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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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건이다. 부실 시공, 불법적인 용도 변경 및 증축, 안전 관리 소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으며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붕괴 전부터 건물에서 균열과 진동 등의 징후가 있었으나, 경영진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사고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건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으며, 건축 기준 및 법률이 대폭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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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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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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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명칭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발생 날짜 | 1995년 6월 29일 |
발생 시간 | 오후 5시 57분경 (KST) |
발생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서초동 1685-3) |
원인 | 부실공사, 불법 구조변경 |
최초 보고자 | 서울서초소방서 |
참여자 | 삼풍건설산업(이준, 이한상), 서초구청 |
결과 | 건물의 전체적 붕괴 |
인명 피해 | |
사망자 | 502명 |
부상자 | 937명 |
실종자 | 6명 |
재산 피해 | |
피해 규모 | 약 2,700억원 |
책임 및 처벌 | |
용의자 | 이준 이한상 |
죄목 | 업무상 과실치사상 (이준) 부패, 업무상 과실치사 (이한상) |
판결 | 유죄 |
형량 | 이준, 징역 10.5년 (이후 7.5년으로 감형) 이한상, 징역 7년 |
2. 붕괴 원인
삼풍백화점 붕괴는 설계 오류, 부실 시공, 안전 관리 소홀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人災)였다.[3]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전후한 개발 열기 속에서[3], 본래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무리하게 백화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초기 시공사인 우성건설은 안전상의 이유로 백화점 용도 변경 및 5층 증축 요구를 거부했지만, 삼풍 측은 계약을 파기하고 자체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을 통해 공사를 강행했다.[3][5] 이 과정에서 매장 공간 확보를 위해 기둥 지름 축소, 철근 수량 감소 등[3] 구조적 안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부실 공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5층 식당가에 난방용 온돌을 설치하며 건물 하중이 크게 증가했다.[3]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옥상 공기 조절 장치(냉각탑)의 부적절한 이동이었다. 1993년, 소음 민원을 이유로 수십 톤 무게의 냉각탑 3대를 옮기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크레인 대신 롤러를 사용했고, 이로 인해 옥상 바닥(슬래브)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5][3] 이 균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악화되어, 특히 붕괴가 시작된 5층 E열 기둥(5E 기둥) 주변의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켰다.[3]
사고 초기에는 가스 폭발이나 테러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11], 단국대학교 정란 교수 등이 참여한 정밀 조사 결과[3], 건물 자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내력 부족이 붕괴의 근본 원인임이 밝혀졌다. 조사 과정에서 기준 미달 콘크리트 사용[11], 잘못된 철근 배근 등[11] 총체적인 부실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결국 설계부터 유지 관리까지 전 과정에 걸친 안전 불감증과 부실이 누적되어 완공 5년 만의 붕괴 참사로 이어졌다.[5]
2. 1. 부지 용도 및 내부 구조 임의 변경
삼풍백화점 부지는 원래 1987년 설계 당시 '삼풍 랜드'라는 이름의 아파트 단지 종합 상가로 계획되었다. 이 계획은 지하 4층, 지상 4층 규모였으며, 부지 자체도 백화점을 지을 수 없는 아파트용 부지였다.[3] 1989년, 인근 삼풍 아파트가 완공된 후, 삼풍 측은 해당 부지에 상가 건물을 지으려 했으나 무허가 공사로 제재를 받기도 했다.그러나 삼풍건설산업의 회장 이준(1922년~2003년)은 건물이 거의 완공될 무렵, 이를 대규모 백화점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삼풍그룹은 서초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불법적으로 부지 용도를 변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당시 만연했던 기업과 행정기관 간의 부적절한 유착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용도 변경 결정 이후, 이준 회장은 원래 시공사였던 우성건설에 백화점으로 설계를 변경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우성건설 측은 상가 건물을 백화점으로 바꾸면 건물 구조에 심각한 무리가 갈 것을 우려하여 이를 거부했다. 이에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자신의 회사인 삼풍건설산업을 통해 직접 설계를 변경하고 공사를 강행했다.[3][5] 법적으로 건물의 용도를 변경할 때는 반드시 구조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야 하지만, 삼풍 측은 이 절차를 무시했다.
