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만
1. 개요
남구만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을 시작으로 이조참판, 형조판서, 대제학, 영의정 등을 역임했다. 그는 소론의 영수가 되어 갑술환국 당시 희빈 장씨를 옹호하다가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으며, 저서 《동사변증》을 통해 단군에 대한 고증을 시도했다. 여러 드라마에서 그의 생애가 다루어지기도 했다.
| 씨명 | 남구만 |
|---|---|
| 휘 | 구만(九萬) |
| 자 | 운로(雲路) |
| 호 | 약천(藥泉), 미재(美齋) |
| 시호 | 문충(文忠) |
| 직업 | 문신, 시인, 역사학자 |
| 출생 | 1629년 |
|---|---|
| 사망 | 1711년 |
| 본관 | 의령(宜寧) |
|---|---|
| 당파 | 소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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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만 -
남해유배문학관
남해유배문학관은 경상남도 남해군의 유배 문학을 연구,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10년 개관한 문학관으로, 향토역사실,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남해유배문학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김만중의 《서포만필》 필사본과 송시열의 문집 《송자대전》 등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
1629년 출생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629년 출생 -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네덜란드의 과학자로서 진자시계와 밸런스 스프링 시계를 발명하고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발견했으며 빛의 파동설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업적을 남겼다. -
1711년 사망 -
마쓰다이라 요리즈미
마쓰다이라 요리즈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이자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삼촌으로, 이요 사이조 3만 석을 받아 상근 교대를 하지 않는 정부 다이묘가 되었으며, 그의 사후 가독은 아들 도쿠가와 요리치가 계승하였다. -
1711년 사망 -
루이 프랑수아 드 부플레르 공작
루이 프랑수아 드 부플레르 공작은 프랑스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여러 전쟁에서 뛰어난 군사적 지휘 능력으로 프랑스 원수와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레이스윅 조약 협상에도 참여하는 등 외교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2. 생애
남구만은 충청남도 홍성 결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김익희, 이경여, 송준길에게 글을 배웠다. 효종 때인 1656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1657년 정언이 되었다.
1679년 한성부 좌윤을 지냈으나,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남인 세력인 윤휴가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어 집을 지은 것과 허적의 서자 허견의 비리 등을 상소하였다가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복귀하여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다.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될 때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옹호하였고,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장희재와 주고받은 편지로 인해 장희재가 위기에 몰렸을 때 세자의 외숙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일조하였다. 이로 인해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았고,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으며,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2.1. 초기 생애
충청남도 홍성의 결성(結城)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김익희, 이경여, 송준길 등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1657년 정언이 되었다. 1664년 당시 중전이었던 명성왕후 (현종 비)의 백부 김좌명을 탄핵하였다가 파직되었고, 3년 뒤인 1667년 승지로 복직되었다. 이후 이조참판, 형조참판, 대사성 등을 지냈다. 이후 형조판서, 도승지,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2.2. 관직 생활
충청남도 홍성 결성(結城)에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김익희, 이경여, 송준길 등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1657년 정언이 되었다. 1664년 당시 중전이었던 현종비 명성왕후의 백부 김좌명을 탄핵하였다가 파직되어 3년 뒤인 1667년 승지로 복직되었다. 연이어 이조참판, 형조참판, 대사성 등을 지냈다. 이후 형조판서, 도승지, 부제학 등을 지냈다. 1679년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가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어 집을 지은 사실과 허적의 서자 허견의 비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조정에 복귀해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680년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다.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두둔하였고 장씨가 인현왕후의 제거를 위해 장희재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로 인해 장희재가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세자의 외숙임을 생각해 그의 목숨을 살리는데 일조하였다. 이로 인해 남구만은 서인 강경파인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으며,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1656년에 별시 문과에 합격했다. 그 후 한성부 좌윤, 대제학, 대사간, 우의정, 영의정, 봉조하를 역임했다.
2.3. 남인 탄핵과 유배
1679년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가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어 집을 지은 사실과 허적의 서자 허견의 비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조정에 복귀했다.
2.4. 경신환국과 복귀
1679년(숙종 5)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휴가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어 집을 지은 사실과 허적의 서자 허견의 비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거제도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조정에 복귀해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년)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다.
2.5. 소론의 영수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두둔하였고,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장희재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로 인해 장희재가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세자의 외숙임을 생각해 그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일조하였다. 이로 인해 남구만은 서인 강경파인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았고,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으며,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2.6. 갑술환국과 희빈 장씨 옹호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남구만은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옹호하였다. 장씨가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장희재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로 인해 장희재가 위기에 몰렸을 때, 세자의 외숙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일조하였다. 이로 인해 남구만은 서인 강경파인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았고,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2.7. 무고의 옥과 말년
1683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자 남구만은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이 일어나자 노론에 맞서 희빈 장씨를 두둔하였고, 장씨가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장희재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로 인해 장희재가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세자의 외숙임을 생각해 그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일조하였다. 이로 인해 남구만은 서인 강경파인 노론을 비롯한 유생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1701년 무고의 옥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으며,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3.1. 《동사변증》과 단군 인식
남구만은 저서 『동사변증』에서 단군조선을 건국한 단군에 대해 고증했다. 남구만은 단군의 치세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을 정리하고, "단군은 신적인 존재", "단군이 1500년 동안 조선을 다스리고 1908세의 여생을 마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4. 저서 및 작품
* 《약천집》
* 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중국어
* 《동사변증》: 단군조선을 건국한 단군에 대해 고증했다. 남구만은 단군의 치세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을 정리하고, "단군은 신적인 존재", "단군이 1500년 동안 조선을 다스리고 1908세의 여생을 마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5. 평가
남구만은 저서 《동사변증》에서 단군조선을 건국한 단군에 대해 고증했다. 남구만은 단군의 치세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을 정리하고, "단군은 신적인 존재", "단군이 1500년 동안 조선을 다스리고 1908세의 여생을 마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6. 관련 작품 및 문화재
남구만 관련 작품 및 문화재로는 드라마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공주 쌍수정 사적비가 있다.
6.1. 드라마
* 1988년 MBC 드라마 《인현왕후》 배우: 한인수
* 1995년 SBS 드라마 《장희빈》 배우: 한인수
* 2002년~2003년 KBS2 드라마 《장희빈》 배우: 최상훈
* 2012년 tvN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6.2. 문화재
* 공주 쌍수정 사적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