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이 다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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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마이 다쓰야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소속 투수이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하여, 사쿠신가쿠인 고등학교를 거쳐 2016년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고교 시절에는 최고 구속 152km/h를 기록하며 프로의 주목을 받았고, U-18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2018년 프로 데뷔 후 2024년까지 통산 135경기에 등판하여 48승 40패,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했으며, 2023년 7월 월간 MVP, 2024년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다. 2023년에는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일본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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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이 다쓰야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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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마이 다쓰야 |
원어 이름 | 今井 達也 (Imai Tatsuya) |
출생일 | 1998년 5월 9일 |
출생지 | 도치기현 가누마시 |
신장 | 180cm |
체중 | 82kg |
포지션 | 투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등번호 |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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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경력 | |
데뷔 리그 | NPB |
데뷔 년도 | 2018년 |
데뷔 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
드래프트 | 2016년 드래프트 1순위 |
소속 구단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7년 ~ 현재) |
연봉 | 1억 8000만 엔 (2025년) |
첫 출장 | 2018년 6월 13일 |
NPB 통계 (2024년 7월 20일 기준) | |
승-패 | 42승 38패 |
평균 자책점 | 3.52 |
탈삼진 | 663 |
수상 경력 | |
올스타 | 2회 (2021년, 2024년) |
국가대표 경력 | |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 2023년 금메달 |
2. 프로 입단 전
이마이 다쓰야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여, 카누마 시립 니시 중학교 시절에는 클럽팀인 카누마 레드삭스에 소속되어 전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중학교 졸업 후 사쿠신가쿠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 여름에는 토치기현 대회에서 등번호 "11"을 달고 벤치에 들어갔으며, 준결승전 하쿠오다이가쿠 아시카가 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볼넷과 오시타 세이이치로의 우전 안타로 위기를 맞이하여 2사 1·3루에서 라이트 스탠드로 동점 3점 홈런을 맞아 1회 3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 고쿠가쿠인 도치기와의 결승전에서는 6회부터 구원 등판했지만 제구가 잡히지 않아, 상대 타자에게 머리 부상구를 주는 등, 1이닝 1/3을 1피안타 4사사구로 강판되었다. 팀은 여름 고시엔 대회 출전을 달성했지만 이마이는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2학년 가을의 토치기현 대회에서는 등번호 "1"을 달고 멤버에 들어갔으며, 준결승의 분세이게이대 부속 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폭투로 인해 결승점을 내주고 1-2로 패했다. 2학년 겨울 기간에는 감독 고바리 타카히로의 "투수는 마운드에서 혼자"라는 육성 방침에 따라, 마운드에서의 고독감과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혼자 연습에 매진했다.
3학년 봄의 토치기현 대회에서는 두 번째 투수 격인 이리에 다이세이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한다는 팀의 방침이 있어, 이마이의 등판 기회는 없었다. 이리에가 등번호 "1"을 달았지만, 8강전에서 현립 토치기 공업에 패하여 팀은 베스트 8으로 마쳤다. 이것을 계기로 이리에는 1루수로 컨버트되었다.
에이스로 맞이한 3학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는 첫 경기 진세이 학원 전에서 자기 최고 속도인 151km/h를 기록했고, 그 후 하나사키 도쿠게이 전에서는 자기 최고 속도를 갱신하는 152km/h를 기록하며 프로의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 홋카이 전에서는 9회 1실점 호투로 우승 투수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5경기 모두 등판하여, 41이닝 동안 44탈삼진, 자책점 5 (평균 자책점 1.10)의 쾌투를 보였다.
고시엔 이후에는 U-18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결승전 대만 전에서는 5회 1실점으로 호투하여, 2대회 만에 5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2016년 9월 16일에 프로 지망서를 제출했고, 2016년도 드래프트 회의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부터 단독 1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엔 플러스 성과급 5000만 엔, 연봉 1300만 엔 (금액은 추정)으로 계약했다. 등번호는 그 해 오프에 FA로 라쿠텐으로 이적한 기시 타카유키의 '''11'''. 담당 스카우트는 오시마 히로유키.
2. 1. 유소년 시절
이마이 다쓰야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여, 카누마 시립 니시 중학교 시절에는 클럽팀인 카누마 레드삭스에 소속되어 전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중학교 졸업 후 사쿠신가쿠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 여름에는 토치기현 대회에서 등번호 "11"을 달고 벤치에 들어갔다. 준결승전 하쿠오다이가쿠 아시카가 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볼넷과 오시타 세이이치로의 우전 안타로 위기를 맞이하여 1회 3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 고쿠가쿠인 도치기와의 결승전에서는 6회부터 구원 등판했지만 제구가 잡히지 않아, 1이닝 1/3을 1피안타 4사사구로 강판되었다. 팀은 여름 고시엔 대회 출전을 달성했지만 이마이는 멤버에서 제외되었다.
2학년 가을 토치기현 대회에서는 등번호 "1"을 달고 멤버에 들어갔다. 준결승 분세이게이대 부속 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폭투로 인해 결승점을 내주고 1-2로 패했다. 2학년 겨울 기간에는 감독 고바리 타카히로의 "투수는 마운드에서 혼자"라는 육성 방침에 따라, 혼자 연습에 매진했다.
3학년 봄 토치기현 대회에서는 이마이의 등판 기회는 없었다. 팀은 베스트 8으로 마쳤고, 이것을 계기로 이리에는 1루수로 컨버트되었다.
에이스로 맞이한 3학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는 첫 경기 진세이 학원 전에서 자기 최고 속도인 151km/h를 기록했고, 하나사키 도쿠게이 전에서는 152km/h를 기록하며 프로의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 홋카이 전에서는 9회 1실점 호투로 우승 투수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 5경기 모두 등판하여, 41이닝 동안 44탈삼진, 자책점 5 (평균 자책점 1.10)의 쾌투를 보였다.