무리한 설계 변경은 건물의 안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 층수 추가 및 용도 변경: 원래 4층 건물 계획에 5층을 무단으로 증축했다. 5층은 처음에는 롤러 스케이트장으로 계획되었으나, 나중에 여러 식당이 입점하는 푸드 코트로 변경되었다.[3][4][5] 식당 바닥에는 난방을 위해 두께 1.2m의 온돌 콘크리트 층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바닥 슬래브의 무게와 두께를 크게 증가시켜 하중 부담을 가중시켰다.[3]
- 내부 구조 변경: 넓은 매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내력벽이나 보 없이 기둥만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플랫 슬래브 구조(무량판 구조)를 채택했다. 여기에 더해 이준 회장은 기둥 두께를 원래 설계상 최소 기준이었던 80cm에서 60cm로 줄이고, 기둥 간의 간격은 11m까지 넓히도록 지시했다. 이는 각 기둥이 지탱해야 하는 하중을 위험 수준으로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3] 또한,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위해 각 층 바닥(슬래브)에 구멍을 뚫으면서 많은 지지 기둥을 제거하거나 약화시켰다.[3]
- 옥상 구조물 추가 및 이동: 건물 옥상에는 무게가 각각 15ton에 달하는 대형 공기 조절 장치(에어컨 실외기) 3대가 설치되었다. 이 설비들은 엄청난 무게로 건물에 부담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동 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5] 결국 1993년, 소음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이 무거운 냉각탑들을 옥상 반대편으로 옮겼는데, 이 과정에서 옥상 바닥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5] 냉각탑이 옮겨진 위치는 붕괴 직전 가장 눈에 띄는 균열이 관찰되었던 5층 E열 기둥(5E 기둥) 바로 위였다. 더욱이 5층 기둥 중 일부는 아래층 기둥과 정확히 정렬되지 않아 하중이 슬래브를 통해 전달되면서 기둥의 균열을 더욱 악화시켰다.[3]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삼풍백화점은 정식 준공 검사도 받지 않은 채 가사용 승인만으로 1990년 7월 7일 개점했다. 개점 9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 승인을 받았으며, 1994년 10월에는 지하 1층 구조 변경 공사를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위법 건축물 판정을 받기도 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전후하여 수도권 지역에는 대규모 개발 붐이 일었다. 당시 외국 건설업체의 참여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사는 국내 기업들이 맡았고,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삼풍백화점 건설 과정의 안전 불감증과 불법 행위는 더욱 심화될 수 있었다.[3] 백화점은 개점 이후 5년간 하루 평균 4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성업했지만, 내부에 누적된 구조적 결함은 결국 참사로 이어지게 된다.[5] 건물은 아트리움으로 연결된 남관과 북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5]
2. 2. 부실시공
삼풍백화점은 설계 단계부터 시공, 유지 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안전을 무시한 결정과 부실 공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붕괴에 이르렀다.애초 1987년 설계 당시 삼풍백화점 부지에는 '삼풍랜드'라는 이름의 4층짜리 종합 상가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시공은 우성건설이 맡아 진행했으나, 건물이 거의 완공될 무렵 삼풍그룹의 이준 회장은 건물을 백화점으로 용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3] 백화점은 상가 건물과 달리 내부 구조 변경이 필요했기에, 우성건설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용도 변경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그룹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이 직접 공사를 마무리하도록 지시했다.[3][5] 이 과정에서 건물의 용도 변경에 따른 필수적인 구조 전문가 검토는 무시되었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설계 변경과 공사가 강행되었다.
완공된 백화점 건물은 무량판 구조(플랫 슬래브 구조)로 지어졌다. 이 구조는 내부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지만, 기둥과 바닥 슬래브만으로 하중을 견뎌야 하므로 기둥 설계와 시공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삼풍백화점은 넓은 매장 공간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설계 변경 과정에서 건물 내부의 벽을 없애고 기둥만으로 하중을 지탱하게 만들었다. 또한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위해 각 층 바닥에 구멍을 뚫으면서 기둥이 부담해야 할 하중은 더욱 커졌다.
결정적으로 기둥 자체의 부실 시공이 심각했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준 회장은 원래 설계보다 기둥의 지름을 60cm로 줄이고 그 안에 들어가는 철근의 수도 설계 요구량인 16개의 절반인 8개로 줄이도록 지시했다.[38][3] 이는 기둥이 견딜 수 있는 힘을 설계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 옆 방화벽 설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기둥 단면의 4분의 1을 잘라내기까지 했다.[39][40]
철근 사용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무량판 구조에서는 바닥 슬래브가 기둥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기둥과 슬래브를 연결하는 상부 철근을 L자 형태로 구부려 단단히 고정해야 하지만, 삼풍백화점은 시공 편의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철근을 구부리지 않고 일(一)자 형태로 시공했다. 이로 인해 기둥과 바닥 슬래브의 연결이 매우 부실해져 붕괴 시 각 층 바닥이 기둥을 따라 쉽게 무너져 내리는 원인이 되었다.
이 외에도 콘크리트 강도 부족, 철근 배근 위치 오류 등 총체적인 부실 시공이 확인되었다. 잔해 조사 결과,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와 바닷물을 섞어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바닥 슬래브의 철근 역시 규정된 깊이(표면에서 5cm 아래)보다 더 깊은 10cm 아래에 배치되어 슬래브의 강도를 약 20% 감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5층 식당가 바닥에 난방용 온수 파이프를 설치하는 온돌 공사를 하면서 바닥 두께가 약 1.22m 가량 늘어나 건물 전체의 하중 부담을 가중시켰다.[3]
옥상에 설치된 대형 냉각탑 역시 부실 시공의 한 요인이었다. 당초 설계에 없던 무거운 냉각탑 3대(각 15ton)를 옥상에 설치하면서 건물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었고, 이후 소음 민원으로 위치를 옮기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롤러로 끌어 옮기면서 옥상 바닥에 심각한 균열을 발생시켰다.[3][5] 이 균열은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이러한 부실시공은 준공 검사 과정에서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 삼풍백화점은 정식 준공 검사를 받지 않고 가사용 승인만으로 1990년 7월 7일 개점했으며, 개점 9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 승인을 받았다. 이후 1994년 10월에는 지하 1층 구조 변경 공사를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위법 건축물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는 당시 만연했던 안전 불감증과 부실한 관리 감독 시스템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 2. 1. 철근
삼풍백화점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철근 사용과 관련된 구조적 결함이었다.애초 구조계산서에는 건물 4층과 5층의 일부 기둥(20개 중 8개)은 지름 80cm에 고장력 철근 16개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시공 과정에서는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이 기둥들의 지름이 60cm로 축소되었고, 사용된 철근 수도 요구량인 16개의 절반인 8개에 불과했다.[38] 이로 인해 해당 기둥들은 설계 강도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무량판 구조에서 바닥 슬래브와 기둥을 연결하고 기둥이 슬래브를 뚫고 나오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L자형 철근(굽힘 철근)을 사용해야 했으나, 삼풍백화점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L자형이 아닌 일(一)자형 철근을 사용했다. 이는 바닥 슬래브와 기둥의 연결을 부실하게 만들어, 붕괴 시 기둥이 각 층의 바닥을 쉽게 관통하며 건물이 순식간에 주저앉는 원인이 되었다.
