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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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찬은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시인이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릿쿄 대학과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했다. 1927년 조선일보 학생문예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한 후, 사회주의 문학 운동에 참여했으나 '별나라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이후 친일 시와 희곡을 창작하여 친일 행적을 보였으며, 광복 후에는 북한으로 돌아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 그는 혁명 시인으로 불렸으며, 그의 유해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이찬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리찬 (시인)
이름: 리찬
출생일: 1910년 1월 15일
출생지: 함경남도 북청군
사망일: 1974년 1월 14일
활동 기간: 1927년 ~ 1974년
학력: 일본 와세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직업: 시인, 작가
국적:


장르: 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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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리찬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릿쿄 대학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했다.

2.1. 초기 활동 (1927년 ~ 1934년)

이찬은 함경남도 북청 출신으로,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7년 조선일보 학생문예 공모에 시 〈나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29년 일본 릿쿄 대학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하며 임화 등을 만나 사회주의 문학 운동에 참여했다.

193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제적되었고, 같은 해 재일 조선인 좌익 예술 단체 동지사 창립회원 겸 편집부원으로 참여했다. 1932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1932년 '별나라 사건'으로 1934년까지 옥고를 치렀다. 초기에는 현실 참여적인 서술시를 썼다.

2.2. 전향과 친일 행적 (1934년 ~ 1945년)

이찬은 복역 후 허무적 정서와 나약한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시집 《대망》(1937), 《분향》(1938), 《망양》(1940) 등을 간행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기간에는 친일 시와 희곡을 창작하여 친일 행적을 보였다. 1944년매일신보》와 《신시대》에 실은 〈송출진학도(送出陣學徒)〉가 대표적인 친일 시이다. 이 외에도 『동양지광(東洋之光)』 1944년 3월호에 「영예의 전범을」(원문 일본어)을, 매일신보 1945년 2월 14일과 15일자에 「전사(餞詞) - 징용(徵用)된 벗에게」를 발표하는 등 친일 시문을 남겼다. 이러한 친일 행위로 인해 이찬은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이찬(李燦), 송∙출진학도(送∙出陣學徒) : 매일신보 1944-01-19 일자 02면 10단
이찬(李燦), 송∙출진학도(送∙出陣學徒) : 매일신보 1944-01-19 일자 02면 10단

2.3. 광복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활동 (1945년 ~ 사망)

이찬은 광복 후 서울에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한 것 외에는 주로 함경남도 북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함경남도 혜산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함남인민일보사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북조선문학예술동맹 서기장을 맡았다. 이 시기 《화원》(1946), 《승리의 기록》(1947), 《쏘련시초》(1947) 등의 시집을 간행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과 관련된 정치적 경향의 시를 창작했다.

1946년에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사하여 수령형상창조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으며 혁명시인으로 불렸다. 이후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 문화선전성 군중문화국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 카프 작가편에서 그의 생애가 조명되기도 했다. 그의 유해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2. 부정적 평가

4. 작품 목록

4.1. 시집

4.2. 주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