고시엔 이후에는 U-18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결승전 대만 전에서는 5회 1실점으로 호투하여, 2대회 만에 5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2. 2. 고등학교 시절
사쿠신 가쿠인 고등학교에 진학 후, 2학년 여름 토치기현 대회에서 등번호 "11"을 달고 벤치에 들어갔다. 준결승전 하쿠오다이가쿠 아시카가 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1회 3피안타 2사사구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 고쿠가쿠인 도치기와의 결승전에서는 6회부터 구원 등판했지만, 1이닝 1/3을 1피안타 4사사구로 강판되었다. 팀은 여름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지만 이마이는 멤버에서 제외되었다.2학년 가을 토치기현 대회에서는 등번호 "1"을 달고 벤치에 들어갔다. 준결승 분세이게이대 부속 전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폭투로 인해 결승점을 내주고 1-2로 패했다. 이후 감독 고바리 타카히로의 육성 방침에 따라 혼자 연습에 매진했다.
3학년 봄 토치기현 대회에서는 등판 기회가 없었고, 팀은 8강에서 현립 토치기 공업에 패했다.
에이스로 맞이한 3학년 여름 고시엔 대회 첫 경기 진세이 학원 전에서 자기 최고 속도인 151km/h를 기록했다. 하나사키 도쿠게이 전에서는 152km/h를 기록하며 프로의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 홋카이 전에서는 9회 1실점 호투로 우승 투수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 41이닝 동안 44탈삼진, 자책점 5 (평균 자책점 1.10)의 쾌투를 보였다.
고시엔 이후 U-18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결승전 대만 전에서 5회 1실점으로 호투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3. 프로 야구 선수 경력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017년 ~ )
고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스프링 캠프 A반에 발탁되었지만, 오른쪽 어깨 관절순 염증으로 이탈했다.[26] 이후 순조롭게 회복하여 4월 15일 이스턴 리그 공식전에서 실전 데뷔를 장식했고,[27] 7월 13일 프레시 올스타 게임에서는 이스턴 선발의 선발 투수를 맡아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28] 그러나 5월에는 오른쪽 어깨의 위화감,[29] 8월에는 오른쪽 어깨의 염증과 부상에 시달리며,[30] 루키 해는 2군에서 7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고, 오프에는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3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1]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1월 말에 도코로자와 시내에서 흡연했다는 정보가 외부로부터 구단에 전달되어 2월 6일에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으며, 5월까지 유니폼 착용 금지 및 대외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32][33] 5월 1일자로 미성년자 흡연에 따른 처분이 해제되었고,[34] 6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프로 첫 등판 첫 선발을 하여 6이닝 1실점의 호투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35] 데뷔전에서 선발 승리를 거둔 것은 구단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였다.[36] 이어서 23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4이닝 4실점으로 프로 첫 패전을 기록했지만, 5회 강우 콜드로 인해 프로 첫 완투가 기록되었다.[37] 그 후에도 1군에서 선발 등판을 거듭했지만, 7월 10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38] 같은 달 21일 재등록[39] 이후에도 두 번의 등록 말소를 경험하면서도,[40][41] 홈구장 헹가래가 걸린 9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는 등 시즌 종료까지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42] CS 파이널 스테이지 4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5회 도중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43] 이 해에는 1군에서 15경기(14선발)에 등판하여 5승 5패,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했다. 오프에 5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1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4]
에는 처음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고,[45] 5월 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는 레이와 시대의 완봉승 1호였다.[46] 이 해에는 발열로 선발을 회피한 경기[47]와 허리 통증으로 등록 말소된 시기가 있었고,[48] 규정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3연전 첫 경기를 맡는 등 수뇌부의 기대도 커서 23경기(22선발)에 등판하여 7승 9패, 평균자책점 4.32의 성적을 남겼다.[49] CS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3회 도중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50] 오프에 17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3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51]
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120경기 체제의 단축 시즌과 개막 연기가 있었다. 이 해에는 다르빗슈 유를 흉내낸 새로운 투구폼에 도전했고,[52] 개막 전 교류전 등에서는 호투했지만,[53] 개막 후 6선발에서 2승을 거두었지만 평균자책점 6.25로 불안정한 투구가 이어지면서,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구원 투수로서도 투구 내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8월 2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우타자를 상대로 3개의 사구를 기록[54], 다음날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5] 10월에 선발 투수로 재등록되었지만[56], 결과를 내지 못하고 19경기(11선발)에 등판하여 3승 4패, 평균자책점 6.13의 성적에 그쳤다. 오프에는 지인의 SNS를 통해 다르빗슈와 연락하여 투구폼에 대해 상담했다.[57] 계약 갱신에서는 7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2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58]
에는 3년 연속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고,[59] 사사구의 많음을 역이용하여 상대 타자에게 좁은 범위를 공략하도록 하고, 교류전 전 시점에서는 6.05의 사사구율을 기록했음에도 피안타율 0.194, 평균자책점 2.62로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보였다.[60] 교류전, 그리고 리그전 재개 후에도 평균자책점 2점대를 유지했으며,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첫 출전[61]。 1차전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62] 후반기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63] 9월 11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7회 도중까지 노히트 피칭을 하였고, 142개의 공을 던져 9이닝 3안타 무실점, 개인 최다인 13개의 탈삼진으로 개인 첫 두 자릿수 탈삼진, 2019년 5월 5일 이후 두 번째 완봉승을 기록했다.[64] 이후에는 완투승을 기록하는 등 컨디션을 회복했고,[65], 이 해에는 연간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양 리그 최다인 '''99개의 사구'''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규정 이닝에 도달했다.[66]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67][68] 강판 후 승리 투수 자격이 사라지는[69][70] 등 타선이나 구원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기가 많았고,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승 8패로 승수를 늘리지 못했지만, 3완투(리그 공동 2위[71]), 평균자책점 3.30(팀 1위[72])으로 확실한 성장을 보인 한 해가 되었다. 오프에 23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51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3]