철근 콘크리트 자체의 부실 시공도 문제였다. 잔해 조사 과정에서 천장과 벽에 시멘트와 바닷물을 섞은 기준 미달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고, 전반적으로 철근 콘크리트 시공이 부실했음이 드러났다.
무량판 구조에서 슬래브의 강도를 확보하기 위한 철근 보강재의 위치 또한 잘못되었다. 철근 보강재는 콘크리트 표면으로부터 5cm 아래에 배치되어야 슬래브가 충분한 힘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10cm 아래에 배치되어 구조물의 강도를 약 20% 더 약화시켰다.
더욱이,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방화벽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둥의 단면을 4분의 1가량 잘라내는 공사가 이루어졌다.[39][40] 이는 이미 약해진 기둥의 내력을 더욱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철근 관련 문제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건물의 구조적 안전성을 심각하게 저하시켰고, 결국 붕괴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2. 2. 2. 냉각탑
본래 삼풍백화점의 에어컨 냉각탑은 북관 동쪽, 삼풍아파트 7동 방향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백화점과 아파트 사이 거리가 30m도 채 되지 않아 냉각탑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이 계속 제기되었다.[3][11]이에 경영진은 1993년 8월, 냉각탑 3개를 북관 서쪽 우면로 방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전 방식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수십 톤 무게의 냉각탑을 크레인 대신 굴림대에 실어 옥상 바닥으로 끌어 옮겼고, 이 과정에서 이미 설계 변경과 부실 시공으로 약해진 옥상 바닥 전체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3]
애초 지하 설치 예정이었던 냉각탑은 지하 공간 확보를 이유로 옥상으로 위치가 변경되었는데, 이때 구조 계산 없이 무리하게 설치되어 평방미터당 610kg/m2의 추가 하중이 발생했다. 또한, 본래 6cm 두께로 계획된 옥상 슬라브에 방수 처리를 이유로 9cm를 추가 시공하여 총 15cm 두께가 되면서 하중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 때문에 개장 초기부터 냉각탑 가동 시 건물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갔다.[3][11]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한 무리한 냉각탑 이동은 옥상 바닥의 균열을 심화시켜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수사 결과 냉각탑 이동으로 발생한 균열이 붕괴의 직접적인 계기(트리거)로 밝혀졌다. 이후 2년간 냉각탑 가동 시 발생하는 진동이 균열을 계속 악화시켰고, 특히 5층 식당가와 연결된 5E 기둥 주변 슬라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붕괴 당일에는 냉각탑 가동이 중지되었지만, 이미 구조적 한계를 넘어선 상태였다.[11]
2. 3. 무리한 건축
삼풍그룹은 본래 서초구의 부지에 우성건설을 통해 4층 규모의 주거용 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이었다.[3] 그러나 건설 과정에서 삼풍그룹의 이준 회장은 이를 대규모 백화점으로 짓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우성건설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이유로 설계 변경을 거부하자,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자신의 회사인 삼풍건설산업을 통해 직접 백화점 건설을 강행했다.[3][5] 이는 건물의 안전성을 초기 단계부터 위협하는 결정이었다.건물은 당초 4층으로 설계되었으나, 정부 기관의 허가 없이 5층으로 불법 증축되었다.[3][4][5] 이 과정에서 추가된 5층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구조적 보강은 미흡했다. 또한 5층은 원래 롤러 스케이트장[3] 또는 키즈랜드 용도로 계획되었으나,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식당가(푸드 코트)로 불법 용도 변경되었다.[3][4] 특히 한식당 구역에 바닥 난방을 위한 ''온돌''을 설치하면서 상당한 무게의 콘크리트 층이 추가되어 하중 부담을 가중시켰다.[3] 5층 식당가의 과도한 하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식당가 하위 섹션에서 다룬다.
건축 구조 자체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삼풍백화점은 보 없이 바닥 슬래브가 기둥에 직접 하중을 전달하는 무량판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시공 과정에서 이 방식이 잘못 적용되었다. 이준 회장은 매장 공간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기둥의 직경을 줄이고 기둥 간 간격을 넓히도록 지시했으며,[3] 이는 각 기둥이 견뎌야 할 하중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더불어 기둥 내부의 철근 수를 줄이는 등[11] 기본적인 안전 기준조차 무시한 부실 시공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과 안전 무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전 무시 하위 섹션에서 설명된다.
