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관천대
1. 개요
창경궁 관천대는 창경궁에 위치한 천문 관측 시설이다. 《서운관지》에 따르면, 관상감은 경복궁과 북부 광화방에 있었으며, 관천대는 창경궁 금호문 밖과 경희궁 개양문 밖에 새로 설치되었다.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러져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도록 돌대가 놓여 있었으나 현재 소간의는 없다. 관천대 위에 설치된 소간의는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기구로, 적도환, 백각환, 사유환의 3개의 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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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천문학사 -
첨성대
첨성대는 신라 시대에 지어진 천문 관측소로, 362개의 화강암 벽돌로 원통형을 이루며 높이 9.4미터이고, 1년의 일수와 절기 등을 상징하며, 2016년 지진으로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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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첨성대
개성 첨성대는 고려 시대 개성에 위치했던 천문 관측 시설로, 고려의 과학 기술 발전과 자주적인 국가 운영 의지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
창경궁 -
홍화문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시대에 지어진 후 소실과 재건, 훼손과 복원을 거쳐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문의 좌우 행각, 옥천교 등과 함께 홍화문 권역을 이룬다. -
창경궁 -
명정전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조선 성종 때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때 재건되었으며,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의 동향 건물이다. -
조선의 과학과 기술 -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세종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로, 해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과 절기를 알려주며,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12지신 그림과 24절기 선을 넣어 문맹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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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정산
칠정산 외편은 이순지와 김담 등이 회회력을 참고하여 천문 계산, 일식과 월식 예보, 행성 운동 등을 다룬 5책의 역서로, 조선 시대 농업 사회에서 기후와 날씨 예측을 통해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데 기여했다.
2. 역사 및 특징
《서운관지》에 관상감과 관천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관상감은 경복궁 영추문 안과 북부 광화방에 있었는데, 광화방에 관천대가 있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창경궁 금호문 밖과 경희궁 개양문 밖에 새로 설치되었고, 모두 관천대가 있었다. 흔히 첨성대라 불렸다. 숙종 무진년(1688)에 영감사 남구만이 터를 살펴 관가를 처음 세웠는데, 이것이 금호문 밖의 본감이다. 하늘을 살펴 숙직하는 제도가 한때 성하게 갖추어졌고, 대의 설치 규모는 대략 같고, 청사 동서쪽의 집은 작았다. 이때 김창집이 본감을 감독했다.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무너지고 황폐해지자, 임금이 신미년에 건물을 세워 측후하는 곳을 갖추었다. 무인년에는 문과 곁채를 세우고 호조에서 관천대를 수리하였다. 동쪽과 서쪽방과 청사가 7칸 반이고 이 청이 3칸이며 대문 좌우의 행랑이 각각 1칸이고, 해시계와 측우대가 있다. 관천대는 청사 남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돌난간을 둘러 평방석을 올려놓았는데, 천체를 관측할 때에는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하였으므로, 소간의대라고도 한다.
창경궁 관천대는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대의 한 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 있어,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현재 소간의는 없다.
2.1. 서운관지와 관천대
《서운관지》에 관상감과 관천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관상감은 경복궁 영추문 안과 북부 광화방에 있었는데, 광화방에 관천대가 있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창경궁 금호문 밖과 경희궁 개양문 밖에 새로 설치되었고, 모두 관천대가 있었다. 흔히 첨성대라 불렸다. 숙종 무진년(1688)에 영감사 남구만이 터를 살펴 관가를 처음 세웠는데, 이것이 금호문 밖의 본감이다. 하늘을 살펴 숙직하는 제도가 한때 성하게 갖추어졌고, 대의 설치 규모는 대략 같고, 청사 동서쪽의 집은 작았다. 이때 김창집이 본감을 감독했다.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무너지고 황폐해지자, 임금이 신미년에 건물을 세워 측후하는 곳을 갖추었다. 무인년에는 문과 곁채를 세우고 호조에서 관천대를 수리하였다. 동쪽과 서쪽방과 청사가 7칸 반이고 이 청이 3칸이며 대문 좌우의 행랑이 각각 1칸이고, 해시계와 측우대가 있다. 관천대는 청사 남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돌난간을 둘러 평방석을 올려놓았는데, 천체를 관측할 때에는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하였으므로, 소간의대라고도 한다.
창경궁 관천대는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대의 한 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 있어,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현재 소간의는 없다.
2.2. 창경궁 관천대의 구조
창경궁 관천대는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대의 한 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 있어, 그 위에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현재 소간의는 없다. 《서운관지(書雲觀志)》에 따르면, 관천대는 청사 남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돌난간을 둘러 평방석(平方石)을 올려놓았으며, 천체를 관측할 때에는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하였으므로, 소간의대라고도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