에도 개막 로테이션 진입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오른쪽 내전근 통증으로 오픈전 최종 등판을 회피[74]。 개막에는 맞추지 못하고 4월 8일 2군 경기에서 실전 복귀를 했지만,[75] 이어서 19일 2군 경기에서 왼쪽 발목을 삐어 다시 장기 이탈했다.[76] 이탈 기간 동안 상반신 훈련을 중심으로 체중을 5kg 늘렸고,[77] 6월 24일 2군 경기에서 실전 재복귀[78]。 7월 7일 오릭스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어 5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6회 말 아군의 실책으로 3실점[79], 6이닝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80] 이어서 14일 롯데전에서는 6이닝 6안타 1사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고,[81] 후반기 개막전이었던 7월 29일 소프트뱅크전 선발로 나서센가 코다이와의 투수 대결[83]에서 승리하여 6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84]。 이후에는 금요일 로테이션을 돌았고, 8월 12일 라쿠텐전에서는 6회에 타구가 오른쪽 종아리에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속행했다. 7회에는 오른손 약지에 엄지손톱이 걸려 출혈이 있었고, 속행을 원했지만 교체되었지만,[85] 6⅔이닝 2안타 3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86]。 26일 오릭스전에서는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투수 대결[87]을 펼쳤고, 8이닝 117구 상황에서 자원하여 속행했다. 9이닝 144구 4안타 6사사구 10탈삼진 2실점으로 역투했고,[88] 연장 10회 초 팀이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힘든 등판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한 번 선발 등판을 건너뛰기 위해 다음날인 8월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89] 최단 10일 만의 복귀를 목표로 했지만,[90] 이후 편도선염으로 발열이 지속되어,[91] 실전 등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군에서의 조정 등판을 2경기 거친 후,[92][93] 9월 28일 CS 진출을 다투는 라쿠텐과의 직접 대결에서 1군 복귀[94]。 기시 다카유키와의 숨 막히는 투수전을 8이닝 4안타 4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95],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해에는 세 번의 이탈이 있었지만, 토요타 키요시 투수 코치는 "결과적으로 부상으로 늦어졌지만, 그동안 해야 할 일에 제대로 임해 주었습니다. 정말 '야구인'으로서 한 단계 올라선 느낌입니다."라고 말했고,[96] 쓰지 하쓰히코 감독도 "그런 (세 번의 이탈이 있었던) 중에서도 굉장히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97]라고 수뇌부로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정규 시즌에서는 9경기에 선발(5승 1패, 평균자책점 2.41[98])에 그쳤지만, 쓰지 감독은 CS 개최 1주일 전에 이마이의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 선발을 공언[99]。 같은 선발로 공언된 다카하시 코나리가 야나기타 유키의 3점 홈런을 포함 5실점으로 무너졌고,[100] 팀은 첫 경기를 내주어, 지면 탈락하는 상황이었지만,[101] 슬라이더를 공략당해,[102] 3회 말 야나기타의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허용[103], 4회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104] 오프 11월 23일에 열린 팬 감사 이벤트에서는, 작년 오프에 자율 훈련 동행을 요청한 이후 1년 동안 다양한 조언을 해 준 다케쿠마 쇼타[105]의 은퇴 스피치도 진행되었고, 꽃다발 증정 역할을 맡은 이마이는 눈물을 흘렸다.[106] 이날 귀가길에 다케쿠마가 사용하던 등번호 '''48'''로의 변경을 구단에 신청, 12월 1일 계약 갱신에서는 6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사인하는 동시에,[107] 등번호 변경도 발표[108]。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희망에 따라 큰 번호를 붙이는 이례적인 등번호 변경이었다.[109]
에는 라쿠텐과의 개막 2경기째 첫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110][111] 이어서 4월 13일 롯데전에서는 8회 1사까지 노히트 피칭을 이어갔고,[112] 2-0으로 맞이한 9회 초에도 속행했다. 1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후속 타자를 막아내[113], 9이닝 138구 2안타 5사사구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114]로 세 번째(2021년 9월 11일 이후) 완봉승을 거두었다.[115] 이후에는 등판 간격을 벌리기 위한 등록 말소가 한 번 있었지만[116],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지만, 5월 24일 롯데전에서 3피홈런을 포함 8실점을 기록하고, 2이닝 3분의 0에서 강판되었고,[117] 26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118] 한 달 이상 2군 조정을 계속했지만, 후에 본인은 "(2군 조정 중에) 크게 바꾼 것은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 온 것을, 더욱 완성도 높은 것으로 만드는 것만을 생각하며, 훈련이나 기술적인 연습을 하고 있다"라고 부상은 없었고, 올해 1월에 참가한 코노에 히사하루와의 합동 자율 훈련에서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119] 7월 4일 롯데전에서 1군 복귀하여[120], 8이닝 무실점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121], 이어서 12일 소프트뱅크전에서 7이닝 2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122]。 7월에는 4선발 모두 HQS를 기록하고, 3승 0패, 평균자책점 0.62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123], 만장일치로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124] 9월 2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2실점의 호투로 시즌 10승을 거두어, 개인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125] 이 해에는 규정 이닝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19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6번의 QS[126]와 안정적인 투구로 10승 5패, 평균자책점 2.30을 기록[127] 리그 최다 타이 '''61사구'''도 기록했다.[128] 시즌 종료 후에는 제2회 아시아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오프에 35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29]