2. 3. 1. 식당가
본래 4층까지만 설계되었던 삼풍백화점은 시공사였던 우성건설과의 계약 파기 이후, 경영진의 결정으로 무리하게 5층으로 확장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은 정부 기관의 허가 없이 이루어진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5층 증축으로 인해 바닥과 기둥이 추가되면서 건물 전체의 하중이 늘어났고, 특히 기둥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크게 증가했다.설상가상으로, 완공 후 5층의 용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안전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처음 5층은 키즈랜드로 계획되었으나, 백화점 수익 증대를 위해 식당가로 불법 변경되었다. 이 변경으로 인해 5층 바닥에는 무거운 배수로가 설치되었고, 추가적인 콘크리트 타설이 이루어졌다.
특히 식당가 중 한식당 구역에는 바닥 난방을 위한 온돌 설치가 결정되었는데, 이는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를 추가로 쏟아붓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더해, 설계 도면에는 전혀 없었던 무거운 벽돌벽, 조경용 돌정원, 대형 영업용 냉장고 등 과도한 중량의 시설물들이 5층에 무분별하게 설치되었다. 이러한 불법적인 용도 변경과 시설물 설치로 인해 5층의 하중은 당초 설계보다 3~4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1ton 트럭 1,200대 이상이 올려져 있는 것과 맞먹는 무게였다.
더욱이 4층에서는 매장 공간 확보를 이유로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주요 기둥 일부를 제거하는, 안전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총체적인 부실과 안전 불감증이 결국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2. 3. 2. 안전 무시
본래 옥상 바닥(슬라브)은 6cm 두께로 시공될 계획이었으나, 방수 처리를 이유로 9cm를 더 두껍게 시공하여 건물 하중이 증가했다. 또한 문제가 된 냉각탑 3개는 본래 지하에 설치하려 했으나, 지하 공간 확보를 이유로 옥상으로 위치를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구조 계산 없이 무리하게 설치가 진행되었고, 결국 평방미터당 610kg의 하중이 추가되었다. 이 때문에 냉각탑 가동 시 건물 전체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으며, 이는 백화점 개장 초기부터 건물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발생했던 원인이었다.삼풍백화점의 에어컨 냉각탑은 초기에 북관 동쪽, 삼풍아파트 7동 방향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냉각탑과 아파트 사이의 거리가 30m도 채 되지 않아 소음 문제가 발생했고, 인근 삼풍아파트와 삼호가든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었다.
이에 경영진은 1993년 8월, 냉각탑을 북관 서쪽 우면로 방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굴림대에 냉각탑을 싣고 옥상 바닥을 가로질러 밀어서 옮기는 위험한 방식을 택했다.[11] 각 냉각탑의 엄청난 무게는 옥상 바닥에 그대로 전달되어 심각한 균열을 발생시켰다. 이미 넓은 매장 공간 확보를 위해 기둥 일부를 제거하고 무단 증축을 하는 등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은 이 잘못된 냉각탑 이동 방식으로 인해 더욱 약화되었고, 옥상 바닥이 견딜 수 있는 하중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붕괴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개장 초기부터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고 원인 모를 누수가 발생하는 등 여러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경영진과 관리자들은 이를 무시하거나 원인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냉각탑을 잘못된 방식으로 이동시킨 것은 건물의 구조적 결함을 심화시켜 본격적인 붕괴를 초래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사고 조사 결과, 붕괴 2년 전 냉각탑 이동 과정에서 옥상 슬라브에 발생한 균열을 관리자들이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롤러를 이용한 무리한 이동으로 균열이 더욱 악화된 사실이 밝혀졌다.[11] 이 균열은 주요 지지 기둥 중 하나인 5E 기둥까지 이어졌고, 5층 식당 바닥에도 균열을 발생시켰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에어컨을 가동할 때마다 발생한 진동이 이 균열을 통해 기둥으로 전달되면서 2년 동안 균열이 점차 벌어졌다. 붕괴 당일에는 에어컨 가동이 중단되었지만, 이미 구조물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 결국 5E 기둥 주변의 5층 슬라브가 무너지면서 연쇄적인 붕괴로 이어졌다.[11]
이 외에도 조사 과정에서 건물의 여러 구조적 결함이 추가로 드러났다. 기둥의 직경은 계획된 80cm보다 작은 60cm로 시공되었고, 기둥 속 철근 수도 필요한 16개가 아닌 8개만 사용하여 건물 강도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바닥 슬라브를 강화하기 위한 철근 보강재 역시 규정(콘크리트 표면에서 5cm 아래)보다 깊은 10cm 아래에 배치되어 구조물의 강도를 약 20% 더 약화시켰다. 또한,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벽을 설치하면서 지지 기둥의 일부를 잘라내 기둥의 지지력을 더욱 약화시켰으며, 식당 등 무거운 시설이 들어선 5층 증축 역시 건물 붕괴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지적되었다.[3][11] 이러한 총체적인 안전 무시와 부실 시공은 결국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3. 붕괴 조짐
건물 붕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붕괴 이전부터 건물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이 지어지던 1980년대 후반은 1기 신도시 건설 붐으로 인한 자재난이 심각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산 저질 시멘트 사용, 콘크리트 및 철근 배합 부실 등 부실 시공의 정황이 있었으며, 이는 붕괴 시 성냥개비처럼 부러진 콘크리트 기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987년, 삼풍그룹은 과거 매립지로 사용되었던 서초구 부지에 백화점 건설을 시작했다. 본래 이 부지에는 우성건설이 4층 규모의 주거용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었다.[3] 그러나 건설 도중 삼풍그룹 회장 이준은 설계를 변경하여 대규모 백화점으로 용도를 바꾸도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에스컬레이터 설치 공간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지지 기둥 다수가 제거되었고, 계획에 없던 5층이 추가되었다. 5층은 처음에는 롤러 스케이트장으로 계획되었으나 나중에 8개의 식당이 있는 푸드 코트로 변경되었다.[3][4][5]
