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보
1. 개요
이세보는 조선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8대손으로, 철종 시대에 왕족으로서 경평군, 경평도정 등의 작위를 받았다.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비판하다 유배되었으나, 고종 즉위 후 석방되어 관직에 복귀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며 경복궁 중건에 기여했다. 말년에는 숭록대부에 이르렀으며, 64세에 사망했다. 그는 또한 458수의 시조를 남긴 시조 시인으로도 평가받는다.
| 이름 | 이인응 |
|---|---|
| 관직 | 알 수 없음 |
| 사진 | 알 수 없음 |
| 사진 설명 | 알 수 없음 |
| 본관 | 전주 이씨 |
| 씨족 | 전주 이씨 능원대군파 |
| 아버지 | 이단화 |
| 어머니 | 해평 윤씨 |
| 첫째 아들 | 이세보 |
| 성 | 이 (李) |
|---|---|
| 휘 | 인응 (寅應) |
| 자 | 좌보 (左輔) |
| 초휘 | 세보 (世輔) |
| 생몰년 | 알 수 없음 |
| 묘소 | 알 수 없음 |
| 기타 정보 | 알 수 없음 |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한국 사람에 관한 -
한덕수
-
한국 사람에 관한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1832년 출생 -
허드슨 테일러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내륙 선교회를 설립하고 중국 문화 존중과 믿음 선교 원칙을 통해 51년간 중국 선교에 헌신한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이다. -
1832년 출생 -
귀스타브 에펠
프랑스의 토목기사이자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은 철골 구조 건축의 선구자로서 에펠탑 건설과 자유의 여신상 내부 구조 설계에 참여했으며, 후기에는 항공학 발전에도 기여했지만 파나마 운하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2. 생애
이세보는 1851년(철종 2) 사도세자의 3남 은전군의 양자인 풍계군 이당의 사후 양자가 되면서 왕족의 신분을 얻었다. 이름을 '호(晧)'로 바꾸고 경평도정(慶平都正)에 봉해졌으며, 철종의 종제(從弟)가 되었다. 이후 경평군(慶平君)으로 진봉되고,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52년(철종 3) 의덕대부(宜德大夫)로 가자되고, 1853년(철종 4) 정1품 현록대부(顯祿大夫)가 되어 철종의 수라상을 감선하는 직책을 맡았다. 1857년(철종 8)에는 청나라에 동지사은정사(冬至謝恩正使)로 파견되어 북경에 다녀왔다.
1860년(철종 11), 안동 김씨 세력을 비판하다 서대순의 상소를 받고 성 밖으로 축출되었다. 이후 강진 신지도(薪智島)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863년(고종 즉위년) 조대비(趙大妃)와 흥선대원군의 배려로 석방되었다.
1865년(고종 2) 부총관으로 복직하여 한성부우윤·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였고, 1866년(고종 3) 병조참판·동지돈녕부사·형조참판·공조참판을 지냈으며, 1868년(고종 5) 이름을 인응(寅應)으로 개명하였다.
1869년(고종 6) 호조참판, 부총관을 거쳐 여주목사, 오위도총부,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1894년(고종 31)까지 고관대작으로서 다섯 차례의 공조판서, 여섯 차례의 판의금부사, 두 차례의 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특히 경복궁 중건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기, 종친으로서 경원군 이하전, 이하응과 함께 뚜렷한 인물이었다. 여주목사와 개성유수 재직 시에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목민관이었다. 최종 관직은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1895년(고종 32) 64세로 별세하였으며, 묘소는 충청남도 천안 거재마을(巨宰洞)에 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조선 선조의 다섯째 서자 정원군의 2남 능원대군의 8대손이며, 안풍군 이영의 4대손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단화이며, 어머니는 해평 윤씨로 윤응선의 딸이다.
1851년(철종 2) 7월 14일 사도장헌세자의 3남 은전군의 양자 풍계군 이당의 사후 양자가 되어 이름을 호(晧)로 개명하고, 명선대부(정3품) 경평도정의 작호를 받았다. 그리하여 철종의 종제가 되었다. 8월 6일 소의대부(종2품) 경평군으로 진봉되고, 중의대부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승헌대부·숭헌대부가 되었다.
