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완군
1. 개요
흥완군은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은신군의 양자인 남연군의 아들이자 흥선대원군, 흥인군의 형제이다. 그는 흥완부정, 흥완도정을 거쳐 소의대부, 군으로 진봉되었으며,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역임했다. 순조 사후 산릉도감과 빈전의 대전관을 지냈으며, 청나라에 동지정사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아들이 있었으나, 형 흥녕군의 양자로 보냈고, 선조의 서자 경창군의 후손 이재완을 사후 양자로 들였다. 1848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문간공으로 추증되었고, 1909년에는 비석이 세워졌다. 그의 묘소는 현재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 있으며, 그의 의복과 부속품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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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족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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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조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종식 후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쇄국정책과 독재적 통치로 비판받았고, 실각 후 재집권을 시도하다 톈진으로 압송, 명성황후 암살 의혹 등 격변기 조선의 대표적 인물로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
조선의 외교관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외교관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
조선의 정치인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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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2. 생애
흥완군은 사도세자의 증손이자 남연군의 둘째 아들로, 1848년 5월 18일 사망하여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본처 대구 서씨에게서 아들 이재원을 얻었으나 형 흥녕군의 양자로 보냈고, 사후 경창군 이주의 후손 이신응의 아들 이재완을 양자로 들였다.
1864년(고종 1년) 7월 9일 문간공(文簡公) 시호가 추증되었고, 1865년(고종 2년) 9월 14일 신정왕후의 명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은신군의 양자인 남연군 이구와 선공감 감역 증 우의정 민경혁의 딸 군부인 여흥 민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흥녕군 이창응은 그의 형이고,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흥인군 이최응은 그의 동생들이었다. 아버지 남연군 이구는 인평대군 이요의 7대손으로, 호적상 능원대군의 8대손이 된다. 아버지 남연군 이구가 은신군의 양자로 입양되면서 그는 사도세자의 증손자이자 낙천군의 증손자도 되며, 숙종의 일곱째 서자 연령군의 4대손도 된다.
1829년(순조 29) 1월 1일 흥완부정(興完副正)에 봉작되었다. 1831년 흥완부정에 봉작되고, 1832년 흥완도정으로 승진되었으며 효명세자가 1830년에 요절하여 동궁 효명세자묘의 수원관을 맡아보았다. 1833년 소의대부를 받고 군으로 진봉되었다. 1834년 11월 순조 사후 산릉도감과 빈전의 대전관(代奠官)으로 참여하여 1835년 상을 받았다. 1836년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었다가 그해 3월 아버지 남연군이 사망하였다. 3년상을 마친 뒤 다시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고, 1844년 10월 동지정사로 청나라의 연경에 다녀왔다.
본처 대구 서씨에게서 아들 이재원을 얻었지만, 남연군, 은신군, 낙천군, 연령군의 제사를 받들어야 되었기 때문에, 생전 자녀 없이 죽은 형 흥녕군의 양자로 보냈다. 대신 그는 사후 선조의 아홉째 서자 경창군 이주의 후손 이신응의 아들 이재완을 사후양자로 들이게 된다. 후처인 순천 박씨에게서는 소생이 없다. 최종 관직은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1848년 5월 18일 정침에서 사망하였다.
2.2. 관직 생활
1829년(순조 29) 1월 1일 흥완부정(興完副正)에 봉작되었다. 1831년 흥완도정에 봉작되고, 1832년 흥완도정으로 승진되었으며, 효명세자가 1830년에 요절하여 동궁 효명세자묘의 수원관을 맡아보았다. 1833년 소의대부를 받고 군으로 진봉되었다. 1834년 11월 순조 사후 산릉도감과 빈전의 대전관(代奠官)으로 참여하여 1835년 상을 받았다. 1836년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었다가 그해 3월 아버지 남연군이 사망하였다. 3년상을 마친 뒤 다시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고, 1844년 10월 동지정사로 청나라의 연경에 다녀왔다. 최종 관직은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2.3. 사망과 사후
1864년(고종 1년) 7월 9일 시호를 문간공(文簡公)에 추증하였고, 1865년(고종 2년) 9월 14일 신정왕후 조대비의 명으로 특별히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판종정경(議政府領議政 判宗正卿)에 증직되었다. 비석은 1909년(융희 3년) 2월 28일 양자 이재완이 비문을 쓰고, 신응조(申應朝)가 글씨를 썼다.
처음 묘소는 충청남도 서산군 보현동(普賢洞) 인좌에 안장되었다. 이후 두번째 부인 순천박씨가 경기도 양주군 와공면 월곡에 매장되었다가 양주군 와공면 도곡리 산 97-1 안골(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1리 안골) 금대산(金臺山)의 갓무봉 언덕으로 이장할 때, 같이 이장되어 합장되었다. 동시에 충청북도 충주에 안장되었던 본처 대구서씨의 묘소도 이장하여 그의 묘소에 합장하였다. 중종 때의 반정공신 박원종의 묘소가 근처에 있다. 완순군 이재완 역시 그의 묘소 근처에 안장되었다. 또한 완순군의 묘 아래에는 그의 양자 이재완의 아들 이달용의 묘가 있다.
3. 가족 관계
宗親중국어 흥완군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남연군 | |
| 어머니 | 군부인 여흥민씨 | |
| 부인 | 정경부인 대구 서씨 | 군수 서탁수(徐鐸修)의 딸 |
| 부인 | 정경부인 순천 박씨 | 박해익(朴海翊)의 딸 |
| 형 | 흥녕군 이창응 | |
| 동생 | 흥인군 이최응 | |
| 제수 | 안동 김씨 | 흥인군의 셋째 부인, 손녀사위 김병협의 누이 |
| 동생 | 흥선대원왕 | |
| 아들 | 이재원 | 흥녕군 이창응에게 출계 |
| 며느리 | 정경부인 청송 심씨 | 판서 심우영의 딸 |
| 며느리 | 정경부인 김씨 | 이재원의 후처 |
| 손자 | 이기용 | 이재원에게 출계 |
| 양아들 | 이재완 | 생부는 이신응 |
| 양손자 | 이달용 | |
| 양손자 | 이규용 | |
| 손녀 | 이씨 | |
| 손녀사위 | 심상만 | 본관은 청송 |
| 손녀 | 이씨 | |
| 손녀사위 | 조준호 | 본관은 임천 |
| 양손녀 | 이씨 | |
| 손녀사위 | 김병협 | 본관은 안동, 음서로 참봉 역임, 아버지는 음도사 김면근(金冕根) |
| 양증조부 | 사도세자 | |
| 양종조부 | 은언군 | |
| 양증조부 | 낙천군 이온 | |
| 생증조부 | 이진익 | |
| 양조부 | 은신군 이진 | |
| 생조부 | 이병원 | 진사, 영의정에 추증 |
* 흥완군의 손녀사위 김병협은 동생 흥인군 이최응의 세번째 부인 안동 김씨의 남동생이었다. 흥인군의 셋째 부인 안동 김씨와 흥완군의 손녀사위 김병협은 남매간이면서 처종조모-처종손녀사위 간이 된다.
4. 유물
숙명여자대학교에 그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다가 기증한 16점의 흥완군 생전 착용 의복, 관복 12점, 장신구와 기타 부속품 62점은 1983년 4월 11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21호 《흥완군 의복》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