원래 시공사였던 우성건설은 이러한 설계 변경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이에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삼풍그룹의 자체 건설 부문을 통해 공사를 강행했다.[3][5] 건물은 1989년 말 완공되었고, 백화점은 1990년 7월 7일 개장하여 5년간 하루 평균 4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했다. 백화점은 아트리움으로 연결된 남관과 북관으로 구성되었다.[5]
완공된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였으나, 각 층의 하중을 분산시킬 보나 철골 구조가 없는 무량판 구조였다. 매장 면적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이준 회장은 기둥 두께를 안전 기준인 80cm보다 얇은 60cm로 줄이도록 지시했으며, 기둥 간 간격도 11m로 넓혔다. 이는 각 기둥이 견뎌야 할 하중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5층 식당가 바닥에는 온수 파이프가 매설된 두꺼운 온돌 콘크리트 층이 추가되었는데, 이 1.2m 두께의 온돌층은 슬래브의 무게와 두께를 상당히 증가시켜 하중 부담을 가중시켰다.[3]
1993년에는 삼풍백화점 옆 레포츠 센터 2층에 있던 금융 점포들을 1층으로 옮기고, 해당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1994년 1월 5일부터 '삼풍문고'라는 대형 서점을 열었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서적 무게는 건물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었고, 레포츠센터와 중앙홀 지역에서 수많은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삼풍백화점 측은 1995년 3월 2일 서점을 폐쇄했지만, 이미 발생한 균열은 계속 늘어나고 악화되었다. 중앙홀과 B관(스포츠센터) 건물에서 균열과 함께 뼈대가 휘는 현상이 나타났고, 건물 전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여 붕괴 당일인 6월 29일 무렵에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1995년 4월부터는 5층 북관 식당가 천장에서도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이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5층 바닥이 서서히 내려앉는 현상까지 관찰되었다.[41][42][43][44][45][46][47][48][49][50][51][52]
설상가상으로 백화점 옥상에는 총 45톤에 달하는 15톤짜리 공기 조절 장치(에어컨 실외기) 3대가 설치되어 구조물에 상당한 하중을 더하고 있었다. 이 장치들의 소음이 크다는 고객 불만이 제기되자, 1993년 백화점 측은 이 무거운 장비들을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고 롤러를 이용해 옥상 바닥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옥상 바닥 슬래브와 기둥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5] 특히 에어컨 장치들은 붕괴 직전 가장 눈에 띄는 균열이 발생했던 5층 5E 기둥 바로 위로 옮겨졌는데, 5층 기둥이 아래층 기둥과 일직선으로 정렬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하중이 슬래브를 통해 전달되면서 기둥의 균열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3]
4. 붕괴
1995년 6월 29일, 여러 차례의 붕괴 징후에도 불구하고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영업 중단 및 고객 대피 권고를 무시했다.[6] 오후 5시 50분경부터는 일부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긴급히 대피하라"고 외치기 시작했으나, 지하층 등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알지 못해 대피하지 못했다.
결국 오후 5시 57분(한국 표준시), 5층 바닥의 가장 취약했던 기둥 두 개가 무너지면서 옥상을 끌어내렸고, 이것이 연쇄 붕괴의 시작이었다. 곧바로 5층의 바닥과 천장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고, 5층의 잔해가 아래층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리면서 불과 20여 초 만에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건물 전체가 완전히 주저앉아 매몰되었다. 당시 백화점 내부에 있던 1,500여 명의 고객과 직원들이 순식간에 잔해 속에 갇히게 되었다.
붕괴 직후, 현장은 순식간에 뿌연 먼지와 회오리바람으로 뒤덮였고, 건물 파편은 백화점 앞 우면로는 물론 인근 서울고등법원 청사까지 날아들었다. 잠시 후 먼지바람은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잔해 더미 속에서는 손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거나 살려달라고 외치는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피투성이가 된 채 잔해를 헤치고 나오는 생존자들이 목격되었다. 한편, 이 혼란을 틈타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희생자들의 소지품이나 상품을 훔치는 절도 행위도 발생했는데, 당시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입건된 절도범만 400여 명에 달했다.
4. 1. 진동
이한상 삼풍백화점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이 붕괴 징후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사고 당일인 6월 29일이었다. 이날 5층에서 발생한 여러 이상 현상들이 비상 상황임을 알리고 있었다.사고 당일 오전 9시, 5층 식당 <춘원>의 주인 김서정은 '춘원 전주비빔밥 전문점 바닥에 2cm 정도 돌출된 부분이 생겼고 천장이 조금 내려왔으니 빨리 와서 확인해 달라'고 백화점 측에 긴급 연락을 했다. 현장 확인 결과, 5층 기둥에서는 20cm에 달하는 균열이 발견되었고 천장은 뒤틀려 내려앉아 있었다. 오전 9시 40분, 백화점 측은 바닥 침하 현상을 직접 확인하고 시설부의 권유에 따라 <춘원> 식당은 휴업에 들어갔다.