에는 3년 연속으로 개막 투수를 맡고 있던 다카하시 코나리가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조정이 늦어지면서[130], 3월 16일 OB전 경기 후에 비디오 메시지로 이마이의 개막 투수가 공표되었다.[131] 본인에게는 스프링 캠프 중에 통보되었고[132], 마쓰이 가즈오 감독은 "올해는 이마이밖에 없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캠프에 갔습니다"라고 코멘트했다. 만약 다카하시가 컨디션이 좋더라도 "이마이로 가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라쿠텐과의 개막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어, 7이닝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133] 개막부터 7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6번의 HQS[134], 강판 후 구원진이 동점을 허용하는 경기가 있었지만[135][136], 3승 0패, 평균자책점 1.47을 기록했지만[137], 5월 21일 롯데전에서는 첫 이닝 투구 연습 시 오른손 약지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그 영향으로 공이 미끄러져, 첫 이닝에 5실점[138], 5이닝 5실점으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다. 26일에 마쓰이 감독의 휴양이 발표될 정도로, 팀은 심각한 빈타로 침체되어 있었고,[139], 이마이도 그 후 8선발에서 득점 지원이 있었던 경기는 3경기[140][141][142]。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승수를 늘리지 못했고, 6월 4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완투승 직전에 교체를 지시받았고, 이후 동점으로 따라잡혔지만, 맞은 아브레우가 벤치로 돌아갈 때 바로 달려갔다.[143] 또한,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1-2로 9회말 2사 2루에서 1루 땅볼로 아웃되어, 헤드 슬라이딩을 하고 엎드려 있던 겐다 소스케에게 다가가 겐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리는 등[144], 팀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으로 정신적으로도 팀의 기둥으로 성장했고, 감독 추천으로 3년 만에 두 번째로 올스타에 선출[145]。 올스타전 2차전 8회 말부터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2실점을 기록했지만 경기를 마무리[146], 마지막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을 때, 올스타에 선출되지 못한 동료 얀의 퍼포먼스 '라 센텐시아 99''를 선보였다.[148] 올스타전 전 7월 21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149] 8월 1일 라쿠텐전(올스타전으로부터 7일 간격)에서 후반기 첫 선발[150]。 17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5승을 거둔[151] 이후 6연승을 기록했고[152], 10월 1일 니혼햄전에서는 시즌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153] 이 해에는 개인 3년 만에 규정 이닝에 도달했고,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0승 8패, 평균자책점 2.34[154], 리그 최다 '''187탈삼진'''을 기록했고 '''70사구'''도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155] 개인 첫 타이틀인 최다 탈삼진을 획득 세이부 투수가 최다 탈삼진을 획득한 것은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 19년 만이었다[157]。 오프 11월 23일에 열린 팬 감사 이벤트에서 니시구치 후미야 신임 감독으로부터 "개막 투수는 이마이로 갑니다", "추계 캠프에 갔을 때부터 내년 개막은 이마이라고 정했기 때문에, 일찍 알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다음 해 개막 투수로 지명받았다는 사실이 공표되었다[158]。 12월 4일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1억 엔 증액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으로 사인했다[159]。
3. 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고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스프링 캠프 A반에 발탁되었지만, 오른쪽 어깨 관절순 염증으로 이탈했다.[26] 이후 순조롭게 회복하여 4월 15일 이스턴 리그 공식전에서 실전 데뷔를 장식했고,[27] 7월 13일 프레시 올스타 게임에서는 이스턴 선발의 선발 투수를 맡아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28] 그러나 5월에는 오른쪽 어깨의 위화감,[29] 8월에는 오른쪽 어깨의 염증과 부상에 시달리며,[30] 루키 해는 2군에서 7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고, 오프에는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3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31]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뛰었다.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1월 말에 도코로자와 시내에서 흡연했다는 정보가 외부로부터 구단에 전달되어 2월 6일에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으며, 5월까지 유니폼 착용 금지 및 대외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32][33] 5월 1일자로 미성년자 흡연에 따른 처분이 해제되었고,[34] 6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프로 첫 등판 첫 선발을 하여 6이닝 1실점의 호투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35] 데뷔전에서 선발 승리를 거둔 것은 구단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였다.[36] 이어서 23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4이닝 4실점으로 프로 첫 패전을 기록했지만, 5회 강우 콜드로 인해 프로 첫 완투가 기록되었다.[37] 그 후에도 1군에서 선발 등판을 거듭했지만, 7월 10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38] 같은 달 21일 재등록[39] 이후에도 두 번의 등록 말소를 경험하면서도,[40][41] 홈구장 헹가래가 걸린 9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는 등 시즌 종료까지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42] CS 파이널 스테이지 4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5회 도중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43] 이 해에는 1군에서 15경기(14선발)에 등판하여 5승 5패,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했다. 오프에 5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1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4]
에는 처음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고,[45] 5월 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는 레이와 시대의 완봉승 1호였다.[46] 이 해에는 발열로 선발을 회피한 경기[47]와 허리 통증으로 등록 말소된 시기가 있었고,[48] 규정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3연전 첫 경기를 맡는 등 수뇌부의 기대도 커서 23경기(22선발)에 등판하여 7승 9패, 평균자책점 4.32의 성적을 남겼다.[49] CS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3회 도중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50] 오프에 17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3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51]
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120경기 체제의 단축 시즌과 개막 연기가 있었다. 이 해에는 다르빗슈 유를 흉내낸 새로운 투구폼에 도전했고,[52] 개막 전 교류전 등에서는 호투했지만,[53] 개막 후 6선발에서 2승을 거두었지만 평균자책점 6.25로 불안정한 투구가 이어지면서,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구원 투수로서도 투구 내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8월 2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우타자를 상대로 3개의 사구를 기록[54], 다음날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5] 10월에 선발 투수로 재등록되었지만[56], 결과를 내지 못하고 19경기(11선발)에 등판하여 3승 4패, 평균자책점 6.13의 성적에 그쳤다. 오프에는 지인의 SNS를 통해 다르빗슈와 연락하여 투구폼에 대해 상담했다.[57] 계약 갱신에서는 7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2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58]