1852년(철종 3) 의덕대부로 가자되고, 1853년(철종 4) 정1품인 현록대부가 되어 철종의 수라상을 감선하는 직책을 맡았다.
1857년(철종 8) 청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은정사가 되어 부사인 호조참판 임백수와 서장관인 시복정 김창수를 대동하고 북경에 다녀왔다.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로 혼미했던 철종 시대에 종친으로서 경원군 이하전, 이하응과 함께 가장 뚜렷한 인물이었다. 여주목사와 개성유수로 재직할 때에는 언제나 백성 편에 서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주려고 애쓴 목민관이었다.
2.2. 왕족으로서의 삶과 관직 생활
1851년(철종 2) 7월 14일 사도장헌세자의 3남 은전군의 양자 풍계군 이당의 사후양자가 되어 이름을 호(晧)로 개명하고, 명선대부(明善大夫, 정3품) 경평도정(慶平都正)의 작호를 받았다. 그래서 철종의 종제(從弟)가 되었다. 이어 8월 6일 소의대부(昭義大夫, 종2품) 경평군(慶平君)으로 진봉되고, 중의대부 겸 오위도총부(中義大夫兼五衛都摠府)부총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승헌대부(承憲大夫)·숭헌대부(崇憲大夫)가 되었다.
1852년(철종 3)에 의덕대부(宜德大夫)로 가자되고, 1853년(철종 4)에 정1품인 현록대부(顯祿大夫)가 되어 철종의 수라상을 감선(監膳)하는 직책을 맡았다.
1857년(철종 8)에 청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은정사(冬至謝恩正使)가 되어 부사인 호조참판 임백수(任百秀)와 서장관인 시복정 김창수(金昌秀)를 대동하고 북경에 다녀왔다.
1860년(철종 11)에 판중추부사 김좌근(金左根),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 등 안동김씨의 세도를 비난하다가 대사헌 서대순(徐戴淳)의 상소에 의하여 성밖으로 축출되었고, 다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속적(屬籍)을 끊기고, 이해 11월 4일 경평군(慶平君) 이호(李晧)를 본가로 돌려보내고, 경평군(慶平君)의 작호는 즉시 환수(還收)하라고 명하여 작호를 빼앗긴 다음, 강진 신지도(薪智島)에 위리안치되었다.
1863년(고종 즉위년)에 유배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조대비(趙大妃)와 흥선대원군의 배려로 석방되었다.
1865년(고종 2)에 부총관으로 벼슬을 다시 시작하여 한성부우윤·한성부좌윤이 되었고, 1866년(고종 3)에 병조참판·동지돈녕부사·형조참판·공조참판을 지냈고, 1868년(고종 5)에 이름을 인응(寅應)으로 개명하였다.
1869년(고종 6)에는 호조참판, 이어 다시 부총관이 되었다. 그 뒤 여주목사·오위도총부·한성부판윤·공조판서·형조판서·판의금부사가 되어 1894년(고종 31)까지 고관대작으로서 다섯 차례의 공조판서, 여섯 차례의 판의금부사, 두 차례의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특히 경복궁 중건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로 혼미했던 철종 시대에 종친으로서 경원군 이하전(李夏銓), 이하응(李昰應)과 함께 가장 뚜렷한 인물이었다. 여주목사와 개성유수로 재직할 때에는 언제나 백성편에 서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주려고 애쓴 목민관이었다. 최종 관직은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 연호 | 서력 기원 | 월일 | 내용 |
|---|---|---|---|
| 함풍 원년 | 1851년 | 8월 9일 | 경평군(慶平君)에 봉해짐. 소의대부(昭義大夫, 종2품 하계)의 관위를 받음. |
| 9월 16일 | 중의대부(中義大夫, 종2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10월 2일 |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임명. | ||
| 10월 24일 | 승헌대부(承憲大夫, 정2품 하계)의 관위로 승격. | ||
| 함풍 2년 | 1852년 | 1월 10일 | 종부시 찬수 감인 교정관을 겸임. |
| 1월 18일 | 숭헌대부(崇憲大夫, 정2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2월 2일 | 가덕대부(嘉徳大夫, 종1품 하계)의 관위로 승격. | ||
| 3월 10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이동. | ||
