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긍
1. 개요
이재긍은 조선 장조의 후손이자 흥인군 이최응의 아들이다. 1857년에 태어나 1881년에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선파유생전시에 합격하여 어가를 호위했고, 1873년 문과에 급제하여 고종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규장각 대교, 승정원승지, 이조참의, 예조 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1881년 사망 후 헌간의 시호가 추서되고 완영군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으며, 기생 강담운의 시집 간행을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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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881년 사망 -
벤저민 디즈레일리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19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로, 보수당 지도자로서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하며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문학 작품도 남겼으며, 윌리엄 글래드스톤과의 경쟁 속에서 영국 보수주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881년 사망 -
메리 시콜
메리 시콜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전통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크림 전쟁에서 부상병들을 자비로 치료하며 '시콜 어머니'로 불린 간호사이자 사업가이며, 사후 20세기 후반부터 재조명되어 인종차별을 극복한 헌신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
조선의 왕족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왕족 -
흥선대원군
조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종식 후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쇄국정책과 독재적 통치로 비판받았고, 실각 후 재집권을 시도하다 톈진으로 압송, 명성황후 암살 의혹 등 격변기 조선의 대표적 인물로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2. 생애
이재긍은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전주이다. 장조의 서2남 은신군의 증손이며, 남연군의 손자이자 흥인군 이최응의 아들이다. 1857년에 태어났다.
1871년(고종 8) 왕족 자제 대상의 특별 과거 시험인 선파유생전시에 합격하여 왕의 호위를 맡았고, 군관으로 임명되어 궁궐에서 근무했다. 1873년(고종 10) 병을 앓자 고종이 특별히 약재를 보내주기도 했다.
1873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고종의 4촌이자 최측근으로서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이후 명성황후의 눈에 띄어 중용되기 시작했다.
2.1. 초기 생애
장조의 서2남 은신군의 증손이며, 남연군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흥인군 이최응이다.
1857년 흥인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1년(고종 8) 왕족 자제들에게만 대상으로 한 선파유생전시(璿派儒生殿試)에 합격하여 어가를 호위하고, 바로 군관으로 직부(直赴)되어 궁궐의 별입직(別入直)을 서게 되었다. 1873년(고종 10) 병환이 들자 고종이 특별히 보낸 약재를 하사받았다.
1873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고종의 4촌이자 최측근으로 1874년 대원군 실각 후 명성황후에 의해 발탁되었다.
2.2. 관직 생활
1857년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거쳤다. 1871년(고종 8) 왕족 자제 대상 선파유생전시(璿派儒生殿試)에 합격하여 어가 호위, 군관, 궁궐 별입직(別入直)을 맡았다. 1873년(고종 10) 병환으로 고종에게 약재를 하사받았다.
1873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고종의 4촌이자 최측근으로 1874년 대원군 실각 후 명성황후에 의해 발탁되었다. 1874년(고종 11)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 1875년 11월 문례관(問禮官), 1876년(고종 13) 세자시강원보덕(輔德), 2월 11일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1877년(고종 14) 이조참의, 1878년(고종 15) 규장각 직제학, 홍문관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879년 규장각직제학, 2월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 1880년(고종 17) 2월 호조참판(戶曹參判),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이조참판, 예조참판, 동지돈녕부사, 통리기무아문 당상, 예조 판서를 지냈다. 1881년(고종 18) 통리기무아문 선어학당상(統理機務衙門選語學堂上)을 거쳐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다.
2.3. 사망과 사후
1881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사후 바로 헌간(獻簡)이라는 시호가 추서되었고, 이희하(李熙夏)의 아들 용구(龍駒)를 양자로 입양하였다. 1899년(광무 2) 9월 왕족의 예로서 완영군(完永君)에 추증되었다. 1904년(광무 7) 5월 24일 의정부 참정 겸 홍문관 대학사 규장각 학사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향천사 뒷산 계좌(癸坐)에 안장되었고, 묘비문은 윤용구가 짓고, 홍정후가 썼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비고 |
|---|---|---|---|---|
| 할아버지 |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 | 1788년 | 1836년 | |
| 할머니 | 군부인 여흥민씨(驪興閔氏) | ? | 1831년 | |
| 백부 | 흥녕군 이창응(興寧君 李昌應) | 1809년 7월 18일 | 1828년 2월 1일 | |
| 백부 | 흥완군 이정응(興完君 李晸應) | 1814년 2월 16일 | 1848년 5월 18일 | |
| 숙부 | 흥선대원군 이하응 | |||
| 아버지 | 흥인군 이최응(興寅君 李最應) | 1815년 2월 17일 | 1882년 6월 10일 | |
| 어머니 | 안동 김씨(安東 金氏) | ? | 1868년 10월 20일 | 김만근(金晩根)의 딸, 군부인에서 정경부인으로 개봉 |
| 양형 | 이희하(李熙夏) | 1839년 | 1900년 | 광평대군의 16대손 |
| 부인 | 남양 홍씨(南陽 洪氏) | 1856년 7월 9일 | 1885년 8월 6일 | 판서 홍원(洪土+元)의 딸 |
| 양자 | 이지용(李址鎔) | 1870년 10월 23일 | 1928년 | |
| 손자 | 이해충(李海忠) | 1888년 | 1923년 | |
| 손자 | 이해문(李海文) | 1903년 | ||
| 손녀 | 이효경(李孝卿) | 1909년 | ||
| 장인 | 홍훈(洪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