에는 3년 연속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고,[59] 사사구의 많음을 역이용하여 상대 타자에게 좁은 범위를 공략하도록 하고, 교류전 전 시점에서는 6.05의 사사구율을 기록했음에도 피안타율 0.194, 평균자책점 2.62로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보였다.[60] 교류전, 그리고 리그전 재개 후에도 평균자책점 2점대를 유지했으며,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첫 출전[61]。 1차전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62] 후반기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63] 9월 11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7회 도중까지 노히트 피칭을 하였고, 142개의 공을 던져 9이닝 3안타 무실점, 개인 최다인 13개의 탈삼진으로 개인 첫 두 자릿수 탈삼진, 2019년 5월 5일 이후 두 번째 완봉승을 기록했다.[64] 이후에는 완투승을 기록하는 등 컨디션을 회복했고,[65], 이 해에는 연간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양 리그 최다인 '''99개의 사구'''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규정 이닝에 도달했다.[66]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67][68] 강판 후 승리 투수 자격이 사라지는[69][70] 등 타선이나 구원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기가 많았고,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승 8패로 승수를 늘리지 못했지만, 3완투(리그 공동 2위[71]), 평균자책점 3.30(팀 1위[72])으로 확실한 성장을 보인 한 해가 되었다. 오프에 23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51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3]
에도 개막 로테이션 진입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오른쪽 내전근 통증으로 오픈전 최종 등판을 회피[74]。 개막에는 맞추지 못하고 4월 8일 2군 경기에서 실전 복귀를 했지만,[75] 이어서 19일 2군 경기에서 왼쪽 발목을 삐어 다시 장기 이탈했다.[76] 이탈 기간 동안 상반신 훈련을 중심으로 체중을 5kg 늘렸고,[77] 6월 24일 2군 경기에서 실전 재복귀[78]。 7월 7일 오릭스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어 5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6회 말 아군의 실책으로 3실점[79], 6이닝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80] 이어서 14일 롯데전에서는 6이닝 6안타 1사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고,[81] 후반기 개막전이었던 7월 29일 소프트뱅크전 선발로 나서센가 코다이와의 투수 대결[83]에서 승리하여 6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84]。 이후에는 금요일 로테이션을 돌았고, 8월 12일 라쿠텐전에서는 6회에 타구가 오른쪽 종아리에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속행했다. 7회에는 오른손 약지에 엄지손톱이 걸려 출혈이 있었고, 속행을 원했지만 교체되었지만,[85] 6⅔이닝 2안타 3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86]。 26일 오릭스전에서는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투수 대결[87]을 펼쳤고, 8이닝 117구 상황에서 자원하여 속행했다. 9이닝 144구 4안타 6사사구 10탈삼진 2실점으로 역투했고,[88] 연장 10회 초 팀이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힘든 등판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한 번 선발 등판을 건너뛰기 위해 다음날인 8월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89] 최단 10일 만의 복귀를 목표로 했지만,[90] 이후 편도선염으로 발열이 지속되어,[91] 실전 등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군에서의 조정 등판을 2경기 거친 후,[92][93] 9월 28일 CS 진출을 다투는 라쿠텐과의 직접 대결에서 1군 복귀[94]。 기시 다카유키와의 숨 막히는 투수전을 8이닝 4안타 4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95],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해에는 세 번의 이탈이 있었지만, 토요타 키요시 투수 코치는 "결과적으로 부상으로 늦어졌지만, 그동안 해야 할 일에 제대로 임해 주었습니다. 정말 '야구인'으로서 한 단계 올라선 느낌입니다."라고 말했고,[96] 쓰지 하쓰히코 감독도 "그런 (세 번의 이탈이 있었던) 중에서도 굉장히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97]라고 수뇌부로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정규 시즌에서는 9경기에 선발(5승 1패, 평균자책점 2.41[98])에 그쳤지만, 쓰지 감독은 CS 개최 1주일 전에 이마이의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 선발을 공언[99]。 같은 선발로 공언된 다카하시 코나리가 야나기타 유키의 3점 홈런을 포함 5실점으로 무너졌고,[100] 팀은 첫 경기를 내주어, 지면 탈락하는 상황이었지만,[101] 슬라이더를 공략당해,[102] 3회 말 야나기타의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허용[103], 4회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104] 오프 11월 23일에 열린 팬 감사 이벤트에서는, 작년 오프에 자율 훈련 동행을 요청한 이후 1년 동안 다양한 조언을 해 준 다케쿠마 쇼타[105]의 은퇴 스피치도 진행되었고, 꽃다발 증정 역할을 맡은 이마이는 눈물을 흘렸다.[106] 이날 귀가길에 다케쿠마가 사용하던 등번호 '''48'''로의 변경을 구단에 신청, 12월 1일 계약 갱신에서는 6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사인하는 동시에,[107] 등번호 변경도 발표[108]。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희망에 따라 큰 번호를 붙이는 이례적인 등번호 변경이었다.[109]
에는 라쿠텐과의 개막 2경기째 첫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110][111] 이어서 4월 13일 롯데전에서는 8회 1사까지 노히트 피칭을 이어갔고,[112] 2-0으로 맞이한 9회 초에도 속행했다. 1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후속 타자를 막아내[113], 9이닝 138구 2안타 5사사구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114]로 세 번째(2021년 9월 11일 이후) 완봉승을 거두었다.[115] 이후에는 등판 간격을 벌리기 위한 등록 말소가 한 번 있었지만[116],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지만, 5월 24일 롯데전에서 3피홈런을 포함 8실점을 기록하고, 2이닝 3분의 0에서 강판되었고,[117] 26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118] 한 달 이상 2군 조정을 계속했지만, 후에 본인은 "(2군 조정 중에) 크게 바꾼 것은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 온 것을, 더욱 완성도 높은 것으로 만드는 것만을 생각하며, 훈련이나 기술적인 연습을 하고 있다"라고 부상은 없었고, 올해 1월에 참가한 코노에 히사하루와의 합동 자율 훈련에서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119] 7월 4일 롯데전에서 1군 복귀하여[120], 8이닝 무실점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121], 이어서 12일 소프트뱅크전에서 7이닝 2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122]。 7월에는 4선발 모두 HQS를 기록하고, 3승 0패, 평균자책점 0.62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123], 만장일치로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124] 9월 2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2실점의 호투로 시즌 10승을 거두어, 개인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125] 이 해에는 규정 이닝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19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6번의 QS[126]와 안정적인 투구로 10승 5패, 평균자책점 2.30을 기록[127] 리그 최다 타이 '''61사구'''도 기록했다.[128] 시즌 종료 후에는 제2회 아시아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오프에 35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29]
