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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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백유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이다. 대제학 이문정의 손자이며, 이몽의 아들로,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371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감찰사 규정 등을 역임했고, 이성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고려가 쇠퇴하자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했으며, 조선 건국 후 좌명공신 3등에 녹훈되고 완산군에 봉해졌다. 성균관 대사성, 병조판서를 거쳐 전라도 관찰사, 판한성부사, 예조판서를 지냈으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의 당여로 몰려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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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백유는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때 그의 스승 이색이 지공거(知貢擧)로 있었다. 청주사록(淸州司錄)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1374년(공민왕 23) 예문관검열, 수찬, 공봉(供奉),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 등을 역임했다. 1378년(우왕 4) 감찰사규정(監察司 糾正)에 제수되었다가 아버지가 연로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있었다. 1381년(우왕 7) 낭중(郎中)에 제수되었고, 전교서부령(典校署副令)을 지냈다. 1388년(우왕 14) 전법총랑(典法摠郞)이 되고 좌상시 지제교(左常侍 知製敎)가 되었다. 그는 일찍부터 이성계를 만나 교류하였다.

1388년(우왕 14) 현량(賢良)을 천거할 때 형부(刑部)에 발탁되었다. 이후 대제학을 지냈고, 1390년(공양왕 1) 판광주목사로 부임했다가 우산기대부(右散騎大夫) 지제교로 돌아온 뒤, 2개월 후 예조판서가 되었다. 1392년(공양왕 4) 고려가 쇠하여 나라가 어지럽게 되자 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392년 추충익대개국좌명공신(推忠翊戴開國佐明功臣) 3등에 녹훈되고, 완산군에 봉해졌다. 1394년(태조 3)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고 1395년(태조 4) 병조판서를 거쳐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9월에 판한성부사가 되고 1396년(태조 5) 자헌대부 예조판서가 되고 그해 부원군으로 진봉되면서 완성부원군이 되었다.

1398년(태조 7) 8월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정도전의 당여(黨與)로 몰려 투옥됐다가 외방에 부처되었다. 얼마 뒤 석방되었다.

묘소는 전주부 근처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는 불확실하다. 불천지위에 제수되었다. 부인 파평 윤씨의 묘는 광주군 돌마면 녹수동(鹿水洞) 흑암산(黑岩山) 신좌에 있다.

2.1. 고려시대 활동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때는 그의 스승 이색이 지공거(知貢擧)로 있었다 한다. 청주사록(淸州司錄)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1374년(공민왕 23) 예문관검열, 수찬, 공봉(供奉),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 등을 역임했다. 1378년(우왕 4) 감찰사규정(監察司 糾正)에 제수되었다가 아버지가 연로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있었다. 1381년(우왕 7) 낭중(郎中)에 제수되었고, 전교서부령(典校署副令)을 지냈다. 1388년(우왕 14) 전법총랑(典法摠郞)이 되고 좌상시 지제교(左常侍 知製敎)가 되었다. 이성계를 만나게 된 그는 일찍부터 이성계의 지우(知遇)의 대접을 받았다.

1388년(우왕 14) 현량(賢良)을 천거할 때 형부(刑部)에 발탁되었다. 이후 대제학을 지냈고, 1390년(공양왕 1) 판광주목사로 부임했다가 우산기대부(右散騎大夫) 지제교로 돌아온 뒤, 2개월 후 예조판서가 되었다. 1392년(공양왕 4) 고려가 쇠하여 나라가 어지럽게 되자 역성혁명을 인심과 천심이라 보고 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2.2. 조선 건국 이후

1392년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추충익대개국좌명공신(推忠翊戴開國佐明功臣) 3등에 녹훈되고, 완산군에 봉해졌다. 1394년(태조 3)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고 1395년(태조 4) 병조판서를 거쳐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9월에 판한성부사가 되고 1396년(태조 5) 자헌대부 예조판서가 되고 그해 부원군으로 진봉되면서 완성부원군이 되었다.

1398년(태조 7) 8월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그는 정도전의 당여(黨與)로 몰려, 정도전, 남은 등이 살해된 뒤 체포되어 순군옥(巡軍獄)에 투옥됐다가, 외방에 부처되었다. 얼마 뒤 석방되어 되돌아왔다.

2.3. 사후

묘소는 선영 아래라고 되어 있는데, 전주부 이남면 이성동 갑좌 근처 임좌인지 아니면 아버지 이몽의 묘소가 있는 전주부 이동면 마전리 자좌 근처 임좌인지는 불확실하다. 불천지위에 제수되었다.

부인 파평 윤씨의 묘는 광주군 돌마면 녹수동(鹿水洞) 흑암산(黑岩山) 신좌에 있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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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비고
아버지이몽(李蒙)
어머니전주 최씨최용갑(崔龍甲)의 딸
동생이중유(李仲由)
동생이계유(李季由)
부인파평 윤씨윤승렬(尹承烈)의 딸, 기일은 10월 20일
아들이속(李粟)
아들이자(李粢)
아들이균(李稛)
사위박서(朴曙)밀양인, 현감, 아버지: 윤림(允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