<춘원>과 인접한 우동집 <현지>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고, 냉면집 <미전>의 천장 역시 가라앉고 있었다. 오전 10시경에는 A동(북관) 4층 상품의류부 직원(당시 31세)도 건물 4층과 5층 사이에서 '뚝뚝,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약 3분간 강한 진동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이한상 사장은 오전 11시경 이영길 시설이사, 이완수 건축과 차장과 함께 5층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약 1시간 뒤, 우동집과 냉면집 천장에서 물이 계속 쏟아지고 바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결국 낮 12시경 5층 식당가의 영업을 전면 중단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동시에 삼풍백화점 측은 건물 설계 감리를 맡았던 우원건축에 연락하는 한편, 안전을 이유로 옥상 에어컨 가동과 5층 입주 업소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시켰다. 에어컨 가동 중단으로 백화점 내부는 매우 더워졌고, 이로 인해 많은 고객들이 불편을 느끼고 쇼핑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시점 옥상에서는 이미 슬래브가 기둥을 뚫고 내려앉는 펀칭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4. 2. 대책회의
오후 3시, 우원건축의 임형재 소장과 이학수 구조기술자가 삼풍백화점에 도착했다.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 붕괴 약 2시간 전에 삼풍백화점 남관 3층 임원회의실에서 이준 회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가 다시 열렸다.이 회의에서 임형재 소장은 건물 구조도를 그려가며 안전에 중대한 이상이 발견되었음을 알리고 긴급 보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화점 영업을 중지하고 고객들을 대피시키라"고 경영진에게 명확히 권고했다. 그러나 회의의 주요 쟁점은 매장 폐쇄 여부였고, 이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이학수 구조기술사는 "신공법으로 보수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며 "진행되던 침하는 현재 멈췄다"고 보고했다. 이준 회장 역시 사고 후 검찰 조사에서 기술자들이 보수를 하면 더 이상 위험이 없다고 했으며, 임원 중 누구도 영업 중지를 건의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결국, 붕괴 불과 2시간 전 이준 회장은 "큰 위험은 없으니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자"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는 명백한 붕괴 징후에도 불구하고 안전보다 영업 이익을 우선시한 판단이었다. 회의 이후 약 1시간 동안 구체적인 보수 계획 논의가 진행되었고, 임 소장은 설계 도면을 가지러 사무실로 돌아갔다. 삼풍 측은 중앙홀 2층의 행사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해당 층의 통행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오후 5시 40분경, 시설부장 이영철로부터 "현재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다급한 전화 보고가 임원실로 걸려왔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준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은 이 보고를 받고 즉시 대피하지 않았다. KBS아카이브 프로젝트 <시대유감, 삼풍>에 따르면, 이들은 붕괴 순간까지도 회의실에 남아 보수 계획을 논의하며 필요한 자재와 인력 수급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는 경영진이 붕괴 위험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회의장이 붕괴된 A동이 아닌 B동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와 언론은 경영진이 위험을 미리 알고 대피했다고 보도하여 경영진에 대한 비난 여론을 키웠는데, 이는 사건에 대한 충분한 취재 없이 이루어진 보도 행태라는 비판이 있다.
한편, 백화점 직원들은 여러 붕괴 전조에도 불구하고 쉽게 자리를 피하기 어려워 큰 피해를 입었다. 오후 5시 41분, 붕괴 16분 전에는 건물의 침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중앙홀과 2층에서 이상 징후를 느낀 일부 고객들은 대피했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쇼핑을 계속하고 있었다. 삼풍 측은 중앙홀 1층과 2층의 통행 및 영업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했으나, 다른 구역의 영업은 계속 강행했다. 임시방편으로 건물 네 귀퉁이에 지지대를 세워 침하를 막으려 했지만, 이는 오히려 5층 천장의 붕괴를 유발했고, 결국 1층, 5층, 지하 1층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4. 3. 매몰과 붕괴
1995년 4월부터 삼풍백화점 남쪽 별관 5층 천장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경영진은 상품과 매장을 아래층으로 옮기는 소극적인 조치만 취했다. 붕괴 당일인 6월 29일 아침에는 균열 수가 급격히 늘어나 매장 측은 최상층 일부를 폐쇄했다. 그러나 많은 고객 수와 당일 매출 손실을 우려한 경영진은 건물 폐쇄나 공식적인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3] 토목 전문가들이 간단한 점검만으로도 건물이 붕괴 위험에 처해 있음을 확인했고, 붕괴 5시간 전에는 에어컨 진동으로 5층 식당 슬래브의 금이 더욱 벌어지며 여러 차례 큰 소리가 들렸다. 고객들의 항의로 에어컨 가동은 중단되었지만,[5] 바닥의 금은 이미 10cm 너비까지 벌어진 상태였다.건물 붕괴가 임박하자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들은 즉각적인 대피를 제안했지만, 이준 회장은 매출 손실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정작 이준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은 붕괴 전에 건물을 빠져나갔다.[6]
오후 5시경, 5층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직원들은 5층으로의 고객 접근을 막았다. 붕괴 57분 전이었지만, 경영진은 여전히 영업 중단을 지시하지 않았다. 오후 5시 50분경부터는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긴급히 대피하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 고객은 영문도 모른 채 대피했으나, 지하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상황을 알지 못했다. 오후 5시 52분경, 마침내 균열 소리와 함께 직원들이 경보를 울리며 대피를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결국 오후 5시 57분, 5층 바닥의 가장 약했던 기둥 두 개가 무너지면서 옥상을 끌어내렸고, 곧바로 5층 바닥과 천장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5층의 잔해가 아래층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리면서, 약 20초 만에 건물은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완전히 매몰되었다. 이 사고로 백화점 안에 있던 1,500여 명의 고객과 직원들이 순식간에 잔해 속에 갇혔다. 이 재해로 502명이 사망하고 약 2700억원(당시 약 2.06억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붕괴 직후, 건물 주변은 뿌연 먼지와 회오리바람으로 가득 찼고, 백화점 앞 우면로와 인근 서울고등법원 청사까지 건물 파편이 날아들었다. 잠시 후 먼지바람은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사고 현장에서는 잔해 사이에서 손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거나 살려달라고 외치는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피투성이가 된 채 잔해를 헤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목격되었다. 한편,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희생자들의 소지품이나 상품을 훔치는 절도 행위도 발생했다. 당시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입건된 절도범만 400여 명에 달했으며, 고가의 바지 10벌을 껴입고 "추워서 입었다"고 변명한 사람도 있었다.