에는 3년 연속으로 개막 투수를 맡고 있던 다카하시 코나리가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조정이 늦어지면서[130], 3월 16일 OB전 경기 후에 비디오 메시지로 이마이의 개막 투수가 공표되었다.[131] 본인에게는 스프링 캠프 중에 통보되었고[132], 마쓰이 가즈오 감독은 "올해는 이마이밖에 없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캠프에 갔습니다"라고 코멘트했다. 만약 다카하시가 컨디션이 좋더라도 "이마이로 가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라쿠텐과의 개막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어, 7이닝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133] 개막부터 7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6번의 HQS[134], 강판 후 구원진이 동점을 허용하는 경기가 있었지만[135][136], 3승 0패, 평균자책점 1.47을 기록했지만[137], 5월 21일 롯데전에서는 첫 이닝 투구 연습 시 오른손 약지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그 영향으로 공이 미끄러져, 첫 이닝에 5실점[138], 5이닝 5실점으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다. 26일에 마쓰이 감독의 휴양이 발표될 정도로, 팀은 심각한 빈타로 침체되어 있었고,[139], 이마이도 그 후 8선발에서 득점 지원이 있었던 경기는 3경기[140][141][142]。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승수를 늘리지 못했고, 6월 4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완투승 직전에 교체를 지시받았고, 이후 동점으로 따라잡혔지만, 맞은 아브레우가 벤치로 돌아갈 때 바로 달려갔다.[143] 또한,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1-2로 9회말 2사 2루에서 1루 땅볼로 아웃되어, 헤드 슬라이딩을 하고 엎드려 있던 겐다 소스케에게 다가가 겐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리는 등[144], 팀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으로 정신적으로도 팀의 기둥으로 성장했고, 감독 추천으로 3년 만에 두 번째로 올스타에 선출[145]。 올스타전 2차전 8회 말부터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2실점을 기록했지만 경기를 마무리[146], 마지막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을 때, 올스타에 선출되지 못한 동료 얀의 퍼포먼스 '라 센텐시아 99''를 선보였다.[148] 올스타전 전 7월 21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149] 8월 1일 라쿠텐전(올스타전으로부터 7일 간격)에서 후반기 첫 선발[150]。 17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5승을 거둔[151] 이후 6연승을 기록했고[152], 10월 1일 니혼햄전에서는 시즌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153] 이 해에는 개인 3년 만에 규정 이닝에 도달했고,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0승 8패, 평균자책점 2.34[154], 리그 최다 '''187탈삼진'''을 기록했고 '''70사구'''도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155] 개인 첫 타이틀인 최다 탈삼진을 획득 세이부 투수가 최다 탈삼진을 획득한 것은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 19년 만이었다[157]。 오프 11월 23일에 열린 팬 감사 이벤트에서 니시구치 후미야 신임 감독으로부터 "개막 투수는 이마이로 갑니다", "추계 캠프에 갔을 때부터 내년 개막은 이마이라고 정했기 때문에, 일찍 알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다음 해 개막 투수로 지명받았다는 사실이 공표되었다[158]。 12월 4일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1억 엔 증액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으로 사인했다[159]。
3. 1. 1. 2017년 - 2019년
,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1월 말에 도코로자와 시내에서 흡연했다는 정보가 외부로부터 구단에 전달되어 2월 6일에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으며, 5월까지 유니폼 착용 금지 및 대외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32][33] 5월 1일자로 미성년자 흡연에 따른 처분이 해제되었고,[34] 6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프로 첫 등판 첫 선발을 하여 6이닝 1실점의 호투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35] 데뷔전에서 선발 승리를 거둔 것은 구단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였다.[36] 이어서 23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4이닝 4실점으로 프로 첫 패전을 기록했지만, 5회 강우 콜드로 인해 프로 첫 완투가 기록되었다.[37] 그 후에도 1군에서 선발 등판을 거듭했지만, 7월 10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38] 같은 달 21일 재등록[39] 이후에도 두 번의 등록 말소를 경험하면서도,[40][41] 홈구장 헹가래가 걸린 9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는 등 시즌 종료까지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42] CS 파이널 스테이지 4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5회 도중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43] 이 해에는 1군에서 15경기(14선발)에 등판하여 5승 5패,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했다. 오프에 5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1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4]에는 처음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고,[45] 5월 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는 레이와 시대의 완봉승 1호였다.[46] 이 해에는 발열로 선발을 회피한 경기[47]와 허리 통증으로 등록 말소된 시기가 있었고,[48] 규정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3연전 첫 경기를 맡는 등 수뇌부의 기대도 커서 23경기(22선발)에 등판하여 7승 9패, 평균자책점 4.32의 성적을 남겼다.[49] CS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3회 도중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50] 오프에 17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35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51]
3. 1. 2. 2020년 - 2022년
