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 (전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무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문제의 즉위를 도왔으며 흉노의 침략에 대비하고 문제의 장례를 주관했다. 고후 8년(기원전 180년) 여씨 세력 축출 후 문제 옹립 과정에서 낭중령으로 문제에게 사태를 관망할 것을 조언했으나, 문제가 직접 장안으로 사람을 보내면서 황실의 낭중령이 되었다. 흉노의 침입에 대비하여 거기장군으로 임명되어 방어전을 펼쳤으며, 문제 사후에는 복토장군이 되어 장례를 치렀다. 뇌물을 받은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로부터 상을 받았다.

장무 (전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기원전 2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2. 생애

기원전 180년, 고황후가 죽자 주발 등 대신들과 황족들이 여씨 세력을 몰아냈다. 본래 유양이 황제가 되기로 하였으나, 그의 외가 사(駟)씨가 권세를 부릴 것을 우려하여 대왕 유항으로 바꾸었고, 유항을 모시러 대나라에 사람을 보냈다. 대나라의 낭중령 장무를 비롯한 신하들은 유항에게 저들의 속내가 의심스러우니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였으나, 중위 송창은 반대로 주장하였다. 문제는 장무 등 관료 여섯 명을 시켜 장안에 직접 가 보게 하였고, 실제로 조정에 변고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장무는 그대로 황실의 낭중령이 되었다.

문제 14년(기원전 166년), 흉노가 기병 4만 명을 이끌고 조나(朝那)·소관을 침입하여 북지도위 손앙을 죽이고 수많은 백성과 가축들을 노략질하였다. 또 팽양(彭陽)에 이르러 병사들을 풀어 회중궁(回中宮)을 불태웠고, 척후병을 감천궁에까지 보냈다. 이에 문제는 장무를 거기장군에 임명하고, 병거 천 승·기병 10만 명을 주어 장안 곁에 주둔시켜 대비하였다.

문제 후6년(기원전 159년), 흉노가 상군·운중군을 침략하여 장무는 북지에 주둔하여 응전을 준비하였으나, 몇 달 후 흉노가 돌아가니 모두 철수하였다.

문제 후7년(기원전 157년), 문제가 붕어하자 장무는 문제의 유언으로 복토장군(復土將軍)에 임명되어 장례를 주관하였다.

2.1. 문제 옹립

기원전 180년, 고황후가 죽고 주발 및 유양을 비롯한 대신들과 황족들이 여씨 세력을 몰아냈다. 본래 유양이 황제가 되기로 하였으나 그의 외가 사(駟)씨가 권세를 부릴 것을 걱정하여 대왕 유항으로 바꾸었고, 유항을 모시러 대나라에 사람을 보냈다. 대나라의 낭중령 장무를 비롯한 신하들은 유항에게 저들의 속내가 의심스러우니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였으나, 중위 송창만은 반대로 주장하였다. 문제는 장무 등 관료 여섯 명을 시켜 장안에 직접 가 보게 하였고, 실제로 조정에 변고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어 황제로 즉위하였다(문제). 장무는 그대로 황실의 낭중령이 되었다.

2.2. 흉노 방어

문제 14년(기원전 166년), 흉노가 기병 4만 명을 이끌고 조나(朝那)·소관(蕭關)을 침입하여 북지도위 손앙을 죽이고 수많은 백성과 가축들을 노략질하였다. 또 팽양(彭陽)에 이르러 병사들을 풀어 회중궁(回中宮)을 불태웠고, 척후병을 감천궁에까지 보냈다. 이에 문제는 장무거기장군에, 중위 주사를 위장군에 임명하고 병거 천 승·기병 10만 명을 주어 장안 곁에 주둔시켜 대비하였다.

문제 후6년(기원전 159년) 겨울, 흉노가 상군·운중군을 침략하였다. 장군에 임명된 장무는 북지에 주둔하여 영면·소의·주아부·유례·서한과 함께 응전을 준비하였으나, 몇 달 후 흉노가 돌아가니 모두 철수하였다.

2.3. 문제 장례

문제 후7년(기원전 157년), 문제가 붕어하였다. 장무는 문제의 유언으로 복토장군(復土將軍)에 임명되어 장례를 주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