| 6월 4일 | 의덕대부(宜徳大夫, 종1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6월 21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 함풍 3년 | 1853년 | 4월 7일 | 흥록대부(興禄大夫, 정1품 하계)의 관위로 승격. |
| 12월 22일 | 현록대부(顕禄大夫, 정1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함풍 4년 | 1854년 | 1월 16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3월 4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 3월 28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 함풍 5년 | 1855년 | 8월 27일 | 종척집사를 겸임. |
| 함풍 6년 | 1856년 | 6월 11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함풍 7년 | 1857년 | 1월 8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1월 19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사임. | ||
| 8월 15일 | 동지사 겸 사은사 정사로 임명. | ||
| 함풍 9년 | 1859년 | 4월 25일 | 사옹원 제조를 겸임. |
| 8월 28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 11월 14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 함풍 10년 | 1860년 | 12월 13일 | 작호를 박탈. 모든 관직에서 면직. |
2.3. 안동 김씨 세도 비판과 유배
1860년(철종 11년) 안동 김씨 세력의 김좌근(金左根), 김문근(金汶根) 등이 세도를 부리는 것을 비판하다가, 대사헌 서대순(徐戴淳)의 상소를 받았다. 그 결과 성 밖으로 축출되었고, 대간의 탄핵을 받아 속적(屬籍)이 끊겼다. 같은 해 11월 4일 경평군(慶平君) 이호(李晧)는 본가로 돌려보내고, 경평군의 작호는 즉시 환수하라는 명이 내려져 작호를 빼앗겼다. 그 후 강진 신지도(薪智島)에 위리안치되었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안동 김씨의 미움을 사 유배 당시 빈사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1863년(고종 즉위년) 유배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조대비(趙大妃)와 흥선대원군의 배려로 석방되었다. 1864년 2월 20일 출생지로 유배지가 변경되었고, 1865년 1월 27일 석방되었다.
2.4. 석방과 복귀
이세보는 1860년(철종 11년) 판중추부사 김좌근(金左根), 영은부원군 김문근(金汶根) 등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세도를 비난하다 대사헌 서대순(徐戴淳)의 상소로 성 밖으로 축출되었다. 이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속적(屬籍)이 끊기고, 같은 해 11월 4일 경평군(慶平君) 이호(李晧)에서 본명인 이세보로 돌아가고 경평군 작호는 환수되었다. 그 후 강진 신지도(薪智島)에 위리안치되었다.
1863년(고종 즉위년) 유배지에서 조대비(趙大妃)와 흥선대원군의 배려로 석방되었고, 1864년에는 유배지가 출생지로 변경되었다.
1865년(고종 2) 부총관으로 벼슬을 다시 시작하여 한성부우윤·한성부좌윤이 되었고, 1866년(고종 3)에는 병조참판·동지돈녕부사·형조참판·공조참판을 지냈다. 1868년(고종 5) 이름을 인응(寅應)으로 다시 고쳤다.
2.5. 후기 관직 생활과 경복궁 중건
이세보는 1865년(고종 2년) 부총관으로 복직하여 한성부우윤, 한성부좌윤을 역임했다. 1866년(고종 3년)에는 병조참판, 동지돈녕부사, 형조참판, 공조참판을 지냈다. 1868년(고종 5년) 이름을 인응(寅應)으로 다시 고쳤다.
1869년(고종 6년) 호조참판을 거쳐 다시 부총관이 되었다. 이후 여주목사, 오위도총부,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며 1894년(고종 31년)까지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공조판서를 다섯 차례, 판의금부사를 여섯 차례, 한성부판윤을 두 차례 역임하며 경복궁 중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다음은 이세보(인응)의 주요 관직 역임 내용이다.