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120경기 체제의 단축 시즌과 개막 연기가 있었다. 이 해에는 다르빗슈 유를 흉내낸 새로운 투구폼에 도전했고,[52] 개막 전 교류전 등에서는 호투했지만,[53] 개막 후 6선발에서 2승을 거두었지만 평균자책점 6.25로 불안정한 투구가 이어지면서, 중간 계투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구원 투수로서도 투구 내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8월 2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우타자를 상대로 3개의 사구를 기록[54], 다음날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5] 10월에 선발 투수로 재등록되었지만[56], 결과를 내지 못하고 19경기(11선발)에 등판하여 3승 4패, 평균자책점 6.13의 성적에 그쳤다. 오프에는 지인의 SNS를 통해 다르빗슈와 연락하여 투구폼에 대해 상담했다.[57] 계약 갱신에서는 7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28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58]에는 3년 연속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고,[59] 사사구의 많음을 역이용하여 상대 타자에게 좁은 범위를 공략하도록 하고, 교류전 전 시점에서는 6.05의 사사구율을 기록했음에도 피안타율 0.194, 평균자책점 2.62로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보였다.[60] 교류전, 그리고 리그전 재개 후에도 평균자책점 2점대를 유지했으며,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첫 출전[61]。 1차전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62] 후반기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63] 9월 11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는 7회 도중까지 노히트 피칭을 하였고, 142개의 공을 던져 9이닝 3안타 무실점, 개인 최다인 13개의 탈삼진으로 개인 첫 두 자릿수 탈삼진, 2019년 5월 5일 이후 두 번째 완봉승을 기록했다.[64] 이후에는 완투승을 기록하는 등 컨디션을 회복했고,[65], 이 해에는 연간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양 리그 최다인 '''99개의 사구'''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규정 이닝에 도달했다.[66]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67][68] 강판 후 승리 투수 자격이 사라지는[69][70] 등 타선이나 구원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기가 많았고,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승 8패로 승수를 늘리지 못했지만, 3완투(리그 공동 2위[71]), 평균자책점 3.30(팀 1위[72])으로 확실한 성장을 보인 한 해가 되었다. 오프에 23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51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3]
에도 개막 로테이션 진입이 내정되어 있었지만, 오른쪽 내전근 통증으로 오픈전 최종 등판을 회피[74]。 개막에는 맞추지 못하고 4월 8일 2군 경기에서 실전 복귀를 했지만,[75] 이어서 19일 2군 경기에서 왼쪽 발목을 삐어 다시 장기 이탈했다.[76] 이탈 기간 동안 상반신 훈련을 중심으로 체중을 5kg 늘렸고,[77] 6월 24일 2군 경기에서 실전 재복귀[78]。 7월 7일 오릭스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어 5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6회 말 아군의 실책으로 3실점[79], 6이닝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80] 이어서 14일 롯데전에서는 6이닝 6안타 1사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고,[81] 후반기 개막전이었던 7월 29일 소프트뱅크전 선발로 나서센가 코다이와의 투수 대결[83]에서 승리하여 6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84]。 이후에는 금요일 로테이션을 돌았고, 8월 12일 라쿠텐전에서는 6회에 타구가 오른쪽 종아리에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속행했다. 7회에는 오른손 약지에 엄지손톱이 걸려 출혈이 있었고, 속행을 원했지만 교체되었지만,[85] 6⅔이닝 2안타 3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86]。 26일 오릭스전에서는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투수 대결[87]을 펼쳤고, 8이닝 117구 상황에서 자원하여 속행했다. 9이닝 144구 4안타 6사사구 10탈삼진 2실점으로 역투했고,[88] 연장 10회 초 팀이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힘든 등판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한 번 선발 등판을 건너뛰기 위해 다음날인 8월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89] 최단 10일 만의 복귀를 목표로 했지만,[90] 이후 편도선염으로 발열이 지속되어,[91] 실전 등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2군에서의 조정 등판을 2경기 거친 후,[92][93] 9월 28일 CS 진출을 다투는 라쿠텐과의 직접 대결에서 1군 복귀[94]。 기시 다카유키와의 숨 막히는 투수전을 8이닝 4안타 4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95],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해에는 세 번의 이탈이 있었지만, 토요타 키요시 투수 코치는 "결과적으로 부상으로 늦어졌지만, 그동안 해야 할 일에 제대로 임해 주었습니다. 정말 '야구인'으로서 한 단계 올라선 느낌입니다."라고 말했고,[96] 쓰지 하쓰히코 감독도 "그런 (세 번의 이탈이 있었던) 중에서도 굉장히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97]라고 수뇌부로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정규 시즌에서는 9경기에 선발(5승 1패, 평균자책점 2.41[98])에 그쳤지만, 쓰지 감독은 CS 개최 1주일 전에 이마이의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 선발을 공언[99]。 같은 선발로 공언된 다카하시 코나리가 야나기타 유키의 3점 홈런을 포함 5실점으로 무너졌고,[100] 팀은 첫 경기를 내주어, 지면 탈락하는 상황이었지만,[101] 슬라이더를 공략당해,[102] 3회 말 야나기타의 2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허용[103], 4회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104] 오프 11월 23일에 열린 팬 감사 이벤트에서는, 작년 오프에 자율 훈련 동행을 요청한 이후 1년 동안 다양한 조언을 해 준 다케쿠마 쇼타[105]의 은퇴 스피치도 진행되었고, 꽃다발 증정 역할을 맡은 이마이는 눈물을 흘렸다.[106] 이날 귀가길에 다케쿠마가 사용하던 등번호 '''48'''로의 변경을 구단에 신청, 12월 1일 계약 갱신에서는 600만 엔 감액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사인하는 동시에,[107] 등번호 변경도 발표[108]。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희망에 따라 큰 번호를 붙이는 이례적인 등번호 변경이었다.[109]
3. 1. 3. 2023년 - 현재
에는 라쿠텐과의 개막 2경기째 첫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110][111] 이어서 4월 13일 롯데전에서는 8회 1사까지 노히트 피칭을 이어갔고[112], 2-0으로 맞이한 9회 초에도 속행했다. 1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후속 타자를 막아내[113], 9이닝 138구 2안타 5사사구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114]로 세 번째(2021년 9월 11일 이후) 완봉승을 거두었다.[115] 이후에는 등판 간격을 벌리기 위한 등록 말소가 한 번 있었지만[116],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지만, 5월 24일 롯데전에서 3피홈런을 포함 8실점을 기록하고, 2이닝 3분의 0에서 강판되었고[117], 26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118] 한 달 이상 2군 조정을 계속했지만, 후에 본인은 "(2군 조정 중에) 크게 바꾼 것은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 온 것을, 더욱 완성도 높은 것으로 만드는 것만을 생각하며, 훈련이나 기술적인 연습을 하고 있다"라고 부상은 없었고, 올해 1월에 참가한 코노에 히사하루와의 합동 자율 훈련에서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119] 7월 4일 롯데전에서 1군 복귀하여[120], 8이닝 무실점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121], 이어서 12일 소프트뱅크전에서 7이닝 2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122]。 