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화가)
1. 개요
이상범은 일제강점기 및 광복 이후 활동한 한국의 동양화가이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서화미술회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안중식, 조석진에게 사사받았다. 1925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931년 창덕궁상을 수상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청전화숙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1936년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이후 친일 행적을 보이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내며 동양화단에 기여했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예술원상, 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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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
천경자
천경자는 전라남도 고흥 출신의 대한민국 화가이자 수필가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여 '길례언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등 다수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미인도' 위작 사건 이후 절필 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다. -
한국화가 -
고희동
고희동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서양화와 동양화, 독립운동, 교육, 정치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정자관을 쓴 자화상〉 등이 있고 종로구 원서동에 고희동 가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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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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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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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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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이상범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안중식, 조석진에게 미술을 배우고 1918년 졸업 후 동양화가로 활동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서화협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1925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창덕궁상을 수상했고, 1935년에는 추천작가가 되었다. 1927년부터 1937년까지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활동했으며,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청전화숙(靑田畵塾)’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광복 후에는 조선미술협회에 참여해 우익 미술인으로 활동했으며, 1949년부터 1961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49년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고, 1953년부터 1960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7년 예술원상(예술 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대통령상), 1963년 3·1문화상을 수상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에 가담하고, 반도총후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국방헌금을 모금하기 위한 국책 기획전에 참가하여 친일 행위를 했다. 《매일신보》에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며 기고한 삽화 〈나팔수〉 등 친일 작품도 남아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장남 이건영과 함께 선정되었다.
2.1. 유년 시절과 초기 활동
이상범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동양화가로 활동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서화협회 회원이었다. 1925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2.1.1. 조선서화미술회 수학
이상범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옛 조선 왕가에 부설된 미술 교육 기관인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그림을 배웠고, 1918년 서화미술회를 졸업했다.
2.2. 동아일보 기자 시절
1927년부터 1937년까지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활동했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는데, 이길용의 제안에 동조하여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처음 삭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2.1. 일장기 말소 사건
동아일보 미술 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길용의 일장기 말소 제안에 동조하여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처음 삭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3. 중년 및 화가로서의 전성기
1919년부터 1945년까지 서화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광복 후 조선미술협회에 참여하여 우익 미술인으로 활동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동양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49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고, 1953년부터 1960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7년 예술원상(예술 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대통령상), 1963년 3·1문화상을 수상했다.
2.3.1. 조선미술전람회 활동
1925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으며, 1935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었다.
2.4. 광복 이후 활동과 말년
광복 후 이상범은 조선미술협회에 참여해 우익 미술인으로 활동했으며, 1949년부터 1961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49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고, 1953년부터 1960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2.4.1. 대한민국 예술원 활동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7년 예술원상(예술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에는 문화훈장(대통령상)을, 1963년에는 3·1문화상을 수상했다.
3. 화풍
이상범은 한국의 새로운 남종화의 방향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안중식의 화풍을 따르면서도 점차 독특한 구도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다. 그의 작품은 고요한 향토색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변관식과 함께 한국적인 산수화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황량한 분위기나 짧은 붓질이 일본의 남화풍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3.1. 초기 화풍
이상범은 초기에는 스승인 안중식의 남북종을 절충한 산수화 형식과 유사한 화풍을 보였다. 그러나 점차 독특한 구도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의 작품은 고요한 향토색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변관식과 함께 한국적인 산수화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작품이 황량한 분위기와 짧은 붓질 등에서 일본 남화풍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3.2. 독자적 화풍의 확립
안중식의 산수화 중 남북종을 절충한 형태와 유사했던 초기 화풍에서 벗어나, 이상범은 차츰 독특한 구도를 선보이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다. 그의 작품은 고요한 향토색을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변관식과 함께 한국적인 산수화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황량한 분위기나 짧은 붓질이 일본의 남화풍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한국의 새로운 남종화의 방향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3.3. 한국적 산수화의 개척
이상범은 변관식과 함께 한국적인 산수화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안중식의 산수화풍을 따르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으며, 한국의 향토적인 정서를 잘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3.3.1. 비판적 시각
그의 화풍은 황량한 분위기나 짧은 붓질 면에서 일본의 남화풍과 유사하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4. 항일과 친일 논란
이상범은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친일 행위를 한 바 있다. 동아일보 미술 기자 시절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를 삭제한 것은 항일 행적이지만,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에 가담하고 국책 기획전에 참가한 것은 친일 행적으로 평가된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이상범과 그의 장남 이건영을 함께 선정하였다.
4.1. 항일 행적
동아일보 미술 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길용의 일장기 말소 제안에 동조하여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처음 삭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4.2. 친일 행적
이상범은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에 가담하고, 반도총후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국방헌금을 모금하기 위한 국책 기획전에 참가하여 친일 행위를 했다. 《매일신보》에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며 기고한 삽화 〈나팔수〉 등 친일 작품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