| 연호 | 서력 기원 | 월일 | 내용 |
|---|---|---|---|
| 함풍 원년 | 1851년 | 8월 9일 | 경평군(慶平君)에 봉해짐. 소의대부(昭義大夫, 종2품 하계)의 관위를 받음. |
| 9월 16일 | 중의대부(中義大夫, 종2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10월 2일 |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임명. | ||
| 10월 24일 | 승헌대부(承憲大夫, 정2품 하계)의 관위로 승격. | ||
| 함풍 2년 | 1852년 | 1월 10일 | 종부시 찬수감인교정관을 겸임. |
| 1월 18일 | 숭헌대부(崇憲大夫, 정2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2월 2일 | 가덕대부(嘉徳大夫, 종1품 하계)의 관위로 승격. | ||
| 3월 10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이동. | ||
| 6월 4일 | 의덕대부(宜徳大夫, 종1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6월 21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 함풍 3년 | 1853년 | 4월 7일 | 흥록대부(興禄大夫, 정1품 하계)의 관위로 승격. |
| 12월 22일 | 현록대부(顕禄大夫, 정1품 상계)의 관위로 승격. | ||
| 함풍 4년 | 1854년 | 1월 16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3월 4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 3월 28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 함풍 5년 | 1855년 | 8월 27일 | 종척집사를 겸임. |
| 함풍 6년 | 1856년 | 6월 11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함풍 7년 | 1857년 | 1월 8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1월 19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사임. | ||
| 8월 15일 | 동지사 겸 사은사 정사로 임명. | ||
| 함풍 9년 | 1859년 | 4월 25일 | 사옹원 제조를 겸임. |
| 8월 28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 | ||
| 11월 14일 |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임기 종료. | ||
| 함풍 10년 | 1860년 | 12월 13일 | 작호를 박탈. 모든 관직에서 면직. |
2.6. 지방관으로서의 활동
이세보는 여주목사와 개성유수로 재직할 때 언제나 백성 편에 서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주려고 애쓴 목민관이었다.
2.7. 말년과 죽음
1895년(고종 32) 64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남도 천안 거재마을(巨宰洞) 묘좌에 있다.
이세보의 친사촌 동생 이종응(李宗應)의 증손자가 이해랑으로, 그는 제8대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과 제9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지냈다.
3. 시조 시인으로서의 이세보
이세보는 조선 시대에 가장 많은 시조를 지은 인물로, 《풍아》, 《시가》 등의 시조집에 458수의 시조를 남겼다. 그의 시조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다른 작가의 시조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3.1. 이세보 시조의 주제와 특징
이세보는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시조를 지은 인물로, 《풍아》(風雅)·《시가》(詩歌) 등의 시조집에 458수의 시조를 남겼다.
이세보 시조의 주제는 부정부패 비판, 유배, 애정, 도덕, 절후, 기행, 계고(稽古), 유람유흥(遊覽遊興) 등으로 다양하며, 이는 다른 작가의 시조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징이다.
4.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생고조부 | 이후근(李厚瑾) | 안풍군 이영의 아들 |
| 생증조부 | 이복현(李復鉉) | 음서로 부사 역임, 수직으로 첨추, 증직으로 이조판서 |
| 생조부 | 이제로(李濟魯) | 증 좌찬성 |
| 생부 | 이단화(李端和) | 음서로 군수 역임, 증 이조참판 종정경 |
| 생모 | 해평윤씨 | 윤응선(尹應善)의 딸 |
| 친동생 | 이세필(李世弼) | |
| 친동생 | 이택응(李宅應) | |
| 친동생 | 이헌응(李憲應) | |
| 양부 | 풍계군 이당 | |
| 양모 | 광산현부인 증 광산군부인 광산김씨 | |
| 부인 | 연안김씨 | 1828년 8월 17일 - 1850년 8월 23일, 김긍연(金兢淵)의 딸, 묘는 과천 안양리에 있다. |
| 부인 | 반남박씨 | 1832년 4월 22일 ~ ?, 박희수(朴熺壽)의 딸 |
| 양자 | 이재형(李載馨) | 1871년 12월 16일 ~ ?, 생부는 원응(元應) |
| 양며느리 | 연일정씨 | 1870년 5월 21일 ~ ?, 정익원(鄭益源)의 딸 |
| 첩 | 이름 미상 | |
| 서녀 | 이씨 | |
| 사위 | 김영립(金永立) | 광산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