7월에는 4선발 모두 HQS를 기록하고, 3승 0패, 평균자책점 0.62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123], 만장일치로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124] 9월 21일 라쿠텐전에서 8이닝 2실점의 호투로 시즌 10승을 거두어, 개인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125] 이 해에는 규정 이닝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19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6번의 QS[126]와 안정적인 투구로 10승 5패, 평균자책점 2.30을 기록[127] 리그 최다 타이 '''61사구'''도 기록했다.[128] 시즌 종료 후에는 제2회 아시아 챔피언십에 출전했고, 오프에 35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800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129]에는 3년 연속으로 개막 투수를 맡고 있던 다카하시 코나리가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조정이 늦어지면서[130], 3월 16일 OB전 경기 후에 비디오 메시지로 이마이의 개막 투수가 공표되었다.[131] 본인에게는 스프링 캠프 중에 통보되었고[132], 마쓰이 가즈오 감독은 "올해는 이마이밖에 없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캠프에 갔습니다"라고 코멘트했다. 만약 다카하시가 컨디션이 좋더라도 "이마이로 가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라쿠텐과의 개막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어, 7이닝 11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133] 개막부터 7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6번의 HQS[134], 강판 후 구원진이 동점을 허용하는 경기가 있었지만[135][136], 3승 0패, 평균자책점 1.47을 기록했지만[137], 5월 21일 롯데전에서는 첫 이닝 투구 연습 시 오른손 약지에서 출혈이 발생했다. 그 영향으로 공이 미끄러져, 첫 이닝에 5실점[138], 5이닝 5실점으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다. 26일에 마쓰이 감독의 휴양이 발표될 정도로, 팀은 심각한 빈타로 침체되어 있었고[139], 이마이도 그 후 8선발에서 득점 지원이 있었던 경기는 3경기[140][141][142]。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여 승수를 늘리지 못했고, 6월 4일 야쿠르트전에서는 완투승 직전에 교체를 지시받았고, 이후 동점으로 따라잡혔지만, 맞은 아브레우가 벤치로 돌아갈 때 바로 달려갔다.[143] 또한, 1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1-2로 9회말 2사 2루에서 1루 땅볼로 아웃되어, 헤드 슬라이딩을 하고 엎드려 있던 겐다 소스케에게 다가가 겐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눈물을 흘리는 등[144], 팀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으로 정신적으로도 팀의 기둥으로 성장했고, 감독 추천으로 3년 만에 두 번째로 올스타에 선출[145]。 올스타전 2차전 8회 말부터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2실점을 기록했지만 경기를 마무리[146], 마지막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을 때, 올스타에 선출되지 못한 동료 얀의 퍼포먼스 '라 센텐시아 99''를 선보였다.[148] 올스타전 전 7월 21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149], 8월 1일 라쿠텐전(올스타전으로부터 7일 간격)에서 후반기 첫 선발[150]。 17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5승을 거둔[151] 이후 6연승을 기록했고[152], 10월 1일 니혼햄전에서는 시즌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153] 이 해에는 개인 3년 만에 규정 이닝에 도달했고, 25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0승 8패, 평균자책점 2.34[154], 리그 최다 '''187탈삼진'''을 기록했고 '''70사구'''도 리그 최다를 기록했다[155] 개인 첫 타이틀인 최다 탈삼진을 획득 세이부 투수가 최다 탈삼진을 획득한 것은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 19년 만이었다[157]。 오프 11월 23일에 열린 팬 감사 이벤트에서 니시구치 후미야 신임 감독으로부터 "개막 투수는 이마이로 갑니다", "추계 캠프에 갔을 때부터 내년 개막은 이마이라고 정했기 때문에, 일찍 알리게 되었습니다"라고 다음 해 개막 투수로 지명받았다는 사실이 공표되었다[158]。 12월 4일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1억 엔 증액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으로 사인했다[159]。
4. 국가대표 경력
2023년 10월 24일, 제2회 아시아 챔피언십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161] 이 대회는 '24세 이하 또는 입단 3년차 이내'의 선수들이 참가 자격이 주어지지만, 이마이 다쓰야는 '29세 이하로 각 팀 3명까지' 가능한 오버 에이지枠으로 선발되었다.[161] 대한민국과의 결승전에 선발 등판했지만,[162] 아군의 실책이 겹치면서[163] 4이닝 2실점(자책점 1)으로 강판되었다.[164]
5. 투구 스타일
이마이 다쓰야는 쓰리쿼터보다 낮은 릴리스 포인트에서[165][166] 불필요한 힘을 최대한 들이지 않는 독특한 폼에서 던지는 직구와 슬라이더의 조합을 주무기로 한다.[167] 그 외에도 체인지업[168], 포크[169], 커브[170], 컷볼[171] 등의 구종을 구사한다.
직구는 슈트성 회전을 하면서 우타자 몸쪽으로 뻗어 들어가는 궤도를 그리며[172], 최고 159km/h를 기록한다[173]. 일본에서는 "슈트성 회전을 한다"며 비판받는 경우도 있지만[174], 이마이는 "릴리스가 원래 그렇게 높은 투수가 아니"고 "직구는 위에서 각도를 만드는 볼이 아니라, 아래에서 떠오르는 볼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며 "슈트성 회전하는 볼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슬라이더는 중간까지 직구와 똑같은 궤도로 날아가다 반대 방향으로 꺾이는 구종이다. 일반적인 종회전이나 횡회전이 아닌 "나선형" 자이로 회전이기 때문에 타자가 구별하기 어려우며, 손 앞에서 약간 불규칙하게 떨어진다.[175] 2023년 시즌에는 300구 이상 슬라이더를 던진 투수 중에서 12개 구단 최고인 19.5%의 헛스윙률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우투수의 슬라이더는 좌타자에게서 헛스윙을 빼앗기 어렵다고 여겨지지만, 이마이의 슬라이더는 좌타자에게서도 헛스윙을 빼앗을 수 있다. 2024년 시즌에는 타네이치 아쓰키(롯데[176])나 이시카와 슈타(소프트뱅크[177]) 등 다른 구단의 투수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고교 시절에는 제구력 난조로 고생했으며, 2학년 여름의 고시엔에서 벤치 멤버로 밀려난 이후에는 런닝, 코어 운동, 웨이트 트레이닝을 스스로 계획하며 훈련했다.[178] 연습 경기에서는 감독으로부터 '140km/h 초과 금지', '8할의 힘으로 던질 것'이라는 두 가지 제약을 받았다.[179] 3학년 봄 이후에는 매일 불펜에서 폼을 다듬는 데 착수했고, 이것들이 마지막 여름에 구속과 제구력 향상으로 직결되었다. 그러나 고시엔 후반부터는 피로로 인해 퍼포먼스가 저하되었고, U-18 대표팀에서도 직구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었다.[181]
프로 입단 후에는 제구력 난조를 극복하기 위해 기시 다카유키나 다르빗슈 유의 투구 폼을 참고하거나[182][183], 힘을 빼는 등[184]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투구 폼을 확립하지 못했다.[185] 하지만, 2022년 시즌 종료 후 오프 시즌에 코노에 히사하루와 합동 훈련을 하면서 자신의 감각에 맞는 투구 폼을 찾아냈다. 2024년 시즌에는 폼의 재현성이 높아지고, 직구와 슬라이더가 투구의 9할 가까이를 차지하는 배구적인 변화도 있어[187], 시즌 사구율 3점대를 처음으로 기록했다.[188]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 월간 MVP : 1회(2023년 7월) ※투수 부문
- 최다 탈삼진: 1회 (2024년)
월간 MVP를 1회(2023년 7월) 수상했다.[195] ※투수 부문
6. 1. 타이틀
- 월간 MVP : 1회(2023년 7월) ※투수 부문
- 최다 탈삼진: 1회 (2024년)
6. 2. 수상
wikitext월간 MVP를 1회(2023년 7월) 수상했다.[195] ※투수 부문
7. 개인 기록
도
단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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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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