전당 |
2017년 | 제1회 대한민국을 빛낸 호남인 상 |
2017년 | 올해의 '인천인 대상' |
2019년 | 제16회 서재필 의학상 |
2020년 | 국제라이온스 인도주의상 |
6. 저서
제목 |
---|
가슴에 품은 청진기 |
아름다운 바람개비 |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해라 |
나의 꿈, 나의 도전 |
의학과 의료 |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
꿈은 멈추지 않는다 |
끝없는 태동, 끝없는 도약 |
어미새의 노래 |
7. 가계
이길여의 조부 이상제는 전주 이씨 익안대군(이방의, 이성계의 셋째 아들)파 16대 손이다.
8. 논란
1986년 초, 길병원 근처에 인하대병원의 부속병원이 설립될 예정이었다. 이때 이길여는 전두환의 형제인 전경환에게 병원 설립을 막아달라며 1700만원의 뇌물을 지급한 사건이 있었다.[6] 이 사건으로 인하대 학생들이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8. 1. 전두환 정권과의 유착 의혹
1986년 초, 길병원 근처에 인하대병원의 부속병원이 설립될 예정이었다. 이때 이길여는 전두환의 형제인 전경환에게 병원 설립을 막아달라며 1700만원의 뇌물을 지급한 사건이 있었다.[6] 다음은 검찰의 전경환에 대한 공소장 일부이다.피고인 전경환은 1986년 초 일사불상 14시경 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회장실에서 인천시 남구 구월동 소재 의료법인 길병원의 이사장 이길녀로부터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천에 부속병원을 신축하려고 보건사회부에 병원개설 승인신청을 하였는데 만약 위 병원의 개설 승인이 나면 길병원의 영업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므로 보사부 장관에게 인하대학교 부속병원의 개설허가를 해주지 말도록 부탁, 같은 해 8월 15일에 대가로 한일은행 인천지검장 발행의 1백만 원권 자기앞수표 17장 합계 금 1천 7백만 원을 교부받아 공무원에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대하여 금품을 수수하고한국어[6]
공소장에 따르면 이길여가 전경환에게 뇌물을 지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인하대 학생들이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6]
9. 일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길여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여성에게 많은 교육이 필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해 꿈을 이루었다.
이길여는 의대 졸업 후 선진 의료에 대한 열망으로 1964년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해 뉴욕으로 갔다. 4년간의 유학 후 귀국하여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 돈 없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당시 서해 섬에는 의사가 없어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길여는 섬을 다니며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했고, 자궁암 무료 검진도 도입했다.
1978년, 300병상 규모의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했다. 1980년대 초에는 의료취약지역인 양평, 철원, 백령도에 길병원을 운영했다. 1987년에는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인천 구월동에 중앙길병원(현 가천대 길병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길병원은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 대하여는 노조 결성을 주도한 4명을 해고시키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4]
길병원은 '첫째도 봉사, 둘째도 봉사, 셋째도 봉사'라는 원칙 아래 공공 의료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90년에는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설립, 중증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해 약 5천여 명이 새 생명을 찾았다.
이러한 의료 봉사는 해외로도 확장되어, 17개국 432명의 어린이가 무료 심장 수술을 받았다. 2001년에는 한센국제후원회장으로서 베트남에 한센병 환자 직업훈련원을 설립, 몽골과 키르키스스탄 정부로부터 최고 의료 훈장을 받았다.
이길여는 ‘인재 양성이 곧 애국’이라는 신념으로 1997년 가천의과대학교를 설립했다. 1998년 경원대를 인수, 2012년 4개 대학을 통합해 가천대학교를 탄생시켰다. 가천대학교는 의대, 한의대, 약대, 간호대를 갖춘 수도권 명문 대학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국내 대학 학부 최초로 인공지능학과를 신설하였다.
2006년부터 뇌과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원,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을 설립,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가천브레인밸리'에서는 뇌전용 11.7T MRI와 중성자 암치료기 ‘A-BNCT’를 개발 중이며, 뇌영상과 진단분야의 세계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몫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박애 봉사 애국'을 실천하고 있다.
이길여는 따뜻한 청진기로 유명하다. 항상 청진기를 가슴에 품어 체온으로 덥혀 환자들을 배려했다. 또한, 차가운 고무장갑에 산모가 놀라지 않도록 따뜻한 소독물에 담가 놓는 등 약자를 배려하는 진료를 했다.
9. 1. 보증금 없는 병원
이길여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당시 여성에게 많은 교육이 필요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하여 꿈을 이루었다.1964년, 이길여는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뉴욕에서 선진 의료를 경험했다. 4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한국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하였다. 당시에는 병원들이 환자에게 보증금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길여는 돈이 없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하며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이 방식을 유지했다.
당시 서해 섬에는 의사가 부족하여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이길여는 섬을 방문하여 무료 진료와 질병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자궁암 무료 검진도 도입하여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참조
[1]
뉴스
이길여 원장 “어머니 고귀한 뜻 기리고자 마련”'동인천 길병원' 18일까지 무료진료
http://www.catholict[...]
가톨릭신문
2000-11-12
[2]
뉴스
https://newslibrary.[...]
1988-03-31
[3]
뉴스
https://newslibrary.[...]
1988-04-01
[4]
뉴스
https://newslibrary.[...]
1989-07-20
[5]
문서
전주 이씨 익안대군(이방의(李芳毅), 이성계의 셋째 아들)파 17대 손
[6]
뉴스
https://newslibrary.[...]
198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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