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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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익은 193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가톨릭대학교, 미국 메리놀신학교, 벨기에 루뱅 대학교,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63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서울대교구장 비서, 정릉성당 주임신부, 서울대교구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교황청 자문위원을 지냈고, 1993년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주교 서품을 받았다. 이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춘천교구 교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0년 간암으로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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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직수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육군 법무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쳤으며, 중앙정보부장 재직 시 울릉도 간첩단 사건 등 여러 논란에 휘말렸고, 이후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핀들레이 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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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33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1963년 3월 사제서품을 받았다. 사목보다는 학자로서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성직자 양성에 힘썼다. 1978년부터 1985년까지 교황청 종교평화평의회 및 비그리스도교평의회 자문위원을 역임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친분을 쌓았다.[3]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 한국어 미사 집전을 도왔다.[3]
1993년 춘천교구 토마스 스튜어트(박 토마스) 주교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익 신부를 제6대 춘천교구장으로 임명하고 주교로 서품하였다. 199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같은 해 12월부터 2000년까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10년 1월 28일 사임 청원이 받아들여져 3월 25일 김운회 주교가 제7대 춘천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였다.[3] 2020년 8월 5일 간암으로 선종하였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33년 11월 20일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195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56년 미국 메리놀신학교로 편입하여 인문학과 철학 학사를 취득하였고, 1959년 벨기에 루뱅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3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2. 2. 사제 서품 및 활동
1963년 3월에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신부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는 사목보다는 학자로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1967년 서울대교구장 비서로 임명되어 교구장을 보좌했으며, 1968년 김수환 대주교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비서신부가 되었다.[3] 1969년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선출되자 당시 비서였던 장익 신부가 이 소식을 처음 전하였다고 한다.[3] 1970년 서울대교구 정릉성당 주임신부로 활동하였다.2. 3. 서강대학교 교수 및 국제 활동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3]1978년부터 1985년까지 교황청 종교평화평의회 및 비그리스도교평의회 자문위원을 역임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친분을 쌓았다.[3]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당시 한국어 미사 집전을 도왔다.[3] 김수환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장익 주교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였다.[3]
1986년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 실장, 1988년 서울대교구 세종로 성당 주임을 거쳐 1990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2. 4. 춘천교구장 임명 및 활동
1993년 춘천교구 토마스 스튜어트(박 토마스) 주교가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 직에서 사임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익 신부를 제6대 춘천교구장으로 임명하면서 주교로 서품하였다. 12월 29일 주교 서품을 받았다.199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같은 해 12월부터 2000년까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 5. 은퇴 및 선종
2008년 10월 16일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하였고, 2010년 3월 25일까지 춘천교구 교구장을 지냈다. 2010년 1월 28일 사임 청원이 받아들여져, 2010년 3월 25일 김운회 주교가 제7대 춘천교구장으로 착좌하면서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였다.[3]2020년 8월 5일 간암으로 선종하였다.
3. 가족 관계
참조
[1]
뉴스
Death of Bishop John Chang Yik
https://en.yna.co.kr[...]
[2]
웹사이트
Bishop John of the Cross Chang-yik [Catholic-Hierarchy]
http://www.catholic-[...]
2021-05-28
[3]
뉴스
장익·지학순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http://www.kwnews.co[...]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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