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 (후한 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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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양은 후한 말기의 무장으로, 용맹함을 인정받아 병주에서 무맹종사로 시작하여 건석의 참모를 거쳐 하진에게 속했다. 동탁이 집권하자 상당태수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세력을 키웠으며,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했다. 이후 헌제를 옹립하고 하내태수를 역임했으나, 조조의 공격을 받자 여포를 지원하려다 부하 양추에게 암살당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등장하며, 역사적 행적과 유사하게 묘사된다.

장양 (후한 태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장양
본관산시 성
사망198년
사망 장소허난 성
직업정치가, 군벌
시호질서(秩叔)
작위진양후(晉陽侯)
관직
하내태수(河內太守)191년 ~ 196년
안국장군(安國將軍)195년 ~ 196년
대사마(大司馬)196년 ~ 198년
섬긴 군주
황제한 헌제
인물 정보 (삼국지)
생몰? ~ 건안 3년 (198년)
출신병주 정양군(산서성)
가족 관계
아들장천(張泉)
기타 정보
관련 인물여포
장수
조조
가후
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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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2.1. 초기 생애와 관직

장양은 용감함과 뛰어난 전투 능력으로 병주에서 무맹종사로 관직을 시작했다. 영제 시대에 무용으로 이름을 떨쳐 무맹종사로 발탁되어 병주 자사 정원에 속했다. 영제가 서원군을 창설했을 때, 정원은 장양을 환관 지휘관 견석의 참모로 소령으로 파견했다. 영제가 붕어하고 견석이 하진에게 살해되자 장양은 하진에 속해 고향인 병주로 돌아가 모병을 명령받았다. 1000여 명의 병사를 모아 상당군에 머물며 산적을 토벌했다.

2.2. 군벌 활동

장양은 용맹하여 병주의 무맹종사(武猛從事)가 되었고, 영제 말기에 건석이 서원군의 총수가 되면서 병주자사 정원의 명령을 받고 장수가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건석에게 파견되었다. 건석이 하진에게 처단되자 장양은 하진에게 속했으며, 하진의 명령으로 병주로 돌아가 군사 천여 명을 모으고 상당에 머무르면서 산적을 토벌했다.

하진이 죽고 동탁이 집권하자 장양은 호관(壺關)에서 상당태수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여러 현들을 노략하여 세력을 수천 명으로 불렸다. 190년,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었을 때 하내에서 원소와 연합하고 흉노선우 어부라와 함께 장수(漳水)에 주둔했다. 그러나 선우가 반기를 들었고, 장양은 원소와 함께 호응하지 않아 선우에게 사로잡혔다. 원소는 장수 국의를 보내 선우를 추격하여 의 남쪽에서 격파하였으나, 선우는 장양을 사로잡고 여양에 이르러 도료장군(度遼將軍) 경지(耿祉)를 격파해 세력을 회복했다. 이후 장양은 동탁에게서 건의장군(建義將軍)·하내태수로 임명되었다.

여포원소의 수하에서 공을 세웠으나 원소에게 위협을 느끼고 장양에게 의탁했다. 장양은 여포와 동향의 의로 여포를 받아들였고, 원소도 여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장양의 군대는 이각곽사가 현상수배한 여포를 잡아 바치려고 했으나, 장양은 겉으로는 그러는 척 하면서 실은 여포를 보호했다.

194년, 이각곽사장안에서 폭동을 일으키자 헌제가 낙양으로 달아났고, 조조가 헌제를 구출하기 위해 하내를 지나려고 하자, 장양은 동소의 권유로 길을 열어주어 조조는 헌제를 구출하게 되었으며 두 세력이 우호를 다졌다.

2.3. 조정과의 관계

흥평 2년(195년), 헌제가 장안을 빠져나와 하동에 이르러 임시로 안읍(安邑)에 머물렀을때, 백관들이 굶주리자 장양은 수천 명을 부려 공향하여 안국장군(安國將軍)이 되었고 가절(假節)을 받아 부(府)를 열었으며, 진양(晉陽侯)에 봉해졌다. 장양은 헌제를 낙양으로 모시려 하였으나, 제장들의 반대로 본거지인 야왕(野王)으로 돌아갔다.

건안 원년(196년), 헌제를 옹위하는 장군들 사이의 권력 쟁탈전중에, 한섬동승을 공격하였고, 동승은 장양에게로 달아났다. 장양은 식량을 가지고 헌제를 맞이하였고, 동승을 시켜 낙양의 궁궐을 수리하게 한뒤, 헌제를 낙양으로 모셨다. 헌제는 8월에 양안전(楊安殿)에 들어갔고, 장양은 이것을 자신의 공로로 뽐내었다. 장양은 동승·한섬·양봉 등과 사이가 좋지 않아, 황제를 낙양으로 모시고 나서 야왕으로 돌아갔고, 대사마에 임명되었다.

194년, 조조는 연주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나라 조정에 접근하려 했지만, 장양은 조조와 장안의 조정 사이에 있었다. 장양의 참모 동소는 장양에게 조조의 호의를 얻는 것이 더 현명하다며, 사신 왕비를 조정으로 통과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조를 지지하는 내용의 서신을 쓰도록 설득했다. 과거에 황제를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고 여전히 조정 밖에 있었던 장양은 조정에 자신이 외부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고 하내로 돌아갔다. 그의 행적으로 인해 그는 대원수(大元帥)로 승진했으며, 나중에 조조가 비난하자 헌제는 장양의 과거 도움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2.4. 죽음

198년, 조조여포를 공격할 때 장양은 여포를 지원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부하인 양추에게 암살당했고, 양추는 조조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수고에게 죽임을 당했다. 수고는 다시 원소에게 의탁했다가 사환조인이 이끄는 조조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장양의 장사 설홍(薛洪)과 하내태수 무상(繆尙)은 동소의 설득을 받아 조조에게 투항했다.

3. 성격 및 평가

4. 삼국지연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장양은 대체로 정사와 유사하게 묘사된다. 반동탁 연합군에는 원소의 부하가 아닌 제후로서 참전하였으며, 자신의 부하 장수 목순여포와 일기토를 겨루다 전사하기도 했다. 역사에서는 장양이 상당 태수가 된 적이 없고, 오히려 이 자리에 있던 동탁 진영의 인물을 공격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동향의 친구인 여포와도 싸우며 부장 목순을 잃는다. 그 후, 헌제가 낙양으로 향한 이후의 행적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묘사되며, 최후도 같다.

5. 관련 인물

* 동소
* 무상
* 설홍
* 수고
* 양추
* 추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