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 개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되었으며, 1989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부활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선거였다. 이 선거는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인 지방 자치의 시작을 알렸으며,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선거 결과, 민주당이 서울을 석권하고,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충청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정당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이 선거는 김영삼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며,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국가 | 대한민국 |
|---|---|
| 국기 연도 | 1984년 |
| 유형 | 의회 |
| 선거명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 이전 선거 | 1991년 대한민국 지방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1991년 |
| 차기 선거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 차기 선거 연도 | 1998년 |
| 선거일 | 1995년 6월 27일 |
| 투표율 | 68.4% |
| 선출 의석 | 광역단체장 15명, 광역의원 972명 기초단체장 230명, 기초의원 4,541명 |
| 정당 | 민주자유당 |
|---|---|
| 리더 | 김영삼 총재 |
| 득표수 (광역단체장) | 5석 6,876,733 33.3% |
| 득표수 (기초단체장) | 70석 6,527,424 31.8% |
| 득표수 (광역의원) | 335석 229 7,060,623 36.4% |
| 정당 | 민주당 |
| 리더 | 이기택 총재 |
| 득표수 (광역단체장) | 4석 6,223,015 30.1% |
| 득표수 (기초단체장) | 84석 5,911,871 28.8% |
| 득표수 (광역의원) | 390석 204 6,358,848 32.7% |
| 정당 | 자유민주연합 |
| 리더 | 김종필 총재 |
| 득표수 (광역단체장) | 4석 3.577,696 17.3% |
| 득표수 (기초단체장) | 23석 1,650,318 8.0% |
| 득표수 (광역의원) | 94석 94 1,403,523 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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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대한민국의 선거 -
1995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1995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는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 시장, 군수 등 다양한 직위를 선출하기 위해 4월부터 12월까지 여러 차례 실시된 선거로, 의원들의 사퇴, 사망, 당선 무효 등으로 인해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정당 및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의원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의원 선거 결과는 서울특별시 등 전국 각 광역자치단체별 구, 시, 군 단위의 기초의회 의원 선거 결과를 나타낸다.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자치단체장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는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선거 결과를 상세히 정리한 문서로, 전국 각 지역의 구청장, 시장, 군수 선거 결과와 당선인의 이름, 득표율, 소속 정당 등을 지역별로 담고 있다. -
1995년 6월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의 부실 설계, 시공, 무리한 변경 등으로 발생한 대형 참사로, 500명 이상 사망, 900명 이상 부상이라는 막대한 인명 피해와 함께 대한민국 사회에 안전 불감증 경각심을 일깨웠다. -
1995년 6월 -
1995년 FIFA 여자 월드컵
1995년 FIFA 여자 월드컵은 12개국이 참가하여 스웨덴에서 개최된 두 번째 FIFA 여자 월드컵으로, 노르웨이가 독일을 꺾고 우승했으며 노르웨이 선수들이 주요 개인상을 수상했다.
2. 역사적 배경
1989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주민 직접선거제가 규정되었고, 같은 해 5월 정기국회에서 1990년 상반기에 의회의원 선거를, 1991년 상반기에 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는 것으로 여야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방의회 의원의 정당 공천 허용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선거가 연기되었다. 최종적으로 광역의회 선거에서만 정당 공천을 허용하는 것으로 합의가 성립되었다.
이후 1991년 3월에 기초의회 선거(시·군·자치구)가, 같은 해 6월에 광역의회 선거(특별시·직할시·도)가 실시되었고, 단체장 선거는 1992년 3월과 6월에 각각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 선거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1992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경제 혼란을 이유로 선거 연기를 발표했기 때문에 선거는 실시되지 않았고, 임명제가 계속되었다. 1993년 2월에 출범한 김영삼 정권 하에서 1994년 3월 4일에 「공직선거법 및 부정선거방지법」(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 지방자치법 등 정치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듬해인 1995년 6월 27일에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지방자치법에 명기되었다. 이렇게 자치단체장을 포함한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시작되었다.
3. 선거 제도
1994년 3월 16일, 기존의 대통령선거법, 국회의원선거법, 지방의회의원선거법, 지방자치단체의장선거법을 통합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약칭 통합선거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이 법은 공영선거를 확대하고 선거 부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금권선거를 개선하고자 했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광역의회의원(시·도의회의원)과 기초의회의원(시·군·구의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시·도지사), 기초자치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을 선출했다.
광역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병립하여 채택하고 정당 공천을 허용했다.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수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배분했다.
기초의원 선거는 지역구만으로 구성되었으며, 정당 공천은 금지되었다.
4. 후보자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선거에 후보자들이 출마했다.
* 광역단체장 및 기초단체장 선거에는 민주자유당, 민주당, 자민련 등의 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하였다.
* 광역의원 선거는 정당 공천 없이 치러졌다.
* 기초의원 선거는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하였다.
하위 섹션에서 각 선거별 후보자 현황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정당별 출마 현황만 언급한다.
4.3. 광역의원 후보
지역구중국어만으로, 정당의 공천은 금지되었다.
경쟁률은 전국 평균 2.6배였다.
4.4. 기초의원 후보
5. 선거 결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정당별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 수는 다음과 같다.
민주자유당은 부산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 경상도 3곳을 포함해 5곳에서 승리했다. 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자민련이 민주당 조순 후보를 지지하고, 강원도에서 자민련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민주당이 후보를 사퇴하는 선거 협력을 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절대적 지지 기반인 전라도 3곳 외에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했고, 자민련은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 외에 역시 격전지였던 충청북도와 강원도에서 승리하여 각각 4명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배출했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70명, 민주당 84명, 자유민주연합 23명, 무소속 53명이 당선되었다. 민주당은 서울 25개 구 중 23곳에서 승리하는 등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390석, 민주자유당이 335석, 자유민주연합이 94석, 무소속이 151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했고, 자유민주연합은 충청남도의회와 대전광역시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5.2.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조순 후보가 당선되어, 1960년 이후 35년 만에 민선 서울특별시장이 탄생하였다.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문정수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서는 무소속 문희갑 후보가 당선되었다.
김대중의 민주당은 광주와 전남, 전북에서 압승했다.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은 충청 지역(대전, 충남, 충북)과 강원에서 승리했다.
5.3.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
민주당은 서울특별시 25개 구청장 중 23곳에서 승리하는 등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는 민주당이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민주자유당은 부산광역시에서 선전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남도 지역에서 대부분의 기초단체장을 석권하며 지역 기반을 확고히 했다.
5.4. 광역의원 선거 결과
지역별
민주당은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민주자유당은 4년 전 지방선거와 비교해 참패했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남도의회와 대전광역시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6. 선거의 의의 및 영향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35년 만에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가 부활한 후 처음 치러진 선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열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이 선거는 전국적인 규모로 치러졌기 때문에 김영삼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고,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참패로 인해 정국의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자당이 영남(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에서, 민주당이 호남(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충청도(대전광역시, 충청북도, 충청남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좌우하는 지역주의 구도가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선거는 기존에 여러 법률로 분리되어 있던 공직자 선거 관련 법률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통합선거법)으로 일원화되어 시행된 첫 선거였다. 통합선거법은 공영선거를 확대하고 선거 부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금권선거를 개선하고 공정 선거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이 선거에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광역의원 55명, 기초의원 72명이 당선되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향상되었다.
각 정당별로 살펴보면,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통해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반면, 민자당은 참패를 겪으며 당내 혼란을 겪게 되었다. 특히,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득표율 2위를 기록하면서, 부산경남지역의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