4. 4.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발언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 9 보도에 따르면, 삼풍백화점 붕괴 후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 이준은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기자에게 "이보쇼, 기자 양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이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라고 발언하여 국민적 공분을 샀다.[53] 하지만 당시 뉴스 취재 원본 영상에는 이준 회장이 이 발언 직후 "그런데 내가 어떻게 붕괴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할 수 있었겠냐"는 취지의 말을 이어간 것으로 확인된다. 이 부분은 뉴스 보도 과정에서 편집되었는데, 이는 시청자들의 분노를 삼풍백화점 측으로 집중시키려는 의도적인 편집이라는 지적이 있다.5. 최종 판결
1996년 8월 23일 대법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최종 판결이 확정되었다.[13]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 이준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적용되어 징역 7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12][13] 이는 1심의 10년 6개월에서 항소심을 거쳐 감형된 형량이다.[13]
삼풍백화점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설계 변경 등을 승인해 준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특별시 서초구청장 이충우와 황철민에게는 뇌물수수죄가 적용되어 각각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300만원과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200만원이 확정되었다.[15][16]
또한 정상기 전 서울시 상정계장, 김수익 우성건설 형틀반장, 김재근 전 서초구청 주택과장 등 피고인 10명에게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300만원에서 선고유예 및 추징금 100만원에 이르는 원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한편,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이한상(1953년~) 전 삼풍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이준의 차남) 등 12명은 상고를 포기하여 실형이 확정되었다.[14][15]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하여 업무상과실치사·업무상과실치상·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업무상횡령)·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뇌물수수·뇌물공여·부정처사후수뢰·수뢰후부정처사·허위공문서작성·허위작성공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총 25명이었다.[17]
출소 후 이준 전 회장은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지내다 지병 악화로 2003년 10월 4일 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4] 이한상 전 사장은 2002년 출소 후, 2004년 몽골로 건너가 선교사로 활동하며 울란바토르 북쪽의 헝거르라는 마을에서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54][14]
6. 사회적 영향
붕괴 사고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들에 대한 안전 불신과 공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전국의 모든 건물들에 대한 긴급 안전 평가를 실시했다. 평가 결과는 충격적이었는데, 전체 고층 건물의 1/7(14.3%)이 즉시 개축이 필요한 상태였고, 전체 건물의 80%는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했으며, 단 2%만이 안전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평가 결과 | 내용 |
---|---|
개축 필요 | 전체 고층 건물의 1/7 (14.3%) |
대규모 수리 필요 | 전체 건물의 80% |
안전 상태 | 전체 건물의 2% |
사고 현장에서는 기적적인 생환 소식도 들려왔다. 최명석은 11일, 유지환은 13일, 그리고 박승현은 무려 17일(377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3]
사고의 충격은 방송가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5년 7월 26일 MBC 경찰청 사람들에서는 삼풍백화점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의 비리에 연루된 관련자들을 공개 수배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변호사였던 안상수는 이 사건의 진상 규명과 관련된 방송 토론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민적 인지도를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산업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삼풍백화점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증축과 과도한 하중이 지목되면서, 이후 새로 지어지는 백화점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시설, 예를 들어 대형 서점이나 식당가(푸드코트) 등을 고층이 아닌 저층이나 지하층에 배치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인 부실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안전 불감증과 부패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무리한 설계 변경, 기준 미달의 자재 사용, 부실 공사, 허술한 관리 감독 등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이윤을 위해 안전을 경시한 결과였다.[3][4][5] 특히,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전후하여 수도권에서 벌어진 대규모 개발 붐 속에서 속도와 이윤만을 추구했던 당시 건설 관행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다.[3]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대중적 분노가 일어났고, 서울 도심에서는 수개월간 책임자 처벌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이 사고는 공공의 안전을 담보로 뇌물을 주고받는 부패한 관행과 기업의 탐욕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결국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한국 사회의 안전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건설 및 건물 안전 관련 법규가 대폭 개정 및 신설되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23]
- 기존 법규 시행 강화: 기존 건축 법규의 집행력을 높이고, 더욱 엄격한 건물 검사 절차를 도입했다. 특히, 구조적 안전성을 해칠 수 있는 무단 설계 변경을 막기 위해 모든 변경 사항에 대해 자격을 갖춘 기관의 철저한 심사와 승인을 의무화했다.
- 건축법 개정: 건축 법규 위반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여, 과실이나 부패가 드러난 경우 무거운 벌금과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 공공 다중이용시설물의 정기적인 안전 점검 및 유지 관리를 의무화했다. 공인된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안전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여 지속적인 안전 관리를 도모했다.
- 건설기술관리법 개정 (현 건설기술진흥법): 건설 프로젝트의 안전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 선진 건설 기술 및 자재 사용을 장려하고, 국제적인 안전 기준 준수를 요구했다.
- 정보 공개 의무 강화: 안전 점검 보고서, 건축 허가 등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여 건설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 사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
- 구조 안전 기준 강화: 삼풍백화점의 구조적 결함을 교훈 삼아, 건물 설계 시 철근 콘크리트 및 강철 보강재 사용 기준을 강화하여 건물이 상당한 하중과 외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도록 했다.
- 내진 설계 기준 도입: 지진에 대비한 건물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신축 건물에 대한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는 기준을 도입했다.[23]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향후 유사한 재난을 방지하고, 대한민국의 건축물과 사회 기반 시설 전반의 안전 수준을 높이며,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7. 피해와 보상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형 참사였으며, 막대한 재산 손실을 가져왔다. 사고 이후 피해자 및 유족들에 대한 보상 절차가 진행되었다. 구체적인 인명 및 재산 피해 규모, 그리고 보상 과정과 결과는 아래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7. 1. 인명피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해 사망 502명(남성 106명, 여성 396명, 사망확인 472명, 사망인정 30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1] 붕괴 당시 건물 안에는 약 1,500명 이상이 갇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 중에는 외국인 희생자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국적별 현황은 다음과 같다.
구조 작업은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붕괴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기적적으로 생존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18세의 유지환은 붕괴 약 12일 만에 구조되었고,[10] 마지막 생존자인 19세 점원 박승현은 붕괴 17일 만에 잔해 속에서 구조되었다.[9][10]
7. 2. 생존자 명단
- 권은정
- 고진광
- 최명석
- 유지환: 붕괴 후 거의 12일 만에 구조되었다.[10]
- 박승현: 19세 점원으로, 붕괴 17일 만에 마지막으로 구조되었다. 구조 당시 약간의 찰과상만 입은 상태였다.[9][10]
7. 3. 재산피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인한 재산 피해액은 약 2.7조원으로 추정된다. 붕괴된 건물은 R/C조 지상 5층/지하 4층 규모로, 연면적 73877m2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세부적인 피해 내역은 다음과 같다.
7. 4. 피해보상액
사고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한 총 보상액은 약 3.792조원으로 추정된다. 세부적인 추정 보상비는 다음과 같다.
사고 초기, 유족들은 1인당 평균 25만달러의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삼풍백화점 소유주를 대리한 서울시는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피해자 1인당 22만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18]
붕괴 사고 두 달 후, 이준 회장과 아들 이한상 부회장은 유족에게 보상하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내놓겠다는 내용의 공동 서명 메모를 서울시에 제출했다.[19] 이 결정으로 인해 삼풍그룹은 해체되었다.[20]
최종적으로 총 3,293건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합의 금액은 총 3.758조원(당시 환율로 약 3억달러)에 달했다. 피해 보상은 2003년까지 모두 완료되었다.[14]
8. 관련 작품
=== 소설 ===
- 정이현, 삼풍백화점 (2006년)
- 황석영, 강남몽 (2010년)
- 문홍주, 삼풍 축제의 밤 (2012년)
- 최은영, 〈1분〉 (2017년) - 소설집 《쇼코의 미소》 수록
- 산만언니,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91156758822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2021년)
=== 영화 ===
=== 드라마 ===
- 자이언트 (2010년)
-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1화 (2013년)
- 응답하라 1994 (2013년)
- 그냥 사랑하는 사이 (2017년)
- 초콜릿 1화 (2019년)
- 무브 투 헤븐 (2021년)
=== 만화 ===
- 윤태호, 야후 (1998년)
- 윤태호, 야후 완전판 (2009년)
- 손영수 (글) / 한상훈 (그림), 삼풍 (2013년) - 원작: 소설 삼풍 축제의 밤, 연재: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sampung 다음 만화속세상]
=== 다큐멘터리 ===
-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 KBS 다큐인사이트 - 모던코리아 : 시대유감, 三豐(삼풍)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시즌 2-14회 (2021년 6월 10일)
=== 음악 ===
- N.EX.T - The Return of N.EX.T Part 2 - The World 앨범 수록곡 '세계의 문'
9. 소방 활동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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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KBS 방송 중단 공지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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